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렐루야! 일상의 삶을 살면서 만나는 사람에게 전한 복음의 내용을 모든 분들과 같이 나누길 원합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내용을 잘 전하게 하소서!
샬롬! 거룩한 성일의 아침입니다. 오월이 지나니 날씨가 갑자기 더워집니다. 신종 코로나의 종식도 아직은 요원합니다. 모든 면에서 조심하면서 기도하며 그리고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해야겠습니다.
오늘은 제가 최근에 3분에게 예수님을 증거 한 내용을 같이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두 분은 제가 일을 하면서 만난 사람에게 전한 것이고 또 한 분은 마천동에 있는 통닭집 사장님께 전한 내용입니다.
먼저 불교신자인 분에게 전한 내용입니다. 이 분은 남묘호랑교를 믿는 분이신데 자신의 교리를 적은 책자를 자주 가져다주시면서 보라고 하는 분이십니다. 제가 기회를 보고 있다가 잠시 나무 밑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오래된 소나무와 라일락 나무가 있는 곳인데 이곳에서 그분을 만났습니다. 그분이 이 나무 밑에서 잠시 쉬는 동안에 복음을 전했습니다. 불교와 달리 성경은 만물이 창조되었음을 말씀하시고 있음을 전했습니다. 불교는 자타불이를 주장합니다. 너와 내가 둘이 아니고 하나다 그런데 이를 모르고 서로 다른 존재로 인식하고 서로 대립하고 이기적으로 사는데 너와 내가 둘이 아니라 하나이니 서로 사랑을 해야 된다고 가르칩니다. 그리고 물건과 사람의 관계도 물아일여라고 해서 물건과 내가 서로 각각의 개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물건이 되고 물건이 내가 되어 결국은 서로가 하나다로 가르치고 색즉시공이라해서 눈에 보이는 것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헛것이다라고 가르칩니다.
여자가 옷을 벗고 눈에 아른거려도 그냥 헛것으로 보고 극복을 하고자 옛 고승은 죽을힘을 다해서 배운 바를 동원하고 애를 썼지만 황진이의 실체를 결국 인정하고 덮쳤던 것입니다. 우선 눈에 보이는 이 라일락과 그리고 큰 나무를 이용해서 이런 잘못된 가르침을 바로잡고자 했습니다. 여사님! 이 라일락과 나무는 우리와 같은 존재가 아니라 별개의 존재로서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실 때 나무로 만드셨는데 종류대로 만드셨습니다. 이 나무는 소나무로 이 나무는 라일락으로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데로 그대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사님과 나도 이 나무와 별도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신 존재입니다. 여사님과 내가 서로 둘이 아니고 하나라는 주장도 성경에서는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로 창조를 하셨기에 여사님과 제가 이렇게 남자와 여자로 존재합니다. 여사님과 저는 서로 둘이 아니고 하나인 것이 아니라 여사님은 여사님 대로 존재하시고 저는 저대로 존재합니다. 서로 별도의 인격체로서 이것을 인정하고 하나님께서는 서로 사랑을 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천지 만물을 만드시고 인간을 만드시고 부처를 만드신 분이 창조주가 되시고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것은 저와 여사님께서 죄를 짓고 영벌을 받고 죽어야만 하기 때문에 구원을 얻게 하려고 하신 것입니다. 본래 사람은 영생의 존재로 창조가 되었지만 죄를 짓고 이렇게 죽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우리의 죄의 문제가 해결이 되면 우리는 다시 영생을 누릴 수가 있는데 예수님께서 오셔서 저와 여사님의 죄를 대신해서 피를 흘리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우리는 이를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영접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죄를 용서받고 영원한 삶을 누려야 합니다.라고 전했습니다. 그러자 여사님께서 남묘호랑교를 통해서 이 세상에 살면서 욕을 먹지 않고 올바로 사는 것이 희망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보혈과 십자가 대속을 전했으니 이 말씀이 그 여사의 심령에서 역사하도록 기도합니다.
두 번째 전한 분은 제가 직장에서 출근을 제때 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전화로 도운 분이십니다. 같이 일을 하다가 저를 구원한 것에 대해서 감사의 말을 전하고 만약에 전화를 주시 않으셨다면 직장에 늦어서 동료들에게도 미안하고 또 근무 성적도 낮게 평가가 될 것인데 제때 전화를 주셔서 이런 낭패에서 벗어나게 되었는데 성경도 전체가 이렇게 구원에 대한 말씀이다. 구약은 구세주가 되시는 오실 예수님에 대한 말씀이고 신약은 오신 예수님에 대한 말씀이다. 인간은 죄로 인해서 큰 낭패에 빠져 있었다. 그런데 제가 오늘 아침 근무를 잊고서 멍하게 있을 때 선배가 전화를 해서 저를 낭패에서 건져낸 것과 같이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 모두가 죄로 인해서 죽어야만 하는 상태에 있었을 때 우리 모두를 대신해서 우리 죄를 지시고 피를 흘리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우리의 죄를 대속하신 것이다. 우리가 이를 믿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받아들이면 우리의 죄가 용서받게 되고 우리의 죄의 문제가 해결이 되었으니 우리는 처음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대로 영생을 누리는 존재가 된다. 이렇게 저를 낭패에서 전화를 해서 건진 것을 중심으로 죄와 사망의 길로 가는 우리를 건지신 예수님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고맙다고 바로 옆에 있는 중국집에서 간짜장을 시켜서 같이 점심으로 잘 먹었습니다.
