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충기의 세계배낭여행기 122>
유구한 역사와 문화의 나라 중국
허난성(河南省) 1
1. 천하의 중심 중원(中原)
<1> 중국 어머니의 강 - 황하(黃河)
허난성(河南省)은 중국의 양대강(兩大江/黃河, 揚子) 중의 하나인 황하(黃河)와 인접하고 있으며 그 남쪽에 있다하여 하남(河南)이라 이름이 붙여졌다. 면적은 16만 7천㎢로 우리나라 남북한 넓이보다 조금 작고, 인구는 9천 7백만으로 우리나라 남한인구의 두 배 가량인 거대한 성(省)이다. 명실 공히 중국의 심장부라 하여 중원(中原)이라 불렸으며 중화(中華)의 발상지로 꼽힌다.
춘추전국시대, 중원(中原)을 장악하면 천하(天下)를 얻는다고 했다던가? 허난성은 성도(省都)인 장저우(鄭州)를 중심으로 5.000년 고도(古都)인 낙양(洛陽)과 드라마 ‘포청천’으로 유명한 개봉부(開封府)가 있다. 또 등봉현(登封縣)의 숭산 소림사, 중국 최초의 절이라는 백마사(白馬寺), 중국 3대 석굴 중 최고라는 용문석굴, 황하 유람구 등 수많은 고대 유적지와 관광지가 있다. 뿐만 아니라 중국문명의 발상지로 갑골문자가 발견된 은허(殷墟)가 있고, 근래에는 이곳에서 북경원인보다 더 오래된 인류 유골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중국은 오악(五嶽)이라 하여 다섯 개의 빼어난 산을 꼽는데 동쪽(東)은 태산(泰山), 서쪽(西)는 화산(華山), 남쪽(南)은 형산(荊山), 북쪽(北)은 항산(項山)이며 중악(中嶽)은 이곳 하남성의 숭산(嵩山)을 꼽는다.
또 죽어서 간다는 천하 명당 장지(葬地)인 북망산(北邙山)도 이곳에 있고 또 장가계(張家界), 원가계(袁家界)와 비견된다는 운대산(雲臺山) 자연풍경구(自然風景區)도 멀지 않다.
이곳은 조선족이 거의 없이 대부분이 한족이며 극소수의 회족이 이슬람 전통을 지키면서 살고 있다.
버스 차창으로는 붉은 진흙의 계곡이 도처에 보이는데 진흙 절벽마다 벌집처럼 구멍이 뚫려 있다. 석기시대 원시인들이 살던 흔적(穴居)으로 지금은 주거용 보다는 곡식 창고 등으로 간혹 사용되고 나머지는 버려진 채로 비어 있다고 한다. 수천 년의 역사와 애환을 간직한 실크로드의 출발점이 이곳 낙양이며, 아름다운 채색 토기인 당삼채(唐三彩)가 발전한 곳으로 거리에는 당삼채 전문 가게가 많이 눈에 띈다.
2. 황하 유람구(黃河 遊覽區)
강가에서 바라보면 황하(黃河)는 강인지, 호수인지, 흐름도 보이지 않고 시뻘건 흙탕물이 펼쳐져 있고, 곳곳에 모래언덕들이 이어져 있는데 희뿌연 흙먼지로 강 건너편은 보이지도 않는다.
중국인들이 어머니의 강이라고 사랑한다는 황하는 숱한 역사를 엮어내며 흘렀고, 또 상류의 흙을 실어 날라 비옥한 삼각주를 형성하여 문명을 꽃피운 중국의 젖줄이라고 하는데 겨울의 황하는 그런 역사적 의미보다는 쓸쓸하고 처량하다는 느낌 밖에 들지 않는다.
황제(皇帝)와 염제(炎帝) 상 / 황하 강변의 승마체험
희뿌연 안개 속에 강변 유람선 타는 곳으로 가는데 뒤쪽에 우뚝 솟은 돌산을 깎아서 조성한 거대한 조각상이 보이는데 중국 신화의 아버지인 황제(皇帝)와 염제(炎帝)의 두상(頭像)이라고 한다. 높이가 106m로 미국 자유의 여신상보다 몇 미터나 더 높다는 자랑이다. 사진을 몇 장 찍고는 서둘러 황하를 둘러보는 수륙양용인 호버크래프트(Hover Craft) 유람선에 올랐다.
