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 청소년들 위한
찾아가는 천막 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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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하종(가운데 모자 쓴 이) 신부가 아지트를 방문한 청소년들과 함께 환하게 웃고
있다. 이정훈 기자 |
지난 12월 18일 저녁 경기 성남시 신흥역 3번 출구 앞. 역 앞에 설치된 대형 천막 안에서 10대들의 왁자지껄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고 새어나왔다.
10평 남짓한 천막 안. 삼삼오오 탁자에 둘러앉은 청소년들은 함께 휴대폰 영상도 감상하고, 노래도 부르고, 보드게임도 즐기고 있었다.
이 자유로운 공간을 만든 김하종(안나의 집 대표, 오블라띠 선교수도회) 신부가 이들 틈바구니에서 이야기 나누고 있었다. 청소년들을 위한
찾아가는 쉼터 ‘아지트’ 풍경이다.
학교 밖 청소년 수는 2014년 현재 2만 4000여 명. 전국 가출 청소년 쉼터는
116곳이다. 추운 겨울, 새해를 앞두고 대한민국 학교 밖 청소년 현주소를 뒤집기 위해 청소년들을 따뜻하게 보듬고 있는 아지트를 찾았다.
길 위의 양, 청소년
“아지트 알아요?”
“춥죠? 들어와서 간식 먹고 가요.”
이미 천막
안에 청소년들이 가득 있는데도 점퍼 차림의 김하종 신부는 밖에서 부지런히 10대들을 유인(?)했다. 선교 활동도 아니고, 쉼터 입소자 모으기도
아니다. 거리 청소년들과 함께하고자 하는 그의 의지다.
대화를 통해 서로 마음을 열고 청소년들의 가정과 학교로 복귀가 그의 목표다. 아지트는 학교 밖 학생들을 따뜻하게 이끄는 ‘다리’ 역할을
해내고 있다.
김 신부는 지난 20여 년간 운영해온 노숙인 무료급식소 ‘안나의 집’ 대표로 잘 알려진 사제. 그런 그가 7월 청소년
이동 쉼터인 아지트를 만들어 ‘거리 청소년 돌보기’에도 적극적으로 나선 것이다.
‘아이들을 지켜주는 트럭’의 줄임말인 아지트에는
없는 게 없다. 차가운 몸을 데워줄 따뜻한 음료와 핫팩부터 팝콘과 컵라면 등 학생들이 좋아하는 간식이 모두 공짜다.
천막 옆에 정차된 승합차는 ‘이동 상담소’다. 고민있는 학생은 바퀴 달린 상담소에서 김 신부에게 말 못할 이야기를 털어놓곤
한다.
“가출 청소년 쉼터는 전국에 100군데가 넘습니다. 이곳 성남시에만 가출 청소년이 2000명에 이릅니다. 그런데 쉼터
입소자는 현저히 줄고 있습니다. 그래서 거리로 나왔습니다. 예수님께서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으러 나서신 것처럼요.”
아지트는
매주 화ㆍ목ㆍ금요일 오후 7시 성남 모란역ㆍ야탑역ㆍ신흥역 세 곳에서 문을 연다. 하루 평균 청소년 30~40명이 찾는다. 진학ㆍ취업 상담가와
의료 상담을 나눌 의사도 있다.
아지트에 모인 청소년들은 하나같이 즐거워 보였다. 여중생 최수현(16)양은 “원래 이 시간이면
노래방, PC방을 주로 갔는데,
이젠 아지트에 오는 게 일상이 됐다”며 “아지트는 다른 학교 친구도 사귀고, 담임 선생님에게도 말 못하는 고민을 이야기하고, 숙제도 하는
자유로운 곳”이라고 말했다.
박은정(16)양은 “전에는 학교만 오가며 하루하루 의미 없이 보낸 날도 많았는데, 아지트에서 신부님,
상담 선생님과 고민도 나누고 친구처럼 이야기 나눈 뒤로 행복감이 생겼다”면서 “어떤 때엔 아지트가 열리는 날을 기다린다”고 했다.
가출 경험이 있는 박혜지(17)양은 “부모님께서도 아지트에 간다고 하면 안심하신다. 먼저 와서 인사를 건네고 고민을 물어봐 주시는
어른은 아지트 신부님뿐”이라고 했다.
교회 밖으로 나가자
김 신부는 아지트를 여는 데 꼬박 2년이 걸렸다. 그는
“운영비 등 따져봐야 할 것이 많아 저도 막상 두려웠다”고 했다. 그래도 “일단 해보자”는 심정으로 시작했다.
김 신부는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밖으로 나가라’고 하셨듯이 교회는 청소년과 노숙인, 가난한 이웃을 위해 꾸준히 나가야 한다”고 했다.
김 신부는 최근 현대자동차에서 지원받은 버스를 개조해 상담소와 휴식 공간을 갖춘 ‘아지트 버스’ 운영도 할 계획이다. 벌써 버스 운전면허
학원도 등록했단다.
“아지트 마치고 나면 새벽 한두 시에 집에 들어갑니다. 저도 환갑이 다 된 나이라 안나의 집 운영과 함께하는 게
쉽지 않지만, 마음은 전보다 더 행복합니다.
아지트를 찾은 학생들이 이탈리아어로 함께 노래하고, 색소폰 연주를 하리란 걸 누가 꿈이라도 꿨겠습니까. 열심히 청소년들에게 사랑의 씨앗을
심어줄 겁니다. 열매는 예수님께서 맺어주시겠지요.”
이정훈 기자(평화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