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께서는 높으신 분이시지만,
낮은 자를 굽어보시며,
멀리서도 오만한 자를 다 알아보십니다.
[시편 138:6]
시편 138편은 다윗의 감사찬양이다.
그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이유는,
부르짖었을 때에 응답해 주셨고, 힘을 주셨기 때문이다(3).
또한,
낮은 자를 굽어보시고, 교만한 자를 지켜 보시기 때문(6)이다.
다윗은 교만한 자들과 원수들의 손에서
자신을 구해달라고 간구하면서 보복해달라고 기도한다.
이 기도는 지혜롭다.
왜냐하면, 그래야 폭력의 악순환이 되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낮고 천한 사람만 눈여겨 보시는 것이 아니라,
'오만한 사람, 교만한 사람, 건방진 사람'도 지켜보신다.
낮고 천한 사람은 돌보시기 위해서 지켜보시지만,
교만한 이들은 보복하시기 위해서 지켜보시는 것이다.
스페인 선교사 판토하의 <칠극>이라는 책이 있다.
인간의 일곱가지 욕망으로,
교만, 질투, 탐욕, 분노, 식탐, 음란, 나태 등을 열거하고 그 욕망을 극복하는 방법을 제시한 책이다.
'칠극'중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교만'이다.
'교만은 마음으로 들어오기만 하면 마침내 마음의 눈이 어두워지고,
정의롭고 공평한 의리는 갑자기 다 없어지고 만다(p.33).'
이 교만은 '겸손'을 훈련함으로 극복할 수 있다.
교만하면 마음의 눈이 어두워진다는 통찰은 틀림이 없다.
어느 것이 먼저인지는 알 수 없지만,
둘은 서로를 자라게 하여 옳고그름을 분별할 수 없게 하고,
편향된 시선으로
오로지 자신에게 이익을 준다고 여겨지는 것만을 선이라고 생각한다.
자기만 옳다고 여기는 것, 이것이 교만이다.
교만한 자들은 자신들의 모든 생각을 살피시는 하나님을 무시한다.
아니, 그 하나님 조차도 수단으로 삼아 우상으로 만들어버린다.
엄밀하게는 그들이 믿는 하나님은 하나님이 아니라 우상이다.
우상을 섬기면서 하나님이라고 착각하는 이유는 마음의 눈이 먼 까닭이다.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둠이 얼마나 더하겠느냐(마 67:23)"
하나님께서 지켜보신다.이 생각에서만 떠나지 않아도 우리의 삶은 많이 달라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