"디"와 "톰", 젠더의 용어에 관해
태국에서는 여성의 몸으로 남성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나, 타인들에게 남성으로 인식되는 이들을 “톰(Toms)”, 그리고 이들 옆에 있을 때 가시적 존재가 되는 그들의 파트너를 “디(Dees)”라고 부릅니다.
“톰(Toms)”은 말괄량이를 의미하는 “Tomboy”라는 단어에서 유래되었고, 1970년대부터 시작된 명명이라고 해요.
“디(Dees)”는 “여성적으로 정체화한 여성들을 일컫는 말”로서 영어 ‘Lady'의 줄임말
입니다.
“톰(Toms)”과 “디(Dees)”는 서로간의 상호작용의 맥락 안에서만 이해될 수 있는, 언어적이고 낭만적인 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톰”과 “디”라는 새로운 정체성 용어는 레즈비언 관계의 “부치”, “팸” 정체성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러나 톰/디, 부치/팸 관계를 동일한 것으로 이해하려고 한다면 금방 길을 잃고 깊은 심연으로 빠져버릴지도 모릅니다.
“디”과 “톰”이라는 주체는 동성애라는 개념이 명확하게 정의되지 않은 태국의 사회/문화적 배경에서 형성되었습니다.
태국에서 동성애(rak-ruam-pheet)와 이성애(rak-tang-pheet)라는 개념은 학계에서 영어를 번역하면서 도입된 최신의 개념
이라고 하는데요.
이 용어들은 여전히 일상어가 아닌 학문적인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문화적 배경에서 “디”와 “톰”이라는 정체성의 용어는 두 여성이 함께 한다는 의미의 ‘동성애’라는 개념보다, ‘여성적인’ 디와
‘남성적인’ 톰의 관계라는 부분에 방점을 두고 있습니다.
“톰”과 “디”라는 정체성은 그들의 성적지향이 아닌 “톰”과 “디”의 성별정체성에 대해 말하는 용어인 것이죠.
태국에는 두 사람 모두 트랜스젠더가 아닌 관계를 설명할 수 있는 용어가 없다고 합니다. MTF 트랜스 여성은 규범적 남성과 파트너가 되고 FTM 트랜스 남성은 규범적 여성과 파트너가 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톰"을 트랜스젠더로 인식하는 가운데, "톰"의 파트너인 "디"는 규범적인 여성으로 이해됩니다. "디"는 남성 혹은 "톰"이라는 남성적 주체의 규범적인 파트너로 인식되는 것이죠.
보살핌의 역학 속에서 구성되는 "톰(Toms)"의 남성성 "톰"은 남성들이 할 수 없는/하지 않는 방식으로 여성들에게 봉사하는 능력을 "톰"의 남
성성의 핵심에 놓습니다.
“디”의 감정을 세심하게 살피고 파트너를 먼저 배려하는 것은 “톰”의 남성성 표현에 있어 매우 중요한 부분인데요. 즉, "톰"은 '여자를 챙겨주는 역할'을 맡음으로써 자신이 '남자의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을 보여주지만, 실제 수행하는 돌봄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그것은 “남자같은”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나는 톰이 여성이고 따라서 그들이 모든 걸 남자처럼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
사실 나의 톰은 지금 집에서 내 빨래를 해 주고 있고 그녀는 주부처럼 뭐든지 다 할 수 있
어요. 하지만 집 밖에서는 나를 챙겨주고 터프하게 행동하죠.” - Chang
“디”인 Chang은 “톰”이 ‘여성성’과 ‘남성성’을 모두 가지고 있는 존재라고 이야기합니다. “톰”은 “디”를 챙겨주는 ‘강한 성격’을 가졌지만, 한편으로는 “디”의 집안일을 대신 해결해줍니다. 남성들이 할 수 없는, 혹은 하지 않는 방식으로 파트너를 돌봐주는 것이죠.
“디”의 빨래를 대신하고 짐을 들어주고 파트너를 위한 음식을 준비하는 것은 “톰”에게 일상적인 일인 것 같습니다. “디”가 그런 방식으로 자신을 돌봐주는 “톰”에게 익숙한 것처럼 말이죠.
"톰"은 “디”와의 관계 안에서, "디"에게 베푸는 적극적인 모습으로 남성성 수행의 내용을 만들어 갑니다. "디"는 특정한 형태의 남성성, 즉 "톰"의 돌봄을 필요로 하고, "톰"은 "디"를 통해 자신의 남성적 주체성을 수행할 수 있는 공간을 얻게 됩니다.
