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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도론 제87권
76. 일심구만행품(一心具萬行品)을 풀이함
【經】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온갖 법의 성품이 있는 바가 없다면[無所有], 보살마하살은 어떠한 이익을 보기 때문에 중생들을 위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구하는지요?”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온갖 법의 성품은 있는 바가 없기 때문에 보살은 중생들을 위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구하는 것이니,
왜냐 하면 수보리야, 얻는 것이 있고[有得] 집착이 있는[有著] 모든 것은 벗어나기가 어렵기 때문이니라.
수보리야, 모양을 얻는 모든 것에는 도(道)도 없고 과위[果]도 없으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도 없느니라.”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모양을 얻는 것이 없다면 도가 있고 과위가 있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도 있는지요?”
“수보리야, 얻을 것이 없는 것[無所得]이 곧 도요 그것이 곧 과위이며 그것이 곧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이니, 법의 성품[法性]이 파괴되지 않기 때문이니라.
만일 얻을 것이 없는 법에서 도를 얻으려 하고 과위를 얻으려 하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려 하면, 그것은 법의 성품을 파괴하려고 하는 것이니라.”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얻을 것이 없는 법이 곧 도요 그것이 곧 과위며 그것이 곧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면,
어떻게 보살에게 초지(初地) 내지는 10지(地)가 있고, 어떻게 무생인(無生忍)의 법이 있고,
어떻게 과보로 얻는[報得] 신통이 있고,
어떻게 과보로 얻는 보시ㆍ지계ㆍ인욕ㆍ정진ㆍ선정ㆍ지혜가 있으며,
이 과보의 법 안에 머무르면서 중생을 성취시키고 부처님 국토를 깨끗하게 하며,
그리고 모든 부처님께 의복ㆍ음식ㆍ향화ㆍ영락ㆍ방사ㆍ침구ㆍ등촉 등 갖가지 살림에 필요한 도구들을 공양하며,
이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고 이 복덕이 끊어지지 않으며,
나아가 완전한 열반에 드신 뒤에는 사리(舍利)와 제자들이 공양을 얻게 되며 그러고 나서야 비로소 없어져 다하게 되는지요?”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모든 법은 얻을 것이 없는 모양이기 때문에 보살이 초지 내지는 10지를 얻고 과보로 얻는 다섯 가지 신통과 보시ㆍ지계ㆍ인욕ㆍ정진ㆍ선정ㆍ지혜가 있으며,
중생을 성취시키고 부처님 국토를 청정하게 하며,
또한 선근(善根)의 인연 때문에 중생을 이롭게 하고 나아가 완전한 열반에 든 뒤에는 사리와 제자들까지도 공양을 얻느니라.”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모든 법이 얻을 것이 없는 모양이라면, 보시와 지계와 인욕과 정진과 선정과 지혜와 모든 신통에는 어떠한 차별이 있는지요?”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얻을 것이 없는 법의 보시와 지계와 인욕과 정진과 선정과 지혜와 신통에는 차별이 없는데도, 중생들이 보시 내지는 신통에 집착하기 때문에 분별하여 말한 것이니라.”
“세존이시여, 어찌하여 얻을 것이 없는 법의 보시에서 신통까지도 차별이 없는지요?”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는 보시를 얻지 못하느니라.
보시한 이[施者]와 받는 이[受者]를 모두 얻지 못하면서 보시를 행하고,
계율을 얻지 못하면서 계율을 지니며,
인욕을 얻지 못하면서 인욕을 행하고,
정진을 얻지 못하면서 정진을 행하며,
선정을 얻지 못하면서 선정을 행하고,
지혜를 얻지 못하면서 지혜를 행하며,
신통을 얻지 못하면서 신통을 행하느니라.
4념처를 얻지 못하면서 4념처를 행하고 나아가 8성도분을 얻지 못하면서 8성도분을 행하며,
공삼매ㆍ무상삼매ㆍ무작삼매를 얻지 못하면서 공ㆍ무상ㆍ무작삼매를 행하고 중생을 얻지 못하면서 중생을 성취시키고,
부처님의 국토를 얻지 못하면서 부처님 국토를 깨끗하게 하고,
모든 부처님의 법을 얻지 못하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느니라.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이와 같이 얻을 것이 없는 반야바라밀을 행하여야 하나니, 보살마하살이 이러한 얻을 것이 없는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는 악마나 악마의 하늘도 그를 파괴하지 못하느니라.”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한 생각[一念] 동안에 6바라밀과, 4선(禪)ㆍ4무량심(無量心)ㆍ4무색정(無色定)ㆍ4념처(念處)ㆍ4정근(正勤)ㆍ4여의족(如意足)ㆍ5근(根)ㆍ5력(力)ㆍ7각분(覺分)ㆍ8성도분(聖道分)ㆍ3해탈문(解脫門)ㆍ부처님의 10력(力)ㆍ4무소외(無所畏)ㆍ4무애지(無礙智)ㆍ18불공법(不共法)ㆍ대자대비(大慈大悲)ㆍ32상(相) 및 80수형호(隨形好)를 두루 갖추어 행하는지요?”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의 모든 보시는 반야바라밀을 여의지 않고 닦는 바의 지계ㆍ인욕ㆍ정진ㆍ선정이 반야바라밀을 여의지 않으며,
4선ㆍ4무량심ㆍ4무색정ㆍ4념처 내지는 80수형호도 반야바라밀을 멀리 여의지 않느니라.”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멀리 여의지 않기에 한 생각 동안에 6바라밀에서 80수형호까지를 두루 갖추어 행하는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모든 보시가 반야바라밀을 여의지 않는 것은 둘이 아닌 모양[不二相]이기 때문이요,
계율을 지닐 때도 역시 둘이 아닌 모양이며,
인욕을 닦거나 정진에 힘쓰거나 선정에 들어갈 때도 둘이 아닌 모양이요,
나아가 80수형호에 이르기까지 둘이 아닌 모양이기 때문이니라.”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찌하여 보살마하살이 보시할 때에 둘이 아닌 모양이며, 나아가 80수형호를 닦기까지도 둘이 아닌 모양인지요?”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단(檀)바라밀을 두루 갖추려고 하면,
단바라밀의 가운데에 모든 바라밀과 4념처 내지는 80수형호도 포섭하느니라.”
