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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티-외디푸스: 자본주의와 정신분열증(1972)
들뢰즈와 가타리, 최명관, 민음사, 1994(원 1972) 608쪽.
Deleuze et Guattari, L'Anti-Oedipe: Capitalisme et Schizophrénie, Minuit, 1972, p. 494.
** 등록하다 또는 등기하다는 무슨 의미일까? 인간은 약속과 협약에서 말로서만 지켜지지 않을 때, 증거로서 표시(막대기), 기호(signe), 상징, 문자, 문장 등이 있어야 할 것이다. 설화에서 칼을 잘라서 집에 두고 떠난 아버지를 만나러가는 아들이 아버지와 칼을 맞추어보고서, 아버지와 자식임을 인정하는 예는 표시의 기본일 것이다. 역사상으로 문명과 문화의 연속은 상징과 기호에 의한 새김(기록)일 것이고 그리고 문자와 성문이 있을 것이다. 등록한 것은 기호들이 현실적으로 현실성을 획득한 것이리라. 인간은 문명의 발달과 조직의 복잡화에서 소유, 서열, 관계, 배치 등에서 문자의 유용성에 덕을 보아서, 문헌과 더불어 법률적 체계를 만들었을 것이다. 토지(대지)에서는 토지의 활용(유용)과 소유, 그리고 전유의 형식에 의한 등록이 있을 것인데, 대하(大河)의 홍수에 의해 경계를 상실했을 때, 재구성을 위한 측량이 필요하였을 것이다. 산업사회에서는 토지 위에 생산도구들의 소유는 제도상으로 등기가 필수적이다. 규소의 시대에서 사회소통망의 접속을 인터넷 상으로 기록이 남겨져 있어야 한다. 이런 등기가 토지에서부터 삶의 유용성이었는데, 생산의 발달에서 기계들 사이의 접합의 편리에 인간이 접속하는 지위에 있으며, SNS시에는 인간보다 접속 회수라는 양의 추상화에 의해 제도의 존속을 표현하는 방식에 이르렀다. 토지, 기계, 선의 접속(회로)로, 대상화, 개념화, 추상화의 길로 가면서, 상품, 화폐, 자본으로 추상화의 양태로 가면서, 인간이 삶이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하는 걱정이 든다. 그럼에도 추상화 속에도 인간의 속성[성격]이 있는 경우에, 추상작용에서 등록[흔적]이 인격과 뗄 수 없는 관계일까? 아니면 인격을 대신하는 수(2진법)의 나열에서, 즉 계열이 그리는 여러 곡선들 중의 한 곡선이 한 인격에 상응할까? 그 한 인격은 토지 위에서 대상화와 다른 현존 양태를 갖는 것은 아닐까? - 들뢰즈/가타리의 견해를 보자. 의식의 흐름에서 인격의 계열은 무엇을 등록[절단]하고 무엇을 대리[개념]하기 이전에 흐름의 이미지를 어떻게 설명 또는 표현할 수 있을까? (56WMF)
* 제3장은 제2장의 마지막 부분(2장 9절)에서 나온 세 부류의 불안정자들, 신경증자, 도착자, 정신병자를 토지와 연관된 사회양식으로 풀어보려고 한다. 그래서 각각은 야생인, 야만인, 문명인 등으로 대입시킬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양식은 부락사회, 국가사회, 자본사회이며, 야생, 야만, 문명과 대구일 것이다. 그러면 들뢰즈의 주장에는 또 하나 더 있다. 문화인, 복지 소비사회[공동체 사회], 분열증자일 것이다. 그리고 이들을 모두 넘어설 수 있는 자들이 (생명의) 신비주의자인데, 본능(직관)으로 사는 자일 것이다. 이 다섯째에서는 외디푸스가 필요 없다고 말하고 싶을 것이다. (40SKF)
