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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본문: 누가복음 1:5–25 (참조: 말라기 3:1, 4:4–6, 이사야 40:3–5, 민수기 6:1–8, 레위기 10:9)
핵심 명제: 구약 400년의 깊은 침묵을 찢고 성소의 제단 우편에 강림한 세례 요한의 출생 예고는,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엔 프뉴마티 카이 뒤나메이 엘리우)으로 주 앞서 행하여 거역하는 자를 의인의 지혜로 돌이키게 할 종말론적 선구자의 등장이자, 포도주와 독주를 거절하고 모태로부터 성령 충만을 입은 참된 나실인의 탄생을 알리는 신구약 언약사의 거대한 분기점이다.
1. 서론: 말라기 이후 400년의 흑암과 침묵의 종결
구약성경의 마지막 페이지인 말라기 4장 5–6절은 묵시적 전율을 담은 예언으로 끝을 맺습니다: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힌네 아노키 쇼레아흐 라켐 에트-엘리야 하-나비)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펜-아보 웨-힉케이티 에트-하-아레츠 헤렘) 하시니라" (말 4:5–6)
הִנֵּ֤ה אָנֹכִי֙ שֹׁלֵ֣חַ לָכֶ֔ם אֵ֖ת אֵלִיָּ֣ה הַנָּבִ֑יא(hinnēh’ānōḵîšōlēaḥlāḵem’ēṯ’ēliyyāhhannāḇî’)
이 무서운 심판의 경고인 '헤렘(חֵרֶם, 진멸, 저주)'이라는 단어를 마지막으로, 이스라엘 상공에는 하늘의 문이 굳게 닫혔습니다.
선지자의 환상도 끊어졌고, 하나님의 직접적인 음성도 사라졌습니다.
제2성전기 유대 문헌인 마카베오상 9장 27절은 이 시기를 가리켜 "선지자가 나타나지 않은 이래 이스라엘에 일찍이 없었던 큰 환난의 시대"라고 기록했습니다. 랍비 전승(탈무드 요마 9b) 역시 "학개, 스가랴, 말라기 이후 성령(루아흐 하-코데쉬)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고 고백했습니다.
페르시아의 지배, 헬라 알렉산더의 침략과 셀레우코스 안티오쿠스 4세의 성전 모독(단 8강), 하스몬 왕조의 부패, 그리고 마침내 주전 63년 로마 폼페이우스 장군에 의한 예루살렘 점령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은 400년 동안 짙은 흑암 속에 버려진 듯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구속사의 시계는 멈춘 적이 없었습니다.
때가 차매(갈 4:4), 로마의 꼭두각시 분봉왕 헤롯이 통치하던 암울한 시대(눅 1:5),
예루살렘 성전 깊은 곳, 지성소 바로 앞 분향단 곁에서 400년의 침묵을 찢는 천사장 가브리엘의 날갯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그 첫 신호탄이 바로 ‘세례 요한(요하난)의 수태고지’였습니다.
2. 본문 주해: 아비야 반열의 늙은 제사장 부부 (눅 1:5–10)
누가복음은 헬라 역사가의 치밀한 필치로 구속사의 무대를 역사의 시공간 속에 정초합니다:
"유대 왕 헤롯 때에 아비야 반열에 제사장 한 사람이 있었으니 이름은 사가랴요(히에레우스 티스 오노마티 자카리아스 엑스 에페메리아스 아비아) 그의 아내는 아론의 자손이니 이름은 엘리사벳이라(토 오노마 아우테스 엘리사베트) 이 두 사람이 하나님 앞에 의인이니(디카이오이 암포테ροι 에난티온 투 테우)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더라" (눅 1:5–6)
(1) 사가랴(זְכַרְיָה)와 엘리사벳(אֱלִישֶׁבַע)의 이름에 담긴 구속사
사가랴 (זְכַרְיָה, 자카르-야): "여호와께서 기억하셨다(자카르)."
엘리사벳 (אֱלִישֶׁבַע, 엘리-셰바): "나의 하나님은 맹세(언약)이시다(셰바)."
이 두 사람의 이름이 결합할 때 완성되는 신학적 문장:
"하나님께서(엘) 당신의 맹세하신 언약을(셰바) 결코 잊지 않으시고 마침내 기억하셨다(자카르-야)!"
그들의 존재 자체가 구약 언약의 신실성(헤세드)을 증언하는 살아있는 표식이었습니다.
