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란우데에서 하루를 지낸 뒤 다시 시베리아횡단열차에 올랐다. 이번에는 러시아 '제3의 도시'로 알려진 노보시비르스크까지 가는 007호 열차의 1등석이다. 울란우데 역에서 1등석 객차인 10번 차량(러시아어로 바곤 багон 이라고 부른다)을 찾는 데도 시간이 한참 걸렸다. 울란우데까지 타고온 프리미엄급(신형) 열차는 8량을 달고 달렸는데, 이 열차는 2배나 되는 16량을 달고 있기 때문이다.
울란우데 역에는 10여개의 철로를 가로지르는 길고 높은 육교가 놓여 있다. 철로가 반으로 갈라놓은 도시를 서로 이어주는 역할이다. 다행히 육교 중간중간에 플랫폼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설치돼 있다.
역사의 반대쪽에 위치한 호텔에서 묵은 우리는 육교 중간에서 계단을 통해 플랫폼으로 내려왔지만, 1등석 차량으로 가기 위해서는 한참을 걸어야 했다. 1번 차량부터 따지면 프리미엄급 열차를 완전히 지나가고도, 더 걸어간 셈이다. 의도적인지 모르겠으나, 1등석 차량에는 '10'이라는 숫자도 붙어 있지 않았다.
실망스러운 것은 그 다음부터였다. 새로 도색한 겉모습만 매끈하지, 열차에 오르려는 순간, 눈앞에 있는 발판은 이미 녹슬고 낡고 헤졌다. 완전히 70년대 우리의 완형열차 수준이다. 러시아 열차는 숫자가 낮을 수록 좋은 열차이기에 007호 열차이면 비교적 괜찮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울란우데까지 타고온 프리미엄급 열차가 갑자기 떠올랐다. "역시 비싼 게 달랐구나!"
러시아 열차를 탄 마지막 기억이 10여년 전이니, 정확하지는 않지만 그 때와 별로 달라진 게 없는 듯하다. 하긴 새로 나온 열차(프리미엄급)가 아니라면, 그때 그 열차가 실내만 조금 손 본 뒤 지금도 달리고 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확인한 열차 내부. 촌스러운 커텐이 달려 있는 복도도, 방으로 들어가는 출입문도, 방안의 좌석(침대)도, 뜨거운 물을 채운 사모바르도, 화장실도 옛것 그대로였다. 러시아 철도청이 굳이 '프리미엄급 열차'로 구분해 티켓을 비싸게 파는 이유를 짐작할 만했다.
1등석은 '4인용 꾸뻬'와 달리 2인용이다. 2층 침대가 없어 공간 사용이 한결 편하다. 중간 크기의 검은 트렁크를 둘 곳이 마땅찮아 2층 선반 위로 올렸다. 만약 꾸뻬였으면 침대위에 세워둘 뻔했다.
007 열차를 타고 가면서 '뉴-시베리아횡단열차'여행기라고 이름붙일 수 있을까? 몇년 전에도 이 열차를 타고 시베리아를 횡단하면서, 딱딱하고 덜컹거리는 좌석에서 잠을 청하기가 쉽지 않고, 세수를 하기 위해서는 '세면대 물막이'용 골프공이 필요하다는 후기를 남긴 것과 다를 바 없으니 말이다.
그래도 뉴-시베리아횡단열차라고 부를 만한 것도 없지 않았다. 1등석이어서 제공하는 서비스이겠지만, 슬리퍼와 1회용 치약과 치솔, 빗, 열차 안내서, 간식(초콜릿과 사탕) 등이 든 종이 박스를 하나씩 나눠줬다. 프리미엄급 열차 꾸뻬에서 받은 용품보다 품질이 낫다.
화장실에도 변기 위에 까는 1회용 종이덮개와 보통 수준의 화장지, 냄새제거용 방향제까지 구비돼 있다. 화장실과 복도에 '샤워 시설'이 있다는 홍보 포스터를 보고 승무원에게 물었더니, 친절하게 안내해 준다.
이때 안 사실이지만, 007열차에는 '프리미엄급' 객차 1량이 달려 있었다. 아마도 티켓 예약시 열차 구조를 자세히 살펴봤다면, 그 사실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는 1등석 차량의 존재만 확인한 뒤 예약하고 말았다.
샤워 시설은 바로 '프리미엄급 객차'에 설치되어 있다. 그 객차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울란우데까지 타고온 '프리미엄급 열차'의 차량 내부와 똑같았다. 신형 차량을 몇대나 붙여 운영하느냐, 또 1등석이 있느냐 등에 따라 열차 번호가 낮아지고, 또 좋은 열차로 분류되는 것 같다.
식당 차에서 제공하는 메뉴도 나쁘지 않았다. 끼니를 거듭할 수록 눈에 보이지 않게 식단이 나빠지고 있다는 느낌도 들었지만, 그건 시베리아횡단열차에 한정된 것이 아닐 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권하는데, 티켓 구매시 아침 점심 저녁 중 한끼만 미리 예약하고 나머지는 컵라면-빵-햇반으로 때우든, 식당 차에 가서 단품 주문을 하든, 미리 계획을 짜 두는 게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