외디푸스의 구조아래 사회와 권력 설명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정태적 사회이다. 이에 비해 고아들[생성자]의 진행과정을 보여주는 사회는 동태적 사회이다. 제1장에서 20세기 현대 사회의 성격이 점점 동태적이고 다양체적인 것이 드러났다. 그래서 정신분석학이 아니라 분열분석학이 되어야 한다고 한다. 제2장은 정신분석학은 정태적 사회와 국가체를 형성하는 기본 구조였다는 것을 누누히 강조하면서, 이것은 자체적으로는 논리적 오류, 실재적 반대 사례 즉 미신, 현실적 기만, 미래적 환영 등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새로운 생성과 과정의 분열분석은 구조가 아니라 구조를 만드는 동력 또는 자연적 권능에 합일(union)의 과정을 보여준다. 오류와 미신은 과학과 철학이 누누이 강조해 온 바이다. 이로서 기만과 환영의 기호성과 실현화의 차이를 보여주어 동적인 사회의 실재 전개를 설명하고 싶었을 것이다. 제2장은 결국 정태적 사회의 기본 틀에 대한 비판이며, 제3장의 동태적 사회로 나아가는 전주곡일 것이다. 이제 제3장의 동태적 사회의 흐름에서 공시태의 위상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고 나아가 동태적 사회의 미래적 관점은 제4장이 될 것이다. (40SMH)]
제1장 욕망하는 기계들 Les machines désirantes 7-59 [몸의 기능] [의식의 역량]
제2장 정신분석학과 가족주의: 신성가족 Psychanalyse et familialisme : La Sainte famille 60-162.
제3장 야생인들, 야만인들, 문명인들 Sauvages, barbares, civilsés 163-324.
01절 등기를 행하는 사회체 Socius inscripteur 163-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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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야생인, 야만인, 문명인 Sauvages, Barbares, Civilisés. 163
1절 등기(登記)를 행하는 사회체 Socius inscripteur 213(원 163)
3.1.00. 등록 L'enregistrement - [등기]
[이 소항목(3.1.00. 등록)은 단락의 항목일 뿐만 아니라, 소절(3.1. 등기 사회체)의 주제이다. 즉 모든 기계는 사회에 어떤 방식으로든 등록되고 기록되어야 한다. 발전된 사회에는 식물도 동물도 곤충도 박테리아도 등록하고 있다. 생명있는 모든 등록은 DNA의 등록이다. 사회체 내에서 등록이란 함께 조립하여 움직일 수 있는 모든 것의 등록인 셈이다. 기계는 당연히 등록번호가 있다. -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사람의 등록번호가 다르듯이 모든 기계도, 마치 전철의 기관차량의 번호들이 다르듯이, 등록번호가 다르다. 등록은 차이가 있다는 것을 전제한다. 이 차이는 공간의 차이를 당연히 인정할 뿐만 아니라, 어디와 연결하는가 라는 연결(connecxion)상의 차이가 위치(position)의 차이가 있다. 같은 연쇄의 열차에 이등칸이 있고 일등칸(특등칸)이 있다. 그리고 이 연결의 방식이 동질의 연쇄로 가정된다면 연접으로, 이질의 나선으로 가정된다면 이접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연결의 무작위성을 인정하는 연관은 카오스모스일 것이다. 이 새로운 평준화의 양식이 새로운 사회의 위상없는 등록방식일 것이다. 위상이 없다는 것은 생산과 동시에 소비를 자치적이고 자기 생산적으로 가능한 분자적 단위라는 것이다. 이 단위가 등록의 단위이다.(40SKG)]
3.1.1.어떤 의미에서 자본주의는 보편적인가 En quel sens le capitalisme est universel -
3.1.1.2. 사회기계 La machine sociale -
[토지 생산의 등록을 탈코드화하는 것이 자본주의 사회기계이다. 이 기계는 한사람에게 소유를 인정하게 되면 흐름도 우연도 없다. 그래서 코드에 저항하는 것이 자본주의이다. 자본주의 사회체는 인류발달사에 항상 개입했다. 그런데 자본주의 사회체에는 자본가의 계산 가능한 부(기록가능한 부)와 노동자의 만남에 있다.]