“세존이시여, 어떻게 보살은 보시를 할 때에 모든 무루의 법[無漏法]을 포섭하는지요?”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번뇌[漏]가 없는 마음에 머무르면서 보시하면,
번뇌가 없는 마음의 가운데서
‘누가 보시하고 누가 받으며 보시하는 것은 어느 물건인가?’ 하는 모양을 보지 않느니라.
이 모양이 없는 마음[無相心]과 번뇌가 없는 마음[無漏心]과 애욕이 끊어지고 간탐이 끊어진 마음[斷受斷慳貪心]으로써 보시를 행하므로 이때에는 보시를 보지 않으며, 나아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법까지도 보지 않느니라.
이 보살은 모양이 없는 마음과 번뇌가 없는 마음으로써 계율을 지니므로 이 계율을 보지 않고 나아가 온갖 부처님 법까지도 보지 않으며,
모양이 없는 마음과 번뇌가 없는 마음으로써 인욕을 행하므로 이 인욕을 보지 않고 나아가 온갖 부처님 법까지도 보지 않느니라.
모양이 없는 마음과 번뇌가 없는 마음으로써 정진에 힘쓰므로 이 정진을 보지 않고 나아가 온갖 부처님 법까지도 보지 않으며,
모양이 없는 마음과 번뇌가 없는 마음으로써 선정에 들어가므로 이 선정을 보지 않고 나아가 모든 부처님 법까지도 보지 않느니라.
모양이 없는 마음과 번뇌가 없는 마음으로써 지혜를 닦으므로 이 지혜를 보지 않고 나아가 온갖 부처님 법까지도 보지 않으며,
모양이 없는 마음과 번뇌가 없는 마음으로써 4념처를 닦으므로 이 4념처에서 80수형호까지도 보지 않느니라.”
“세존이시여, 만일 모든 법에 모양이 없고 조작[作]도 없다면,
어떻게 단바라밀과 시라바라밀과 찬제바라밀과 비리야바라밀과 선바라밀과 반야바라밀을 두루 갖추는지요?
어떻게 4념처와 4정근과 4여의족과 5근과 5력과 7각분과 8성도분을 두루 갖추는지요?
어떻게 공삼매와 무상ㆍ무작삼매와 부처님의 10력과 4무소외와 4무애지와 18불공법과 대자대비를 두루 갖추는지요?
어떻게 32상과 80수형호를 두루 갖추는지요?”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 모양이 없는 마음과 번뇌가 없는 마음으로 보시하되 먹을 것을 구하면 먹을 것을 주고 나아가 갖가지 구하는 것을 안팎으로 남김없이 그에게 주니, 혹은 그의 몸을 갈가리 찢거나 혹은 나라나 성(城)이나 아내나 자식 등으로 모두 중생에게 보시하느니라.
만일 어떤 사람이 와서 보살에게 말하기를,
‘이 보시가 모슨 소용이 있겠소? 그것은 아무런 이익도 없는 것이오’라고 하면,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보살은 생각하기를,
‘이 사람이 비록 와서 나의 보시를 꾸짖는다 하더라도 나는 끝내 후회하지 않겠으며,
나는 부지런히 보시를 행하면서 주지 않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하느니라.
보시한 뒤에는 온갖 중생들과 그것을 함께하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하되, 또한
‘누가 보시하고 누가 받으며 보시하는 것은 무슨 물건인가?
회향하는 이는 누구이고 어떤 것이 회향하는 법이며 어디가 회향하는 곳인가?’ 하는 모양을 보지 않으며,
이른바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이 모양 조차도 모두 보지 않느니라.
왜냐 하면, 온갖 법은 내공(內空)이기에 공하고 외공(外空)이기에 공하며, 내외공(內外空)이기에 공하고, 공공(空空)ㆍ유위공(有爲空)ㆍ무위공(無爲空)ㆍ필경공(畢竟空)ㆍ무시공(無始空)ㆍ산공(散空)ㆍ성공(性空)ㆍ일체법공(一切法空) 및 자성공(自性空)이기에 공한 까닭이니라.
이와 같이 관(觀)하고는 생각하기를,
‘회향하는 이는 누구이고, 어디에다 회향하며, 어느 법으로써 회향하는가?’ 라고 하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바른 회향[正廻向]이라 하느니라.
그때에 보살은 중생을 성취시키고 부처님 국토를 깨끗이 하며,
단바라밀과 시라바라밀과 찬제바라밀과 비리야바라밀과 선바라밀과 반야바라밀,
내지 37조도법(助道法)과 공ㆍ무상ㆍ무작삼매, 내지 18불공법을 두루 갖추게 되느니라.
이 보살은 이와 같이 단바라밀을 두루 갖추면서도 세간의 과보를 받지 않나니,
비유하건대 마치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의 모든 하늘들이 뜻대로 구하는 바를 곧 모두 얻듯이,
보살 또한 이와 같아서 마음으로 원하게 되면 즉시 뜻대로 얻느니라.
이 보살마하살은 이 보시의 과보 때문에 모든 부처님께 공양할 수 있고, 또한 온갖 중생인 하늘과 사람과 아수라들을 만족시키나니,
이 보살은 단바라밀로써 중생을 거두어 주고 방편의 힘을 사용하여 3승의 법으로 중생을 제도하여 벗어나게 하느니라.
이와 같이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모양이 없고 얻는 것이 없고 조작이 없는 모든 법 가운데서 단바라밀을 두루 갖추느니라.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어떻게 모양이 없고 얻는 것이 없고 조작이 없는 법 가운데서 시라(尸羅)바라밀을 두루 갖추는가?
