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異端의 追憶 #134, 아~ 순옥이...
그녀의 명명은 '보리올'이었다. 명명이란 '세칭 동방교' 에서 돈을 바치고 받는 이름이다. 누군가에게 포섭되어 동방교에 입교한후 어느 정도 신심이 확인되면 명명(銘名)을 받기 위해 상신(上申)을 할 수 있는 은총(?)을 허락받게 되고 상신을 통해서 앞으로 동방교내에서만 통용될 이름 하나를 하사받게 되는데 이때는 '지성' 이라 부르는 돈을 바쳐야 한다. 쉽게 말하면 '명명상신 헌금' 이라고 하면 될것 같다. 순옥이가 동방교에 전도받아 부산의 초량 12교회에 입교하던 때가 1960년대 중반이니 당시의 명명상신 헌금은 7점이었다. 동방교에서는 돈의 단위를 '몇 점'으로 표시하고 1점은 100원을 말한다.
명명상신 헌금인 '지성'이 7점이라고 하면 당시의 화폐단위로 700원을 말하는데 1960년대 중반 당시의 시내버스 요금이 3원이었고 이제 60여년이 흘러 2020년이 된 요즘의 시내버스 요금이 1200원 정도이니 400배 정도의 인플레 상승폭을 감안하면 당시의 7점, 즉 700원은 현재의 돈가치로는 약 28만원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겠다. 당시 여고생이었던 순옥이에게 이만한 돈은 거금이었다. 그래도 명명을 받아야 하늘에 녹명되고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데야 무슨 수를 써서라도 돈을 마련하여 명명상신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가정형편이 넉넉하지 못했던 순옥이가 그돈을 어떻게 마련했는지는 알길이 없다. 아마 온갖 거짓말로 부모님을 속여 돈을 타내고 책값과 참고서 값을 삥땅치고 문방구 살 돈이라고 강요하여 부모님께 억지를 부리고 버스나 전차를 타는 대신 걸어다니고 하지 않았을까... 짐작만 할 뿐이다.
명명상신서라는 용지의 양식에 이름과 생년월일 나이 성별 입교일자 동방교내의 친인척관계등 간단한 인적사항을 가로줄칸에 맞춰 그 주일의 상신대상자를 합해 몇명 나열하여 적어서 당해 동방교의 교회(?)를 담당하고 있는 책임자가 그 지방을 매주 순회하는 순회자를 통하여 지성금과 함께 서울에 소재한 동방교의 상부에 전달하여 올리게 되면 그 다음주에 순회자가 다시 해당 지방으로 순회를 나오면서 명명상신서의 맨 우측 빈칸에 어떤 이름 하나를 기록해 보내게 된다. 그것이 향후 동방교에서 부르게 되는 명명이 되는 것이다. 주로 성경에 나오는 이름들 중의 하나다. 여기서 순회자라고 하면 동방교의 서울 본부, 즉 용산의 수원정에서 교주인 노광공의 지시를 사주(四柱)등 간부들을 통하여 전달받은 대여섯명이 전국의 각지역을 나누어 매주 순회하면서 그 지시를 하달하고 지성금(獻金佩物등)을 수금하여 본부로 가져가서 보고하는 자들을 말한다. 지시란 주로 곧 불바다의 심판으로 닥아오게될 세상의 말세지말(末世之末)을 환기시켜 공포감을 불러일으키고 이래 노광공의 자기들만 신주 받들듯이 떠들고있는 전설같은 이적기사들을 포장가공하여 전파시켜 신격화하고 불바다에서 구원받을 유일한 좁은길, 즉 동방교에의 충성심을 고취시키는 언어들을 전달하는 것이다.
