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리나는 음악을 좋아하고 스스로 연주하는 데에도 관심을 보인다. 나는 피아노 개인 레슨을 하는 지인에게 카리나를 가르쳐 보겠냐고 물어봤다. 카리나와 선생님은 나란히 피아노에 앉았다. 아이는 왼손 한 손가락으로 연주를 하기 시작했다. 아이는 건반을 아주 잘 눌렀다. 선생님은 아이의 리듬에 따라 함께 연주했다.
그 후 아이는 오른손을 쓰더니 양손으로 연주해 나를 깜짝 놀라게 했다(한 번도 이 손을 써본 적 없었기 때문이다). 건반을 때리는 것이 아니라 자기 음악을 들으면서 섬세하게 치고 있었다. 아이는 음계를 우리만큼 잘 친다. 아이는 한 손가락으로 연주하다가 여러 손가락으로 코드를 흉내내듯 연주했다.
선생님이 연주를 중지하면 아이도 멈춘다. 그러면서 “다시 하자는 듯이” 선생님 손을 잡아 피아노 위에 다시 올려 놓는다. 우리는 아이에게 격주로 45분 레슨을 받게 하기로 했다. 선생님은 깊은 인상을 받아 아이가 간단한 노래를 연주할 수 있도록 계획하고 있다. 어제만 해도 내가 비웃었을 일이다. 나는 너무 놀랐고 내 딸을 너무 쉽게 과소평가한다는 사실을 또 한번 깨달았다. 나는 아이의 교사들과 모든 주변 사람에게 이 사실을 말한다.
❚영화
우리 집안 사람들은 모두 영화보러 가는 걸 좋아한다. 스테이시도 마찬가지다. 아이는 팝콘을 가장 좋아해서 줄을 서는 동안 다른 사람의 팝콘을 슬쩍 먹지 않을지 지켜봐야 한다. 사람들이 많지 않을 때 보러 가는 것이 가장 좋다. 나는 미리 극장 관계자에게 전화해 아이가 보기 가장 좋은 시간을 묻고, 영화 감상에 방해가 될 수 있다고 영화 관객들에게 양해를 구할 수 있도록 부탁한다. 아직 우리를 쫓아낸 극장은 없었다.
❚좋지 않은 날
가끔 친구가 그다지 즐겁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가 원하는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는 날도 있는 것이 당연하다. 그것도 삶의 일부이다.
쉐리가 상처 받았다고 느껴지면 그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어쨌든 모든 사람들이 가끔은 상처를 받는다. 누군가가 비장애인 자녀의 기분을 나쁘게 하거나 놀리면 그것을 인지하고 그럴 수도 있다는 걸 설명하려고 하지 않는가? 어느 날 작은 아이 한 명이 와서 쉐리가 가지고 있는 큰 공으로 놀고 있었다. 그 아이는 공을 집에 있는 모든 아이들에게 던졌지만 쉐리에겐 주지 않았다.
주려고 하다가 주저했다. 그 아이가 집에 가고 나서, 나는 쉐리에게 이 사실에 대해 말해 주었다. “그 아이가 공을 주지 않아서 기분이 나빴지?” 나는 그 아이가 아직 어려서 두려웠을 거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 남자 아이에게 강요하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랬다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더 많았을 것이다. 게다가 누가 자기랑 놀거나 소통해달라고 강요하는 사람과 놀고 싶겠는가? 놀고 싶어하는 친구들은 많다. 얼마 전 가족 모임에서 자주 못 본 사촌을 만났다. 그 아이는 모든 사람에게 공을 던지면서 놀았고 자연스럽게 쉐리도 거기 포함시켜 주었다. 아이는 신나게 놀았다. 그렇게 삶은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