열 댓 명이 정원인 유람선은 배 밑바닥의 고무 튜브에 바람을 불어 넣더니 뒤쪽의 바람개비를 세차게 돌리며 육지에서 미끄러져 강물로 뛰어든다. 모래 언덕과 강물을 번갈아 넘나들면서 쌀쌀한 바람을 가르며 달리는데 아득히 보이는 산언덕과 강안(江岸)은 초한지(楚漢志)의 무대로 초(楚)의 항우(項羽)와 한고조(漢高祖) 유방(劉邦)이 전투를 벌이던 장소라고 한다.
얼마쯤 더 달리다 모래언덕에 올라 배를 멈추기에 내렸는데 십여 명의 말꾼들이 중국 돈 10위엔(1.200원 정도)에 말을 타라며 손짓 발짓을 한다. 이 황량한 강 가운데 모래언덕에 움집을 짓고 살면서 관광객에 말을 태워주는 것을 직업으로 살고 있다니 측은한 생각이 들어 도와주는 셈 치고 말에 올랐다. 털썩거리며 10여분 말에서 흔들리다 내려서 움집을 드려다 보았는데 모래 구덩이에 비닐로 지붕이랍시고 엉성하게 덮은 모양이 썰렁하기 이를 데 없고 이런 추운 날씨에 그 곳에서 산다는 것이 신기하고 불쌍한 생각이 든다.
3. 판관 포청천 - 개봉부(開封府)
중국 드라마 ‘포청천’으로 널리 알려진 개봉부(開封府)는 당시의 관아 건물이 잘 복원되어 있었다.
송(宋)나라 개봉부 판관(判官)이었던 포청천(이름은 포증: 包拯, 包大人)은 명 판결로 유명하며, 예지력을 나타내는 이마의 초승달, 신의와 결단력을 나타내는 검은 얼굴로 묘사된다. 개봉부의 다른 판관들은 3~4개월도 임기를 채우지 못하였다는데 포청천은 1년 3개월 재임으로 가장 오랫동안 판관으로 있었다.
포청천이 사형을 집행하는 도구로 사용했다는 작두가 진열되어 있는데 일반서민용인 ‘개작두’, 귀족용 ‘범작두’, 왕족용 ‘용작두’가 전시되어 있다. 특히 왕족은 사형을 집행한 후 보고하도록 하여 사전의 압력을 차단하였다고 한다. 역대 판관들의 이름이 새겨진 석판에는 포청천의 이름이 있던 곳이 움푹 파여서 읽을 수 없었는데 포청천을 흠모하는 중국 사람들이 하도 쓰다듬어서 닳았다고 하는데 사실인지 중국 사람들의 과장인지...
4. 청명상하원(淸明上河園)
개봉부 관아 관광이 끝난 후 ‘청명상하원(淸明上河園)’을 둘러보았는데 북송시대(北宋時代) 개봉(開封)의 거리모습을 재현해 놓은 일종의 민속촌이다. 이 거리는 송대(宋代)의 저명화가였던 장봉단(張捧端)이 사실적으로 묘사한 ‘청명상하도(淸明上河圖)’의 그림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것이라고 하는데 넓이가 12만평 정도이며 당시의 거리와 높은 누각은 물론 넓은 강에는 배까지 다니고, 당시의 복색을 갖춘 사람들이 살면서 공연도 하고 가게도 운영하고 있다.
개봉부 관아건물 / 청명상하원(淸明上河園) 공연
첫 번째로 부호의 딸 결혼식을 재현하는 것을 관람하였는데 악기 연주가 신기하였고, 다음은 송나라 여성들의 마상(馬上) 기예와 마상격구(馬上擊毬)를 관람하였다. 화려한 옷차림과 다양한 말 다루는 솜씨, 긴 막대기로 공을 쳐서 골대에 넣는 옛날 경기 모습이 신기하였다.
다음은 닭싸움 경기를 보았는데 관광객들이 돈을 걸고 자기가 지정한 닭이 이기면 약 세 배의 상금을 주는 도박경기였다. 거리에서는 도끼 던져서 과녁 맞추기, 머리를 대고 물구나무를 서서 반동으로 계단 오르기, 기다란 채찍을 휘둘러 입에 물고 있는 상대편의 담뱃불 끄기 등을 구경하였고 이름 석 자를 써주면 즉흥으로 시를 지어 간단한 그림을 곁들여 주는 사람도 있었는데 글씨솜씨와 글의 내용이 대단해 보인다.
다음은 중국 최초의 절이라는 백마사를 가는 도중 철탑(鐵塔)을 돌아보았다.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전탑(塼塔-구운 벽돌)인데 오랜 세월에 색깔이 변하여 철(鐵)과 비슷하다하여 철탑이라 부른단다.
13층의 좁고 높은 탑으로 좌우로 세 바퀴씩 소원을 빌며 돌면 이루어진다고 하여 열심히 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