그녀는 '보리올' 이라는 명명을 받았다. 이 이름은 성경에 나타나지 않는 이름이다. 어디서 따온 이름인지 이름의 내력을 알길이 없다.내력을 알 수 없는 이런 이름들은 꽤 있다. 여기에 관해서는 '異端의 追憶 #122, 동방교의 명명(銘名)들' 편에 상세한 기록이 있다. 1960년대 중반에 지방에서 올라오는 명명상신서의 가로줄 맨 우측 공란에 이름을 직접 기재해 주었다는, 현재 부산에 거주하고 있는 아마샤 권아무개에 물어보아도 기억할리가 없을 것이다. 그냥 생각나는데로 이것 저것 갈겨 적었다고 말하고 있었으니까. 아마샤 권아무개는 세칭 동방교의 희대의 현금도난사건(이단의 추억 #33, 거액도난사건 참조)의 최초 경찰신고자이기도 하고 세칭 동방교의 창립교주 이래 노광공의 차남인 2대교주 아브넬 노영구의 시대에 세칭 동방교에서 발행하던 '주간 기독교' 라는 신문의 사장까지 지내다가 벌써 수십년전에 동방교를 떠나 본처와 자식들이 살고 있던 부산으로 돌아와 생업을 일구어 살아가고 있다. 가끔 만나 밥한그릇 같이 하고 차 한잔 나누면서 파란만장했던 동방교의 옛일들을 추억처럼 나누고 있는 사이이다. 그에 관한 이야기들도 몇가지 이단의 추억 기록속에 담겨져 있다.
동방교에 미쳐 부산의 모 여고를 간신히 졸업한 순옥이는 빈집초월(무단가출)하여 서울의 동방교 대기처로 들어가게 된다. 빈집초월이라... 국어사전에도 없는 이말은 그냥 무단가출이라는 동방교의 은어(隱語)다. 이런 은어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할아버지, 이래, 좁은길, 성민, 빈집, 대기처, 지성, 방비, 선님, 위도각도, 나포리, 차례제등이 이에 해당된다. (異端의 追憶 #119, 동방교의 은어(隱語)들 참조) 그녀는 동방교의 대기처로 들어가기 위해 빈집초월 무단가출 하던날, 갓 결혼한 올케언니의 결혼패물을 몽땅 훔쳐서 챙겨와 동방교의 초량 12교회에 갖다 바치고 의기양양하게 서울의 대기처로 들어갔다. 동방교내에서는 믿음이 솟아났다고 칭찬이 자자했지만 그녀의 집안에서 일어났던 난리법석의 난장판은 과연 어떠했으리...
여하튼 그녀는 대기처로 들어갔고 동방교의 대기자로 생활하게 되었는데 대기처란 하늘나라에 가기전 이땅에서 잠시 대기한다는 뜻의 빈집초월(무단가출)한 동방교 신도들이 머무는 합동숙식소 정도다. 대기자는 대기처에서 생활하는 신도들을 통칭하는 용어로 이것도 동방교의 은어(隱語)에 속한다. 아래의 사진은 당시 서울 용산의 동방교 대기처인 수원정에서 만나굽던 시절의 사진이다. 노-크라는 글씨가 선명한 콜탈칠이 된 목제출입문이 낯설지 않다. 지금은 재개발로 인해 서울 용산의 수원정은 사라지고 없지만 사방으로 검은 콜탈을 칠한 함석판을 사람키보다 훨씬 높게 담장울타리로 쳐놓았던, 외부인의 출입은 전혀 불가능했던 철옹성의 장소였다. 한시절 이곳에 거주하면서 순회자와 전도사(이단의 추억 #44, 45 순회자의길, 전도사의 길 참조)로 일했던 기억으로 지금도 수원정의 그 내부구조가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눈에 서~언하게 떠오른다.
