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09. 20
서울 신당역에서 살해 당한 스토킹 피해자 장례는 국장(國葬)으로 치러야 한다.
대통령이나 국가에 큰 공(功)을 세운 지도자에게 국비(國費)로 치르는 국장이 아니라 국민 마음속으로 애도하고 반성하는 국민적 국장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한 젊은 여성 스토킹 피해자의 죽음에 왜 전 국민이 반성하고 애도해야 한다는 것인가? 회사도 정부도 모두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그 경중(輕重)은 있으나 궁극적으로 우리가 그녀를 지켜 주지 못했고, 나라가 그녀를 죽임 당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이런 비극적 사건은 예전에도 수없이 일어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최초로 일어난, 온 국민을 충격과 슬픔과 분노에 빠뜨린 대형 살인 사건이기에 국민적 국장이 치러져야 한다고 얘기하는 것이다.
공정과 법치와 상식의 기치(旗幟)를 내걸고 들어선 윤석열 정부는 달라야 한다. 큰 사건 발생 후 잠깐 소리 나게 뭘 하는 척하다 곧 흐지부지돼 버리는 지난 정권들과 똑같이 해서는 안 된다.
그런 점에서 법무부 장관 한동훈은 좋은 평점을 받는다. 사건 당일 퇴근 후 조용히 현장을 찾아 고인을 생각하며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정리했다.
“국가가 지켜 주지 못했다.”
한동훈은 이 말이 한 인기 장관의 레토릭(修辭)이 아니라는 것을 다음날 바로 법 개정 방침 확정으로 보여 주었다. 스토킹 처벌법 중 독소(毒素) 조항이었던 반(反)의사(意思)불벌죄(不罰罪) 폐지 정부 입법안을 국회에 내기로 했다.
반의사불벌죄란 피해자 의사를 존중해 피의자 처리를 한다는 것이다. 옛날 간통죄에 적용됐던 친고죄(親告罪)와 비슷하다. 배우자 측의 고소가 있어야만 처벌했다. 당사자의 명예훼손을 막기 위해서였지만, 간통 ‘가해자’가 간통 ‘피해자’보다 더 보호되는 역설이 가능한 법이었다.
스토킹 법도 마찬가지다. 피의자를 살인도 저지를 수 있는 위험한 인물로 전제하지 않고, 그냥 피해자를 좋아해서 귀찮게 하는 순진한 구애자(求愛者)로 보고 합의를 종용하는 조항이 들어갔었다. 이것을 지난해에 개정하려다가 여야, 정부, 경찰 등이 밀어붙여 유지됐다.
/ ⓒ 데일리안 DB
당시 법무부 장관이 추미애에 이어 윤석열 쫓아내기 망나니 역할로 문재인이 발탁한 박범계다. 그는 윤석열과 ‘윤석열 사단’ 축출, 문재인 이재명 관련 수사 저지에 혈안이 돼 스토킹 법 따위에는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통 모르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한동훈은 진즉 고쳐져야 했을 법이 안 고쳐짐으로써 발생한 비극 하루 만에 피해자와 합의에 관계없이 피의자를 즉각 분리시키고 처벌도 할 수 있도록 법을 손질했다.
그러나 박범계보다 이번 사건으로 더 크게 국민적 분노의 대상이 된 사람이 있다. 작년 가을 경찰이 올린 피의자(1년 후 살인자) 구속 영장을 ‘증거 인멸과 도주 우려가 없다’고 기각한 판사다. 스토킹 횟수와 정도, 위해성(危害性)을 간과했다. 그는 아마 지금 밤잠을 못 자고 불안과 괴로움에 떨고 있을 것이다.
이 판사의 정치 성향은 모른다. 그러나 그의 결정은 2020년대 대한민국 사회에 만연한, 잠재적 살인자인 피의자나 도둑놈의 인권을 피해자의 그것보다 더 중시하는, ‘진보좌파의 겉멋’ 풍조(風潮)를 드러내는 상징적 판결이다. 민주화와 ‘우리법연구회’ 득세가 불러 온 상식의 전도(顚倒)요 역행이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 경찰서나 검찰청에 잡혀 들어온 피의자들은 잡범이건 정치범이건 으레 함부로 취급되고 겁박(劫迫)을 받았다. 반말은 필수였다. 이것이 시대가 바뀌면서 인권 존중으로 바뀐 건 분명히 옳은 방향이다.
하지만, 살인범은 살인범이고 도둑놈은 도둑놈이다. 이들을 그 죄(혐의)에 맞게 대우하는 건 상식이다. 그래야 범죄 예방 효과도 있다.
“피의자 OOO은 O월 O일 O시 OO에서 칼로 피해자 OOO을 살해했나요?”
이건 코미디다. 거짓말할 게 뻔 한 놈에게 존댓말을 쓰며 물어 봐야 시간 낭비이고 범죄자의 기만 살려 준다.
피의자 인권 중시 진보좌파 법무부 장관 조국은 재임 당시 출석 조사 최소화, 장시간 조사 금지 등 ‘인권보호수사규칙’을 제정했다. 자녀 입시 부정으로 수사 받는 자기 자신과 부인을 위한 목적에 수사 검사보다 피의자를 ‘우대’하겠다는 발상이었다.
조국이나 영장 기각 판사 같은 ‘개폼’ 잡는 입법, 집행자들이 신당역 스토킹 피해 20대 꽃다운 여성이 가해자의 칼에 찔려 사망하는 비극을 일으킨 셈이다. 민주화와 진보는 아무 데나 들이대야 하는 시대정신이 아니다. 지킬 건 지켜져야 하는 것이다.
검찰 공소장에 의해 명백한 거짓말과 범죄 행위들이 속속 밝혀지고 있는 이재명도 스토킹 가해자를 보는 시각으로 검찰과 법원, 그리고 언론은 봐야 한다. 그는 6차례 대면 보고를 받고, 자기 손으로 시장 상까지 주었으며, 해외에 나가 함께 골프도 친 사람을 모른다고 한 거짓말의 달인이다.
그가 왜 이런 거짓말을 했겠는가? 대장동, 백현동 등 범죄를 숨기기 위해서다. 민주화운동가 장기표가 그의 의표(意表)를 보기 좋게 찔렀다.
“죄가 없다면 당당하게 출두해 무죄라고 명확히 주장하면 된다. 이재명이 검찰에 못 나가는 것은 죄 짓고 할 말이 없기 때문이다. 그가 거짓말을 했다는 증거와 진술이 다 확보돼 있는데 무슨 해명을 하겠느냐. 질문을 받기 싫은 것이다.”
그런 자(者)가 국회의원과 당 대표라는 방탄복을 입고 시스템과 증거에 의한, 정당한 수사를 정치 보복이라며 큰소리치고 있다. 그의 목소리는 검찰의 ‘이재명 사건 시리즈’ 수사 진행으로 잦아들 것이며, 그를 위해 인(人)의 장막을 치고 있는 한심한 민주당 홍위병과 개딸들은 조만간 머쓱해 질 것이다.
검찰의 철저하고 신속한 수사와 함께, 대통령 윤석열과 법무부 장관 한동훈은 이재명 관련 고소 고발인, 저격수 등 ‘피해자’들 신변 보호를 위해서도 특별한 조치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들은 스토킹 피해만큼이나 큰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
정기수 / 자유기고가 ksjung724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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