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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와 이력
미국의 화가, 사진작가, 영화감독. 본명은 엠마누엘 라드니츠키(Emmanuel Radnitzky)로 1890년 8월 27일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태어났다. 1913년 뉴욕에서 열린 아머리 미술박람회(Armory Show)에서 유럽의 아방가르드 미술작품들, 특히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의 <계단을 내려오는 나부(Nu descendant l'escalier)>에 크게 감명을 받는다. 이듬해인 1914년 그는 스스로 '빛의 인간'이라는 뜻을 지닌 '만 레이(Man Ray)로 개명한다. 1920년 마르셀 뒤샹과 함께 누드 모델의 신체를 입체영상으로 촬영하는데, 그 필름들은 소실되어 남아있지 않다. 1921년 프랑스로 건너간 만 레이는 앙드레 브르통(André Breton), 트리스탄 짜라(Tristan Tzara), 자크 리고(Jacques Rigaut), 필립 수포(Philippe Soupault), 프랑시스 피카비아(Francis Picabia) 등 아방가르드 문인, 예술가들과 교류하며 영화작업을 함께 한다. 1920년대에서 1930년대까지 프랑스에서 거주하며 창작활동을 하던 만 레이는 1940년대에는 미국으로 건너가 헐리우드에 정착하는데, 헐리우드 주류 영화사들의 연출 제안을 받기도 하지만 그에게 영화는 예술적 표현의 가장 중요한 매체였으며 창작의 즐거움을 바탕으로 하지 않는 영화작업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기에 단호히 거절한다. 1951년 다시 파리로 건너가 여생을 보내다가 1976년 11월 18일 86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다.
만 레이에게 영화는 자신의 예술적 구상을 위한 가장 효과적인 표현 수단이었으며, 산업적 시스템을 끝까지 거부한 채 '카메라 없는 영화', '레이요그램 영화(Ciné-rayogrammes)' 등 기존의 영화제작 시스템을 완전히 전복하는 극단적인 실험을 통해 자신만의 독창적이고 실험적인 영화작업에 매진한다. 1923년의 데뷔작 <이성으로의 회귀>(Le retour à la raison, 1923)를 비롯해 <에막-바키아>(Emak-Bakia, 1927), <불가사리>(L’étoile de mer, 1928), <데 성의 미스테리>(Les mystères du château de Dé, 1929) 등 1920년대에 발표한 작품들은 관습적 내러티브를 깨고 실험적 촬영기법을 통해 완성한 대표작들이다. 또한, 1930년에는 흰색 무도회복장을 한 관객들의 의상 위에 조르쥬 멜리에스(Georges Méliès)의 영화들을 영사함으로써 규격화된 영화상영 방식을 뛰어넘는 '확장 영화(Expanded Cinema)'라는 개념을 제시하기도 한다.
이후 1930년대에 만 레이는 16mm 필름, 9.5mm 필름, 컬러 필름 등 새로운 포맷의 필름들을 가지고 피카소(Pablo Picasso), 폴 엘뤼아르(Paul Eluard), 리 밀러(Lee Miller), 도라 마르(Dora Maar) 등 자신과 지인들을 일기와 자화상 형식으로 담아내는 새로운 방식의 영화작업을 하는데, <랑드의 레이싱>(Courses Landaises, 1935), <자화상>(Autoportrait, 1936), <가룹>(La Garoupe, 1937)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또한, 1930년 작 <두 여인>(Deux Femmes, 1930)은 레즈비언과 포르노그래피에 관한 영화적 실험이다.
한편, 만 레이는 자신의 연출작품 이외에 르네 클레르(René Clair)의 <휴식 시간>(Entr’acte, 1924)과 장 콕토(Jean Cocteau)와 (Hans Richter)가 공동연출한 <8 x 8: 8악장의 체스 소나타>(8 X 8: A Chess Sonata in 8 Movements, 1957) 등에 배우로 출연하기도 했으며, 페르낭 레제(Fernand Léger)와 더들리 머피(Dudley Murphy)가 공동 연출한 실험영화 <발레 메카닉>(Ballet mécanique, 1924)과 마르셀 뒤샹의 <빈혈증 영화>(Anémic cinéma, 1926) 등에 촬영감독으로 참여하기도 한다.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 등 아방가르드 미술운동과 전위적 사진기법에도 매진했던 만 레이는 기존의 영화제작 방식을 철저히 거부한 채 자신만의 실험적 영화미학을 추구했다. 형식주의적 특성을 지닌 영화적 실험으로 그의 작품은 대중적인 관심을 끌지는 못했고 오랜 동안 널리 공개되지 못하다가 그가 죽은 지 10년이 지난 후인 1986년 파리에서 전작 회고전이 열리면서 그 작품성이 재조명되기 시작한다.
<이성으로의 회귀>(Le retour à la raison / Return to Reason, 프랑스, 1923, 단편, 실험영화)
<젊은 필름은 무엇을 꿈꾸는가?>(À quoi rêvent les jeunes films? / What Do Young Films Dream About?, 프랑스, 1924, 실험영화)
<발레 메카닉>(Ballet mécanique, 프랑스, 1924, 단편, 실험영화, 촬영)
<휴식 시간>(Entr’acte / Intermission, 프랑스, 1924, 단편, 배우)
<빈혈증 영화>(Anémic cinéma / Anemic cinema, 프랑스, 1926, 단편, 실험영화, 촬영)
<에막-바키아>(Emak-Bakia, 프랑스, 1927, 단편, 실험영화, 연출/촬영)
<불가사리>(L’étoile de mer / The Starfish, 프랑스, 1928, 단편, 실험영화, 연출/촬영)
<데 성의 미스테리>(Les mystères du château de Dé / The Mysteries of the Chateau de De, 프랑스, 1929, 단편, 다큐멘터리, 연출/촬영)
<두 여인>(Deux Femmes / Tow Women, 프랑스, 1930, 단편, 실험영화)
<랑드의 레이싱>(Courses Landaises, 프랑스, 1935, 단편, 실험영화/다큐멘터리)
<영화적 정신착란의 시뮬레이션 실험>(Essai de simulation de délire cinématographique, 프랑스, 1935, 실험영화)
<자화상>(Autoportrait / Self-portrait, 프랑스, 1936, 단편, 실험영화)
<가룹>(La Garoupe / The Garoupe, 프랑스, 1937, 단편, 실험영화)
<8 x 8: 8악장의 체스 소나타>(8 X 8: A Chess Sonata in 8 Movements, 미국, 1957, 배우)
<아름다운 파리>(Paris la belle / Paris the Beautiful, 프랑스, 1960, 단편, 다큐멘터리, 촬영)
『맛있는 들』(Les Champs délicieux, 1922)
『회전문』(Revolving doors, 1926)
『폴 엘뤼아르와 편안히』(Facile with Paul Éluard, 1935)
『사진은 예술이 아니다: 12장의 사진』(La Photographie n’est pas l’art: 12 photographies, 1937, 공저)
『어른들을 위한 알파벳』(Alphabet for adults, 1948)
『자화상』(Autoportrait, 1963/1964/1986)
첫댓글 솔롱고님이 올리신 그림이 하나도 보이지 않아서 작가를 검색해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