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16-29
갈멜산에서의 엘리야와 바알 선지자들의 대결 / 송호영
* 본문요약
아합이 엘리야가 이스라엘을 괴롭게 한 자라고 말하자, 엘리야는 자기가 아니라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 신을 섬긴 아합과 그의 아버지가 이스라엘을 괴롭게 한 자라고 되받아치고는, 바알의 선지자들을 갈멜산으로 불러 불로 응답하는 신이 하나님이 되게 하자는 제안을 합니다. 아합이 이 제안을 받아들여 갈멜산에서 엘리야와 바알 선지자들과의 대결이 벌어집니다. 바알 선지자는 자기 몸까지 상하게 하면서 종일 뛰놀며 바알을 부르지만 아무런 응답이 없습니다.
찬 양 : 340장 (새 542) 구주 예수 의지함이
456장 (새 430) 주와 같이 길 가는 것
* 본문해설
1. 엘리야가 아합에게 갈멜산에서의 대결을 요청하다(16~20절)
16) 오바댜가 아합에게로 가서 엘리야가 아합을 만나기를 원한다는 소식을 알리자
아합이 엘리야를 만나러 왔습니다.
17) 아합이 엘리야를 보자 말했습니다.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여, 너냐?”
18) 엘리야가 대답했습니다.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는 내가 아니라 당신과 당신의 아버지의 집이오.
19) 그러니 이제 사람을 보내어 이스라엘 백성들을 갈멜 산으로 오게 하시오. 그리고 이세벨
에게 녹을 받아먹는 바알 선지자 450명과 아세라 선지자 400명도 함께 불러 주시오.”
20) 그리하여 아합이 모든 이스라엘 자손을 부르고,
그 선지자들을 갈멜산으로 모이도록 했습니다.
-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여(17절) :
‘괴롭게 하다’로 번역된 ‘아카르’의 본래의 뜻은 ‘물을 휘젓다’이나,
‘괴롭히다, 교란하다, 혼란스럽게 하다’라는 뜻으로 자주 사용됩니다.
2. 엘리야가 대결 방식을 제시하다(21~25절)
21) 엘리야가 그 모든 백성들 앞에 나가 말했습니다.
“너희가 어느 때까지 양쪽에 다리를 걸치고 그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라.”
그러나 백성들은 한 마디도 그에게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22) 그러자 엘리야가 백성들에게 말했습니다.
“여호와의 선지자는 나만 홀로 남았으나 바알에 선지자는 450명이나 된다.
23) 그러니 이제 우리에게 소 두 마리를 가져오라. 바알의 선지자들이 소 한 마리를 택하여
각을 떠나 나뭇가지 위에 올려놓되, 불은 붙이지 말라. 나도 나머지 한 마리의 소를 잡아서 나뭇단 위에 올려놓고 불을 붙이지 않을 것이다.
24) 그리고 나서 너희는 너희 신들의 이름을 부르라. 나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를 것이니,
이에 불로 응답하는 신 그가 하나님이시다.”그러자 온 백성이 그 말이 옳다고 대답했습니다.
25) 엘리야가 바알의 선지자들에게 말했습니다. “너희의 수가 많으니 먼저 소 한 마리를
골라 준비하라. 너희 신들의 이름을 부르되 불은 붙이지 말라.”
3. 바알 선지자들을 조롱하는 엘리야(26~29절)
26) 그리하여 그들은 소 한 마리를 가져다가 잡고는, 아침부터 한낮이 될 때까지
“바알이여 우리에게 응답하소서”하고 부르짖었습니다. 그러나 응답은커녕, 아무런 소리도 없었습니다. 바알의 선지자들은 자기들이 쌓은 제단 주위를 돌면서 뛰놀았습니다.
27) 정오가 되자 엘리야가 바알 선지자들을 조롱하면서 말했습니다. “더 큰 소리로 부르라.
그가 신이니 묵상을 하고 있는지(깊은 생각에 빠졌는지), 그가 잠깐 나갔는지, 혹은 그가 여행 중인지, 다른 일에 바쁘든지(용변을 보러 갔는지), 혹은 그가 잠이 들어서 깨워야 할 것인지 모르니 더욱 큰 소리로 부르라.”
28) 그러자 그들은 더욱 큰 소리를 질러대며 자기들의 관습대로 피가 흘러나오기까지
칼과 탕으로 자기 몸을 찔러 상하게 하였습니다.
29) 이같이 하여 정오가 지났고 그들이 미친 듯이 날뛰며(진언을 하며) 저녁 소제 드릴 때
까지 이르렀으나, 아무 소리도 없고 응답하는 자나 돌아보는 자도(아무런 기척도) 없었습니다.
- 진언을 하며(29절) :
개역성경에서 ‘진언을 하다’로 번역된‘나바’라는 말은
비이성적이거나 미친 모습으로 날뛰면서 주문을 외우
- 저녁 소제 드릴 때까지(29절) :
보통 오후 3시에 저녁 소제를 드립니다.
그러므로 바알 선지자들은 5~6시간 동안 계속 춤추며 부르짖은 것입니다.
* 묵상 point
1.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여 너냐(17~18절)?
‘괴롭게 하다’로 번역된 ‘아카르’의 본래의 뜻은 ‘물을 휘젓다’이나, ‘괴롭히다, 교란하다, 혼란스럽게 하다’라는 뜻으로 자주 사용됩니다. 이스라엘을 괴롭게 한 자라는 말은 여호수아가 여리고 성을 정복할 때 시날산이 아름다운 외투와 금덩이 은덩이를 숨긴 아간에게서 처음 나옵니다. 아간의 범죄로 이스라엘이 아이성을 공격할 때 패배하자, 여호수아는 아간을 향하여 “네가 어찌하여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였느냐”고 책망합니다(수 7:25).