세 번째 전한 분은 통닭집 여 사장님이십니다.
오후 7시에 퇴근을 했는데 아내가 치킨이 먹고 싶다고 해서 마천동에 있는 통닭집에 갔는데 늦은 저녁시간이었지만 아직도 영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위와 같이 튀긴 통닭을 약 주문이 들어오면 7분 동안 더 튀겨서 파는 분입니다. 아내와 아들이 좋아해서 자주 가는 집입니다. 보통은 아저씨가 닭을 튀기고 여자분은 닭 다리를 튀겨서 파시는데 아저씨는 보이지가 않았습니다. 약 7분을 기다려야 하는데 마침 사람도 없어서 복음을 전해야지 하면서 하나님을 생각하며 지혜를 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곧 예수님께서 지혜를 주셨습니다.
사장님 닭이 먼저입니까? 알이 먼저입니까? 물어보았습니다. 물론 교회에 다니는지 예수님을 믿는지 먼저 물어보았습니다. 성경책도 있고 교회엔 가끔 나간다고 하셨습니다. 제 질문에 어렵다고 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생각하는 바와 같이 닭은 알에서 나오고 알은 닭은 이 낳으니 어떤 것이 먼저 인지 알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물었습니다. 알이 여기 하나가 있는데 바로 닭이 나옵니까? 하니 선 듯 대답을 못했습니다.
우리는 조금만 신경을 쓰면 알이 닭이 되는 과정에 대해서 아주 과학적으로 잘 이해를 할 수가 있습니다. 알이 다 같은 알이 아님을 아셔야 합니다. 먼저 암탉과 수탉이 같이 살면서 낳은 알만이 부화가 되어서 새끼가 나올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먹는 대부분의 계란은 무정란으로서 알 낳는 암탉이 홀로 낳은 것이기에 절대로 병아리가 나올 수가 없는 알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먼저 알이 있다고 해도 병아리가 나오지 않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사장님! 알이 있다고 해도 절대로 알에서 닭이 스스로 나오지 못합니다. 먼저 암탉이 약 20일간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며 반드시 품어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알이 부화가 됩니다. 그리고 알 중에서 유정란과 무정란이 있음도 이야기를 했습니다. 알 홀로 절대로 부화가 되어서 병아리가 되어서 나올 수가 없음을 이야기했습니다. 우리는 이런 과정을 잊고서 알에서 병아리가 부화가 되니 알이 있어야 닭이 나올 수가 있다고 잘못 생각을 한 것입니다. 사장님께서 딸만 계시다고 했습니다. 사장님! 딸이 있지만 딸이 홀로 아기를 낳을 수가 있습니까? 물으니 절대로 낳을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알이 홀로 절대로 닭이 될 수가 없고 반드시 암탉과 수탉이 같이 지내면서 낳은 암탉의 알이 있어야 하고 또 이도 암탉이 정성을 다해서 같은 온도를 유지하며 약 20일을 품어야 하는데 이때 어미 닭은 식음을 전폐하고 오직 알만 품어야 비로소 병아리가 부화가 되어서 나오는 것입니다. 알이 있다고 절대로 병아리라 나오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를 하셔서 먼저 암탉과 수탉을 만드셨는데 암탉은 알을 낳은 닭으로 만드셨으니 닭이 먼저라고 대답을 하셔도 틀림이 없지만 이렇게 알의 유정란과 무정란이 존재하고 또 누군가가 부화를 위해서 품어야 하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알면 반드시 알이 먼저가 아니라 어미닭도 수탉이 먼저 있어야 함이 증명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어미닭과 수탉은 하나님께서 창조를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존재하심과 창주주가 되심이 더욱 강하게 믿음으로 옵니다.
