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에게선 항상 나물 냄새가 났다. 새벽부터 텃밭에 나가서는 갖은 풀들을 뜯어다 시장에 내다 파는 게 할머니의 일이었다. 상추, 깻잎, 도라지, 고사리 등등. 저녁나절 할머니의 손안에는 항상 풀냄새가 가득했다. 엄지손톱 밑에는 항상 흙 찌꺼기가 끼어있었다. 그 손을 제대로 씻지도 못한 채 저녁을 만드셨다. 나물 냄새가 부엌에서 피어올랐다. 어린 나는 할머니가 부끄러웠다. 할머니에게 나는 첫 손녀였지만 귀여움 받은 기억은 없다. 새파랗게 어린 손주들보다는 당신의 못난 자식 걱정이 항상 우선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할머니의 엄지와 꼭 닮은 내 엄지를 싫어했다.
할머니의 말은 우리와 조금 달랐다. 나베 가져온나, 상에 하시 놓아라, 쓰메끼리는 어디 있노, 사라 하나 더 가져온나, 밖에 추우니까 우와기 입고 나가라. 난 항상 다시 물어봐야 했다. 할머니 나베가 뭐예요, 하시가 뭔데요. 그때마다 막내 고모가 통역을 해줬다. 그 말은 죄다 일본어라고, 할머니는 일제 강점기부터 살아온 사람이라 그렇다고. 1934년 할머니가 태어난 해, 그때는 한글이 없던 시기라서 그렇다고. 막내 고모는 일본어를 공부하고 있었다.
막내 고모는 독했다. 전액 장학금을 받기 위해 하루에 두 시간 자는 시간 외에는 종일 책과 씨름했다. 그녀가 한 번 공부하기 시작하면 아무도 그 방에 들어갈 수 없었다. 때때로 방문 밖으로 알아들을 수 없는 일본어가 스멀스멀 흘러나왔다. 우리 엄마는 그 방문을 가끔 멍하니 쳐다봤었다. 엄마는 그 시대 대부분의 여자들이 그러했듯이 남아선호사상에 밀렸고, 그렇게 이모들과 함께 공장으로 밀려나갔다. 막내 고모는 엄마가 처음 만난 지성인 여자였을지도 모른다. 엄마는 나에게 말했다. 저렇게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 멋있지 않니, 너도 커서 막내 고모처럼 열심히 공부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렴. 그때 난 느껴버렸다. 엄마의 로망은 막내 고모라는 것을.
어느 날부터 막내 고모는 교회를 나갔다. 훗날 알게 된 거지만 결혼하고 싶은 남자네 집안이 크리스천이었다고 한다. 고모는 일본어를 공부하듯 성경을 읽었고, 찬송가를 외웠다. 일요일이면 할머니는 승복을 입고 암자에 갔고, 막내 고모는 성경을 들고 교회에 갔다. 교회가 뭐 하는 곳이냐는 나의 질문에 노래하는 곳이라고 답해주었다. 그래서 따라나섰다. 첫 교회였다.
“고모는 왜 교회에 가?”
“잘 살려면 하나님을 믿어야해.”
“할머니처럼 부처님 믿으면 못 살아?”
“하나님을 믿어야 나중에 천국 갈 수 있어.”
목사의 설교가 시작되었다. 내 나이 다섯 살.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들어오는 햇빛이 참 예뻤다. 아멘이라는 말이 낯간지러웠다. 고모는 살짝 고개를 숙인 채 눈을 감고 작게 읊조리고 있었다. 수면시간 두 시간, 제대로 먹지도 않고 공부한 탓에 너무도 가늘어진 목선, 헐렁해진 옷들이 어린 내가 보기에도 안쓰러웠다. 같이 기도해, 그래야 좋은 일이 생겨. 내 목도 고모의 목처럼 가녀리게 보이길 바라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기도가 끝나고 목사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나도 모르게 고모의 손을 꼭 잡았다. 본능적으로 지금까지 만나 본 적 없는 종류의 낯선 사람이라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꼬마 아가씨는 하나님 믿어요?”
“아니오.”
“안되는데? 하나님을 믿어야 천국 가는데?”
“우리 할머니는 부처님 믿는데 그럼 천국 못가요?”
“그럼, 당연히 못 가지. 할머니한테도 교회 와서 하나님 믿고 천국 가자고 말해줘요.”
“하나님은 모두를 사랑하신다면서요. 부처님 믿는 사람은 안 사랑해요?”
“다 사랑하는데, 하나님 믿어주는 사람만 천국에 보내줘요.”
옆에서 고모가 환하게 웃고 있었다.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고모의 손가락은 길쭉길쭉하게 뻗어있었다. 엄지가 뭉툭하지 않았다. 차가운 대웅전 바닥에서 부처님을 향해 절을 하고 있을 할머니가 떠올랐다. 당신의 자식을 사랑하느라 손녀는 항상 뒷전이었던 사람. 지금도 당신 자식들이 잘 되길 바라며 절을 올리고 있을 사람. 그렇게 착해도 본인을 믿어주지 않으면 천국으로 보내주지 않는 게 하나님이라고 말하는 그 목사님과, 그 목사님의 말씀을 경청하고 존경하고 있던 막내 고모.
이상향, 롤모델, 지금 당장은 하기 힘들지만 언젠가는 하고 해내고 말리라는 버킷리스트, 꿈같은 것들을 로망이라고 하는 게 아닐까. 난 그게 지금까지 유럽 어딘가에서 건너온 , 로맨스의 어원이 된 그 어떤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들이 쓰는 ‘로망’은 우리가 생각하는 ‘로망’이 아니었다. 그것은 오래된 통속소설, 애정담, 무용담으로 가득 찬, 조금은 공상적인 문학 장르의 이름이었다. 문득 고모의 방에서 흘러나오던 일본어들이 생각났다. Roumang. ろうまん. ロマン. 浪漫. 아, 낭만. 낭만의 일본식 발음이 로망이었다.
나는 글도 전공했지만, 일본어도 전공했다. 번역을 하고 싶었다. 막내 고모가 유창하게 쓰던 말을 나도 쓰고 싶었던 것이다. 엄마의 로망이 내 안으로 스며들었던 걸까.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니 막내 고모는 나의 로망이었다. 하지만 거기까지 일 뿐이다. 아주 오래된 로망. 그 어렸던 날 그 교회에서 깨진 나의 낭만, 나의 환상. 그리고 나에게 뭉툭한 엄지를 물려주고는 영영 볼 수 없는 곳으로 떠난 할머니. 아마도 낭만으로 가득 찬 천국에 있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나의 짧은 엄지. 스페이스 바를 누를 때마다 쿵, 쿵, 소리가 난다. 새로운 로망이 자라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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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는 치매와 파킨슨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장례식장에 목사가 왔습니다
'"다른 형제자매님들은 하나님을 안 믿으시나 봐요"
추모기도 전 30분 넘게 전도를 들어야만 했습니다
막내 고모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