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말이 전도되다”라는 말이 있지요.
한자로 쓰자면 本末顚倒, 몸통과 꼬리가 뒤집어졌다는 이야기이니, 사소한 것이
중요한 것을 제치고, 본질행세를 하는 상황을 일컫는 말입니다.
차분히 생각해 보면 금년의 개천절, 추석, 한글날이 모두 그런 상황 아닐까요?
10월3일 개천절은, 한반도에 자리잡은 한민족의 동질성을 확인하고, 민족국가의
자존심을 지켜나가자는 국경일이지만, 그냥 노는 날로 바뀐 지 오래입니다.
세계 어느 민족의 신화에도 그 유래가 없는 홍익인간,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는
나라를, 건국이념으로 내세운 자랑스러운 단군신화가 거의 잊혀져 가고 있지요.
10월9일 한글날은, 세종대왕이라는 성군께서, 오로지 백성만을 위해 발명한 글,
훈민정음 “백성을 위한 바른 소리”를 기리는 날입니다.
붓글씨 시대부터 컴퓨터, 스마트폰 시대에 이르기까지 세계의 모든 글자 중에서
가장 편리한 우리 한글의 우수성을, 정작 우리는 개무시하고 지내지요.
그래서 그런지 개천절도 한글날도, 그냥 하루 노는 날쯤으로 여긴지 오래입니다.
그렇다면 자그마치 열흘이나 되는, 긴긴 연휴의 명분이었던 추석은 또 어떤가요?
본래는 햇곡식으로 음식을 장만하여 지난 한 해의 노고에 감사와 위로를 전하고
여름옷을 겨울 옷으로 갈아입는 추석빔이 가장 중요한 행사였지요.
물론 조상에게 감사하는 차례와 성묘도 중요한 행사 중의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농사를 짓지 않으니 위로할 일이 없어지고, 음식이 지천이어서,
명절음식이 반갑지 않고, 옷 또한 넘쳐나니 추석 빔이 필요 없지요.
이제 남은 건, 명절이랍시고 고향의 본가에 모여, 함께 지낼 제사뿐입니다.
그런데 며느리들이, 시골본가의 부엌에서 전 부치는 일을 진저리 치며 싫어하니
21세기다운 산뜻한 해결책으로, 제사대행업이 나왔더군요.
그렇게 제사마저 떠 넘기고 나면 이제는, 명절에 굳이 시가에 가는 일로 싸우지
않아도 되고, 남은 제사음식 버리느라 스트레스 받을 일도 없어지지요.
참, 세상 많이 좋아졌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지요.
제사도 남에게 대행시키고 추석 빔도 장만하지 않고 명절음식도 만들지 않는데,
추석 핑계 대고 열흘이나 노는 건 이상하지 않나요?
뭘 기리고, 누구를 위로하며, 무슨 일을 축하하려고 추석명절이 있어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