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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아산-삼척-충북-천안 스크랩 아산 팸투어 (2)-산사로 가는 길과 유채꽃 그리고 현충사
지다 추천 0 조회 130 09.04.26 21:07 댓글 2
게시글 본문내용

 1) 맹사성고택->당림미술관->외암민속마을->봉곡사->도고파라다이스스파->곡교천->현충사-공세리성당->피나클랜드->배꽃마을 

 

봄날, 호젓한 숲 속 산사로 가는 길

 

봉곡사, 산사로 가는 봄 풍경은 맑고 고왔다. 호젓한 숲속을 20여분 걸어가자 봉수산 골짜기에 아늑하게 자리잡은 산사가 나왔다. 절은 아담했고 소박한 멋을 발하고 있었다. 봉곡사는 신라 진성여왕 원년(887)에 도선국사가 처음 지은 '모연고찰'이라 전해지고 있다. 임진왜란 때 폐허가 된 것을 인조 24년 고쳐짓고, 고종 7년 서봉화상이 수리하여 현재의 봉곡사로 이어져 오고 있다. 절 뒤편 언덕에 오르면, 봉곡사를 둘러싸고 있는 봉수산 골짜기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인다.

 

 

산사로 가는 호젓한 산길을 걷다보면 금새 몸이 가벼워짐을 느낀다. 울창한 숲속에서 나오는 피톤치드 때문이다. 봉곡사 가는길가엔 아름들이 소나무들이 도열해 있는데, 자세히 보면 V자로 홈이 파인것을 볼 수 있다. 일제강점기 일본군들이 송진을 채취하기 위해 소나무에 V자 모양으로 큰 상처를 낸 것이다. 한 세기의 시간이 지났지만, 그들이 낸 상처는 삭지 않고 그대로다.

 

 

봉곡사 가는 길에 소박하게 피어난 산벚나무꽃. 나는 언젠가부터 아무 색도 없는 하얀색 꽃이 좋아졌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화려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무색의 소박함에 있음을 깨우쳤다고나 할까. 검은 숲에 점점이 박혀 있는 산벚나무가 연출하는 풍경은 참 아름다웠다. 최근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이 산벚나무는 해인사에 보관되어 있는 팔만대장경 경판으로 사용되어졌다. 이전에는 모두 자작나무로 만들어진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최근 정밀한 전자현미경으로 조사해본 결과 산벚나무로 만든것이 64%, 돌배나무로 만든것이 14%, 자작나무로 만든것은 9%뿐이였다.

 

 

산?나무 환하게 핀 길을 걸어가는 즐거움.

 

 

봉곡사에 내걸린 연등.

 

 

나는 여행지에 온천이 있으면 꼭 들려본다. 뜨거운 온천수에 몸을 푹 담그고 있으면, 어느새 피로가 싹 가시고, 새로운 힘이 솟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유명세를 떨쳤던 온양온천과 도고온천. 조선시대 역대 왕들도 온천욕을 이곳에서 즐기지 않았던가. 이번에 들려본 파라다이스 스파 도고. 2008년 7월에 개관한 이곳은 명품 스파리조트다. 온천대욕장과 유황 노천탕 시설도 훌륭했고, 무엇보다 실내 바데풀과 실외 온천풀이 좋았다. 쌀쌀한 날씨에도 따뜻한 실외 온천풀에서 수영을 즐길 수 있으니 얼마나 즐거운가. 아이들 데리고 가족단위로 놀다가기에 제격인 곳이다. 다만 가격이 착하지만은 않다. 다양한 할인제도를 적극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한 곳이다.

 

 

 

 

여행의 큰 재미 중의 하나가 음식이다. 일정을 끝내고 연탄화로에 둘러앉자 구워먹는 돼지고기. 두툼하게 썰어낸 목살과 쭐깃하게 씹히는 돼지껍데기, 이집의 별미 계란찜. 노릇하게 구운 고기 한점을 입에 넣으면, 봄눈 녹듯이 살살 녹아버리고, 이슬이는 술술 잘도 넘어간다. 술잔이 ?순배 돌자 다들 얼굴이 붉어지며, 정겨운 이야기꽃을 피우고, 금새 오빠, 언니라며 친해진다. 여행의 진한맛을 느끼는 순간이다.