수보리야, 이 보살마하살은 시라바라밀을 행할 때에 갖가지 계율 즉 성무루입팔성도분계(聖無漏入八聖道分戒)와 자연계(自然戒)와 보득계(報得戒)와 심생계(心生戒)를 지니나니,
이와 같은 이지러지지 않고 깨뜨려지지 않고 뒤섞이지 않고 혼탁하지 않고 집착하지 않는 자재한 계율[自在戒]과 지혜로운 이가 칭찬하는 계율[智所讚戒]이니라.
이러한 계율에 의하면서도 취하는 바가 없느니라.
그리하여 물질과 느낌ㆍ생각ㆍ의욕ㆍ인식과, 32상과 80수형호와,
찰리(刹利)의 큰 족성ㆍ바라문(婆羅門)의 큰 족성ㆍ거사(居士)의 큰 집안과,
4천왕천(天王天)ㆍ33천(天)ㆍ야마천(夜摩天)ㆍ도솔타천(兜率陀天)ㆍ화락천(化樂天)ㆍ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ㆍ
범중천(梵衆天)ㆍ광음천(光音天)ㆍ변정천(遍淨天)ㆍ광과천(廣果天)ㆍ
무상천(無想天)ㆍ무번천(無煩天)ㆍ무열천(無熱天)ㆍ묘견천(妙見天)ㆍ희견천(喜見天)ㆍ아가니타천(阿迦尼吒天)과,
공처천(空處天)ㆍ식처천(識處天)ㆍ무소유처천(無所有處天) 및 비유상비무상처천(非有想非無常處天)과,
수다원의 과위ㆍ사다함의 과위ㆍ아나함의 과위ㆍ아라한의 과위ㆍ벽지불의 도와,
전륜성왕(轉輪聖王)이나 천왕(天王)을 취하지 않고,
다만 온갖 중생들을 위하여 그것을 함께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하되 모양이 없고 얻는 것이 없고 둘이 없는[無二] 것으로써 회향할 뿐이니,
그것은 세속의 법을 위해서이지 으뜸가는 진실한 이치[實義]에서가 아니니라.
이 보살은 시라바라밀을 두루 갖추고는 방편의 힘으로써 4선(禪)을 일으키고,
맛들이거나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다섯 가지의 신통을 얻고,
4선으로 인하여 천안(天眼)을 얻나니,
이 보살은 수행으로 얻고[修得] 과보로 얻는[報得] 두 가지 천안에 머무르느니라.
천안을 얻은 뒤에는 동방에 현재 계신 모든 부처님을 뵙고서 나아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기까지 본 그대로의 일을 잃지 않으며,
남방ㆍ서방ㆍ북방과 네 간방과 위와 아래에 계신 현재의 모든 부처님도 뵙고, 나아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기까지 본 그대로를 잃지 않느니라.
그리고 이 보살은 사람의 귀를 초월하는 천이(天耳)의 청정함으로써 시방에 계신 모든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들은 그대로를 잃지 않아서 자기 자신을 이롭게 하고 또한 다른 사람들도 이롭게 하느니라.
이 보살은 지타심지(知他心智)로써 시방의 모든 부처님의 마음을 알고 그리고 온갖 중생들의 마음을 알아 온갖 중생들을 이롭게 하며,
이 보살은 숙명지(宿命智)로써 과거의 모든 업의 인연을 알고 이 업의 인연을 잃지 않기 때문에 이 중생들이 있었던 처소와 태어났던 일들을 모두 다 아느니라.
그리고 이 보살은 누진지(漏盡智)로써 중생으로 하여금 수다원의 과위 내지는 아라한의 과위와 벽지불의 도를 얻게 하며, 어디에서건 있는 곳마다 중생으로 하여금 착한 법 가운데에 들게 하느니라.
이와 같아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모든 법의 모양이 없고 얻는 것이 없고 조작이 없는 가운데서 시라바라밀을 두루 갖추느니라.”
“세존이시여, 모든 법이 모양이 없고 조작이 없고 얻는 것이 없거늘 어떻게 보살마하살은 찬제바라밀을 두루 갖출 수 있는지요?”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처음에 뜻을 내어서부터 이에 도량(道場)에 앉기까지의 그 중간에 만일 온갖 중생들이 와서 기와와 돌과 칼과 몽둥이로 이 보살에게 해를 가해도 보살은 그때에도 성을 내지 않으며 나아가 한 생각조차도 내지 않느니라.
그때에 보살은 두 가지의 인욕을 닦아야 하나니,
첫째는 온갖 중생들이 욕설을 퍼붓고 꾸짖으면서 칼이나 몽둥이나 기와나 돌로 그에게 해를 가해도 성을 내지 않는 것이요,
둘째는 온갖 법에 생함이 없는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는 것이니라.
보살은 만일 사람이 와서 욕설을 퍼붓고 꾸짖거나 혹은 기와나 돌이나 칼이나 몽둥이로 그에게 해를 가하면,
그때에도 보살은 생각하기를,
‘나에게 욕한 이는 누구이고 헐뜯는 이는 누구인가?
때리고 던지는 이는 누구이며 그 누가 당하는 이인가?’라고 해야 하느니라.
이때에 보살은 모든 법의 실상(實相)을 사유하나니,
‘이른바 필경 공한지라 법도 없고 중생도 없다. 모든 법조차도 오히려 얻을 수 없거늘 하물며 중생이 있겠느냐’고 하느니라.
이와 같이 모든 법의 모양을 관찰할 때는 욕하는 이도 보지 않고 베고 끊는 이도 보지 않나니,
이 보살이 이와 같이 모든 법의 모양을 관찰할 때에 곧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게 되느니라.
어찌하여 무생법이니라 하는가?
모든 법의 모양은 항상 나지 않는 것이라서 모든 번뇌도 본래부터 항상 나지 않는 것인 줄 알기 때문이니라.
이 보살마하살은 이 두 가지 인욕에 머무르면서 4선과 4무량심과 4무색정과 4념처 내지는 8성도분과 3해탈문과 부처님의 10력과 4무소외와 4무애지와 18불공법과 대자대비를 두루 갖추느니라.