(2) 아비야 반열(ἐφημερία Ἀβιά)과 불임의 절망 (7절)
다윗 시대에 제사장 가문은 24개 반열로 편성되었으며(대상 24:10), '아비야'는 제8반열이었습니다. 각 반열은 1년에 두 번, 일주일씩 성전 봉사를 담당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치명적인 결핍이 있었습니다:"엘리사벳이 잉태를 못하므로 그들에게 자식이 없고 두 사람의 나이가 많더라(눅 1:7)."
고대 유대 사회에서 불임은 단순한 생물학적 장애가 아니라, 하나님의 저주나 은밀한 죄의 결과로 손가락질받는 수치였습니다.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아브라함과 사라처럼, 한나처럼, 인간의 힘으로는 자녀를 낳을 수 있는 생물학적 가능성이 완전히 소멸한 '죽은 몸'이었습니다.
구속사의 역설: 하나님은 언제나 인간의 가능성이 0%가 된 자리, 곧 무덤과 같은 절망의 태(Womb)에서 생명의 새 역사를 시작하십니다.
3. 핵심 헬라어 강해: 분향의 시간에 나타난 천사 (눅 1:8–13)
당시 팔레스타인 전역에는 약 18,000~20,000명의 제사장이 있었습니다.
성소에 들어가 성막 제단에 분향하는 직무는 제사장 평생에 제비뽑기를 통해 단 한 번 올까 말까 한 일생일대의 영적 절정이었습니다(한 번 분향한 제사장은 다시 제비를 뽑지 못했습니다):
"마침 사가랴가 그 반열의 차례대로 하나님 앞에서 제사장의 직무를 행할새 제사장의 전례를 따라 제비를 뽑아 주의 성전에 들어가 분향하고(엘라켄 투 뒤미아사이 에이셀돈 에이스 톤 나온 투 퀴리우) 모든 백성은 그 분향하는 시간에 밖에서 기도하더니(판 토 플레토스 헨 투 라우 프로세우코메논 엑소 테 호라 투 뒤미아마토스)" (눅 1:8–10)
ὤφθη δὲ αὐτῷ ἄγγελος Κυρίου(ōphthēdeautōangelosKyriou)
ἑστὼς ἐκ δεξιῶν τοῦ θυσιαστηρίου τοῦ θυμιάματος׃
사가랴가 홀로 향을 피워 올릴 때, 분향단 우편에 주의 사자가 나타났습니다(11절). 분향단의 우편은 성경적으로 '은혜와 응답, 권능의 자리'입니다.
사가랴가 사시나무 떨듯 무서워할 때(12절), 천사의 입술에서 복음의 서곡이 터져 나옵니다:
"천사가 그에게 이르되 사가랴여 무서워하지 말라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메 포부 자카리아 디오티 에이세쿠스데 헤 데에시스 수)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카이 칼레세이스 토 오노마 아우투 요안넨)" (눅 1:13)
(1) 에이세쿠스데 헤 데에시스 수 (εἰσηκούσθη ἡ δέησίς σου)
수동태로, "너의 기도가 하나님의 보좌에 온전히 상달되어 응답되었다!"
사가랴는 젊은 시절 자녀를 위해 기도했을 것입니다. 늙어버린 지금 그는 더 이상 자식을 구하지 않고 '이스라엘의 구원과 위로'를 위해 분향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늙은 제사장의 개인적 슬픔의 기도와, 민족의 구속을 갈망하던 공적 기도를 단 하나의 응답 안에서 동시에 성취하셨습니다.
(2) 요안네스 (Ἰωάννης, יוֹחָנָן — 요하난): 은혜의 이름
히브리어 ‘여호와(요) + 하난(חָנַן, 은혜를 베푸시다)’의 합성어: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다!"
율법의 시대, 심판의 시대가 끝나고, 하나님의 측량할 수 없는 주권적 은혜의 시대가 개막되었음을 아이의 이름 자체로 선언하신 것입니다.