'노-크' 라고 쓰여진 흰페인트 글씨가 선명한 목제출입문의 안쪽이 용산 수원정의 북편 '만나'를 굽던 장소다. 일반 신도들의 출입이 제한되거나 금지되었던 곳이다. 이곳에서 여자 대기자들은 전날 미리 만들어 두었던 숙성된 밀가루 반죽을 연탄불위에 솥뚜껑을 뒤집어 올려놓고 열을 달구어 그 위에 기름칠을 하고 그 밀가루 반죽을 조그마하게 떼어내어 조물조물 만져 동그랗게 만들어 열이 한창 올라있는 솥뚜껑에 올려 한번 살짝 눌러놓고 익으면 다시 한번 뒤집어 익혀서 마대로 된 포대에 담는 작업을 하염없이 하는 것이다. 아무런 앙꼬도 들어있지 않는 이 조그마한 밀가루 빵을 '만나'라 이름하여 수원정을 드나드는 일반 신도들이나 학생들이 사먹는 것이다. 그 옛날 구약시대 하늘에서 내려온 만나라고 믿으면서... 참으로 허무맹랑한 종교사기의 세계로다. 아마도 '만나' 굽다가 나와서 찍은 사진인듯한데 용케도 이 사진 한장이 아직도 내 수중에 남아있는 것이 신기하다. 일을 할때 머리에 흰 스카프를 두르고 있는 모습은 당시 여자 대기자들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사진의 오른쪽에서 만감이 교차하는듯 허공을 응시하고 있는 아가씨가 '보리올' 순옥이다. 그옆의 아가씨가 '납달리'인데 서울 흑석동의 향림정에서도 대기자로 있으면서 하염없이 만나를 굽고 있었던 그녀에 관해서는 '異端의 追憶 #130, 향림정에 묻혀있는 납달리의 추억'편에 기록되어 있다.
순탄하지만은 않았던 동방교의 대기처 생활 가운데 그래도 세월은 흘러 1970년대 중반에 이르러 보리올 순옥이도 동방교의 허구를 깨닫게 되었고 눈물을 머금고 올케의 결혼패물을 훔쳐서 달아났던 자기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아마 얼굴에 철판을 깐 심정이었을까... 아니면 머리위에 숯불을 이고 들어가는 심정이었을까... 어쨌던 그래도 다른데로는 발길을 돌리지 않고 부모님이 계시는 집으로 다시 돌아왔으니 얼마나 다행이었던가. 이제는 동방교와 인연을 끊고 조신하게 지내던중 주변의 주선으로 맞선을 보고 결혼하게 되었는데 본바탕 마음이 곱고 심약했던 그녀에게 시집살이는 혹독했다고 전해지고 있었다.
원래 천당 한번 가보겠다고 동방교에 꼬여서 올케언니 결혼패물까지 들고나와 동방교에 바쳤던 그녀가 아니었던가. 결혼후 시모와 같이 생활한 시댁에서의 생활은 남편이 든든한 바람막이가 되어주지 못한채 혹독한 시집살이 시절을 보내게 되었고 그런 가운데서도 두딸을 두었는데 큰딸 수경이는 피아노에 재능이 있어 그녀에게 유일한 자랑거리였으나 넉넉치 못한 가정형편으로 크게 꿈을 펼쳐주지는 못한듯 했다. 혹독한 시집살이의 뒤끝이었던가, 50대에 접어들면서 가끔 만날때마다 벌써 치매증상을 보이기 시작하더니 어느때 연락이 닿지않아 집으로 전화를 했는데 순옥이는 없고 전화를 받은 딸 수경이에게 엄마의 안부를 물었는데 어느 요양원으로 들어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곳으로 병문안 갔던 것이 십수년 전이다. 그때는 이미 사람을 잘 알아보지 못하고 지나간 세월의 기억이 거의 없어져 버렸다. 기억이 사라지면 그 사람의 인생도 사라지는것, 그렇게 그녀와의 만남은 끝나버리고 말았다.
연륜탓이던가... 옛 생각이 유난히 사무치는 오늘,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보리올' 순옥이의 안부가 문득 궁금해서 그녀의 집 전화번호를 찾아내어 전화를 걸었더니 없는 번호라는 멧세지만 흘러나온다. 이사를 갔는지, 죽었는지 살았는지 이제는 알길도 없다. 딸 수경이는 시집갈 나이가 훨씬 지난듯 한데 이제 본인도 딸도 소식을 알길 없게 되었으니 참으로 무정한 세월이다. 이렇게 또 한사람의 좁은길 성민이라 불리던 열렬했던 세칭 동방교의 신도, 허무맹랑한 종교사기꾼의 이단사이비 사설에 속아 금은패물 챙겨들고 부모형제의 가슴에 대못을 박아놓고 무단가출 빈집초월하여 동방교의 대기처로 들어가 껌팔고 밥하고 청소하고 만나굽고 농사짓고 소똥치우며 청춘시절을 허무하게 무임금 착취노동으로 허송세월 보냈던 한 고귀한 생명이 이렇게 세상과 단절된체 이제 그 파란만장했던 생애가 망각의 세월, 역사의 저 너머로 사라져 가는가 보다. 아~ 순옥이 '보리올'...