이 보살은 이러한 거룩하고 번뇌[漏]가 없는 출세간(出世間)의 법에 머무르면서 모든 성문이나 벽지불과는 함께 하지 않는 거룩한 신통을 두루 갖추며,
거룩한 신통에 머무른 뒤에는 천안(天眼)으로써 동방에 계신 모든 부처님을 뵈옵나니,
이 사람은 염불삼매(念佛三昧)를 얻고 이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이르기까지 끝내 단절되지 않으며,
남방ㆍ서방ㆍ북방과 네 간방과 위와 아래에서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이 보살은 천이(天耳)를 사용하여 시방에 계신 모든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법을 듣고 들은 그대로를 중생들에게 설해주며,
이 보살은 또한 시방의 모든 부처님의 마음을 알고 그리고 모든 중생들의 생각을 알며, 다 안 뒤에는 그들의 마음에 따라 법을 설해 주느니라.
이 보살은 숙명지(宿命智)로써 온갖 중생들의 숙세의 선근을 알아서 중생들에게 설법하여 그들로 하여금 기뻐하게 하고,
이 보살은 누진(漏盡)의 신통으로써 중생들을 교화하여 3승을 얻게 하며,
이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하고 방편의 힘으로써 중생을 성취시키며, 일체종지를 두루 갖추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어 법륜을 굴리느니라.
이와 같이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모양이 없고 얻는 것이 없고 조작이 없는 법 가운데서 찬제바라밀을 두루 갖추느니라.”
수보리가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은 모든 법에 모양이 없고 조작이 없고 얻는 것이 없는데도 어떻게 비리야(毘梨耶)바라밀을 두루 갖출 수 있는지요?”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몸의 정진[身精進]과 마음의 정진[心精進]을 성취하여 초선(初禪)에 들어가고 나아가 제4선(禪)에까지 들어가며,
갖가지 신통의 힘을 받아 하나의 몸을 나누어 여러 몸이 되게 하고 나아가 맨손으로 해와 달을 어루만지느니라.
몸의 정진을 성취한 까닭에 동방으로 날아가 한량없는 백천만의 모든 부처님 세계를 지나가면서 모든 부처님께 음식과 의복과 의약과 침구와 향화와 영락 등 갖가지 필요한 것을 공양하며, 이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이르기까지 그 복덕과 과보는 끝내 다하지 않느니라.
이 보살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때에 온갖 세간의 하늘과 사람들은 부지런히 베풀어 의복과 음식을 공양하며, 나아가 무여열반(無餘涅槃)에 든 뒤에는 사리(舍利)와 제자들이 공양을 받느니라.
또한 이 신통의 힘 때문에 모든 부처님의 처소에 가서 법의 가르침을 듣고 받아 이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이르기까지 끝내 어기거나 잃지 않느니라.
이 보살은 일체종지를 닦을 때에 부처님의 세계를 깨끗하게 하고 중생을 성취시키나니,
이와 같이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하여 몸의 정진을 성취하고 비리야바라밀을 두루 갖추느니라.
수보리야, 어떻게 보살은 마음의 정진을 성취하여 비리야바라밀을 두루 갖추는가?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의 마음의 정진이란, 이 마음의 정진으로써 거룩하고도 번뇌가 없는[聖無漏] 8성도분(聖道分)에 들어가 정진하면서 몸과 입으로 하여금 착하지 못한 업[不善業]이 들어 올 수 없게 하느니라.
또한 모든 법의 모양도 취하지 않으니,
항상하다[常]거나 무상하다[無常]거나 괴롭다[苦]거나 즐겁다[樂]거나 나[我]라거나 내가 없다[無我]거나,
유위(有爲)ㆍ무위(無爲)와,
욕계(欲界)ㆍ색계(色界)ㆍ무색계(無色界)와,
유루의 성품[有漏性]ㆍ무루의 성품[無漏性]과,
초선에서 제4선까지와, 자(慈)ㆍ비(悲)ㆍ희(憙)ㆍ사(捨)와,
무변허공처에서 비유상비무상처까지와,
4념처ㆍ4정근ㆍ4여의족ㆍ5근ㆍ5력ㆍ7각분ㆍ8성도분과 공ㆍ무상ㆍ무작과 부처님의 10력에서 18불공법에 이르기까지도 그 모양을 취하지 않느니라.
또 항상하다거나 무상하다거나 괴롭다거나 즐겁다거나 나라거나 나 없다거나,
수다원의 과위와 사다함의 과위와 아나함의 과위와 아라한의 과위와 벽지불의 도와 보살의 도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서 또는
‘이 분이 곧 수다원이요 사다함이요 아나함이요 아라한이다. 이 분이 벽지불이요 이분이 보살이며 이 분이 부처님이다.’라고 하는 모양을 취하지 않느니라.
‘이 중생은 세 가지 번뇌[三結]를 끊었기 때문에 수다원이 되고,
이 중생은 3독(毒)이 얇아졌기 때문에 사다함이 되었으며,
이 중생은 욕계의 번뇌[下分結]를 끊었기 때문에 아나함이 되고,
이 중생은 색계와 무색계의 번뇌[上分結]를 끊었기 때문에 아라한이 되었으며,
이 중생은 벽지불의 도로써 벽지불이 되고,
이 중생은 도종지(道種智)를 행했기 때문에 보살이라 한다’고 하는 데서도,
역시 이 모든 법의 모양을 취하지 않으니, 왜냐 하면 성품으로써는 모양을 취할 수 없으며, 그 성품은 없기 때문이니라.
이 보살은 이 마음의 정진으로써 널리 중생을 이롭게 하면서도 또한 이 중생을 얻지 않느니라.
이 보살은 비리야바라밀을 두루 갖추고 모든 부처님 법을 두루 갖추고 있어서 부처님의 국토를 깨끗하게 하고 중생들을 성취시키나니, 그것은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니라.