이처럼 "톰"과 "디"는 보살핌의 역학 속에서 상호 관계를 통해 서로 존재할 수 있게 되는 것이죠.
"디(Dees)", ‘잘못 젠더화된’ 주체-그렇다면 “톰”의 파트너인 “디”는 어떤 여성일까요?
“톰”이 위반하는 젠더 규칙의 내용은
비교적 가시화되는 반면, “디”는 ‘일반 여성’과 별다를 것 없는 존재로 여겨지는 듯합니다.
수동적이고 의존적인 존재라고 하는 규범적인 여성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존재로 여겨지곤 하는 것이죠.
디/톰 간 성적 관계에서 중요하게 작동하는 ‘터치 금지’라는 원칙은 이러한 “디”의 규범적 ‘여성성’에 대한 혐의를 짙게 만드는 것처럼 보입니다.
“디가 톰을 위한 섹스를 하도록 허용하는 톰은 인정할 수 없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왜 톰이라 말하나? 가서 디나 해라.” - 톰/디 뉴스레터 Anjareesaan 재인용
‘터치 금지’는 "디"가 "톰"의 몸을 만지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것을 뜻하는데요. "톰"은 성적 관계에서 일방적으로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하며, "톰"의 몸을 만지지 않는 "디"들은 디/톰 관계에서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성적역할을 수행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지만 결과적으로 터치 금지라고 하는 규칙은 “톰”으로 하여금 오직 “디”의 성적 만족을 위해서 움직이게 하는 것이 아닐까요?
이것은 “디”가 자신의 만족을 추구하는 데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요?
어떤 “디”는 규범적 관계 내에서의 안정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결혼을 이유로 “톰”을 떠나갑니다.
그리고 어떤 “디”는 스스로를 ‘일반여성’과 다르지 않은 존재로 서술하며 정상성을 벗어나지 않는 위치에 머무르곤 합니다.
그렇지만 모든 "디"들이 자신과 ‘일반 여성’이 똑같다고 간주되는 것을 편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아닙니다.
스스로를 “이렇게 ["디"로] 태어났다(born this way)”고 표현한 Jaeng은 "디"로, 그녀의 부모를 기쁘게 하기 위해 잠시 동안 결혼생활을 유지했지만 남편에게서 어떠한 감정도 느끼지 못해 얼마 지나지 않아 이혼을 했다고 이야기합니다.
이처럼 어떤 "디"들은 스스로를 ‘오직 "디" 일뿐’ 이라고 말합니다.
이들은 남성이 아닌 "톰"에게만 연애감정을 느끼고 "톰"과 평생의 관계를 만들어갈 “진짜 디”가 존재한다는 담론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이들은 “디”들이 남자와 함께하는 것이 "톰"들보다 상대적으로 쉬움에도 남자가 아닌 "톰"과 함께 하기를 선택했기 때문에 "톰"보다 더 이상하게 젠더화된 존재라고 말합니다.
“성(sex)은 여성의 성을 갖거나 남성의 성을 갖는다는 것을 의미해요.
그래서 사람들은 만약 당신이 여자이지만 남자와 결혼하지 않겠다고 하면 혼란스러워 하죠. 디들은 남자처럼 행동하지는 않으면서도 여전히 여자와 함께 있는 것을 원하기 때문에 매우 이상한 성이죠.” - Chang
디/톰을 이해하기 위해서 “톰”과 “디”라는 낯선 정체성을 이해하기 위해 팸과 부치, 동성애와 이성애 등 이미 존재하는 관계의 틀을 그들에게 덧씌워 보았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디/톰 관계는 팸/부치 관계처럼 동성애라는 성적지향을 전제로 하는 관계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트랜스젠더와 그의 규범적 파트너라는 틀은 어떤가요? “디”는 ‘여성적인’ 특성을 자기 것으로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젠더 측면에서의 정상성을 획득한 것처럼 보이지만, "톰"을 선택했다는 측면에서 성적으로는 애매하게 여겨집니다. 트랜스젠더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규범적인 여성이라고 부르기에도 모호한 측면이 있는 것이죠.
“톰”이 젠더를 뛰어넘어 새로운 의미의 남성성을 구성해가는 주체라면, “디”는 규범과 비규범 사이를 자유롭게 유영하는 ‘잘못 젠더화된’ 주체입니다.
레즈비언, 게이, 동성애, 이성애 - 우리에게 익숙한 안경을 내려놓고 그 이름으로 불리지 않는 다양한 섹슈얼리티들을 마주할 때 비로소 “톰”, “디” 정체성을 이해할 수 있는 키를 발견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 위의 글은 웹상에서 퍼 온 글임을 분명히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