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녀들이 하는 일을 “살풀이 한다”고 그럽니다. 이 말이 참 의미가 있습니다. ‘살(殺)’ 자는 ‘죽일 살’입니다. 백성들에게는 사람을 죽이는 원한과 분노가 있습니다. ‘살 풀이’는 그걸 풀어준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사람을 평화롭게 살게 한다는 것입니다.
목사는 말씀을 풀어 주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그들이 하는 설교를 ‘설(設) 풀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말씀을 풀어 백성들의 살(殺) 풀이를 해 줘야 합니다. 백성들의 한과 고통과 눈물과 아픔을 말씀을 풀어 살풀이 해 줌으로써 새로운 힘과 용기로 살아갈 수 있게 해 줘야 하는 겁니다.
사실 무녀들의 ‘살 풀이’는 사람을 살리는 게 아니라 오히려 죽이는 일입니다. 그러함에도 그들은 최선을 다합니다. 아슬아슬하게 작두를 타고 땀을 뻘뻘 흘리며 악을 쓰고 괴성을 지릅니다.
목사의 ‘설 풀이’는 사람을 살리는 일입니다. 그것도 영원히 살게 하는 일입니다.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기도의 밀실에서 씨름해야 하고 피같은 땀이 나오는 겟세마네의 경험을 하여 깊지만 분명한 소리를 외쳐야 합니다.
설교자는 성경 텍스트(text)와 백성들의 삶의 콘텍스트(context) 사이를 오고 갑니다. 시내산을 오르내린 모세처럼 백성들의 문제를 들고 텍스트로 가고 텍스트의 빛을 들고 백성들에게 돌아옵니다. 그렇게 전하는 텍스트의 빛을 통해 백성들의 살(殺)이 풀어지도록 해야합니다.
본문의 텍스트와 백성들의 콘텍스트를 오가며 설교자는 몸살을 합니다. 머리를 싸매고 가슴을 쥐어뜯으며 성도들의 ‘살’을 녹여주고자 눈을 부릅뜨고 살펴보고 눈물 흘리며 회개하고 성찰합니다. 그리고 문장 하나하나를 써 내려갑니다. 설교문은 그렇게 만들어져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