그리고 설명을 더 붙어서 사장님! 알이 먼저다 라는 주장은 이렇게 튀겨놓은 닭과 다리가 서로 연결이 되어서 하나가 되고 또 이 닭에서 날개 즉 털이 나오고 기어 다니는 것과 같이 어려운 일이다. 이를 굳게 믿으시고 교회도 잘 다니시고 또 여기에 오시는 분께 이렇게 전도도 하시면 많은 복을 하나님께서 주실 것이다 라고 전했습니다. 그리고 알이 먼저다라는 주장은 진화론의 주장인데 사람도 먼저 아기가 스스로 세상에 생겨서 젖도 먹지 않고 먼저 자라나게 되고 또 이것이 남자 아기 면 나중에 또 스스로 여자 아기가 또 세상에 생겨나고 이도 스스로 자라서 서로 성인이 되고 이들이 어떤 연유에서 인지는 모르지만 서로 같이 살게 되고 또 자녀를 낳게 되는 존재가 되어서 세상은 이렇게 시작이 되어서 이렇게 인간이 많이 사는 세상이 되었다라고 진화론이 주장을 하고 있는데 어떤 물질이 아기로 만들어지는 것도 절대로 불가하고 만들어진 작은 아기가 엄마도 없이 스스로 자라는 것도 절대로 불가하고 또 남자 아기, 여자 아기가 또 어떻게 스스로 이 세상에 만들어지는 것도 절대로 불가하고 이 둘이 어떻게 만나고 그리고 이들이 만난다고 어떻게 자녀를 낳은 존재로서 만나게 되는지 이도 절대로 불가한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이 모든 불가함을 뚫고서 사람이 지금과 같이 아무런 창조의 행위가 없이 스스로 생기고 진화가 되었다는 말도 되지 않는 주장이 진화론이며 거짓말에 불과합니다. 절대로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가 되었는데 남자와 여자로 창조가 되었고 만물은 모두가 역시 하나님께서 각 종류대로 창조를 하셨음을 알려 주었습니다.
저는 세상에서 예수님도 모르고 성경도 모르는 상태에서 학교에서 가르치는 진화론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해서 어떤 미생물이 인간이 되었고 이 인간은 지금의 인간의 모습을 갖추는데 수백만 년이 지나서 그렇게 되었다고 배웠습니다. 그리고 이 가르침이 맞는다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과학이라고 하였고 과학은 진실만 말한다고 배웠기에 그대로 믿었지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와 십자가의 대속의 사랑으로 이를 믿고 죄의 용서를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로 분별을 해보니 너무나 진화론은 거짓의 결정체로서 모든 주장이 다 거짓에 불과하고 성경의 말씀은 어느 한곳이 틀리는 곳이 없이 읽을수록 완벽하게 정확합니다. 하나님의 존재와 우리에 대한 사랑도 너무나 정확하고 확실합니다.
로마서 9-11장은 이스라엘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10장은 복음 전파에 대해서 또 말씀을 하십니다. 로마서를 이신칭의의 문제로만 접근하다 보면 이렇게 복음을 전하는 내용에 대해서 간과할 수가 있습니다.
제10장
1.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함이라
2.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3.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4.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5. 모세가 기록하되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의로 살리라 하였거니와
6.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이같이 말하되 네 마음에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올라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모셔 내리려는 것이요
7. 혹은 누가 무저갱에 내려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내려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모셔 올리려는 것이라
8. 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냐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11.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12.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분이신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그를 부르는 모든 사
람에게 부요하시도다
13.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14.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15.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믿음과 들음과 그리스도의 말씀
16. ○그러나 그들이 다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였도다 이사야가 이르되 주여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나이까 하였으니
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18.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냐 그렇지 아니하니 그 소리가 온 땅에 퍼졌고 그 말씀이 땅 끝까지 이르렀도다 하였느니라
19.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이스라엘이 알지 못하였느냐 먼저 모세가 이르되 내가 백성 아닌 자로써 너희를 시기하게 하며 미련한 백성으로써 너희를 노엽게 하리라 하였고
20. 이사야는 매우 담대하여 내가 나를 찾지 아니한 자들에게 찾은 바 되고 내게 묻지 아니한 자들에게 나타났노라 말하였고
21. 이스라엘에 대하여 이르되 순종하지 아니하고 거슬러 말하는 백성에게 내가 종일 내 손을 벌렸노라 하였느니라
14절에서 말씀을 믿음에 대해서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구약도 믿고 또 예수님의 사복음서도 믿으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약 20여 년이 지난 기원후 57년에 고린도에서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가 로마서입니다. 당시는 폭군 네로의 치하에 있었습니다. 64년의 박해가 7년쯤 남은 시점에서 여전히 예수님을 전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그래도 전하라고 하십니다. 평안한 우리와는 너무나 사정이 다릅니다.
그리고 전파하는 사람의 위대함에 대해서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로마서에는 이렇게 복음 전파에 대한 강한 메시지가 또 있습니다. 안일하게 믿고 의롭게 되고 천국이 보장이란 말은 없습니다. 모두가 행함에 대한 말씀입니다. 바울 당시의 상황은 믿으면 감옥에 가는 상황이었고 믿으면 박해가 있던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로마서를 쓰신 것입니다. 믿음은 생명을 걸어야 하고 믿고 안 믿고는 분명했습니다. 그리고 형제애는 분명했습니다. 같이 고난을 겪고 같이 순교도 하고 같이 옥살이도 하던 동지들이 믿음의 형제였습니다. 예수 안에서 그랬습니다. 우리는 깊이 생각하며 신앙생활을 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