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거실 중앙에는 그림 대신 가족 사진이 벽 을 가리고 있다.
사진속에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미소를 짓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딸들이
활짝 웃음꽃을 피우고 앉아 있는 것이다. 딸들의 나이는 2살 터울 3살 터울로 태어나서
지금껏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작자 자기의 생활을 하고 있다.
큰딸은 지금 대학교 2학년에 재학중이며, 둘째 딸은 고등학교 3학년이라서 대학 입시가 코 앞이라
늘 동분서주 하며 학교와 집을 오가면서 공부에 매진을 하고 있다. 특히 우리집 막내는 아직 중학교 3학년이다.
활달한 언니들과 달리 조용한 막내딸은 지금 집안 일을 도와 주는 필리핀 가사 도우미와 함께
부엌에서 가족들이 먹을 음식 만드는 법을 배우고 있다. 나는 가끔 막내딸을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지는데, 내 주위 사람들은 이런 우리 가족의 모습을 보면서 너무나 행복한 가정이라 부른다.
내가 중학교 3학년 때의 일이다. 학교에서는 인문계고와 실업계고 입학 문제로 학생들을 한명씩
교무실로 불러서 상담을 하고 있었다. 그때 우리집은 내 위로 오빠가 1명 언니가 2명 있었다.
오빠와 언니들은 공부를 잘해서 서울에서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아빠와 엄마는 오빠와 언니들의 학비 부담 때문에 말괄량이면서 고집이 센 나는 실업게 고등학교를 나와서
적당하게 은행이나 작은 회사 경리로 취직을 해서 얼른 시집을 가기를 바랬다.
부모님들은 오빠와 언니와 달리 동네에서도 늘 사고 치고 학교에서도 말썽꾸러기라서
공부 보다는 일찍 취업 전선에 나서서 돈을 벌게 되면 나의 말괄량이 기질이 사라 질까
생각을 한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오빠와 언니들처럼 서울에서 멋지게 차려 입고 학교에 다니고 싶었다.
나의 유일한 특기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노래 하고 춤추고 사람들을 웃겨 주는 것을 좋아 했다.
집에서는 막내라서 언니나 오빠 처럼 때리지는 못하고 아빠는 말끝 마다 나에게 얼른 학교 졸업해서
밥벌이를 하라고 하셨지만 나는 꼭 대학교에 가고 싶었다. 그래서 고등학교 입학 원서를 쓸때 실업계 고등학교가 아닌
인문계 고등학교에 원서를 냈다. 그리고 아무도 몰래 새벽까지 죽어라 공부를 했다. 학교에서는
2교시가 끝나고 점심 도시락을 몰래 먹고 나서 정작 점심시간이 되면, 교문을 지키는 수위 아저씨 눈을 피해
학교앞 분식집에서 떡볶이를 먹고 다시 담을 넘어 학교로 돌아 왔다.
매일 학교앞 분식집에서 라면과 떡볶이를 사먹느라 부모님이 주신 용돈이 항상 궁했다.
어느 날은 엄마 몰래 집에서 쌀을 가지고 와서 그 쌀로 분식집에서 도너츠로 바꾸어 먹은 적도 많았다.
학교에서는 수업 시간이면 책상에 엎드려 잠을 자는 나를 선생님들은 공부 하라고 잔소리를 하지 않았다.
선생님들은 수업 시간에 얌전하게 수업을 듣는 학생들을 좋아 했다.
공부와 담을 쌓은줄 아는 친구들 때문에 학교에서는 부족한 잠을 자고 집에 돌아와
새벽 까지 공부를 했다.
모두 잠든 새벽 시간 집중력이 좋아서 공부가 잘 되었다.
그리고 시험 점수가 좋아서 대전 시내에 있는 모 여고에 당당하게 합격을 했다.
대전 시내에 있는 명문 여고에 합격한 나를 축하 해주는 선생님들 덕분에 기분이 좋아진 나는
중학교 졸업식날 동네 친구들과 모여서 맥주와 소주를 사서 친구집에 모여서 밤새 술판을 벌였다.
그날 사온 안주가 모자라서 친구집 닭장에 가서 몰래 닭 서리를 해서
안주로 먹었다. 우리들은 술에 취해서 정신없이 자고 있었는데 동네에서는 난리가 났었다.
