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맥퀸 (Steve McQueen,1930~1980)
미국의 영화배우 '스티브 맥퀸' 은 미국 인디애나 州 태생으로 1960년대에 다양한
활동을 했던 대단히 남성적인 이미지의 배우로 알려져 있다.
무뚝뚝하고 무거운 성격의 그는 배우로서의 능력은 있지만, 신경과민으로 항상
긴장감을 갖고 있었다. 소년원에서 평탄치 않은 소년기를 보낸 후, 1947년에
해병대에 입대하여, 1950년까지 복무했다. 이후 연기를 공부해 1955년에 뉴욕의
'Actors' Studio'에 들어갔다. 이 때부터 배우의 꿈을 키웠다.
'맥퀸' 은 유년기 시절을 불우하게 보냈지만, 과거와 현재에 이르러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배우 중 한명이 됐다. 그는 1980년 11월 멕시코에서 50세의 이른 나이로
사망(死亡)했지만, 그의 남성다운 이미지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기억되고 있다.
그는 사후(死後)인 1986년 명예의 전당(Walk of Fame)에 이름을 올렸다.
'스티브 맥퀸' 은 1950년대 초반 <Girl on the Run, 1953>에 단역으로 출연하면서
영화에 데뷔를 했다. 그리고, 이어서 다양한 TV 시리즈물에 출연했는데, '맥퀸' 이
맡은 주요한 역할은 저예산 영화이자 공포 SF 영화인 <물방울>(The Blob, 1958)
에서 이뤄졌다. 이 영화에서 이상한 괴물과 싸우는 청소년으로 등장했던 것이다.
이어 그는 범죄영화 <The Great St. Louis Bank Robbery, 1959>과 전쟁영화
<Never So Few, 1959>에 출연하면서 연기경력을 쌓았다.
'맥퀸' 은 1960년에 '존 스터지스' 감독의 서부영화 <황야의 7인>(The Magnificent
Seven)에 주연으로 출연하면서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7인의 사무라이>(Seven Samurai, 1954)를 미국식 서부극으로 리메이크한 작품
이었다. '맥퀸' 은 불의에 대항하는 7명의 주인공 중 한명을 맡았는데,
이때 '율 브리너', '찰스 브론슨', '제임스 코번' 등 내로라하는 할리우드의 남성 배우
들과 함께 연기대결을 펼쳤다. 특히 '맥퀸' 은 당시 최고 스타였던 '율 브리너'와 모든
장면에 함께 출연하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널리 알리기도 했다.
'맥퀸' 은 다음 두 작품에서도 관객들에게 자신을 확실하게 각인(刻印)시켰는데,
그것은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 <Hell Is for Heroes, 1962>과
<The War Lover, 1962)였다.
두 편의 영화에서 연기력을 과시한 그는 역시 '존 스터지스' 감독의 <대탈주>
(The Great Escape, 1963)에서 주인공 힐츠(Hilts)역으로 출연했는데, 흥행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 영화는 독일군에게 붙잡힌 미군 및 영국군 포로들이 탈출을
감행하는 모습을 담은 전쟁영화였다. 특히, 이 영화에서 주인공이 독일군 오토바이를
뺏어 타고 철조망을 넘어 도약하는 장면은 비록 대역을 썼지만, 단연 압권이었다.
어쨌든 이 작품을 계기로 '맥퀸' 은 1960년대 당시 출연료가 가장 높은 배우 중
한 명으로 급부상(急浮上)했다. 그는 <대탈주>로 1963년 모스크바국제영화제에서
남우 주연상을 수상했다.
이후에도 '맥퀸' 은 다양한 영화들에 출연했다. 우선 코미디물이었던 <Soldier in
the Rain, 1963)와 <Love with the Proper Stranger, 1963>과 <Baby the Rain
Must Fall, 1965>에 잇달아 출연을 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들 작품들에선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지 못해 흥행에 실패했다. 그러나
'맥퀸' 은 전문도박사 역을 맡은 <The Cincinnati Kid, 1965>를 통해 다시 관객의
관심을 얻을 수 있었다
다음 '맥퀸' 은 서부 영화로 돌아와 <Nevada Smith, 1966>에 출연했고, 이어 미국
해군 역을 맡은 <The Sand Pebbles, 1966>에 출연을 했다. 그는 계속 남성적인
이미지가 강조된 인물을 연기했고, 이후에도 이 같은 특징은 이어졌다.
