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46편
약한 자를 돌보시는 여호와를 영원히 찬양하라
(찬송 74장)
2023-10-6, 금
맥락과 의미
시편 146-150편은 “대(大) 할렐루야 시편”으로 불립니다. 시편의 가장 끝부분에 위치한 다섯 편의 시들이 모두 “할렐루야”로 시작하고 “할렐루야”로 마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전체 시편의 주제가 “여호와를 찬양하는 것”(=할렐루야)임을 분명히 보여 줍니다.
앞서 시편 각 권의 마지막에 해당하는 시들(1권-41편, 2권-72편, 3권-89편, 4권-106편)이 모두 “여호와를 영원히 찬송할지어다. 아멘, 아멘”으로 끝났습니다(세부적인 표현은 조금씩 차이가 있습니다). 이제 전체 시편을 마무리하면서 다섯 개 시에 걸쳐 “할렐루야!”를 외칩니다.
이 시들은 내용 면에서도 전체 시편을 정리해 줍니다. 하나님에 대한 찬양, 가난한 자들이 간절히 하나님만 의지함,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신뢰, 하나님의 의로운 통치에 대한 소망 등 시편 전체의 내용을 요약적으로 담고 있습니다.
이 시편들은 바벨론 포로귀환 이후에 쓰여졌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여호와께서 갇힌 자들에게 자유를 주신다”(시 146:7), “예루살렘을 세우시고 이스라엘의 흩어진 자들을 모으신다”(시 147:2)는 등의 내용들이 포로 귀환 시기와 잘 어울리기 때문입니다.
대 할렐루야 시편을 시작하는 시편 146편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의지하는 백성들을 돌보시는 신실하신 분이심을 찬양합니다. 앞으로 세상의 귀인들과 권력자가 아니라 오직 만물을 다스리시는 주님만을 의지하여 살아가겠다고 다짐합니다.
1. 내 하나님 여호와를 찬양하라(1-2절)
2. 세상 통치자가 아닌 여호와를 신뢰하라(3-4절)
3. 약한 자들을 돌보시는 자비하신 여호와를 찬양하라(5-9절)
4. 시온아, 여호와의 영원한 통치를 찬양하라(10절)
1. 내 하나님 여호와를 찬양하라(1-2절)
시인은 자신의 영혼을 향하여 “여호와를 찬양하라”고 선언합니다. 자신이 살아 있는 동안 평생에 걸쳐 하나님을 찬양하겠다고 다짐합니다.
삶 가운데 항상 기쁜 일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찬송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할 수도 있고, 도저히 찬송이 나오지 않는 감정이 생길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시인은 자신이 처한 조건과 관계없이 언제나 하나님을 찬양하기로 결심합니다.
시인은 하나님을 “내 하나님”이라고 부릅니다. 시인에게 하나님은 단지 이스라엘의 전능하신 구원자로서 나와 상관없이 멀리 계신 분이 아닙니다. “나의 하나님”으로서 나와 함께 하시며 나의 삶을 구원하시는 분으로 친밀하게 경험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우리의 삶과 존재 자체가 하나님에 대한 찬송이 되길 원합니다. 나의 하루하루의 삶 가운데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을 생생하게 경험하며, “나의 하나님”을 찬양하게 해 달라고 기도합시다.
2. 세상 통치자가 아닌 여호와를 신뢰하라(3-4절)
3-4절에서는 여호와를 나의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찬양하는 것을 가로막는 상황이 제시됩니다. 바로 사람을 의지하는 문제입니다.
세상을 살다 보면 때로 부자나 권력자들을 의지하여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유혹이 들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시인은 결코 그들을 의지하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그들은 아무런 도울 힘이 없습니다. 숨이 멈추면 땅에 묻히고 흙으로 돌아가버릴 유한한 존재에 불과합니다. 살아있는 동안에는 큰 권력을 지닌 것 같고, 많은 지혜를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죽은 뒤에는 그들의 그 뜻과 지혜들이 다 없어져버릴 것입니다.
이 시가 쓰여질 당시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포로에서 귀환하여 예루살렘을 재건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에스라와 느헤미야를 보면 당시의 상황이 잘 나옵니다.
성전과 성벽 복구 작업을 원활하게 진행하려면 바벨론이나 바사 황제의 강력한 권력의 도움을 받아야만 할 것 같습니다. 또한 이스라엘에 적대적인 예루살렘 주변의 총독들과 권력자들의 협조를 구하기 위해서 이방의 문화와 타협을 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에스라와 느헤미야와 같은 지도자들은 세상의 권력을 의지하기보다는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택하였습니다. 이방의 세력에 굴복하지 않고 말씀의 원칙을 지키면서 재건 작업을 해 나갔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들을 복 주셔서 성전과 성벽 건축을 완성하도록 해 주셨습니다.
오늘날에도 세상의 세력이 아무리 강력하게 느껴질지라도, 결코 사람을 의지하지 맙시다. 오직 하나님의 도우심만 의지합시다. 그럴 때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이 나에게도 임할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여호와를 “나의 하나님”이라고 부르며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3. 약한 자들을 돌보시는 자비하신 여호와를 찬양하라(5-9절)
하나님은 약한 자들을 돌보시고 도우시는 자비하신 분입니다. 세상에서 아무런 소망을 둘 수 없어 오직 “여호와 자기 하나님께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하나님을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부릅니다. 이스라엘 족장들 중 야곱은 어린 시절 고향을 떠나 멀리 하란 지방의 친척집에 가서 20년이 넘는 오랜 기간 동안 종살이를 했습니다. 세상에서는 아무 것도 의지할 것이 없이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과 함께 하시며 복 주셨습니다. 안전하게 약속의 땅 고향으로 돌아오게 하셨을 뿐만 아니라, 많은 자손과 재산을 거느리고 오도록 하셨습니다.