4. 핵심 헬라어 강해: 태중의 나실인 — 메가스 에노피온 투 퀴리우 (눅 1:14–15)
천사는 장차 태어날 요한의 인격과 구속사적 위상을 구체적으로 규정합니다:
"너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것이요 많은 사람도 그의 태어남을 기뻐하리니 이는 그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에스타이 가르 메가스 에노피온 투 퀴리우) 포도주나 독한 술을 마시지 아니하며(오이논 카이 시케라 우 메 피에)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카이 프뉴마토스 하기우 플레스데세타이 에티 에크 코일리아스 메트로스 아우투)" (눅 1:14–15)
ἔσται γὰρ μέγας ἐνώπιον τοῦ Κυρίου(estaigarmegasenōpiontouKyriou)
καὶ πνεύματος ἁγίου πλησθήσεταιἔτι ἐκ κοιλίας μητρὸς αὐτοῦ׃
세례 요한의 3대 나실인적 구별
[ 1. 주 앞에서의 위대함: 메가스 에노피온 투 퀴리우 ] ──> 세상의 권력(헤롯, 가이사)이 아닌 하나님 기준의 위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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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세속적 쾌락의 거절: 오이논 카이 시케라 우 메 피에 ] ──> 포도주와 독주를 금한 구약 민수기 6장의 평생 나실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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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구속사의 유일무이한 특권: 에크 코일리아스 메트로스 ] ──> 어머니의 모태에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입음
(1) 메가스 에노피온 투 퀴리우 (μέγας ἐνώπιον τοῦ Κυρίου)
세상은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나 헤롯 대왕을 '위대한 자(메가스)'라 불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보시기에 참으로 위대한 자는 제국의 칼을 쥔 자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뜻에 전적으로 굴복하여 메시아의 길을 닦는 거룩한 선구자입니다(마 11:11).
(2) 오이논 카이 시케라 (οἶνον καὶ σίκερα): 포도주와 독주를 금함
시케라 (σίκερα, 히브리어 셰카르 שֵׁכָר): 곡물이나 대추야자로 빚은 독한 발효주.
레위기 10장 9절에서 제사장이 회막에 들어갈 때 취하지 않도록 명하셨던 규례이자, 민수기 6장의 삼손과 사무엘처럼 ‘평생 나실인(Nazirite)’으로 하나님께 성별되었음을 뜻합니다.
그는 세상의 알코올이나 인위적인 흥분제로 영혼을 채우지 않고, 오직 하늘의 능력으로만 움직이는 영적 전사였습니다.
(3) 에크 코일리아스 메트로스 (ἐκ κοιλίας μητρὸς αὐτοῦ): 모태로부터 성령 충만
구약시대에 성령은 특정한 인물(왕, 선지자, 사사)에게 일시적으로 임했다가 떠나시곤 했습니다.
그러나 요한은 구약의 인물 중 유일하게 '어머니의 자궁 속에 있을 때부터 성령의 완전한 지배와 충만(플레스데세타이)'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41절에서 마리아가 문안할 때, 복중의 태아 요한이 메시아를 알아보고 성령 안에서 기쁨으로 뛰놀았던 경이로운 사건으로 즉각 입증됩니다.
5. 핵심 헬라어 강해: 엔 프뉴마티 카이 뒤나메이 엘리우 (눅 1:16–17)
천사 가브리엘의 수태고지는 말라기 4장 5–6절의 예언을 직접 인용하며 구속사의 절정으로 치닫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을 주 곧 그들의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하겠음이라 그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먼저 와서(아우토스 프로엘레우세타이 에노피온 아우투 엔 프뉴마티 카이 뒤나메이 엘리우) 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르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준비하리라(헤토이마사이 퀴리오 라온 카테스케우아스메논)" (눅 1:16–17)
ἐν πνεύματι καὶ δυνάμει Ἠλίου(enpneumatikaidynameiĒliou)
“엘리야의영(프뉴마)과권능(뒤나미스)안에서!”
(1) 엘리야의 전형(Archetype)으로서의 요한
예수님은 마태복음 11장 14절과 17장 12절에서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고 확증하셨습니다.
요한은 엘리야의 환생(Reincarnation)이 아닙니다.
아합과 이세벨의 우상숭배에 맞서 갈멜산에서 홀로 바알 선지자 450명과 맞서며 불의 응답을 이끌어냈던 선지자 엘리야처럼,
요한 역시 헤롯 왕권과 타락한 예루살렘 종교 권력에 굴복하지 않고 광야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공의의 불을 토해내는 '영적 권능과 담대함의 계승자'였습니다.
(2) 프로엘레우세타이 에노피온 아우투 (προελεύσεται ἐνώπιον αὐτοῦ)
"그분(메시아)의 얼굴 바로 앞서서 달려갈지라!"
고대 왕이 행차할 때, 왕의 마차보다 앞서 달려가며 울퉁불퉁한 돌을 치우고 길을 닦는 ‘길잡이(Forerunner / 선구자)’의 직무입니다.