보편적이란 것(l’universel)이 결국에 명백히 정복자로서 자본주의에 의해서 결정되는 조건들에서 기관없는 신체와 욕망하는 생산이라면, 어떻게 보편적 역사를 만들기 위해 어떻게 아주 순진하게 찾을 수 있는가? 욕망하는 생산은 또한 처음부터 있다. 사회적 생산과 재생산이 있자마자, 욕망하는 생산이 있다. (163)
욕망을 코드화하는 것 – 탈코드화 된 흐름의 공포와 불안[을 코드화하는 것]은 – 사회체(socius)의 업무(l’affire)이다. 우리가 보게 될 것이지만 자본주의는 탈규준화된 흐름들 위에구축된 유일의 사회적 기계이다. 그 사회적 기계는 내생적 코드들 대신에 화폐의 형태로 추상화된 량들의 공리체계로 대체된다. 따라서 자본주의는 욕망의 흐름들을 해방시키지만 이것은 자본주의의 한계와 자본주의 자체의 해체의 가능성을 규정하는 사회적 조건들 아래서만 가능하다. (163)
맑스(Marx, 1818-1883)가 정식화한 규칙들을 정확하게 따르는 조건에서, 역사 전체를 자본주의에 비추어서 회고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옳은 일이다. 먼저 세계사는 우발적 사건들의 역사이지, 필연의 역사가 아니다. 단절과 한계들의 역사이지 연속의 역사가 아니다. .. 이리하여 사적 소유와 상품생산의 만남이 있다 이 둘은 탈코드화의 매우 다른 두 형태로서, 즉 사유화와 추상화에 의한 두 형태로서, 표현되었다. (163-164)
맑스가 말하는 것처럼, 자본주의가(적어도 어느 점까지: 극한으로 향하는 경향에 거역하는 운동 속에서 조차, 극한이 나타나는 점까지) 자기 자신을 비판할 수 있는 한에서만 진실이다.간단히 보편사(l’histoire universelle)는 회고적인 것만은 아니며, 우연적이고, 특이하며(singulière), 아이러니컬(ironique)하며, 비판적(critique)이다. (164).
3.1.2. 사회체의 문제, 흐름들의 코드화 Le problème du socius, coder les flux - 164
[사회체는 3가지 양태가 있다?: 하나는 토지, 다른 하나는 기술적 사회체, 나머지 하나는 문화(문명이라기보다)를 소비라는 사회체일 것이다]
욕망과 생산의 원시적 단위, 즉 야생(sauvage), 그것은 토지(la terre, 지구)이다. 왜냐하면 토지는 노동의 다양하고 분할되는 대상이 아니라, 분할될 수 없는 단일한 본징(l’entité)이며 충만한 신체이기 때문이다. 충만 신체란 자연적인 또는 신적인 전제로서 생산력들 위로 선회하여(se rabattre sur) 자기 것으로 삼는 충만 신체이다. (164)
그러므로 토지기계(la machine territoriale)는 사회체의 최초의 형태이고, 원시적 등기의 기계이며, 사회터전을 덮는 메가머신(mégamachine)이다.. .. 이에 반해 사회기계는 인간들을 부품으로 다룬다. 인간들을 그들의 기계들과 함께(avec) 고찰하고, 그들을 행동, 전달, 동력성의 모든 단계에서 하나의 제도적 모델 속에 통합하고 내면화할 때 바로 인간들을 부품으로 다룬다. 그것(사회기계)은 또한 기억(mémoire)을 형성하며, 기억 없이는 인간과 그 기계들의 시너지(synergie)효과가 없을 것이다. (165)
예를 들어, 시계는 등질 시간(temps uniforme)을 측정하는 기술기계일 수 있고, 법규로 정한 시간(heures canonique)들을 재현하는 나라의 질서를 보증하는 사회기계일 수 있다. 그러므로 루이스 맘포드가 집합적 본징(l’entité)으로서 사회기계를 가리키 위하여, “메가머신”이라는 단어를 창조하였을 때 그는 문자적으로 일리가 있다(그가 이 단어를 야만적 전제군주제도에 이 단어의 적용을 유보했더라도 말이다). (165) [이에 비해 전자의 시간은 추상적 단선의 시간이며, 후자는 계획표에 의한 시간표와 같다. 일주일의 각 요일은 24시간이며, 토요일과 일요일은 휴일의 시간표이다. 사회기계의 시간표에서 토요일의 노동은 과외 수당을 주어야 한다. 이에 비해 농부의 노동은 시간이다. 요일이 없다.]
