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과 유물 사이
강근숙
두어 달 입원했던 올케언니가 퇴원했다. 얼마 전 병문안을 갔으나 말 한마디 제대로 나누지 못하고 수척한 얼굴만 보고 돌아왔기에 형제들은 언니네 집으로 달려갔다. 그렇게도 건강하더니 나이 들면서 저리 아픈 곳이 많은 것은, 아마도 오랜 세월 오빠의 수발을 드느라 골병이 들어서인지도 모른다. 십수 년 전에 오빠는 세상을 떠나고 병주머니
를 안고 사는 언니가 안쓰러워 우리는 자주 연락하고 정을 나눈다. 오랜만에 웃고 떠들며 점심을 먹고 옷방으로 들어간 올케는 옷을 한 아름 안고 나온다.
요즘은 옷감이 좋아 한두 해 입은 옷은 새것과 진배없다. 알뜰 주부들은 서로 바꿔입기도 하고, 자라나는 아이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얻어 입힌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마음에서 꺼려지는 물건은 손이 가지 않기 마련이다. 며칠 전, 지인들이 모인 자리에서 선물과 유물 이야기가 화제에 올랐다. 어느 부잣집 사위가 하는 말이 “장모님 댁에 탐나는 물건이 많았는데, 장모가 막상 돌아가고 난 뒤에는 가지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고 하였다. 똑같은 물건인데 마음이 바뀐 것은 죽은 사람 물건이기 때문이다.
우리 집안 한 분이 세상을 떠났다. 장례를 마치고 모두 그 댁으로 갔는데, 어찌나 짐이 많던지 ‘이걸 어떻게 치울 것인가. ’걱정스러웠다. 유품 중에는 책이 유독 많았다. 필요한 거 있으면 가져가라는데, 아무도 가져가려는 사람이 없었다. 사람이 세상 떠나면 고인이 쓰던 물건도 생명을 다하는 것일까. 평소 같으면 책 좋아하는 나도 욕심을 부렸을 텐데, 나 또한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부모와 자식 간에도 좋아하는 분야는 전혀 다르다. 내가 보기에는 고인의 책장에 가득한 책은 자식에겐 필요하지 않으며, 치워야 할 짐이요 쓰레기일 뿐이다.
사람들은 육십이 넘으면 서서히 죽음을 준비해야 한다고 말한다. 백세시대에 인생은 칠십부터라고 큰소리치지만, 나이는 속일 수가 없다. 마음은 청춘인데 돋보기를 벗으면 까막눈이요, 금방 들은 얘기도 돌아서면 잊어버리기 일쑤다. 칠십 고개를 넘으면 당장은 아닐지라도 십 년, 길어야 이십 년 뒤에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서서히 짐정리를 해야겠다고 집안을 훑어보며 한 사람에게 딸린 물건이 이렇게 많았던가 새삼 놀란다. 늦기 전에 필요 없는 물건은 버리고 쓸만한 물건은 필요한 사람에게 주어야겠다. 어느 날 갑자기 이 세상을 떠난다면 자식에게 너저분한 뒷모습을 보이기도 부끄러운 일이거니와 이 많은 짐을 버리려면 얼마나 힘이 들겠는가.
한가한 날 장롱을 열어젖혔다. 버리기 아까운 솜이불, 자주 안 입는 두꺼운 옷, 옛날 옛적 남편이 사다 준 악어백까지 장 속이 가득하다. 묵은 이불과 몇 년을 입지 않은 겨울옷은 미련 없이 내다 버렸다. 그러나 셋방살이에 됫박쌀 신세를 면치 못하던 시절, 서당 훈장 노릇을 하던 남편이 동남아 여행을 다녀오면서 사다 준 악어백은 차마 버릴 수가 없었다. 고생하는 아내에게 모처럼 선물한 두 마리 악어로 만든 직사각형 손가방은 그 당시는 최고로 알아주던 명품이었다. 어쩌다 백을 들라치면 지폐는커녕 입고 나갈 변변한 옷 한 벌이 없어 악어백은 한 번도 바깥구경을 하지 못했다. 귀한 물건이라 장롱 속에 모셔놓고 이따금 꺼내 보던 사십 년 묵은 가방을 다니러 온 막내 올케에게 선물했다. 유행은 한참 지났어도 이야기 할머니로 활동하는 올케가 든다면 단아하고 잘 어울릴 것 같아서였다. 왜 진즉 그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뒤늦게라도 격에 맞는 주인을 찾아 주어 마음이 홀가분하다.
몇십 년 묵은 살림살이는 오늘 버려진다 해도 아깝지 않은 물건들이다. 문제는 책장을 가득 채우고 한쪽에 쌓인 책이다. 이 많은 책을 어떻게 할까. 그러면서도 필요하면 계속 사들여 방바닥에 쌓아 놓는다. 엊그제도 역사책 5권을 사들였고, 노벨문학상 수상자 한강 작가의 책 몇 권을 또 주문했다. 내 책을 아들이 보물인 양 물려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좋을까마는 역사, 문학 서적이라 음악을 좋아하는 아들에겐 관심밖이다. 헤이리 예술마을 카페 ‘귀천’에는 천상병 시인의 소품과 소장했던 책들이 진열되어 보기가 좋았다. 아름다운 소풍을 끝내고 하늘로 돌아간 시인은 어떤 책을 읽었을까. 차를 마시며 시인의 손때가 묻은 책들을 훑어본다.
역사에 이름을 남긴 위인들의 유품은 소중히 간직하고 기억하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유물은 쓰레기에 불과하다. 그렇긴 해도 어떻게 책을 버린단 말인가. 마음 아프지만, 분리수거 하는 날 책을 가려 ‘필요한 분 가져가세요’ 쪽지와 함께 열댓 권을 경비실 창가에 갖다 놓았다. 다음에 또 책을 안고 가서 누가 가져갔느냐 물어보니, 아무도 안 집어갔다며 폐지통에 넣으라 한다. 한 아름의 책을 폐지 더미에 던지며 책 한 권 한권에 들인 작가의 공력을 생각한다. 내 책도 이렇게 버려질지 모르는데 나는 지금 다음 책 제목을 무엇으로 정할까 고심 중이다.
책 어뵤는 세상은 상상할수도 없다. ‘책 속에 길이 있다’ 믿으며 삶의 방향을 찾고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한다. 책 속에서 지식을 얻고 마음의 능력이 향상되는 계기가 되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늙어서도 책은 꼭 필요하다. 6·70대 이후 지혜와 진리에 대한 탐구가 없다면 그 누구도 삶의 공허에서 벗어날 수 없고, 폭넓은 세상과 만날 수가없다. 유물로 버려질 책을 잔뜩 쌓아 놓고 세상을 떠난 집안 어른을 노욕이라 흥을 봤으나, 내가 그 짝나게 생겼다.
어느 카페 주인이 이름 없는 글쟁이의 책을 소장할 리 만무고, 천덕꾸러기로 버려지지 않기 위해서는 유물이 되기 전에 좋아하는 사람에게 선물하는 길뿐인데, 아직 그럴 자신이 없다. 이웃 사는 지인은 ‘요즘 재밌는 게 얼마나 많은데 책을 읽느냐 ’며, 짐 정리하면서 한 차를 내다 버렸다고 자랑스럽게 얘기한다. 내가 알았다면 달려가서 귀한 책을 한 아름 골라왔을 것이다. 책에 대한 애착을 버리지 못하는 나는, 죽는 날까지 책을 산더미처럼 쌓아 놓고 버리지 못할 것 같아 걱정이다.
첫댓글 월간 한국수필 2025년 3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