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페도클레스(Empedokles: 444 B.C.경)
엠페도클레스는 새로운 철학을 창출했다기보다는 이전의 철학자들이 가지고 있었던 사상을 결합시키거나 조화시키려고 노력했던 철학자였다. 파르메니데스는 존재하는 것은 존재하고, 이런 존재는 물질적인 어떤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엠페도클레스는 이러한 견해를 받아들였을 뿐 아니라, 파르메니데스의 기본사상 즉 존재하는 것은 무(無)로부터 나올 수도 무화(無化) 될 수도 없기 때문에 존재는 생겨날 수도 사라질 수도 없다는 파르메니데스의 사상을 받아들였다. 지금까지는 엠페도클레스와 파르메니데스의 견해는 완전히 일치한다. 그럼에도 엠페도클레스는 변화는 곧 환상에 불과하다는 파르메니데스의 견해는 더 이상 받아들일 수 없었다. 엠페도클레스는 존재는 사라지지도 생성되지도 않지만, 그럼에도 변화는 있다는 입장을 개진하고자 했다.
탈레스가 모든 사물의 궁극적인 원리를 물로, 아낙시메네스는 공기인 것으로 믿었음에도, 그들은 적어도 물이 흙이 되고, 공기가 물이 된다는 의미에서 한 종류의 물질이 다른 종류의 물질로 변화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엠페도클레스는 하나의 물질은 다른 물질로 변화될 수 없고, 만물의 기본이 되는 영원히 변화하지 않는 원소를 4종류, 즉 흙, 공기, 불, 물이 있다고 생각했다. 엠페도클레스는 이 4원소를 ‘만물의 뿌리’라고 부르고 있다. 이들은 만물의 뿌리이기 때문에 흙이 공기로 되거나 물이 불로 되는 일은 없다. 4종류의 물질은 변화될 수 없고, 이 4요소가 혼합해서 세계의 구체적 대상들이 형성된다. 예컨대 뼈는 흙2, 물2, 불4의 비율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대상들은 원소들의 혼합을 통해서 존재하게 되고, 분리를 통해서 존재하기를 멈춘다. 그러나 원소들 그 자체는 존재하게 되거나 사라지게 되지 않고 항상 불변인 채로 남아 있게 된다. 엠페도클레스가 일원론자가 아니라 다원론자로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은 파르메니데스의 견해와 변화의 사실 즉 감각의 분명한 사실을 조화시키려는 의도 때문이었다. 이러한 점은 아낙시만드로스나 데모크리토스와 같은 철학자들에게도 타당하다. 따라서 이들의 다원론적 입장은 이들의 출발점이 아니라 결과였다.
밀레토스 학파의 철학자들은 자연의 변화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했다. 예컨대 아낙시메네스는 만물의 원질이 공기라면 어떻게 해서 이렇게 다양한 물질이 존재할 수 있는가를 충분히 설명하고 있지 못하다. 다만 아낙시메네스는 공기가 가지고 있는 고유한 힘에 의해서 다른 물질로 변화한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러나 엠페도클레스는 능동적 힘이 요청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러한 힘을 사랑과 미움 혹은 조화와 부조화에서 발견했다. 사랑?미움은 정신적 특성을 지니고 있는 용어임에도 불구하고 엠페도클레스는 이 힘을 물리적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사랑은 4원소의 입자들을 함께 모으는 힘 즉 인력이고, 미움은 입자들을 분리시키며 대상의 존재를 해체하는 힘 즉 척력(斥力)이다.
엠페도클레스에 따르면 세계의 변화과정은 순환적이다. 순환이 시작할 때 이 세계는 사랑의 힘이 지배하고 있었으며, 따라서 원소들은 함께 결합해 있었다. 그러나 미움의 힘이 침투하기 시작했으며 분리의 과정이 시작되었다. 미움의 힘이 최고조에 도달했을 때 물의 입자들은 물의 입자대로, 불의 입자들은 불의 입자대로 함께 모여있게 된다. 그러나 사랑은 다시 힘을 발휘하게 되고 여러가지 혼합이 이루어지게 된다. 이러한 순환과정은 끊임없이 계속된다. 지금 우리가 알고있는 세계는 분리와 결합의 중간단계에 있는 세계이다.
운동에 대한 엠페도클레스의 설명은 비록 마음의 상태를 설명하는 개념을 도입했음에도 불구하고 운동은 끊임없는 순환과정을 거쳐가면서 발생한다. 이러한 혼합과 분리는 그 자체의 법칙에 따라서 일어난다. 이러한 의미에서 운동에 관한 엠페도클레스의 설명은 기계론적 색체를 띠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