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幻想)
때로는 환상(幻想)이 실체(實體)보다 유익하고 풍요롭습니다.
설혹 그것이 실재보다 차이가 있더라도 후회를 하거나 억울하다고 생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어차피 우리 인생은 꿈과 환상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냉혹한 인생을 너무 똑똑하게 들여다보면 실망을 하거나 심지어 절망 할 수도 있습니다.
어느 노랫말처럼 사랑했든 그 순간만은 진실한 감정이었고 행복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우리는 그 순간을 존중해야 합니다. 특히 남녀간의 사랑은 환상이 필요할 때도 있습니다. 건전한 환상은 유익하고 인생을 향기롭게 만들기도 합니다.
사실 인생은 꿈과 환상 속에서 헤매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실체를 알면 너무 실망스럽고 고통스러울 때도 있습니다. 착각과 환상은 무한 자유입니다. 만족한 삶에 긍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가끔 우리는 환상 속에서 살고 착각에서 즐거워하고 꿈꾸면서 흐뭇해합니다.
환상과 꿈을 가지고 있는 한 우리 인생은 즐거워집니다. 좋은 꿈은 비록 꿈인 줄 알고 있더라도 영원히 깨지 말았으면 하고 꿈속에서도 바라게 됩니다. 꿈이나 현실이나 좋은 것은 그대로 유지하고 싶은 것입니다.
두 사람은 사랑을 했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얼마큼 흘러갔을 때 퍼뜩 정신이 들었습니다. 세월이 지나간 후에 후회를 하고 원망을 하는 수도 있습니다. 그땐 자기 눈까풀이 덮였다고 푸념을 합니다. 그렇게도 좋았든 사람이 알고 보니 시원찮고 결점 투승이라는 걸 알게 됩니다. 이제 와서 원상회복 할 수도 없어서 그렁저렁 한 평생을 살아갑니다.
대개의 부부가 그렇게 살아갑니다.
성질 급한 사람은 이혼을 하거나 별거를 합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은 너나나나 다 비슷비슷 하고 어리석고 미련합니다. 육체는 화학적으로 분해해서 값어치로 따지면 불과 몇 천원에 불과 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영혼은 무한한 값어치를 갖고 있습니다. 우리는 맑고 고귀한 영혼을 무엇보담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젊은 사람은 상대를 고를 때 얼굴을 보고 몸매를 보고 고르는 수가 많습니다. 얼굴과 몸매가 항상 예쁘고 건강하다는 보증은 없습니다. 사고를 만나 얼굴이 망가질 수도 있고 병을 얻어 몸이 쇠약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 그 본질은 변한 게 아닙니다. 그 사람이 가진 고고(孤高)한 영혼과 아름다운 성품과 인격이 망가진 것이 아니라면 후회하거나 원망을 해서는 안 됩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물은 다 그런 것입니다.
그 순간에 아름다움을 느끼고 감격을 하고 위대성을 보았다면 그것으로 족한 것입니다. 그것을 순수하게 수용하고 즐거워한다면 충분합니다. 너무 꼼꼼하게 분석하고 철저히 따진다면 이 세상 어디에도 큰 즐거움은 없습니다. 아름답게 감동을 할 줄 아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단순하게 즐길 줄 아는 사람은 느긋한 사람입니다.
세월이 흘러 비록 처음 생각한 것과는 다르다고 할지라도 자기의 판단과 착각을 후회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그 순간에 느끼는 감성(感性)에 충실해야 합니다. 그 순간의 감정은 소중한 것입니다. 비록 밝혀진 현실이 차이가 나더라도 말입니다. 우리의 정감은 언제나 소중하고 엄숙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꿈속에서 사는지도 모릅니다. 환상은 눈을 뜨고 꿈꾸는 것이라면, 꿈은 자면서 꾸는 환상입니다.
환상의 극단적인 비유는 이광수의 소설 ‘꿈’에서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신라시대 동해안 낙산사의 못생긴 승려 조신은 고을 태수의 딸 달례를 사모합니다. 그러나 언감생심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는 인연인 것을 조신 스스로가 잘 알고 있습니다. 달례가 잘생긴 화랑 모례와 혼례를 올린다는 말을 듣고 다급해진 조신은 노(老)스님 용선 화상에게 매달립니다. 달례와 인연을 맺어달라고....
조신은 어느새 꿈을 꿉니다. 그리고 그것이 꿈인 줄을 모릅니다. 그는 달콤하고 환상적인 신혼생활도 하고 아이도 생산합니다. 온갖 험하고 기구한 사연을 만들다 사람을 죽이고 쫓기게 됩니다. 조신은 달례와 같이 살 때에 재미있고 즐거웠던 여러 장면을 생각합니다. 어여쁜 얼굴, 부드러운 살, 따뜻한 사랑, 이런 것이 모두 견딜 수 없는 그리움을 가지고 또렷 또렷이 나타납니다. 그때에는 뜨뜻한 방에 금침이 있고 곁에는 달례의 부드럽고 향기로운 몸이 있었습니다.
칼날이 조신의 목을 치려는 순간에 꿈에서 깨어납니다.
선잠을 깬 조신 눈앞에는 낙산사 관음상이 빙그레 미소를 띠고, 고개를 돌리니 용선 노장이 웃고 있었습니다. 그렇게도 긴 일생이 한순간의 꿈이었든 것입니다.
조신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한바탕 꿈을 꾸고 환상에서 헤매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비록 꿈과 환상이라 할지라도 순간 순간을 즐기고 사랑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