6절과 7절에 하나님의 모습이 선명하게 대비됩니다.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억눌리고 주린 자들을 돌보시고 억울함을 풀어 주십니다. 가장 높고 위대하신 하나님의 능력은 가난하고 작은 자에게 은혜 베푸시는 데에서 드러납니다. 창조와 보존의 신실하심은 배고픈 자에게 먹을 것을 공급하시는 일에서 가장 선명하게 나타납니다.
7절부터 9절 전반부까지는 하나님께서 특히 긍휼히 여기시고 은혜 베푸시는 자들이 소개됩니다.
억눌린 사람들 | 정의로 억울함을 풀어주심 |
갇힌 자들 | 자유를 주심 |
맹인들 | 눈을 여심 |
비굴한 자들 (=구부러진 자, 지체장애인) | 일으키심 |
의인들 | 사랑하심 |
고아와 과부 | 붙드심 |
8절에 “비굴한 자들”은 도덕적인 의미가 아니라 몸이 구부러져서 반듯하게 일어설 수 없는 지체장애인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당대에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약하고 힘없는 사람들의 도움이시며 피난처가 되십니다. 반면에 9절 후반부에 악인들의 길은 구부러뜨리고 멸망시키십니다.
몸에 장애가 있거나 사회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어야만 주님의 은혜를 누리는 것은 아닙니다. 5절에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가 복이 있도다.”
세상을 의지하기보다, 자기를 낮은 자로 여기며 겸손히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의 은혜를 누립니다. 하지만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더라도 교만하게 하나님을 원망하면서 세상을 의지하고 자기 자신을 의지하는 사람은 여기서 말하는 “악인”에 해당합니다.
어려움에 처했을 때, 세상에서 아무런 도움도 구할 수 없을 때, 하나님만 의지합시다.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하나님께서 겸손하게 주를 의지하는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의 기도를 들으시고 복을 내려 주실 것입니다.
4. 시온아, 여호와의 영원한 통치를 찬양하라(10절)
처음 1-2절에서는 “내 영혼아, 내 하나님을 찬양하라” 하며 시인 스스로 찬송을 다짐하였습니다. 이제 마지막 10절에서는 “시온아, 네 하나님을 찬양하라” 하며 서로에게 찬송하라고 격려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인 찬송의 고백이 공동체 전체의 찬송으로 확산되는 모습이 아름답게 그려집니다. 이것이 바로 찬송의 힘입니다. 한 사람이 어려움 가운데서도 먼저 기뻐하며 찬송으로 나아갈 때, 그 찬송이 주변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미쳐셔 공동체 전체가 하나님을 찬송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영원히 다스리시고, 대대로 통치하시라고 찬송합니다. 앞서 여호와의 통치는 약자를 돌아보시고 지키시는 일에서 가장 잘 드러남을 노래했습니다.
이 점을 생각할 때, 이 찬송에는 내가 계속해서 겸손하게 주님만을 의지하겠다는 다짐이 담겨 있습니다. 또한 이 땅 가운데 하나님의 공의가 이뤄지고, 약한 자들과 가난한 자들이 계속해서 보호받기를 원하는 소망이 담겨 있습니다.
믿고 복종할 일
약한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자비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났습니다(눅 4:18-19). 예수님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시며 그들의 친구가 되어 주셨습니다. 눈먼 자들의 눈을 뜨게 하시고, 앉은 자들을 걷게 하셨습니다. “나그네에게 행한 것이 나에게 행한 것”이라고 하시며 나그네를 잘 돌보도록 하셨습니다. 어린이들을 귀하게 여기셨고, 과부에게 자비를 베푸셨습니다.
무엇보다도 십자가 대속의 은혜로 죄에 억눌리고 사망의 권세에 갇힌 우리들을 해방하시고 자유롭게 하여 주셨습니다. 지금도 예수를 주로 고백하며 주님만을 의지하며 나아오는 모든 자들에게 은혜 베풀어 주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예수 그리스도의 자비하심을 찬양합시다. 세상의 어려움 앞에서 오직 예수님만 의지합시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놀라운 구원의 은혜를 나의 구원으로 경험하시길 바랍니다. 도마와 같이 예수님을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요 20:28)으로 고백하게 되시길 바랍니다.
10절의 찬송에 담긴 정신은 주기도문에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나의 삶 가운데, 우리 교회와 세상 가운데 주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도록 기도합시다. 주님의 뜻에 순종하며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주님의 통치를 이루는 도구로 쓰임받길 원합니다.
장차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셔서 온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공의를 온전히 다시 이루실 것입니다. 모든 피조물들이 주님의 공의를 경험하며 주님을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그날을 소망하며 오늘도 주님을 찬양하며 나아갑시다.
1. 오늘 말씀하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2. 오늘 말씀에서 주신 교훈은 무엇입니까? 3. 오늘 말씀에서 순종할 내용은 무엇입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