“로일로(Franz Reuleaux, 1829–1905)의 고전적 정의를 다소간 일치한다면, 사람들은 기계를 마치 단단한 요소들의 결함체로서, 그 각 요소가 자기의 특수한 기능을 가지고 인간의 통체 아래 가동하여 운동을 전달하고 노동을 수행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면, 인간기계는 바로 하나의 참된 기계였다.”
사회기계는 말 그대로 하나의 기계이며, 부동의 원동자로 표현되는 한에서 모든 은유로부터 독립되어 있으며, 그것은 여러 종류의 절단을 진행한다. .. 흐름을 코드화하는 것은 이 모든 조작을 포함한다. 이것은 사회기계의 최고의 임무이다. ... 여자들과 어린이들의 흐름, 양떼와 낟알의 흐름, 정자와 똥과 월경의 흐름, 이것들 중 어느 하나 코드에서 벗어나서 안된다. (165-166)
원시 토지기계는, 그 부동의 원동자인 토지와 함께, 이미 사회기계 즉 메가머신이요, 이 기계는 생산의 흐름들, 생산수단의 흐름들, 생산자와 소비자의 흐름들을 규준화한다. 여신인 지구(Terre, 토지)의 충만한 신체는 자기 위에서 지배 가능한 종자들, 농업 용구들 및 인간들의 기관들을 결합시킨다. (166)
3.1.3. 교환하는 일이 아니라 표시하고 표시되는 일이 근본적인 일이다
Non pas échanger, mais marquer, être marqué - 166
메이어 포티스(Meyer Fortes 1906-1983)는 유쾌하고 의미심장한 논평을 지나가듯이 말한다. “문제는 여자들의 순환에 관한 것이 아니다.‥…여자는 그 스스로 순환한다. 사람들은 여자를 마음대로 취급하는 것이 아니라, 자손에 관한 법률적 권리들은 특정 인물에게 이익이 되게 고정되어 있다.” (166)
사회는 무엇보다 먼저 순환하고, 순환시키게 되는 본질인 교환의 터전(milieu)이 아니라, 표시하고(marquer) 표시되는 것이 그 본질인 등기의 사회체(un socius d’inscription)이다. 순환은 등기가 그것을 요구하거나 허용할 때만 생긴다. (166) [여기서 말하는 사회는 일반성을 지칭한다. 그 속에서 3가지 양태를 포함한다.]