아간이 범죄한 것이 이스라엘 백성을 괴롭게 한 것처럼 아합과 엘리야는 서로 상대를 향하여 그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이 괴롭게 되었다고 공격합니다. 아합은 지난 3년 반 동안 이스라엘 온 땅에 비가 내리지 않은 것이 엘리야 탓이라며 공격합니다. 그러자 엘리야는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것은 자신이 아니라 아합과 그의 아버지의 집이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바알신을 섬겼기 때문이라고 되받아서 공격합니다.
● 묵상 : 하나님의 능력의 사자로 나온 선지자 엘리야
17장에서 하나님께로부터 시험과 훈련을 받은 엘리야는 이제 아합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이제는 자기가 아합에게 죽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아합이 자기 말을 듣지 않으면 죽게 된다는 분명한 믿음을 가지고 그 앞에 나갑니다. 그리고는 온 땅이 두려워떠는 그 독재자 아합을 향하여 “이스라엘을 괴롭게 한 자는 내가 아니라 너와 네 아버지의 집이라”하고 호령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시험과 훈련을 잘 이기는 자는 엘리야처럼 능력의 사람이 됩니다.
2. 갈멜산에서의 대결을 제의하는 엘리야
아합이 엘리야를 붙잡으라는 호령을 하지 전에 엘리야는 곧바로 아합에게 바알 선지자와 아세라 선지자들을 모두 불러 갈멜산에서 자기와 대결을 하자고 제안합니다. 그래서 각자 소를 각을 떠서 사람이 불을 붙이지 않고 온전히 기도를 통해서만 불을 붙이게 하여, 불을 붙이는 쪽이 진짜 하나님임을 증거하자고 제안합니다. 바알신이 참 신이라고 믿고 있던 아합은 엘리야는 한 사람인데 자기는 무려 850명이나 되는 선지자가 있으니 자기가 이길 것이라 확신하고 엘리야의 제안을 받아들입니다.
3. 바알 선지자들의 헛된 외침
엘리야는 바알 선지자들의 수가 많으니 그들이 먼저 그들의 신에게 기도하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소를 각을 뜬 후 나뭇단 위에 놓고 그 단 주위를 돌면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침 9시쯤 시작하여 한낮이 되도록 제단 주위를 돌면서 춤까지 추며 그들의 신의 이름을 불렀지만 아무런 응답도 대답도 기척도 없었습니다.
그러자 엘리야가 그들을 조롱하며 말합니다. “더 큰 소리로 부르라. 그가 신이니 묵상을 하고 있는지(깊은 생각에 빠졌는지), 그가 잠깐 나갔는지, 혹은 그가 여행 중인지, 다른 일에 바쁘든지(용변을 보러 갔는지), 혹은 그가 잠이 들어서 깨워야 할 것인지 모르니 더욱 큰 소리로 부르라”(27절).
신이 깊은 생각에 빠져 자기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듣지 못하고 있다면 참으로 기가 막힐 일입니다. 심지어 엘리야는 바알신이 용변을 보러 가느라 이 기도를 듣지 못하고 있거나 잠이 들었을지 모르니 더 큰 소리로 부르짖으라고 조롱합니다. 이에 바알 선지자들이 칼과 창으로 자기 몸까지 상하게 하면서 부르짖었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무려 6시간 동안이나 계속된 바알 선지자 450명의 부르짖음과 기도는 이렇게 맥없이 끝나고 말았습니다.
● 묵상 : 숫자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를 믿는 자는 이렇게 담대할 수 있습니다. 상대가 450명이 아니라 4만 5천 명이라도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신데 무엇이 걱정이겠습니까? 그것을 확실히 믿고 있는 엘리야는 담대하게 그들과 대결할 것을 제의했고, 그들에게 먼저 하라고 말하고는 6시간 내내 그들을 조롱하며 말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세상의 힘과 능력에 굴복합니다. 숫자에 눌리고, 세상의 돈과 권세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이렇게 약한 믿음으로는 마지막 때를 이길 수 없습니다. 엘리야와 같은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마지막 때의 혼란을 이길 수 있습니다. 숫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기억하고 오직 내 안에 주님의 성령을 모시는 신실한 성도가 되기에 힘쓰십시오.
4.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엘리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어느 때까지 하나님과 바알 사이에서 머뭇머뭇하려느냐고 책망합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는 아직도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이 꽤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런데 아합과 이세벨이 두려워 하나님을 섬기지만 또 아합 앞에서는 바알도 섬기고 있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두 가지 신을 함께 섬기는 혼합주의를 한 것입니다. 하나님도 섬기도 다른 신도 섬기는 혼합주의는 주님을 믿지 않는 자와 같은 취급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엘리야는 둘 사이에서 머뭇거리지 말고 오직 하나님을 섬기는 자가 되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 묵상 :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에서는 주님을 잘 섬기는 것처럼 하고 세상에서는 세상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적당히 살아가는 것은 둘 사이에서 머뭇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은 것입니다. 교회에서뿐 아니라 세상에서도 신실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차라리 잘못했다면 하나님 앞에 나와서 솔직히 고백하고 회개하는 자가 되어야지, 적당히 이것도 저것도 아닌 삶을 자기 정당화하면서 살아가는 것을 결코 주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 기도제목
1. 엘리야처럼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를 확실히 믿는 성도가 되게 하옵소서.
2. 숫자나 그 어떤 권세에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게 하옵소서.
출처: 가애교회 글쓴이: 송호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