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오월
양효숙
푸른 오월, 담쟁이덩굴에 바람이 일렁이고 붉은 넝쿨 장미가 담장을 물들인다. 생기가 차고 흐르는 시간이다. 담장이 있어 가능한 풍경이다. 담장을 타고 오르는 손에 피멍이 들어도 버티고 핏줄이 터져도 안간힘을 쓴다. 거센 바람에도 벽과 한 몸인 양 견딘다.
바라만 봐도 시원하고 살랑거리는 잎사귀가 좋아 보인다. 잎사귀를 뜯어다가 깻잎처럼 쌈이라도 싸서 한입 먹으면 어떨까 싶다. 잎사귀에 꿀을 발라 글씨를 써넣고 애벌레들이 갉아 먹도록 했다는 역사의 한 장면이 새삼스레 떠오른다.
계절이 바뀌면 담쟁이 잎도 시들겠지. 그것이 자연의 섭리라고 받아들이며 시든 잎사귀를 떨쳐내려 한다. 이파리들은 뿌리의 깊이를 알 것이다. 뿌리가 뽑혀져서 죽었으나 때로는 죽지 않고 가슴속으로 타오른다는 것을 말이다. 죽은 나무를 타고 오르는 담쟁이도 있고 푸르른 상록수와 하나 되어 타오르는 담쟁이도 있다. 하늘을 향해 타오르다 담쟁이는 담을 넘는다. 담을 타고 넘나드는 재주가 있어서 담쟁이라 했을까 싶다.
한동안 푸른 오월이 검게 물들었다. 붉게 타오르는 넝쿨 장미에 찔려 가슴이 먹먹하다. 노란 풍선과 모자가 광장에 출렁이고 오직 한 사람을 위한 종이비행기가 새처럼 날아간다. 어떤 풍선은 바람결에 떠오르고 어떤 풍선은 날지도 못한 채 허망하게 뻥 터진다.
국민장으로 치러지는 전직 대통령의 분향소에 갔다. 아들의 손을 이끌고 온 건 우리 부부만이 아니다. 아들은 가르쳐주지 않아도 방명록에 이름과 함께 ‘사랑해요’를 써 놓는다. 남편은 앞줄 사람들이 두 번 절하는 것을 무시하고 세 번 절한다. 이전까지만 해도 기도하며 조문하던 그답지 않다. 돌아가신 분의 종교를 배려하고 싶단다. 오늘만큼은 나도 내 색깔을 드러내고 싶지 않다. 모든 색이 섞여져서 검은 색을 만든다.
영결식은 경복궁에서 진행된다. 남편은 오전 휴가를 냈다. 태극기를 내걸고 검은 넥타이를 맸다. 그동안 태극기를 내거는 일에 게을렀고 무관심했다. 태극기 물결에 애틋한 소통이 흐른다. 때 아닌 한여름 열기로 갈증이 난다. 무표정한 사람들의 모습에서는 슬픔이 묻어난다. 낯선 얼굴들이 왠지 측은하다. 반팔 입은 팔목에 누군가의 살이 따스하게 스친다. 검은 넥타이를 하고 근조리본을 달고 앉아 있는 사람들 앞에 푸릇한 젊음이 노란 손수건을 두르고 서 있다.
시청 앞 광장에서 인파에 휩쓸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흘러간다. 애도의 물결이다. 출구를 찾기 힘들다. 지하철에서 환승하듯 갈아타는 것이 인간의 삶이고 죽음일지 모른다. 어쩌면 생사의 출입구는 하나로 맞물려 있을 것이다.
아들 손을 놓지 않으려고 애써가면서 검은 물결에 휩쓸렸다. 이따금씩 슬픈 표정의 사람들은 성을 냈다. 성난 소리와는 다르게 소리 없는 울음소리가 가까이 들린다. 일곱 살배기 아들의 등에는 붉은 색 어린이집 가방이 붙어 있다. 검은 색과 흰색 그리고 노랑이 출렁이는 곳에서 빨간 가방이 눈에 띄어주기를 바라는 에미 마음이 담겨있다. 혹여 아들과의 끈을 놓는 일이 발생하면 안 된다. 보이지 않는 탯줄로 얽힌 인연이다. 아들은 어른들의 배꼽 사이에서 올려다보며 “왜 울어?” 자꾸만 묻는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누구에게나 물으라고 가르쳤는데 대답하기 힘들다. 물어 보는 것은 창피한 일이 아니라 용감한 것이라고 일러도 줬는데 가슴이 먼저 들썩거려 말을 삼킨다.
바보 대통령이라고 누가 이름 붙였을까. 책을 읽고 글 쓰는 일을 즐거워했던 소탈한 분의 작은 행복마저 지켜주지 못해서 안타깝다. 그의 분향소에는 흰 국화송이와 담배가 쌓였다. 마지막 담배 한가치 태우지 못하고 떠난 아쉬움을 달래주기 위해서인가보다. 내 어릴 적에도 대통령이 돌아가셨다. 총에 맞아 돌아가셨다고 사람들이 슬퍼했던 밑그림이 있다. 아들은 이다음에 바보 대통령을 어떻게 떠올릴지 궁금하다.
깊은 숨을 몰아쉰다. 내 슬픔과 그의 슬픔이 맞닿았다. 그를 위로하는 일이 나를 위로하는 일이다. 내 행복과 그의 행복이 따로 놀지 않는다. 대통령 할아버지가 자전거를 타고 시골 논둑길을 달리는 모습이 따스해서 행복했는데, 이제는 마냥 걸린다. 그는 오래된 생각이라고 나를 위로하고 설득하지만 그렇게 쉽게 줄을 툭 놓을 줄은 차마 몰랐다.
담쟁이덩굴은 바람줄기를 탄다. 흔들리며 뿌리를 내리고 잎사귀를 넓힌다. 바람을 타고 흔들리는 게 어디 담쟁이뿐이랴.
양효숙
전남 구례 출생. 2010년 『시에』로 등단.
―『시에티카』 2010년 하반기 제3호
첫댓글 양선생님 마음은 검은 오월이 아닌... 늘 밝고 환한 오월이었으면 합니다^^~~~
김선생님의 오월도 언제나 밝고 화창하시길 기원합니다^^
좋은 글 다시 한 번 잘 읽었습니다.
선생님의 댓글은 항상 힘을 준답니다. 고맙습니다^^
현실을 읽어내는 마음 깊습니다. 항상 그런 자세 견지하기 바랍니다.
글에서 행간을 읽듯이 현실을 바라봅니다. 책만 읽기 대상이 아니더군요. 항상 양주간님의 좋은 말씀 감사히 받습니다.
작년 초여름에 벌어진, 가슴 먹먹한 그때 그 장면들이 다시금 떠오릅니다. 흡착근을 지니고 뻗어오르는 담쟁이가 아니라, 마치 늦가을 홀로 남겨진 마지막 잎새를 그리는 노화가 베어먼의 심정이었습니다.
사물을 바라보는 예술가들의 시선을 생각합니다. 어떻게 바라봐야할지 고민합니다. 좀더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싶습니다. 선생님의 따뜻한 조언 고맙습니다.
"내 슬픔과 그의 슬픔이 맞닿"는, 현실에 깊게 뿌리내리는 자아를 생각합니다.
선생님의 생각과 제 생각이 많이 맞닿아 있다는 생각을 감히 해봅니다. 여러모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