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면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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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면사지 |
| 米麵寺址 |
| 사찰 |
| 의상, 동백련사, 천책 |
| 경상북도 문경시 산북면 소야리 산85 |
| 의상, 원효, 최자, 천책 |
의상이 창건하고 고려시대 천책이 주석하며 천태종의 중심 수행처가 된 사찰
경상북도 문경시 산북면 공덕산(功德山)에 있던 사찰의 폐사지이다. 신라 때 의상(義相, 625~702)이 창건하였다. 사불산(四佛山) 백련사(白蓮社), 동백련사라고도 불렸다. 신라 때 의상이 창건하였다고 추정되나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1530)에 따르면 뜰 좌우에 미면정(米麵井), 그리고 의상이 설법하던 설법대(說法臺), 삿갓, 석장(錫杖)이 있었다고 한다. 절의 이름은 의상이 용녀(龍女)의 시중을 받으며 불경을 강의할 때 우물에서 쌀과 밀가루가 나왔다는 데서 유래하였다. 백련사라는 명칭은 원효(元曉, 617~686)가 이 절에 주석하면서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을 강할 때 땅에서 연꽃이 피었다는 데서 유래하였다는 설과, 12세기 말 공덕산에 백련결사가 조직되었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이후 호남(湖南)의 만덕산(萬德山) 백련사와 구분하기 위해 동백련사라고도 했다. 미면정‧삿갓‧석장‧설법대는 고려 때까지 남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1242년(고종 29)에 최자(崔滋, 1188~1260)가 상주 목사(尙州牧使)로 있을 때 찾아보니 옛 전각에 원효와 의상의 진영, 그리고 삿갓과 석장이 남아 있었다고 한다. 그 외에도 금호석(禁虎石)‧냉천정(冷泉亭) 등이 있었다. 1243년(고종 30)에 최자가 법조 왕공(法曹王公)에게 명하여 중창하였는데, 불우(佛宇)·조당(祖堂)·승료(僧寮)·객실(客室)·허백루(虛白樓)·냉천정 아래의 신청교(神淸橋) 등 60여 칸을 완성하였다. 1244년(고종 31)에 천책(天頙, ?~?)이 법화도량(法華道場)을 개설하고 백련결사(白蓮結社)를 조직함으로써 만덕산 백련사와 더불어 천태종의 중심 수행처가 되었다. 17세기까지 사찰의 명맥이 유지되고 있었으나, 18세기 초에는 절이 이미 세력가의 무덤이 되었다고 한다. 당시 불상은 대승사(大乘寺)로 봉안되었고, 절의 전답은 처음에는 김룡사(金龍寺)가 차지하였으나 이후 대승사로 귀속되었다. 현재 사지에는 통일신라 또는 13세기경에 축조된 것으로 보이는 계단식 적석탑 세 기가 남아 있다. 부도가 있었으나 광복 전후에 도난당했다. 부도의 지대석은 문경새재도립공원옛길박물관 야외전시장에 이전‧보관되어 있다. 절터 입구에는 거대한 적석탑이 도굴된 채 남아 있는데, 그 안에서 나온 청동반자, 촛대, 청동바라 등은 국립대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