신화들은 부분대상들-기관들을 노래한다. ... 대식가의 꽁트는 이렇게 시작한다. “입이 죽었을 때, 신체의 다른 부분들에게 어느 부분이 그 매장(埋葬)을 맡을 수 있는지를 사람들은 상의할 것이다 ‥…”단위들은 인격들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 오히려 기관들의 연접. 이접, 순접들을 규정하는 계열들 속에있다. 이런 까닭에 환영들(les fantasmes)은 그룹의 환영들이다. 욕망을 사회체에 연결시키고, 사회적 생산과 욕망하는 생산을 대지[땅] 위에 하나의 전체로 묶는 것은 기관들의 집단적 공급(l’investissement)이다. (167)
3.1.4.기관들의 공급과 탈공급 Investissement et désinvestissement d'organes – 167
이와 반대로 우리의 근대사회는 기관들의 방대한 사유화를 진행되었다. 이 사유화는 추상화된 흐름들의 탈코드화에 상응한다. 사유화되어야 할, 즉 사회터전 밖에 두어야 할, 최초의 기관은 항문(anus)이다.항문은 사유화에 자기 모델을 제공했으며, 이와 동시에 돈은 흐름의 새로운 추상 상태를 표현했다. (167)
항문적인 것(anal)이 스스로를 승화에 제안하는 것이 아니라, 승화 전체가 항문적이다. [참조: 우리가 한편으로 화폐(돈), 황금, 자본과 자본주의 삼각형을, 다른 한편 리비도, 항문, 남근을 가지고 삼각형을 평행으로 놓고서 만족하는 한, 우리는 기분 좋은 심심풀이를 보내는 것이다. (AO 36)]
아르또(1896–1948)는 다음과 같이 잘 말한다. “하늘의 천장에 매어달린 죽은 쥐의 엉덩이”라고. 여기서 아빠-엄마-나의 삼각형이 나온다. 즉 “광란하는 항문의 씨다른 어머지-아버지”가 나오는데, 이들에게서 생긴 아이는 삼각형의 한 각일 뿐이며, “자아라고 하는 어떤 것 위에 영원히 달려 있는 일종의 덮개일 뿐이다. 외디푸스 전체가 아날(항문적)이다. (168)
외디푸스의 보편성에 대해 가장 호의 있는 주석가들도 .. 원시사회에서는 어떠한 메카니즘들도 어떠한 태도들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 [원시사회에서] 초자아도 없고, 죄책감도 없다. 종적인 자아를 전반적인 인격에 동일시도 없으며, 오히려 부분적으로 그룹으로 동일시가 있다. ... 항문성도 없다, 있다 할지라도 또는 오히려 집단적으로 공급된 항문이 있다. 그러면 외디푸스를 만들기 위해 무엇이 남는가? (168)
자본주의가 모든 사회들을 시달리게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보편적 외디푸스가 모든 사회들을 시달리게 한다고 믿어야 하는가? 말하자면, 흐름의 탈코드화와 기관의 집단적 탈공급이, 욕망의 흐름의 추상적 생성과 기관들의 사적 생성이, 마치 악몽 또는 불안한 예감처럼 모든 사회들을 시달리게[머리속 시끄럽게] 하는가? (168)
3.1.5. 잔인성: 인간에게 기억을 하게 하는 일 La cruauté: faire à l'homme une mémoire
원시토지기계는 흐름들을 코드화하고, 기관들을 공급하고, 신체에 표시[등록]한다.어떤 점에서 순환한다거나 교환한다는 것은, 신체를 표시한다는 것과 같은 요약하는 임무에 비하여, 이차적 활동이다. (169)
(기관의 사유화는 인간이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à la vue) 체험된다는 부끄러움과 더불어 시작할 것이다) (169) [인간이 타인의 시선에 의해 규정된다는 것은 글로 남아 있는 인격의 모습에서도 보인다. 누가 그를 보고서 묘사한 것인가 라고 하기보다, 그가 타인에 의해 그렇게 알려진 것으로 되어 있다. 이집트 신전에 돌에 새겨진 글쓰기, 이와 같이 비석의 비명(碑銘)은 다음 시대의 대표적 글쓰기일 것이다.]