이 보살은 몸의 정진과 마음의 정진을 성취한 까닭에 온갖 착한 법을 섭취(攝取)하되 이 법도 또한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한 부처님의 나라로부터 다른 한 부처님의 나라에 이르면서 중생들의 이익을 위하여 신통을 마음대로 부려도 장애가 없느니라.
모든 꽃을 비내리기도 하고 모든 이름 있는 향을 뿌리기도 하며,
풍악을 울리기도 하고 대지(大地)를 움직이기도 하며,
광명을 놓기도 하고 7보(寶)로 장엄된 국토를 보이기도 하며,
갖가지 몸을 나타내기도 하며,
또 큰 지혜의 광명을 놓아 성인의 도(道)를 알게 하여 살생 내지 삿된 견해를 여의게 하고,
혹은 보시로써 중생을 이롭게 하기도 하며,
혹은 계율을 지님으로써, 혹은 신체를 갈가리 찢어서, 혹은 아내와 자식으로, 혹은 국토로써, 혹은 자기의 몸을 모두 보시하면서 곳에 따라 방편을 쓰며 중생들을 이롭게 하느니라.
이와 같이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하여 모양이 없고 조작이 없고 얻는 것도 없는 모든 법 가운데서 몸과 마음의 정진으로써 비리야바라밀을 두루 갖추느니라.”
“세존이시여, 어떻게 보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하여 모양이 없고 조작이 없고 얻는 것도 없는 법 가운데에 머무르면서 선(禪)바라밀을 두루 갖출 수 있는지요?”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부처님의 모든 선정을 제외한 그 밖의 모든 선정과 삼매(三昧)를 모두 다 두루 갖추느니라.
이 보살은 모든 탐욕과 모든 악하고 선하지 못한 법을 여의고 여읨에서 생한 기쁨과 즐거움 있으며, 거친 생각[覺] 있고 세밀한 생각[觀] 있는 초선에 들고 나아가 제4선에까지 들어가며,
이 자ㆍ비ㆍ희ㆍ사의 마음으로써 하나의 방향에 두루 차게 하고 나아가 시방의 온갖 세간에 두루 차게 하느니라.
이 보살은 온갖 물질의 모양[色相]을 초월하여 대함이 있는 것[有對]을 없애어 다르다는[別異] 모양을 생각하지 않으므로 무변허공처(無邊虛空處)에 들어가고 나아가 비유상비무상처(非有想非無常處)에 들어가느니라.
이 보살은 선바라밀 가운데에 머무르면서 역(逆)으로 순(順)으로 8배사(背捨)와 9차제정(次第定)에 들어가고 공삼매ㆍ무상삼매ㆍ무작삼매에 들어가며,
때로는 여전광삼매(如電光三昧)에 들어가기도 하고 때로는 성정삼매(聖正三昧)에 들어가기도 하며, 때로는 여금강삼매(如金剛三昧)에 들어가기도 하느니라.
이 보살은 선바라밀에 머무르면서 37조도법(助道法)을 닦으며,
도종지(道種智)로써 온갖 선정에 머무르면서 간혜지(乾慧地)와 성지(性地)와 8인지(人地)와 견지(見地)와 박지(薄地)와 이욕지(離欲地)와 이판지(已辦地)와 벽지불지(辟支佛地)를 지나 보살의 지위에 들어가며,
보살의 지위에 들어간 뒤에는 부처님의 지위[佛地]를 두루 갖추며, 이 모든 지위 가운데서 나아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까지를 행하면서 중도에 도의 과위[道果]를 취하지 않느니라.
이 보살은 이 선바라밀에 머무르면서 한 부처님의 나라로부터 다른 한 부처님의 나라에 이르면서 모든 부처님께 공양하고, 모든 부처님 처소에서 모든 선근을 심어서 부처님 국토를 깨끗하게 하며, 한 부처님의 나라로부터 다른 한 부처님의 나라에 이르면서 중생들을 이롭게 하느니라.
혹은 보시로서 중생을 섭취하기도 하고,
혹은 지계(持戒)로써 혹은 삼매로써 혹은 지혜로써 혹은 해탈로써 혹은 해탈지견으로써 중생을 섭취하기도 하며,
중생들을 교화하여 수다원의 과위와 사다함의 과위와 아나함의 과위와 아라한의 과위와 벽지불의 도를 얻게 하고,
모든 착한 법으로 중생에게 도를 얻게 할 수 있으면 모두 다 교화하여 얻게 하느니라.
이 보살은 이 선바라밀에 머무르면서 온갖 다라니문(陀羅尼門)을 내고 4무애지(無礙智)를 얻으며, 과보로 얻게 되는 신통을 얻느니라.
그리고 이 보살은 끝내 어머니의 태(胎) 안에 들어가지 않고 끝내 5욕(欲)을 받지 않으며, 나거나 나지 않는 것도 없으며, 비록 난다 하더라도 나는 법[生法]에 더럽혀지지 않느니라.
왜냐 하면, 이 보살은 모든 조작된 법이 마치 환(幻)와 같다고 보아 중생을 이롭게 하며, 또한 중생과 온갖 법을 얻지 않으면서도 중생들을 교화하여 얻을 것이 없는 경지[無所得處]를 얻게 하기 때문이니라. 곧 이것은 바로 세속의 법이기 때문이지 으뜸가는 진실한 이치[實義]에 의한 것은 아니니라.
이 선바라밀에 머무르면서 온갖 선정과 해탈의 삼매를 행하고 나아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이르기까지 끝내 선바라밀을 여의지 않나니,
이 보살은 이와 같이 도종지(道種智)를 행할 때에 일체종지를 얻고 온갖 번뇌의 습기를 끊으며,
끊은 뒤에는 자기 자신을 이롭게 하고 또한 다른 사람도 이롭게 하며,
자신도 이롭고 다른 이도 이롭게 한 뒤에는 온갖 세간의 하늘과 사람과 아수라들을 위하여 복전(福田)이 되느니라.