이사야 40장 3절의 성취: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6. 사가랴의 불신과 10개월간의 거룩한 침묵 (눅 1:18–25)
그러나 엄청난 천상의 신탁 앞에서, 늙은 제사장 사가랴의 이성은 걸려 넘어졌습니다:
"사가랴가 천사에게 이르되 내가 이것을 어떻게 알리요(카타 티 그노소마이 투토) 내가 늙고 아내도 나이가 많으니이다(에고 가르 에이미 프레스뷔테스 카이 헤 귀네 무 프로베베퀴이아 엔 타이스 헤메라이스 아우테스)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하나님 앞에 서 있는 가브리엘이라(에고 에이미 가브리엘 호 파레스테코스 에노피온 투 테우)... 보라 이 일이 되는 날까지 네가 말 못하는 자가 되어 능히 말을 못하리니(에세 시오폰 카이 메 뒤나메노스 랄레사이) 이는 네가 내 말을 믿지 아니함이거니와(안트 혼 우크 에피스테우사스 토이스 로고이스 무) 때가 이르면 내 말이 이루어지리라 하더라" (눅 1:18–20)
사가랴의 불신앙과 아브라함의 믿음의 대조
| 구분 |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창 15–17장, 롬 4장) | 제사장 사가랴 (눅 1장) |
| 상황 | 아내 사라의 경수가 끊어지고 100세가 됨 | 자신도 늙고 아내 엘리사벳도 노령임 |
| 질문 | "주 여호와여 내가 이 땅을 소유로 받을 것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언약 표징 구함) | "내가 이것을 어떻게 알리요(카타 티 그노소마이)" (회의적 증거 요구) |
| 반응의 본질 |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음 (롬 4:18) | 자신의 쇠약한 육체를 하나님의 전능하심보다 앞세움 |
| 결과 | 의로 여김을 받고 언약의 조상이 됨 | 아이가 태어날 때까지 벙어리(시오폰)가 되는 징계 |
가브리엘 (גַּבְרִיאֵל, 가브리-엘): "하나님은 나의 영웅/능력이시다!"
천사는 자신의 이름을 밝히며 사가랴의 불신을 꾸짖습니다:
"네 육신이 늙었다고 하나님의 말씀이 불가능하겠느냐? 나는 하나님의 어전에서 수종 드는 가브리엘이다!"
말 못 함의 이중적 구속사 신학:
개인적 징계와 보호: 불신의 말을 더 이상 쏟아내지 못하도록 혀를 묶어두시는 하나님의 주권적 개입.
구약 제사 직무의 종결 상징:
성소 밖으로 나온 사가랴는 백성들을 향해 민수기 6장 24–26절의 제사장적 축복("여호와는 너에게 복을 주시고...")을 낭독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입이 굳어 손짓만 할 뿐 축복을 선포하지 못했습니다(21–22절).
이것은 이제 짐승의 피를 드리던 구약 아론 반열의 제사장직이 입을 다물고 종식될 때가 왔음을 알리는 시각적 묵시였습니다!
7. 구속사적 절정: 구약의 문을 닫고 참 빛을 증언한 등불
존 칼빈과 요한 크리소스토무스, 찰스 스펄전과 마틴 로이드 존스는 세례 요한의 출생을, 구약 1,500년 율법과 선지자의 모든 등불을 한곳에 모아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비춘 뒤 스스로 꺼져 들어간 거룩한 횃불의 서막으로 해설합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5장 35절에서 요한을 가리켜 명확히 정의하셨습니다:
"요한은 켜서 비추이는 등불이라(에케이노스 헨 호 뤼크노스 호 카이오메노스 카이 파이논) 너희가 한때 그 빛에 즐거이 있기를 원하였거니와!"
요한복음 1장 6–9절의 사도 요한의 해설을 보십시오: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 그가 증언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언하고 모든 사람이 자기로 말미암아 믿게 하려 함이라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언하러 온 자라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세례 요한과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적 대비
| 구분 | 선구자 세례 요한 | 성취자 예수 그리스도 |
| 출생의 기적 | 불임의 늙은 부모에게서 난 기적적 인간 | 남자를 알지 못하는 동정녀에게서 성령으로 나신 참 하나님이자 참 인간 |
| 존재의 본질 | 켜서 비추이다 사라질 등불 (뤼크노스) | 어둠을 영원히 물리치시는 참 빛 (포스 알레디논) |
| 사역의 성격 | 죄를 깨닫게 하는 물세례 (물리적 회개) | 죄를 사하고 거듭나게 하는 성령과 불의 세례 |
| 직분의 한계 | 율법과 선지자의 마지막 종 | 율법을 완성하신 하나님의 독생자 |
| 자기 인식 | "나는 그의 신발 끈을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
세례 요한은 모태로부터 성령 충만을 받아 엘리야의 능력으로 왔으나,
그는 결코 목적지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오직 참 빛으로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길 닦는 자’였습니다.
