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세 원남참전 용사의 2024년 보훈의 달을 맞는 유감☜
호국에 달을 맞이하여 대한민국의 월남전 참전용사인 필자가 느끼는 이 나라의 보훈사상과 보훈정책에
대한 오해와 허점을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보훈의 날에 대통령과 삼부요인이 현충원에 모여 영령 앞에 꽃다발을 바치며 매해 글자 하나 안 틀리는 상투적인 추모사로써 국가의 수호와 민주를 위하여 목숨을 바친 호국영령들의 명복을 빌고 살아있는 유공자의 예우에 삼가 국가와 정부가 최선을 다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이처럼 앵무새같이 되뇌는 보훈에 대한 인식이 추모사로 그쳐서는 보훈이 가지는 의미란 상례적 의례에 그칠 뿐이다.
현재의 대한민국 보훈정책이 여하하든, 이 나라에 75년을 살아온 필자가 겪고 느끼는 대한민국 보훈의 서막은 ‘일송정 푸른 솔’을 누비던 독립투쟁으로 말미암은 호국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예우가 보훈의 시효일 것이다. 하나 광복 이후 숨 쉴 겨를이 없이 벌어진 민족상잔의 비극에서 전몰된 이와 부상병에 대한 대우가 뒤를 이어야만 했다. 그러나 전후의 대한민국 사정은 죽고 다친 자에 대한 대우보다는 산입에 거미줄을 치지 않기 위하여 ‘보릿고개’를 초근목피(草根木皮)로 넘겨야 했고 영화 ‘국제시장’으로 설명되는 생활의 일선에서 지친 삶을 살아야 했으니, 당시 살아온 이들에게는 ‘흑역사’만으로 치부하기는 억울하도록 부끄럼 없이 열심히 살아온 삶이었으나 요즘 젊은이들에게는 듣기 싫고 혐오스러운 역사일 뿐이다.
전시를 거치며 세워진 자유당 정권은 12년간 이승만을 포스트에 세우고 집권이란 마약에 중독되어 3.15부정 선거로 멸망의 길을 걷더니 결국 4·19로 이어지는 의거로 대한민국 최초의 독재에 대한 민주 항쟁에 불을 불을 붙였다. 이것이 진정 민주 항쟁의 근본으로서 이후 이 나라에는 정권의 성격이 여하하든 이철럼 4·19로 이루어진 정통의 민주주의를 근본적으로 뒤집지는 못한다. 따라서 5·16정변으로 집권한 박정희대통령이 이끈 한강의 기적에 필자가 참여했듯이 파월로 시작된 국부(國富)가 GNP75불의 거지나라를 오늘날 MZ 세대가 잊고 싶은 불유쾌한 과거로 만든 그 눈부신 박정희대통령의 17년 집권을 두고 당시의 정적말고는 거의 민주를 잃은 독재정권이라 일컫는 이가 없이 나름의 민주주의를 구가하던 시대다.
그러한 박정희대통령이 갑작스레 비명에 갔고 이어 전두환 신군부세력의 집권 야욕이 빚어낸 5.18은 ‘희생의 산물’일 망정 4·19민주정신을 뒷전으로 미루는 ‘국가의 민주화’와는 상대 거리조차 민망한 국지적 사태다. 지금 광주사태가 주는 달콤한 혜택 속에 편입한 이들은 이렇게 말하면 쇠몽둥이라도 들고 달려들 기세지만 필자는 죽으면 죽었지 이 같은 주장을 굽힐 수가 없다. 그 까닭은 광주사태 이전에 이미 이 나라는 4·19로 다져진 민주주의를 향유하고 있었으니, 광주라는 대한민국(약 10만㎢)의 200분의 1인 500㎢ 내에서 벌어진 며칠간의 소동으로 말미암아 나머지 대한민국의 대다수 국민에게 준 민주혜택이 있다면 대답하기 바란다. 막말로 광주일대가 독재화가 된들 대한민국의 건강한 민주주의의 근본을 흔들 수가 없으니 하는 말이다.
결국 김대중이라는 희대의 이단아가 광주사태에 ‘民主’라는 옷을 입히더니 호남은 갑자기 대한민국이란 국가와는 동떨어진 동네가 되고 만다. 호남인들은 “우리가 남이가?” 하는 줏대를 잃은 사고로 대동단결을 하여 호남이 지배하지 않는 나라는 대한민국이 아니다란 듯이 극성스럽고 표독스레 힘을 과시하더니 이번 선거 역시 호남의 싹쓸이가 절름발이 국회를 만들고 말았다. 그러나 국회를 그렇게 만들어 놓고 보니 종국(終局)에는 이재명의 사당(私黨) 만들기에 호남이 떨쳐나서서 이 나라가 얻는 게 무엇인지도 묻고 싶다.