범죄드라마 <The Thomas Crown Affair, 1968>에 출연한 '맥퀸' 은 완전범죄를
꿈꾸는 젊은 실업가 '토머스 크라운'을 연기했다. '페이 더너웨이'(Faye Dunaway)가
연기한 여수사관 빅키(Vicki)가 범죄혐의로 그를 조사하지만, 그 와중에 두 사람이
위험한 사랑에 빠지고 만다는 내용이다.
이 작품에 출연하면서 '맥퀸' 은 자신의 역할에 대해 대단히 신중하게 고민했다고
한다. 그는 <Bullitt, 1968>에서 무뚝뚝한 형사 역을 맡았는데, '스턴트맨' 없이 직접
연기한 자동차 추격신이 특히 유명하다.
'맥퀸' 은 이후 미국의 유명한 소설가 '윌리엄 포크너'의 소설을 각색한 <The Reivers,
1969>에 출연했다. 이 영화에서 그는 미국 남부 출신의 '분 호간벡'을 맡아서 종전과
달리 코믹한 연기를 선보였으나, 흥행에는 실패했다. 다음 '맥퀸' 은 자신의 운전하는
모습이 더욱 구체적으로 드러난 <Le Mans, 1971>에 출연했다. 레이싱을 다룬 영화
로서 그는 실제로 위험한 운전을 감행했으며, 사고 때문에 중단했던 프랑스의 유명한
경주대회 ‘르망 24시’에 재출전한 한 남자의 모습을 연기했다.
이 영화는 의사-다큐멘터리로 실제 경주하는 모습이 담겨있는데, '맥퀸' 은 심리적인
갈등을 겪는 인물을 연기함과 동시에, 경주에 열중하는 레이서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연기했다.
1970년대에도 다양한 연기활동을 한 '맥퀸' 은 현대식 서부영화인 <Junior Bonner,
1972)에 출연했다. 이 영화는 '로데오 라이더'를 하는 가족을 다루고 있다. 이어서
'맥퀸' 은 다시 페킨파와 함께 <The Gateway, 1972>라는 영화를 만들었는데, 은행
강도 역을 맡았다. 두 영화는 모두 박스 오피스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다.
다음 '맥퀸' 은 자신의 또 다른 대표작인 <빠삐용>(Papillon, 1973)에 출연했다.
'앙리 샤리에르(Henri Charriere)'의 원작에 바탕을 둔 이 영화는 살인누명을 쓴
빠삐용과 위조지폐 전문가이자 아내에게 배신을 당한 '드가(Dega)'의 옥중(獄中)
우정과 탈옥시도를 담은 영화였다. 우여곡절로 가득한 두 사람의 애환(哀歡)을
감동적으로 다루고 있는 이 영화는 흥행과 비평에서 모두 성공을 거두었다.
'더스틴 호프만'이 '드가' 역을 맡아 열연(熱演)했다.
이후 '맥퀸' 은 <타워링>(The Towering Inferno, 1974)과 같은 재난(災難) 영화에
소방대장으로 출연하기도 했는데, 제작비 1천4백만 달러를 들인 이 작품은 미국
에서 1억1천6백만 달러의 흥행수익을 올렸다. 그런 그의 활발한 연기활동은 암(癌)
발병으로 인해 중단되는 듯 보였다.
하지만, 4년 후 긴 머리와 수염을 한 채 <민중의 적>(An Enemy of the People,
1978)에 출연해 팬들을 놀라게 했다. 하지만, 1979년 ''맥퀸' 의 몸에 암세포가
퍼져갔다. 그는 마지막 영화 <Tom Horn, 1980>과 <The Hunter, 1980>를
찍고, 짧은 삶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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