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 1
- 장님 할머니
임화선
무궁화호 기차표를 들고
플랫폼을 빠져나가는
키 작고 뚱뚱한 장님 할머니가
손자 같은 친절한 지팡이에 매달려
소곤대는 목소리로 묻는다
무궁화가 새마을보다 더 빠르지
할머니! 새마을이 더 빠르지
어째서 무궁화가 더 빨라요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걸어가는
장님 할머니와
친절한 지팡이가 발걸음을 재촉하며
에스컬레이터로
플랫폼을 빠져나간다
장대비가 퍼붓는 날이었다
풍경. 2
- 저도 할머니와 할아버지
임화선
노인과 바다의 실제 모델을 닮은
저도楮島*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고혈압과 당뇨병을 가지고 있는
한 쌍 부부다
입원 중인 할머니와
병간호를 하는 할아버지
수술실에서 수술받아야 하는 날
할머니의 혈압과 당의 수치가 높아
수술도 받지 못하고
혈압과 당의 수치를 조절하며
혈압과 당의 수치만 내리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좌우지간 수술만이라도 할 수 있다면 하고는
할아버지의 구리빛 얼굴에 굵은 주름이 꿈틀거린다
암 병동 11층 입원실
지는 해가 방안을 훔쳐보고 있다
*저도著島: 경남 사천시 마도동 168번지/대통령 별장이 있는 곳
풍경. 3
- 인어 같은 사람
임화선
폐타이어 같은 두 다리는 감추고
꼭 인어같이 생긴 다리를
꼬리표처럼 달고
살아 움직이는 인어 같은 사람이
땅 쪽으로 누인 아랫배에 힘을 주고
양푼이 동전 그릇도 인어가 된 몸으로
인어 같은 사람에게 매달려간다
서글픈 동전 몇 닢이나
고작 천 원짜리 한 장 던져주는 사람들을 향해
녹음된 확성기에서는 유행가 가사가 흘러나온다
명절을 앞두고
사람들로 붐비는 어시장
동냥 그릇 속에는
인어가 살아 움직이고 있다
풍경. 4
- 노인과 비둘기
임화선
비둘기가 산딸기를 쪼아 먹는다
햇살은 늦은 겨울 문턱에서
아직 무거운 외투를 걸치고 있다
장기를 두고
신문을 보고
커피를 마시고
둘레둘레 둘러앉아 하릴없이
노인은 곁에서 훈수를 둔다
장기를 두고
신문을 보고
커피를 마신다
공원에는 땅거미가 지고
저녁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다
풍경. 5
- 그게 다른 거야
임화선
뉴스 시간에는 언제부터인가
강남이 떠오르다가
압구정이 떠오르는데
유명한 압구정동엘
몇 번 가 볼 일이 생겼다.
아무것도 다를 것이 없는데
차라리 오래된 아파트는
부산, 남천동
삼익아파트나 별반 다를 게 없는데
왜들 난리지
맞다
맞아
집값이 어마어마하게 비싸다고 하지,
그게 다른 거야
카페 게시글
(35) 예림 임화선
풍경.1,2,3,4,5/시/임화선
예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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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18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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