밤중에 도둑이 들어서 닭을 3마리나 잃어버린 친구 아버지가 동네 방네 다니면서 난리를 친 것이었다.
결국 나중에 우리들이 닭서리를 하게 된 것을 알게 된 어른들에게 술먹고 난장판을 벌였다고
심하게 꾸중을 들었다. 집에 돌아온 나는 아빠에게 심하게 꾸지람을 들었다.
마을에서 유명한 말썽꾸러기인 나는 동네에서 닭이 없어지거나 수상한 일이 생기면 무조건
나를 의심부터 했다.
고등학교에 입학을 하게 되면서 집을 떠나야 했다.
엄마는 말괄량이 인 나에게 공부 잘 하라는 말 대신에 제발 사고 치지 말라고 신신 당부를 했다.
학교 근처에 친구와 함께 자취를 시작을 했다.
입학식 날 이었다. 담임 선생님을 놀려주기 위해 교실 출입문 위에 분필이 잔뜩 묻은 칠판 지우개를
몰래 올려 두었다. 그리고 선생님이 교실 문을 드르륵 여는 순간 여선생님 머리 위에 칠판 지우개가
떨어지면서 얼굴과 머리에 하얀 분필 가루가 흩어지면서 눈이 내리는 듯 했다.
그때 여학생들은 선생님의 당황한 모습을 보며 책상을 두드리며 웃고 난리가 났다.
담임 선생님은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얼굴이 울그락불그락 하면서 지휘봉으로 교탁을 탁탁 치면서
방금 장난 친 사람 앞으로 나오라고 고함을 치는 것이다. 나는 잠자코 자리에 있으려 했는데 도무지 참을수가 없어서
이실직고를 했다. "선생님 제가 했는 데요..."
"뭐야 너 이름이 뭐야..."
나는 내 이름을 또박 또박 말을 했다.
저는 이 현경입니다 말을 마치자 학생들은 배를 잡고 웃어 댔고 선생님은
어이가 없는 웃음을 날리다 '그자리에 앉아' 하고는 아침 조회를 시작을 했다.
그일이 있은 후 나는 반에서 유명한 아이가 되었다.
사춘기 여고생인 우리들은 늘 용돈이 모자랐다.
학용품을 사야 하고 주말이면
교복 대신 사복을 입고 외출을 해야 하는 나는 다른 아이들처럼 언니옷을 빌러 입고 밖에 나가는 것이 싫었다.
아빠를 졸라 용돈을 받으면 동성로 달려 갔다.
대구 동성로는 멋을 아는 젊은 멋장이
직장인들과 멋내기 좋아 하는
여대생들이 패션을 공유 하는 곳이었다.
이곳에 오면 마치 딴 나라에 온것처럼 들뜨고 기분이 좋았다.
처음에는 예쁜 옷을 사서 입는 학생으로 출발 해서 차츰 다른 사람과 차별이 되는 옷을 입고 싶어서 수선집 문턱을 부지런히 드나들었다.
수선집 아줌마는 처음에는 나의 출현을
반가워 하더니 나중에는 심드렁 하게
바라보았다.
나는 수선집 아줌마에게
내가 가지고 있는 옷을 외국 유명 디자이너의 스타일처럼 핫한 아이템으로 수선해 줄것을 요구 했다.
수선집 아주머니와 나는 수없이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세상에 없는 옷을
만들기 위해 노력 했다.
가을 축제가 시작 되었다.
연극 동아리에서 활동 중인 나는
주인공 역을 맡았다.
키가 크고 허스키한 내 목소리는
로미오를 맡아야 한다는 연극반 선생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나는
굳이 줄리엣을 맡겠다고
선생님을 졸랐다.
그렇게 해서 줄리엣은 여린 감성의
소유자가 아닌 키가 컹충하게 큰 내가 맡았다.
사실 나는 줄리엣의 역할 보다는
줄리엣의 의상을
디자인 하고 싶은 욕망에 주인공을 자처 하면서 나의 관심 사는
남들 보다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열망에 한 발 가까이 가는 시간이 되었다.
엄마가 보내주신 한달 용돈은 일주일 만에 동이 나고 말았다.
