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를 찍어서 한자 한자 써내려 가듯 써야 하는 것이 시다. 시를 쉽게 여기는 자 수필 또한 쉽게 여길 것이니 그는 한 낮 문학을 자기 치장용 악세서로로 아는 자이리라! (2023. 10. 25 05: 41에 정임표 쓰다)
==================================
떠나가는 배/ 박용철
나 두 야 간다
나의 이 젊은 나이를
눈물로야 보낼거냐
나 두 야 가련다
아늑한 이 항군들 손쉽게야 버릴거냐
안개같이 물어린 눈에도 비최나니
골잭이마다 발에 익은 묏부리 모양
주름살도 눈에 익은 아, 사랑하던 사람들
버리고 가는 이도 못 잊는 마음
쫓겨가는 마음인들 무어 다를거냐
돌아다보는 구름에는 바람이 희살짓는다
앞 대일 언덕인들 마련이나 있을거냐
나 두 야 가련다
나의 이 젊은 나이를
눈물로야 보낼거냐
나 두 야 간다
<박용철전집, 시문학사, 1939>
싸늘한 이마/ 박용철(朴龍喆)
큰 어둠 가운데 홀로 밝은 불 켜고 앉아 있으면 모두 빼앗기는 듯한 외로움
한 포기 산꽃이라도 있으면 얼마나한 위로이랴.
모두 빼앗기는 듯 눈덮개 고이 나리면 환한 왼몸은 새파란 불 붙어 있는 인광(燐光)
까만 귀뚜리 하나라도 있으면 얼마나한 기쁨이랴.
파란 불에 몸을 사르면 싸늘한 이마 맑게 트이어 기어가는 신경의 간지러움
길 잃은 별이라도 맘에 있다면 얼마나한 즐검이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