이와 같이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모양이 없는[無相] 선바라밀을 두루 갖추느니라.”
“세존이시여, 어떻게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모양이 없고 조작이 없고 얻는 것이 없는 법 가운데에 머무르면서 반야바라밀을 닦아 두루 갖추는지요?”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모든 법에서 일정하거나 진실한 모양을 보지 않나니, 이 보살은 물질이 일정하지도 않고 진실한 모양도 아니라고 보고, 나아가 인식까지도 일정하지도 않고 진실한 모양도 아니라고 보느니라.
물질을 생긴다고 보지도 않고 나아가 인식까지도 생긴다고 보지 않나니,
만일 물질이 생긴다고 보지 않고 나아가 인식까지도 생긴다고 보지 않으면,
온갖 법으로써 유루(有漏)와 무루(無漏)의 오는 곳도 보지 않고 가는 곳도 보지 않으며,
또한 쌓이는 곳도 보지 않느니라.
이와 같이 관찰할 때에 물질의 성품 내지는 인식의 성품도 얻지 않으며,
또한 유루와 무루의 법의 성품도 얻지 않느니라.
이 보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온갖 법의 있는 바 없는 모양[無所有相]을 믿고 이해하며,
이와 같이 믿고 이해 한 뒤에는 내공(內空)에서 무법유법공(無法有法空)까지를 행하면서 모든 법에 대하여
‘물질이다, 느낌ㆍ생각ㆍ의욕ㆍ인식이다, 나아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이다.’라고 집착함이 없느니라.
이 보살은 있는 바 없는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 보살의 도, 이른바 6바라밀 내지는 37조도법과 부처님의 10력ㆍ4무소외ㆍ4무애지ㆍ18불공법과 32상ㆍ80수형호를 두루 갖추게 되느니라.
이 보살은 공에 머물러 부처님 도를 깨끗하게 하는 가운데 이른바 6바라밀과 37조도법과 과보로 얻는 신통 등 이런 법으로써 중생들을 이롭게 하되,
마땅히 보시로써 거두어야 할 사람이면 교화하여 그로 하여금 보시하게 하고,
계율로써 거두어야 할 사람이면 교화하여 그로 하여금 계율을 지니게 하며,
선정과 지혜와 해탈과 해탈지견으로써 거두어야 할 사람이면 교화하여 그로 하여금 선정과 지혜와 해탈과 해탈지견을 닦게 하느니라.
마땅히 모든 도법(道法)으로 가르쳐야 할 사람이면 교화하여 그로 하여금 수다원의 과위와 사다함의 과위와 아나함의 과위 아라한의 과위와 벽지불의 도를 얻게 하며,
부처님 도로써 교화해야 할 사람이면 교화하여 그로 하여금 보살의 도를 얻고 부처님 도를 두루 갖추게 하나니,
이와 같은 등으로 저들의 응하는 바에 따라 도(道)와 지위[地]로써 그들을 교화하여 저마다 그가 할 바를 얻게 하느니라.
이 보살은 갖가지 신통력을 나타낼 때에 한량없는 항하의 모래수처럼 많은 국토를 지나면서 중생들을 제도하여 벗어나게 하며,
그들이 구하는 대로 모두 다 주어 제마다 만족하게 하고,
한 국토로부터 다른 한 국토에 이르면서 깨끗하고 묘한 국토를 보고는 스스로 자신의 불국토를 장엄하나니,
비유하건대 마치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의 천상에서는 마음을 내기만 하면 필요한 물자들이 저절로 이르는 것과 같고,
또한 모든 깨끗한 부처님 국토에서는 구하거나 바라는 것을 여읜 것과 같으니라.
이 사람은 이러한 과보로 얻은 단바라밀ㆍ시라바라밀ㆍ찬제바라밀ㆍ비리야바라밀ㆍ선바라밀ㆍ반야바라밀과 과보로 얻은 다섯 가지 신통으로써 보살의 도종지(道種智)를 행하며 온갖 공덕을 성취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게 되느니라.
이 보살은 이때에 물질의 법에서 분별의 법까지도 받지 않고,
온갖 법으로서 착한 것과 착하지 못한 것과 세간과 출세간과 유루와 무루와 유위와 무위를 받지 않나니,
이와 같이 온갖 법을 모두 받지 않느니라.
이 보살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때에는 그 국토에 있는 온갖 살림에 필요한 물건들은 모두 주인이 없느니라.
왜냐 하면 이 보살은 온갖 법을 행하되 얻을 수 없는 까닭에 받지 않기 때문이니라.
이와 같아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은 모양이 없는 법 가운데서 반야바라밀을 두루 갖추느니라.
【論】
【문】 묻는 이나 대답하는 이가 다 같이 있는 바 없음[無所有]을 말씀하고 계신데 어떻게 분별하여 ‘이것은 질문이다, 이것은 대답이다.’라고 알겠는가?
【답】 말씀하는 법은 비록 하나라 하더라도 마음은 다르다.
묻는 이는 집착하는 마음으로 물었고, 대답하는 이는 집착함이 없는 마음으로 대답하였다.
수보리는
‘있는 바 없는 가운데서는 발심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였으며,
수보리는 듣는 이들이 집착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이런 질문을 한 것이다.
즉 모든 법이 공한 가운데서는 보살로서 발심하는 이를 보지도 않고, 중생으로서 이롭게 할 수 있는 이도 보지 않으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도 보지 않으니,
이 때문에 있는 바 없는 법에 대하여 따지기를,
‘만일 온갖 법이 있는 바 없는 성품이라면, 보살은 어떤 이익을 보았기에 발심하는 것인가?’라고 한 것이다.
수보리는 보살과 중생과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대해서는 의심하지 않고, 다만 있는 바 없는 법에 대하여 물었을 뿐이니,
이에 부처님은 대답하시길,
“바로 있는 바 없이 공하기 때문에 발심할 수 있는 것이니라”라고 하셨다.