첫댓글 지방에 20대의 앳띤 아가씨들을 전도사로 파송하여 중고등학생들을 현혹하여 교세를 확장시킨 사이비종교 동방교! 정작 전도사들은 냉방에다 끼니도 제대로 주지 않아서 위장병과 각종 질병에 시달리다가 병이 깊어지면 집으로 쫓아냈던 냉혹한 이단, 동방교! 그 댓가로 동방교 교주의 후손들은 모두 자폐아로 태어나고 있단다. 하늘의 저주로다.
盧씨집안의 내력을 잘 아시는군요.
안타까운 일이죠.
하늘의 그물은 엉성한듯 보이나
무엇하나 놓치는 법이 없죠.
사상교회 출신 벨릭스 장로의 딸 하순옥을 아시나요? 방금까지 통화했는데, 초교만 졸업하고 전국으로 다니며 껌팔이에 떡볶이 장사를 하다가 결국 나이 들어서 내쳐진 여인입니다. 내 친구인 이리교회 출신 배경주와 결혼하여 지금은 김해에서 살고 있습니다. 명명은 바돌로메..... 그녀가 겪은 일화 중 한가지는 대구의 한 술집으로 껌팔이 갔는데 거기에 노영구가 있었다는 것이었답니다. 그녀를 본 노영구는 깜짝 놀라서 맥주잔을 떨어뜨렸고, 그녀를 외면하는 친구들에게 그래도 껌을 팔아주자는 제의를 했다는 얘기를 저에게 하였습니다. 노영구를 성자 예수님의 위도로 왔다며 그토록 신격화 하였는데, 노영구는 술집에서 맥주잔을 기울이는 평민으로 살고 있었다는 사실.....
동방교 사람들이 노영구나 그 형인 노영도의 실체를 제대로 알면 까무러질 일들입니다. 노광공의 큰아들 노영도는 대낮에도 팬티바람으로 동네 여자들과 화투치며 놀던 망나니라고 하더군요. 거룩하다는 노가계의 자손들의 현실이 이렇다는 것을 모두가 알아야 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솔방울님, 옛일을 상기시켜 주시네요.
사상 8교회 출신 벨릭스 장로와 딸 하순옥 바돌로매를 알다 뿐이겠습니까~ 벨릭스 장로의 2남2녀중 작은딸이지요.
오빠 '진기'는 내 친구이기도 하고
동생 진찬이, 언니 경숙이도 모두 잘 알지요.
그의 사촌 진태도 한때 동방교 신도였고 잘 아는 사이지요.
순옥이의 어릴때 앳된 모습이 눈에 서~언 하네요. 김해에서 살고 있다면 연락이 닿는대로 함 만나보고 싶네요.
노영도와 노영구의 망나니같은 실체야 일러무삼하리요~ 그 후손들에게 미치는 운명은 아마 하늘이 무심치 않을겁니다.
순옥씨와 허물없이 자주 통화하고 있습니다. 제 친구 마눌이기도 하고요. 김해 장유 신도시에서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저보다 나이가 많은데도 제가 제수씨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ㅎㅎ 참! 순옥씨가 자기 전번을 알려줘도 괜찮으며 기회가 되면 한 번 만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바돌로매 순옥이 만나거나 통화할일 있으면 안부 부탁 드리겠습니다. 이 카페도 알려주시고 소식 한 줄 올려주시도록 부탁드립니다. 기회가 된다면 만나보고 싶기도 하구요. 김해 장유 신도시는 그리 멀지 않습니다. 아~~ 전번 감사합니다. 접수했으니 전번은 삭제해주세요 ^^
단도직입적이라 죄송하지만...
솔방울님의 친구되신다는 순옥의 남편분과 바돌로매 순옥의 세칭 동방교, 자칭 좁은길에 대하여 가지는 시각은 현재 어떻게 형성되어 있는가요?
암호화 및 불법다운로드 금지
저와 비슷하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들도 철저히 이용만 당한 사람들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