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79차 충북 단양 금수산(2024.05.16.)
오늘은 충북 단양의 금수산을 다녀왔습니다.
이제 시산제의 저주가 완전히 풀렸는지 새벽까지도 그렇게 퍼붓던 비바람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화창한 날씨였습니다. 비가 오면서 기온이 좀 내려가서 선선하여 등산하기는 더없이 좋은 날이었습니다.
초입의 갈림길에서 일부는 오른쪽 코스를 택하고 다른 일부는 왼쪽 코스를 택했습니다. 이정표에 보니 거리도 거의 비슷했습니다. 저는 왼쪽 코스를 선택했는데 지나고 보니 탁월한 선택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탁월한 선택이란 등산 코스의 난이도나 뭐 그런 것이 아니고 같이 가는 대원들 때문이었습니다.
사내들은 일찌감치 시야에서 사라지도 여성 대원들과 저만 뒤에 처졌습니다. 나는 그 여성 대원들을 앞에 두고 뒤에서 열심히 따라 갔습니다. 나는 하나님이 남자만 만들지 않고, 그렇다고 여자만 만들지도 않고 남녀를 다 만든 것은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면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것을 창조하셨지만 이보다 더 현명한 결정을 한 것이 뭐가 있을까 싶습니다.
여성 대원들 뒤를 따라가면서 보니 무슨 얘기를 하는지 오순도순 조곤조곤 얼마나 재미있게 얘기들을 하고 가는지요. 약간 거리가 있어서 무슨 얘긴지는 다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참 정겹게 이야기를 하면서 가는 것이었습니다. 남자 대원들 뒤를 따라가는 것도 재미있지만 그 분위기와 대화의 내용은 하늘과 땅처럼 다릅니다. 나는 여성 대원 뒤를 따라가는 것이 산행의 가장 큰 즐거움 중의 하나입니다.
그냥 즐거운 것이 아니라 조금 가면 누가 과자를 내놓고(태국여행에서 사온 말린 망고를 아직도 가지고 오는 분(이명애)이 있습니다.), 조금 가면 오이, 조금 가면 귤, 조금 가면 사과(오늘 사과는 없었지만) 입이 심심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박은옥 권사님이 없어서 그 맛있는 곶감을 오늘은 먹지 못했습니다만.
신행은 산을 보는 것이 주목적이기는 하지만 산행이 산행다운 것은 산이 아니라 사람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과 산행을 하느냐가 어떤 산에 가느냐보다 더 중요한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 목요천봉은 정말 축복받은 산악회가 아닐 수 없습니다.
너무 말이 길었나요?
등산로는 대단히 가파른 길이었습니다. 바위도 제법 있고 계단도 아주 많았습니다. 평상시에는 계단이 나오면 “또 계단?” 하면서 반가워하지 않았지만 오늘처럼 험한 길에는 계단이 나오면 반갑습니다. 이런 계단을 힘들여 올라가서 정상 근처에 가니 그동안의 힘든 것을 한순간에 씻어주는 멋진 경관이 펼쳐졌습니다. 멀리 굽이굽이 대청호가 보이고 또 저 멀리에는 소백산맥이 길게 뻗어 있는 것이 보이는데, 이 오월 중순에 소백산 정상에 흰 눈이 쌓여 있는 것이 참 신기했습니다. 공기는 더없이 맑고 하늘은 더없이 푸르고 흰 구름이 군데군데 떠 있는 모습이 정말 가관이었습니다. 하늘의 구름을 보면서 한 대원이 감탄하며 “데칼코마니 같다”라고 했습니다. 나는 어디서 들어본 것 같기는 한데 무슨 뜻인지 몰라서 물었더니, 미술에서 나오는 용어인데 대칭적인 구조를 나타내는 말이라고 친절히 가르쳐 주더군요. 잘 배웠습니다. 아마 속으로 대학교수까지 했으면서 그것도 모르나 하셨을지 모르겠습니다. 좀 창피하기는 했지만 어쩌겠습니까?
우리 팀이 아직 정상을 가기도 전인데 유근영 대원은 벌써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정상에서 반대편에서 오는 대원들을 모두 만날 수 있었습니다. 모두 같이 점심을 먹고 일부는 우리가 올라간 왼쪽으로 내려오고 일부는 우리와 같이 다시 오른쪽으로 내려왔습니다.
거의 다 내려오니 남근석 공원이 우리를 맞이하지 않겠습니까? 요즈음은 이 남근석이 전국 여러 곳에 있어서 여성 대원들조차 별로 부끄러워하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누군가 젊은 여성 대원을 향해서 “야, 한 번씩 쳐다보고 가. 아들 하나 점지해 줄지 알아?” 남근석이 이렇게 흔해 빠졌지만 오늘 본 남근석이 제가 본 것 중에는 가장 멋진 작품이 아니었을까 싶었습니다. 저만 그렇게 생각하는 건가요?
이렇게 즐겁게 산행을 마쳤지만, 일부 대원은 반대편으로 내려가 버려서 버스가 36km나 돌아서 다시 태워오는 헤프닝이 있었습니다. 그 덕분에 청풍호 여기저기를 잘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작은 사건들도 산행의 묘미가 아닐까요?
돌아오는 차 안에서 회장님이 길을 잘못 든 대원들의 무안함을 위로하시는 의미로 시를 한 수 읊더군요. “이 나이는 망각을 밥 먹듯이 하는” 뭐 이런 구절이 들어가 있는 노인 부부의 건망증을 하소연하는 시였습니다. 지난주에는 고장 난 시계 때문에 산행을 놓친 것 하며, 오늘은 중요한 약속을 내일로 착각해서 버스까지 왔다가 돌아간 것 하며, 하산길을 잘못 들어 반대편으로 간 것 하며, 유난히 많았던 사건들이 대단한 실수가 아니라 우리 나이에는 일상이라는 회장님의 깊은 배려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침 차 안에서는 지난주 산행을 못 하신 김영분내외분께서 백설기 떡을 제공해 주셨고, 돌아오는 길에는 김종분님께서 막걸리와 아이스크림을 사 주셨습니다. 모두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그리고 오늘이 회장님께서 사고당한 지 꼭 6개월이 되는 날이라고 했습니다. 반년 만에 1000미터가 넘는 산의 정상을 밟으셨습니다. 얼마나 감사한지요. 회장님께서 감사를 입에 달고 사실만 합니다. 회장님, 축하합니다. 그리고 더욱 건강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이렇게 오늘도 멋진 산행이었습니다.
첫댓글 험준한 산길에 비온뒤라 많이 미끄러운 길이지만 모두모두 안전하게 산행을 마침 수 있어서 감사드립니다. 재미있게도 써주신 일지 감사드립니다. 이런 모든 일들을 1000차 산행기념으로 책으로 발간하는 것이 엄청 기대가 됩니다. 회원님들 모두모두 무탈하게 지내시고 다음산행에 반갑게 뵙겠습니다.
화려한 날씨에 멋진 금수산 산행이 진솔하게 글로 전달이 됩니다.
산행으로 건강해졌다고 저는 자부하기에 모든 산행의 걸음은 행복과 즐거움입니다.
불참으로 더 궁금했던 하루 총장님의 산행기를 읽으며 그 걸음들에 함께 해 보았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