만일 있는 바 없고 공하다면, 보살이나 중생이나 아뇩다라삼먁삼보리도 모두가 공하여서 있는 바가 없거늘 어찌 논란을 일으킨단 말인가?
만일 중생이나 보살이나 아뇩다라삼먁삼보리가 있는 바 없이 공한 것을 여읜다 한다면 이런 논란이 있을 수도 있지만,
앞에서 말한 것과 같아서 필경 공하다면 모든 법에서 장애하는 것이 없거늘 무엇이 발심하는 일을 방해하겠는가?
부처님은 도리어 있는 바 없이 공한 것으로써 수보리의 질문을 깨뜨리고,
다시 친히 그 인연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수보리야, 마음으로 집착한다면 해탈을 얻기 어려우니라”라고 하셨다.
이런 사람은 시작도 알 수 없는 때부터 나고 죽고 하면서 온갖 번뇌 때문에 모든 법에 깊이 집착하는 것이니, 있다고 들어도 집착하고 공하다고 들어도 집착하며, 얻거나 잃어도 또한 집착 하느니라.
이와 같은 중생은 벗어나기 어렵나니,
이 때문에 보살은 위 없는 도의 마음[無上道心]을 일으켜 스스로 상호(相好)로써 몸을 장엄하고, 범음(梵音)의 소리를 얻어 큰 위덕이 있으며, 중생의 3세(世) 동안의 마음의 근본을 알아 갖가지 신통력과 인연과 비유로써 그들을 위하여 있는 바 없는 법과 공과 해탈문을 말해 주어 그들의 마음을 인도하나니,
중생들은 이와 같이 희유한 일을 보고는 즉시 그의 마음이 부드러워지면서 부처님을 믿고 법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 때문에 경에서 말씀하기를,
“있다는 데에 집착하는 이는 해탈하기 어렵다.
얻을 것이 있다[有所得] 하면, 도(道)도 없고 과위[果]도 없으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도 없다.”라고 하신 것이다.
수보리가 세존께 여쭈기를,
“만일 얻을 것이 있는 경우에는 도도 없고 과위도 없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도 없다면, 얻을 것이 없는[無所得] 경우에는 도도 있고 과위도 있습니까?”라고 하자,
부처님은 대답하시기를,
“있는 바 없는 그것이 곧 도요 곧 그것이 과위이며, 곧 그것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이니라”라고 하셨다.
만일 사람이
‘이것은 얻을 것이 있다, 이것은 얻을 것이 없다’ 하고 분별하지 않고,
모든 법의 실상(實相)인 필경 공 가운데에 들어가면,
이것 또한 얻을 것이 없으므로 곧 그것이 도요 곧 그것이 과위이며 곧 그것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는 것이다.
이는 모든 법의 실상을 파괴하지 않기 때문이니, 법 성품이 곧 모든 법의 실상이다.
수보리는 생각하기를,
‘법의 성품은 바른 행이거나 삿된 행이거나 간에 언제나 파괴할 수 없거늘, 무엇 때문에 부처님은 법의 성품을 파괴하지 않는 그것이 곧 도요 그것이 곧 과위라 하실까?”라고 하였다.
이에 부처님은 대답하시길
“법의 성품은 비록 파괴할 수 없다 하더라도 중생들의 삿된 행[邪行] 때문에 파괴한다 하느니라”라고 하셨다.
마치 허공은 구름이나 안개나 먼지가 비록 더럽힐 수 없다 하더라도 깨끗하지 못하다고 하는 것과 같다.
마치 사람이 허공을 더럽히려 하는 것은 이 사람이 법의 성품을 더럽히려 하는 것과 같나니, 이러한 일은 없기 때문이다.
부처님께서는 비유로 말씀하시길,
“만일 사람이 법의 성품을 파괴하려 하면,
이 사람은 있는 바 없는 법 가운데서 도를 얻고 과위를 얻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려고 하는 것이니라”라고 하신 것이다.
수보리는 부처님께 여쭈기를,
“만일 있는 바 없는 그것이 곧 도(道)라면 어떻게 10지(地) 등 모든 보살의 법이 있습니까?”라고 하였으니,
경에서 자세하게 설명한 것과 같다.
【문】 이런 일은 부처님께서 이미 앞에서 대답하셨다.
이른바 ‘만일 법이 공하다면 보살은 어떠한 일을 보았기에 발심합니까?’라거나,
지금 ‘만일 법이 공하다면 어떻게 초지(初地) 등이 있는 것입니까?’라는 등에 대해 부처님은 모두가 공으로써 대답하셨거늘, 지금 수보리는 무엇 때문에 다시 물은 것인가?
【답】 중생들은 마음에 집착하고 있어서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에 다시 물은 것이다.
이 대중 가운데는 새로 뜻을 낸 보살도 있으므로 그들은 이 모든 법의 실상이 공하다는 것을 들으면 곧 집착하는 마음을 내며,
부처님께서 그들의 집착을 깨뜨리면 또한 깨뜨리는 그 법에 집착하므로,
수보리는 이런 사람들을 위하여 다시 물은 것이다.
부처님은 수보리에게 대답하시기를,
“얻을 것이 없기 때문에 초지(初地)가 있고 나아가 완전한 열반에 든 뒤에는 사리(舍利)가 공양을 받는다.
집착이 있는 것 가운데서는 초지나 모든 공덕을 설명할 수 없으며,
또한 얻을 것이 없는 인연 때문에 보시에서 모든 신통에 이르기까지 차별이 없나니,
차별이 없기 때문에 힐난하지 말아야 한다.”라고 하셨다.
수보리는 또 여쭈기를,
“어떻게 얻을 것이 없는 데서는 보시에서 모든 신통에 이르기까지 차별이 없습니까?”라고 하자,
부처님은 대답하시기를,
“보살은 처음 발심해서부터 아뇩다라니삼먁삼보리를 닮은 고요히 사라진 모양[寂滅相]으로써 필경 공한 데에 보시하느니라.