니체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인간에게 기억한다는 것은 중요하다. 생물학적 기억을 억제함으로써 망각의 적극적 능력으로 구성되어 있는 인간은 하나의 다른기억을 얻어야만 한다. 이 다른 기억은 집단적인 것으로, 말들의 기억이지 사물들의 기억이 아니며, 기호들의 기억이지 결과들의 기억이 아니다. [그것은] 잔인성의 체계, 무서운 알파벳, 기호들을 신체에까지 아로새기는 조직(organisation)이다. “아마 인간의 선사시대에서 그의 기억술보다 더 불안한 것도 없을 것이다.‥… 인간이 하나의 기억을 만들어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을 때 그것은 피비린내나는 체형들, 순교들, 희생들 없이 있어본 적이 없다. 가장 끔찍스러운 번제(燔祭)들과 가장 추악한 저당(抵當)들, 가장 역겨운 팔다리 절단들, 모든 종교적 종파들의 가장 잔인한 의식들 없이 있어본 적이 없다‥…. 사상가드로서 구성된 한 민족을 키운데에는 이 지상에서 얼마나 많은 고난을 치러야 하는지는 이제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여기서 잔인성은 인간의 역사를 설명할 대 거론하는 어떤 자연적 폭력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169-170)
여기서 잔인성(cruauté)은 인간의 역사를 설명하는데 부담지우는 어떤 자연적 폭력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잔인성은 문화의 운동이며, 이 운동은 신체를 힘들게 일하게 하면서, 신체들 속에 작용하고, 신체 위에 등기한다. (170)
그래서 맨살에 이렇게 아로새기는 것을 글(écriture)라고 부르고 싶다면, 말은 글을 전제하며, 인간에게 언어활동(language)을 가능하게 하고, 그에게 말투(paroles)들의 기억을 주는 것은 이 아로새겨진 기호들의 잔인한 체계라고 실제로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 (170) [(40SKG)] (옮김, 4:19, 56WKG) (6:27, 56WM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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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등기하는 사회체
1818 맑스(Karl Marx, 1818-1883) 독일 공산주의 혁명가, 혁명적 사회주의자, 철학자, 언론인, 역사가. 자본론 제1권: 자본의 생산방식(Das Kapital. Buch I: Der Produktionsprocess des Kapitals, 1867) Marx, Introduction généale à la critique de l'économie politique, 1857, Pléiade, I.
1829 로일로(Franz Reuleaux, 1829–1905), 독일 기술자. 메카니즘 개념작업의 전문가. 로일로 삼각사면체(tétraèdre de Reuleaux) 로일로 삼각형(triangle de Reuleaux).
1844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1900)[쉰여섯] 독일의 철학자. Nietzsche, La Généalogie de la morale, II, 2-7.
1895 멈포드(Lewis Mumford, 1895-1988), 영국 출신 문명비평가. Lewis Mumford, "La Première mégamachine", Diogène, juillet 1966.
1896 아르또(Antonin Artaud, 1896–1948) 프랑스 작가, 시인, 시각예술가, 수필가, 극장주. 반 고흐 사회의 자살(Van Gogh le suicidé de la société, 1947) (9) Le Pèse-nerfs, 1925
1906 포티스(Meyer Fortes 1906-1983) 영국의 사회인류학자. 서아프리카 사회에 대한 연구. Meyer Fortes, in Recherches voltaïques, 1967, 135-137.
1911 빠랭-마테이(Elisabeth Charlotte Parin-Matthèy dit Goldy, 1911-1997), 오스트리아-헝거리 태생 가계, 스위스 정신분석가, 아나키스트. 뽈 빠랭의 부인(1955년 결혼).
1915 오르티그(Marie-Cécile Ortigues, 1915-2008, née Gélinier) 여성 심리학자. Oedipe africain, 1966,
1916 빠랭(Paul Parin, 1916-2009) 스위스 의사, 인종학자, 정신분석가. Paul Parin et coll., Les Blancs pensent trop, 1963, tr. fr. Payot: [Paul Parin, Fritz Morgenthaler, Goldy Parin-Matthèy, Les blancs pensent trop: 13 entretiens psychanalytiques avec les Dogon, Payot, 1966.]
1917 오르티그(Edmond Ortigues, 1917–2005), 렌 대학교수, 철학자, 신학자. Le Discours et le symbole, 1962.
1919 모르겐탈러(Fritz Morgenthaler, 1919-1984) 스위스 신경학자, 정신분석가.
1934 고들리에(Maurice Godelier, 1934-) 프랑스인 인류학자. 맑시즘 변호. 파푸아뉴기니아에서 작업. L'Énigme du don, 1996 Maurice Godelier, Sur le mode de production asiatique, Ed. Sociales, 1969, 92-96
(7:21, 56WM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