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5일은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이에요. 모두 김대건 신부님이 한국의 첫 사제라는 것은 알고 있죠? 그 험한 박해 시기에 어떻게 사제가 되셨을까요. 그림으로 김대건 신부님의 생애를 함께 확인해볼까요.
김대건 신부님은 1821년 충청도 솔뫼(현 충남 당진군 우강면 송산리)에서 태어났어요. 양반이었던 아버지 성 김제준(이냐시오)과 어머니 고 우르술라의 장남이었죠. 김대건 신부님의 어릴 적 이름은 재복(再福)이었대요.
가톨릭 신앙을 받아들이고 따랐던 김대건 신부님 가족은 1827년 정해박해가 일어나자 교우촌인 골배마실(현 경기도 용인시 내사면)로 집을 옮겼어요. 그리고는 다른 이에 눈에 띄지 않게 신앙생활을 이어갔답니다.
1836년 부활절은 김대건 신부님에게 잊지 못할 날이에요. 바로 김대건 신부님이 골배마실 근처에 있는 은이공소에서 첫 서양인 선교사였던 모방 신부님에게 세례를 받은 날이죠.
모방 신부님은 어릴 적부터 신앙심이 깊고 총명했던 김대건 신부님을 신학생으로 선발했어요. 비록 열다섯이라는 어린 나이였지만 김대건 신부님은 기꺼이 사제 성소를 받아들였지요.
김대건 신부님은 동료 최양업(토마스), 최방제(프란치스코 하비에르)와 함께 1836년 12월 한양을 떠났어요. 지금처럼 자동차나 자전거가 있던 때가 아니었기 때문에 김대건 신부님과 동료들은 걸어서 중국으로 건너갔어요. 그리고 1837년 6월 마카오에 도착해 파리외방전교회 극동대표부 신학교에 입학했답니다.
당시 김대건 신부님은 위장병, 요통, 두통 등 아픈 곳이 많아 몸이 약했어요. 하지만 민족 복음화에 힘쓰겠다는 생각 하나로 6년간 마카오에서 사제 양성 과정을 밟았지요. 안타깝게도 함께 하던 최방제 신학생은 1838년 마카오에서 열병으로 세상을 떠났어요.
김대건 신부님은 1844년 12월 중국 소팔가자에서 페레올 주교에게 부제품을 받았어요. 이날 함께 부제품을 받은 최양업은 나중에 조선의 두 번째 사제가 됐답니다.
1845년 8월 17일 중국 상해 진쟈샹성당에서 김대건 신부님은 제대 앞에 엎드렸어요. 주님의 뜻을 따르는 사제가 되는 사제 서품식 날이었어요. 이날은 한국의 첫 사제가 탄생한 역사적인 날이었답니다.
김대건 신부님은 박해로 고통받는 조선 신자들을 만나기 위해 입국을 서둘렀어요. 김대건 신부님은 페레올 주교님과 다블뤼 신부님, 신자들과 함께 1845년 8월 31일 상해를 떠나 ‘라파엘호’라는 배를 타고 조선으로 향했어요.
하지만 조선으로 가는 길은 험난했어요. 김대건 신부님 일행은 바다 위에서 모진 풍랑을 만나 시달리다 결국 예상치 못한 곳인 제주도 용수리 포구에 도착했지요. 하지만 신부님과 일행은 시간을 지체하지 않고 곧 풍랑에 파손된 라파엘호를 수리하고 다시 뱃길에 올랐어요. 그리고 상해에서 출발한 지 2달여 만인 10월 12일 강경(전북 익산군 망성면 화산리)에 발을 디뎠답니다. 조선 교회 사목을 위해 내디딘 첫 사제의 첫발이었어요.
김대건 신부님이 조선에 돌아와 체포되기 전까지 사목활동을 하신 기간은 반년 정도밖에 되지 않아요. 그 짧은 시간 동안 김대건 신부님은 서울과 경기 지역을 두루 다니며 신자들에게 성사를 베풀고 미사를 봉헌했어요.
그러던 1846년 6월 5일, 김대건 신부님은 선교사가 들어올 수 있게 바닷길을 만들러 황해도에 갔다 돌아오던 길에 체포되고 말아요.
김대건 신부님은 옥에 갇혀 죽을 신세가 되었는데도 오히려 함께 갇힌 신자들을 챙겼어요. 함께 갇힌 남경문(세바스티아노)에게도 용기를 주고, 몇몇에겐 옥중 세례를 베풀기도 했지요.
결국 김대건 신부님에게 ‘군문효수형’이 내려졌어요. 군문효수형은 죄인의 목을 베어 문에 매다는, 중죄인을 처형할 때만 사용했던 무서운 형벌이었어요. 김대건 신부님은 1846년 9월 16일 새남터 처형장에서 이렇게 외치고 칼을 받았어요.
“나는 천주를 위해 죽는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이 내게 시작되려고 합니다. 여러분이 죽은 뒤에 행복하기를 원한다면 천주교를 믿으시오.”
누구도 대역죄로 처형당한 김대건 신부님의 시신을 거둘 수 없었어요. 그때 용감한 신자 이민식(빈첸시오)이 목숨을 걸고 신부님 시신을 거둬 자신의 고향인 경기도 안성 미리내에 묻었어요. 그 후 시신은 서울 혜화동 가톨릭 신학대로 옮겨졌답니다. 지금 미리내성지엔 김대건 신부님의 아래턱뼈만 남아 있어요.
1925년 7월 비오 11세 교황님은 김대건 신부님을 시복했어요. 그리고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이 한국을 찾았던 1984년 5월 6일 여의도에서 김대건 신부님은 102위 순교자와 함께 성인으로 선포됐답니다..
첫댓글 우리나라의 최초의 사제요, 순교자이며,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인 <김대건 안드레아>성인에 대한
자세한 내용과 그림을 통해 순교자의 후예들인 나와 우리들의 믿음을 반성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