이른바 보시하는 이[受者]와 받는 이와 재물(財物)은 얻을 수 없는데도 보시를 행하는 것이므로 이와 같은 보시 가운데에는 분별이 없느니라.
나아가 보리를 얻을 수 없는데도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 것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이것을 이름 하여 보살은 얻을 것이 없는[無所得] 반야바라밀을 행한다 하나니,
이 얻을 것이 없는 반야바라밀을 행한다면 악마나 악마의 하늘이 파괴하지 못하느리라”라고 하셨다.
‘한 생각[一念] 동안에 6바라밀을 행한다’고 함을 [문답하리라.]
【문】 수보리는 무엇 때문에 한 생각 동안에 6바라밀 등을 행하는 모든 공덕을 묻는가?
【답】 수보리는 부처님으로부터 반야바라밀의 매우 깊은 ‘있는 바 없는 모양[無所有相]’과 모든 법 가운데에서의 ‘걸림 없는 모양[無礙相]’을 들었다.
만일 그렇다면 곧 능통하지 못한 것이 없고 하지 못할 일이 없으리니, 어떻게 보살은 한 생각 동안에 6바라밀 내지는 80수형호를 포섭할 수 있는지를 [물은 것이다.]
처음 발심할 때는 ‘있다ㆍ없다’ 하며 집착하는 마음이 무거운 까닭에 점점 차례로 행하였지만,
지금은 ‘있다ㆍ없다’ 하는 것을 모두 다 버렸기 때문에 능통하지 못한 것이 없다.
이 때문에 묻는 것이다.
부처님은 대답하시기를,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여의지 않고 보시 등 모든 공덕을 행하면, 장애가 없기 때문에 한 생각 동안에 행할 수 있지만,
만일 반야바라밀을 멀리 여의면, 차츰차츰 차례대로 행해야 하느니라”라고 하셨다.
수보리는 여쭈기를,
“어떤 것을 멀리 여의지 않는다 합니까?”라고 하자,
부처님은 대답하시기를,
“보살이 두 가지 모양으로써 보시 등을 행하지 않는 것이니라”라고 하셨다.
다시 여쭈기를,
“어떻게 두 가지 모양으로 행하지 않는 것입니까?”라고 하자,
부처님은 대답하시기를,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때에 단바라밀을 두루 갖추고자 하여 보시하는 한 생각 동안에 온갖 착한 법을 포섭하는 것이니라”라고 하셨다. 앞에서 말씀한 것과 같다.
어떤 것이 ‘한 생각[一念]’인가?
이른바 보살이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어 온갖 번뇌를 끊고 모든 기억과 분별을 없애고 번뇌 없는 마음[無漏心] 속에 편안히 머무르면서 온갖 것을 보시하는 동안을 말한다.
‘번뇌 없는 마음’이란, 곧 모양이 없는 것을 말한다.
보살은 이 마음속에 머무르면서
‘그 누가 보시하고 그 누가 받으며 그 누구의 물건인가?’ 하는 것을 보지도 않고,
온갖 모양을 여읜 마음으로 보시하면서 어느 한 법도 있다고 보지 않으며,
나아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이르기까지도 오히려 보지 않거늘, 하물며 그 밖의 다른 법이겠는가?
이것을 이름하여 둘이 아닌 모양[不二相]이라 한다.
나아가 80수형호에 이르기까지도 이와 같다.
수보리는 또 다른 일로써 이 이치를 여쭈기를,
“세존이시여, 모든 법은 모양이 없고 조작이 없고 일어남이 없거늘, 어떻게 단바라밀 등에서 80수형호까지를 두루 갖출 수 있는 것입니까?”라고 하자,
부처님은 대답하시기를,
“보살은 모양이 없고 조작이 없는 법 가운데서 모양을 취하지 않기 때문에 아무 장애되는 마음이 없이 보시하면서 먹을 것을 구하면 먹을 것을 주느니라”라고 하셨다.
경에서 이미 자세히 말씀하셨고 또 앞의 품(品)에서도 자세히 말씀했으므로 다시 더 해설하지 않는다.
번뇌도 없고 모양도 없는 6바라밀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무생법인을 얻은 보살이 행하는 것이요,
둘째는 아직 무생법인을 얻지 못한 보살이 행하는 것이다.
무생법인을 얻은 보살이 행하는 것은 여기에서 말하는 것과 같나니, 왜냐 하면 모양이 없고 번뇌도 없는 마음속에 머무르면서 보시 등 모든 법을 행하기 때문이다.
【문】 생신(生身)의 보살은 탐내고 아끼는 것이 아직 제거되지 못했기 때문에 몸을 베고 끊으면 심한 고통을 느끼므로 이것은 어려운 일이라 여기지만,
무생법인을 얻은 보살은 마치 변화한 사람[化人]이 하는 일과 같아서 몸을 베고 끊어도 고통이 없거늘 무슨 은분(恩分)이 있겠는가?
【답】 무생법인을 얻은 보살은 이 6바라밀을 행하는 일을 어렵다고 여긴다.
그것은 왜냐하면, 무생법인의 고요히 사라진 마음[寂滅心]을 얻으면 마땅히 열반의 즐거움을 받아야 하는데도 이 고요히 사라진 즐거움을 버리고 중생들 가운데로 들어가 갖가지의 몸을 받아서 혹은 하천한 사람이 되기도 하고 혹은 축생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니, 이것을 곧 어렵다고 여긴다.
생신의 보살은 탐애(貪愛)가 아직 제거되지 못하고 부처님의 몸에 집착하기 때문에 몸으로써 보시를 한다 해도 그것은 바라는 것이 있어서 하는 것이므로 깨끗한 보시가 되지 않나니, 그러므로 그보다는 못하다.
또 번뇌가 없고 모양이 없는 6바라밀을 행하면 이때에 완전하게 갖출 수 있지만,
번뇌가 있고[有漏] 모양이 있으면[有相] 완전하게 갖출 수가 없나니,
이 때문에 완전하게 갖출 수 있으면 큰 은분(恩分)이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