결국 이렇게 만들어진 집단의식은 살만하게 된 이 나라국민의 간을 키우더니 엄밀하게 말하여 수학여행을 가다 해상교통사고를 당한 세월호 희생자들을 국가유공자로 삼자는 광인이 아니고는 주장 못 할 극단의 이기주의를 탄생시키고야 만다. 말하자면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된 나라가 호랑이보다 무섭다던 쇠갈고리 박힌 외팔을 휘두르며 기차간을 누비던 상이군인(전상자)들에게 옳게 처우를 하는가 싶게 국가유공자의 예우가 자리잡으려는 찰라에 5·18이란 보훈의 사생아가 탄생한 것이다.
더구나 오비이락(烏飛落)으로 듣도 보도 못했던 켈트라는 종족이 섬기던 핼러윈을 끌어들여 북새통을 떨더니 기여코 아름다운 젊은이들이 떼로 희생당하는 불운을 겪고야 만다. 그러나 이 나라 국민의 잘못된 희생정신은 이것이 개인을 위한 희생인지 사적 사고인지를 분간 못하고 전혀 국가 안전망의 구멍으로만 사고의 원인을 돌리고 마치 나라를 위하여 집단희생을 당한 양 그 위세가 하늘을 찌른다.
결국 사안의 적부야 여하하든 민주주의의 꽃이자 최후 보루인 표로 정치권을 심판하겠다는 피해당사자들의 당찮은 위협은 민주를 가장한 위선과 독선으로써 해상사고든 안전사고든 모두를 국가의 책임으로만 떠미는 염치없는 빌미와 동기로 삼자는 것이다. 이것이 모두 5·18이란 사태가 몰고 온 폐단으로 유래된 왜곡된 유공 의식이요 인식이다. 이에 항변한다면 과연 5·18이 4·19에 견주어 민주 항쟁의 가치란 것이 젊은이의 인생 출발점을 5%라는 절대 유리한 지점으로 앞당겨 놓고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경쟁할 만치 생색낼 수 있는 만큼의 근거를 국민 앞에 제시해야 한다.
또한 6·25참전자는 이만 못하고 월남전참전자는 그만 못한 충분한 이유를 제시치 못하는 한 대한민국의 왜곡되고 비뚤어지고 공평이라고 찾기 힘든 예우에 대한 논란은 대통령이 현충원에서 백번을 맹서하고 천번을 약속해도 예우에 대한 구멍을 메꾸기란 힘이 든다. 이처럼 이나라의 유공의식은 최근 몇십년사이 발생한 몇 건의 사태와 사고를 겪으며 정권이 걸린 사활의 싸움 끝에 ‘국가유공’이 길을 잃고 좌초하게 된다.
대한민국의 그 누구가 이순신을 유관순을 5·18처럼 문제 삼는가 말이다. 5·18이 저처럼 확실하고 분명한 명분에 근거한다면 5·18을 법과 강제로 누르지 않더라도 누가 감히 이순신과 유관순을 폄훼 못하듯 5·18의 가치를 낯출 수 있겠는가 말이다. 이처럼 5·18을 4·19와 6·25와 월남전참전자 윗길로 대우 하는 까닭을 5·18의 당사자는 물론이거니와 이들의 유공을 받아들이는 정부가 밝히라는 말이다. 이대목에서 세상 요즘처럼 맑고도 투명한 세상에 5·18유공자의 신원을 밝히라는 조야의 요구를 묵살하는 원인이 나변에 있는가를 묻지 않을 수가 없다.
모두 5·18의 떳떳지 못하고 유쾌하지 못한 내면이 있어 공개를 안하는게 아니라 못하는 것이 분명하다. 더구나 광주시민이 5·18 당시 국가무기고를 탈취하여 사유야 여하간에 국가의 정규군과 교전을 벌인 일은 분명히 국가에 대한 반역과 이적행위로서 비록 5·18이 되새길 만한 민주적 가치가 있다손 쳐도 이를 퇴색케하는 주요한 요소중의 하나다. 국가의 무기를 빼앗아 제나라 군인과 맞총질을 하다 죽은 사람을 광주묘역에 묻어놓고는 한반도기를 걸고 국가가 곡(哭)을 하는 짓은 누가 뭐래도 irony요 nonsense다.
그렇다고 필자가 5·18을 무조건 문제삼자는 말씀이 아니다.
누가 보고 확인해도 고개가 주억거려지는 유공자 한 사람 한 사람의 공적조서를 만들어 그가 광주사태가 아니라 민주화의 유공자임을 증명한다면 필자가 무슨 수로 이를 거부하겠는가 말이다. 또한 5·18이 민주화라면 필자는 월남전참전용사로서 5·18과 견주어 조금도 손색이 없는 국가유공자다. 그러나 우리가 받은 대우는 예우가 아니니 최근 우리의 대선배인 95세의 6·25참전자는 단 돈 만원이 없어 편의점에서 먹거리를 훔치다 경찰에 끌려 갔다.
끌고간 경찰은 KGB보다 냉혹하고 이런 끄나풀을 거느린 국가는 독제국가다.
이것이 2024년 현충일을 맞는 75세의 월남전참전유공자가 느끼는 유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