식성이 좋은 나는 친구들을 불러
삼겹살 파티를 했다.여기에 소주와 맥주 와인을 사고 나니
주머니에는 동전 몇개가 쨍그랑 소리를 내면서 주머니에서 흔들거렿다. 이대로는 굶어 죽을것 같다.
평상시 밥 보다는 빵을 더 자주 먹어서
쌀을 남아 돈다.
나와 애숙이 자취방에 쌓아둔 쌀을 들고
쌀집으로 향했다.
가는 동안 애숙이 걱정스러운 몸짓을 했다.
현경아?
우리 쌀 팔아서 떡볶이 사먹는 것을
부모님께 들키면 혼날뗀데..
걱정 붙들어 매셔
나는 애숙을 진정 시키며
동네 쌀집으로 갔다.
예전 부터 봐둔 쌀집에는
아저씨 혼자
가게를 지키고 있었다.
집에서 보내준 쌀을 돈으로 바꾸어 떡볶이를 사먹고 순대를 먹었다.
나와 한방을 쓰는 애숙은 얌전하고 말이 없는 아이었다.
나는 애숙을 앞세워 쌀집으로 향했다.
쌀집에서 쌀을 현금으로 바꾸어 줄지 아닐지는 다음에 생각 하기로 했다.
나와 애숙은 돈이 필요 했다.
이제 고등학생이 어디가서 돈을 벌 형편도 되지 못하고
돈을 빌려서 쓰는 것은 더더욱 싫었다.
포대에 담긴 쌀의 중량은 대략 이랬다.
평상시 근력 운동을 하지 않아서 그랬는지
쌀의 무게는 두 어깨를 내리 눌렀다.
자취방에서 되도록이면 먼 쌀집을 택한 것은 행여 동네에서
학교 급우 들을 만나면 곤란하다는
애숙의 의견을 따른 것인데
그것은 두사람의 실수 였다.
낑낑 거리고 들어선 쌀집에서
맞딱뜨린 사람은 쌀집 주인 아저씨 대신
낯익은 사람이 가게를 지키고 있었다.
어서오세요
상냥한 아가씨의 말에 우리들은
고개를 숙이고 목례를 하려다
둘다 순간 놀라고 말았다
어머 선생님
애숙이 놀라서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어머 너희들 여기는 어떻게 왔니?
그런 선생님은 왜 여기 계세요
내가 선생님을 보고 놀라지 않고
대답했다.
너희들 이동네 사니?
아니 그게
애숙이 자초지종을 이실직고 하려 해
내가 애숙의 어깨를 톡 치며 말렸다.
그날 점심은 쌀집을 하시는
선생님의 어머님이 차려 주신 점심을
맛있게 먹고 시내로 향했다.
시내 유명 빵집에는
한껏 멋을 낸 학생들이
서로 얌전을 빼며 앉아 있었다.
그중에 한 학생이 좌중을 향해 말했다.
모두 눈을 감으시고 여학생은
자신의 소지품을 꺼내어 앞에 놓으세요.
순간 나는 두손을 번쩍 들고 외쳤다.
잠깐 여학생들의 소지품 대신
남학생들이 가지고 있는 물건 중에서
한가지씩을 앞으로 모아서
파트너를 정하는게 어때요.
남학생들은 일제히 좋다는 박수를 쳤다.
그리고 나는 눈을 감은척 하면서
실눈을 뜨고
남학생들의 소지품을 꺼내는 것을 확인 하고 모르는척 시치미를 땠다.
그리고 우리들은 파트너가 정해지고
각자 두명씩 짝을 이뤄 밖으로 나갔다.
나의 파트너가 된 남학생은
장차 영화 배우가 되고 싶은 연기 지망생이었다.
우리 두 사람은 대화가 통했다.
도심에서 벗어나 우리들은 유원지로 향했다.
유원지 근처 식당들은 술과
음식을 팔고 있었다.
오래 걸었더니 다리도 아프고
땀도 났다.
이럴때는 시원한 막걸리가 제격이다.
막걸리와 파전을 시켜 먹고 있는데
비틀거리며 자취방으로 돌아 왔다
가을을 만끽 하러온 행락객들과 섞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