사가랴의 불임의 태가 열려 요한이 태어난 사건은,
단순히 한 가정의 경사가 아니라,
죄와 율법 아래 갇혀 영적으로 영원히 불임 상태였던 온 인류에게
메시아의 생명이 잉태되고 침투해 들어오는 우주적 구속사의 신호탄이었습니다!
8. 목회적 적용과 묵상(1) 인생의 깊은 불임(절망)의 순간에도 제사장의 직무(사명)를 포기하지 말라
사가랴와 엘리사벳을 보십시오.
그들은 나이가 많도록 자식이 없었고, 사람들의 수치와 손가락질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신앙을 버리거나 하나님을 원망하며 제사장직을 때려치우지 않았습니다.
누가복음 1장 6절의 증언대로, 그들은 "하나님 앞에 의인이니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순번을 따라 성소에 들어가 묵묵히 향을 피웠습니다.
기도의 응답이 수십 년간 지체되고 있습니까?
삶의 열매가 맺히지 않아 영적인 메마름과 불임의 고통 속에 신음하고 계십니까?
사명의 자리를 이탈하지 마십시오!
사람이 알아주지 않아도 기도의 분향단을 지키십시오.
하나님은 당신의 눈물의 기도를 단 하나도 땅에 떨어뜨리지 않으시고,
가장 완벽한 하나님의 카이로스(때)에 지성소 우편의 문을 여실 것입니다.
(2) 세상의 포도주와 독주를 거절하고 '성령 충만의 나실인'으로 구별되라
세례 요한의 위대함은 세상의 스펙이나 화려한 궁궐의 비단옷에 있지 않았습니다.
그는 주 앞에서 큰 자(메가스 에노피온 투 퀴리우)가 되기 위하여,
세상의 쾌락과 도취인 ‘포도주와 독주(오이논 카이 시케라)’를 과감하게 거절했습니다.
오늘 당신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알코올, 음란물, 물질만능주의, 세상의 인정이라는 세속의 독주에 취해 영적 분별력을 상실하고 비틀거리고 있지 않습니까?
거룩한 나실인의 영성을 회복하십시오!
세상이 주는 인위적인 위로를 끊어내고,
날마다 무릎을 꿇어 모태로부터 부어주시는 성령의 충만함(프뉴마토스 하기우 플레스데세타이)을 갈망하십시오.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순결한 자만이,
타락한 시대를 향해 엘리야의 능력으로 회개의 메아리를 칠 수 있습니다.
(3) 의심의 입을 닫고 '거룩한 침묵의 시간'을 통해 믿음의 용량을 넓히라
하나님의 거대한 약속 앞에서 사가랴처럼 인간의 좁은 상식과 경험의 잣대를 들이밀며
"내가 늙었거늘 이것을 어떻게 알리요" 불신의 말을 내뱉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때로 우리의 불신의 입술을 닫아버리시고 10개월간의 침묵(시오폰)의 광야로 이끄십니다.
침묵은 저주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운 훈련소입니다.
불평과 의심의 말을 멈추십시오.
사람을 향해 떠들던 입을 다물고, 조용히 하나님의 일하심을 바라보는 침묵의 골방으로 들어가십시오.
침묵 속에서 자아가 깨어지고 불신이 녹아내릴 때,
마침내 아이가 태어나는 날 사가랴의 혀가 풀려
하나님을 찬양하는 위대한 메시아 예언의 노래(눅 1:67–79, 베네딕투스)를 터뜨렸던 것처럼,
당신의 입술에서도 찬란한 승리의 찬송이 울려 퍼지게 될 것입니다.
9. 결론: 요단강 광야의 포효를 향하여
누가복음 1장의 막이 내리며,
400년간 침묵하던 하늘의 문이 열렸고,
사가랴의 늙은 가정에 약속의 아이 ‘요한’이 태어났습니다.
제사장의 혈통으로 태어났기에,
요한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화려한 세마포 제사장 옷을 입고
안락한 기득권을 누리며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성전의 안락함을 박차고 나갔습니다.
누가복음 1장 80절의 서슬 퍼런 마침표:
"아이가 자라며 심령이 강하여지며 이스라엘에게 나타나는 날까지 빈 들(광야, 엔 타이스 에레모이스)에 있으니라!"
그는 메마른 유대 광야로 들어갔습니다.
약대 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며,
메뚜기와 들꿀(석청)을 씹어 삼키며
30년 동안 칼을 벼리듯 영혼을 단련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디베료 가이사 통치 제15년,
로마 제국과 예루살렘 성전의 모든 부패를 향해
요단강 흙탕물 가에서 터져 나오는 광야의 사자후: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제2강: 쿰란 광야와 요단강 — 제국과 성전 부패를 거스른 ‘소리’의 태동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