 

 

 

봄날, 아산 곡교천 둔치를 노랗게 물들인 유채꽃. 곡교천은 아산 시내를 가로질러 삽교호로 흘러 들어간다. 노란 유채가 환하게 핀 곡교천 둔치는 봄소풍 나온 가족들로 붐볐다.

 

 

 

곡교천 바로 옆에 있는 은행나무 가로수길. 가을이면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잎이 장관을 이룬다. 사진촬영지로로 손색이 없는 곳이다.

 

 

아산. 이순신 장군이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고, 영면하고 계신곳이다. 현충사는 오래전에 와봤지만, 그때는 별 감흥이 없었다. 이번에는 각별한 마음이었다. 김훈의 소설 <칼의 노래>를 읽은 뒤라 난중일기며, 장검을 보는 의미가 달랐다. 장군은 왜적의 칼에 숨진 아들 면의 죽음을 듣고, 창고 쌀가마니에 엎드려 숨죽여 울었다고 한다. 슬픔이 복받쳐서 울고 싶을 때 부하들앞에서 울 수가 없었다.

 

 

나는 이순신 장군의 영정에 인사를 드리고, 유물관에 놓여있는 '난중일기'를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이순신은 청년 장교 시절 함경도 국경에 근무할때는 <함경도 일기>를 썼고, 임진왜란 중에는 <난중일기>를 남겼다. 그날의 일을 빠트리지 않고 적었고 중언부언하지 않았다. 사실을 극도로 간명하게 쓴 일기지만, 그 문장의 함축미는 대단하다. 파워풀한 와인을 대했을 때처럼 난중일기에 함의되어 있는 의미는 깊고 넓다. 그래서 나도 장군의 글을 닮고 싶다. 

 

유물관에 있는 이순신 장군의 장검의 길이는 197.5cm, 무게는 5.3kg으로 육중하다. 태구련이라는 솜씨좋은 대장장이가 환도를 만들어서 이순신에게 기증했다. 지금 현충사 유물관에 보관된 칼이 태구련의 작품이다. 칼에는 "석자가 되는 칼로 하늘에 맹세하니 산과 물이 떨고, 한 번 휘둘러 쓰러버리니, 피가 강산을 물들이도다"(三尺誓天山河動色"(삼척서천산하동색) ㅡ揮掃蕩血染山河"(일휘소탕혈염산하). 매일 검을 바라보며 다졌을 장군의 마음 다짐이 느껴진다.

 

 

현충사 입구에 있는 이순신의 필적. '필사즉생 필생즉사', "반드시 죽으려는 자는 살고, 반드시 살려는 자는 죽는다." 장군이 명량으로 나아가기 직전에  쓴 휘호. 현충사 입구에 돌에 새겨놓았다. 장군은 명량해협에서 12척의 전선과 빈약한 병력으로, 133척의 적선과 결전을 치뤄, 31척을 격파했다. 이 싸움을 계기로 일본군의 전세는 급격히 기울어진다. 죽기로 작정하고 싸움에 임한 모습이 그려진다.

 

 

현충사 경내에 피어있는 야광나무꽃. 밤에는 하얀색 꽃이 환한 빛을 발하는 것처럼 보여 야광나무라 부른다. 연두색 잎새 앞으로 햐얀 꽃이 아름답다. 이 야광나무는 9월에서 10월 사이에 팥알 크기의 열매를 맺어 팥사과나무라 부르기도 한다. 콩알만한 사과같은 열매는 너무 시고 떫어서 날로 먹기는 힘들다.

 

 

 

 

아산시의 유명한 먹거리 인주 장어촌. 인주면 문방리 입구에서 약 2km에 걸쳐 민물장어 집들이 늘어서 있다. 쭐깃하게 씹히는 장어맛은 향긋하고 고소했다. 따라 나오는 구수한 청국장도 별미. 장어머리와 뼈를 푹 고아 갖은 재료를 넣고 하루를 푹 고은 소스를 발라 구워낸 장어 맛이 기가 막히다. 잘 구워진 장어를 생강채 한 점을 올려 쌈에 싸먹으면, 정말 맛있다. 맛있는 음식이 있어 더 행복한 여행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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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9.04.27 20:28

    첫댓글 어디든 현주누나가 들어가니까 그림이 사네...

  • 작성자 09.04.27 20:52

    우리 블로거기자단의 이영애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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