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고네'와 작가의 눈
백남경 인제대 미래교육원 글쓰기교실 강사
고대 그리스의 대표적 시인 소포클레스의 비극 '안티고네'는 법철학적으로 최초의 자연법과 실정법의 대립을 다룬 문학작품이라 할 수 있다. 무엇인가에 대해 반대, 저항하다라는 의미의 '안티(Anti)'는 바로 이 작품에서 유래한 말이다. 작가는 수용하되 저항하는 사람이다. 자신을 수용하되 저항하고 사회를 수용하되 저항한다. 그 뿌리는 자연법에 근거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면 '안티고네'의 줄거리를 살펴보자. 테베의 왕 오이디푸스가 부친 살해 및 모친과의 근친상간이라는 자신의 비밀을 깨닫고 스스로 눈을 찔러 맹인 방랑자가 된다. 그 후 그의 두 아들 폴리네이케스와 에테오클레스는 왕위를 둘러싸고 전쟁을 벌이다 둘 다 사망하고 만다. 크레온이 테베의 새로운 왕이 된다. 그는 두 왕자의 외삼촌이다. 크레온은 에테오클레스만 장례를 치러주고, 타국의 군대를 이끌고 조국을 공격한 폴리네이케스의 시신은 매장하지 못하게 칙령으로 명령했다.
그러나 두 왕자의 여동생인 안티고네는 그런 명령을 어기고 오빠의 시체를 매장했다. 안티고네는 "이번 칙령은 제우스신이 내린 것이 아닙니다. 정의의 여신 디케도 인간에게 이런 법을 내리지는 않습니다. 저는 한 인간인 당신이 내린 칙령이 변함없이 전해져온 하늘의 법보다 우선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하고 주장했다. 이에 크레온은 그녀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석굴에 가두어 버렸다. "천륜을 어기면 아들 하이몬이 죽을 것"이라는 예언을 들은 그는 겁을 먹고 그녀를 사면하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그녀가 이미 목매달아 자결한 후였다. 그녀를 연모하던 아들 하이몬은 크레온을 살해하려다 실패하자 역시 자결한다. 이 사실을 안 크레온의 아내 에우리디케도 자살하고, 혼자 남은 크레온은 이 모든 비극에 대한 책임을 지고 빨리 죽기만을 기다리는 신세가 된다.
이 작품에서 안티고네는 양심(자연법)과 국왕의 명령(칙령)의 대립 속에서 전자를 선택하여 오빠의 시체를 매장했다. 국왕 크레온은 국법을 앞세웠다. 그는 "불복종보다 심한 잘못은 없다. 불복종은 도시를 폐허로 만들며 우리의 가정을 무너뜨린다. 사람이 인간답게 산다면, 그 이유는 법이 그를 구원하기 때문이다"라며 "그 명령이 옳거나 심지어 옳지 않을 때도 복종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그가 얼마나 완고한 법실증주의자인지를 알게 하는 대목이다. 이에 저항한 안티고네는 사람의 양심, 즉 자연법이 실정법을 앞섬을 보여준다. BC 5세기에 이미 실정법(law as it is)과 자연법(law as it ought to be)의 대립을 통찰한 소포클레스의 천재성이 놀랍다. 형식적 합법성을 지닌 '칙령'과 실질적 정당성을 지닌 '하늘의 법'의 정면 대결을 보여준 작품이다.
조선시대 소년 왕 단종도 수양대군에게 죽임을 당해 강에 버려졌다. 시신이 관풍헌 앞을 흐르는 동강에 버려져 둥둥 떠 있었으나 한동안 아무도 거두지 않았다. 권력의 서슬 때문이었다. 그렇게 버려진 시신을 아무도 수습하지 않자 영월 호장 엄흥도가 죽음을 무릅쓰고 인근 야산에 암장했다. 오늘날 동을지산 언덕 기슭이다. 얼마 전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2000만명에 가까운 관객 수를 기록한 것도 왕의 명령이 아닌 자연법을 쫓은 엄흥도의 용기에 주목하며 감동했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이다. 투표지 폐기, 개표지 누락, 투표율 조작 등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온갖 의혹을 받는 선거관리위원회를 규탄하는 집회가 계속되고 있는 것도, 자연법에 근거한 의식 있는 국민의 저항으로 이해될 수 있다. 가마솥더위 속에서도 학생, 직장인, 아기를 업은 어머니, 연로한 노인 등이 집회에 참여하는 것은, 그들이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서라고 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양심이나 자연법사상이 아니면 설명하기 어려운 퍼포먼스다.
기자나 작가는 무엇인가를 쓰는 사람이다. 기자는 사회에서 일어나는 정보나 뉴스를 취재하여 보도한다. 작가는 개인적인 문제 이외도 시대의 흐름을 좇아 글을 쓴다. 그들이 두는 시선은 사실, 진실, 진리, 조리, 휴먼(human) 같은 데 있다. 나의 진실이 빼앗길 위험이 있다면 그것을 지켜내야 한다. 동시에 이웃의 진실이 위협받는다면 같은 목소리를 내주어야 한다. 양심과 자연법은 글이 나아가야 할 등대이자 나침반이다.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백남경 선생님 글 잘 읽었습니다.
고대 그리스 신화는 현대의 우리에게 잘 이해되지 않는 서사도 있지만, 배울 게 많습니다.
"작가는 수용하되 저항하는 사람이다. 자신을 수용하되 저항하고 사회를 수용하되 저항한다. 그 뿌리는 자연법에 근거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라는 부분, 참 가슴에 와 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