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츠그쯔르트 영화 리뷰 003.
킥애스: 영웅의 탄생 (Kick-Ass)
※ 본문에 스포일러가 상당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킹스맨 : 시크릿 에이전트]가 어느새 500만 관객을 돌파했다. B급 감성으로 똘똘 무장한 스파이 첩보물이 국내에서 이렇게 폭발적인 반응을 거두리라고는 그 누구도 쉽사리 예상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킹스맨]을 두고 B급 영화라고 단정짓기는 힘들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킹스맨]을 전형적인 헐리우드 영화라고 바라보기도 힘들 것이다. 물론 여기에서 말하는 B급의 정의는 고기에 품질을 매기듯 품평하는 투의 급수는 아니다. 과거 끼워팔기 식으로 주류 영화에 덧붙여서 만들어지던 B 무비들은 열악한 제작비 탓에 조악한 퀄리티를 자랑했지만, 제작사의 압박은 전혀 없었기에 감독이 원하는 대로 창작이 가능해 의외로 우수한 영화들이 많았다. 그렇게 만들어진 신선하면서도 다소 허접한 영화가 하나의 물결을 이루어 B 무비라는 프레임이 만들어졌는데, 이러한 조류는 과거와는 그 형태에 있어서는 차이점을 보이지만 아직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나 로버트 로드리게즈 감독등은 대규모 자본등을 지원받음에도 불구하고 의도적으로 B급을 표방하는 성향이 있다. 그로 인해 B급을 표방하는 A급 영화라는 새로운 틀이 만들어지고 있으며 매튜 본 감독 또한 이러한 새로운 틀 속에 놓여 있는 감독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그가 [킹스맨]에서 선보인 독특한 연출 방식은 사실 그의 이전작들에서도 충분히 선보여졌다. [엑스맨 : 퍼스트 클래스]의 경우 기존에 시리즈가 존재하는 작품이라 매튜 본 감독이 마음대로 뒤틀기는 힘들었겠으나, 그 전작인 [킥애스]나 [스타더스트]의 경우, 매튜 본 감독 특유의 센스가 적잖이 들어간 영화임에 틀림없다. [스타더스트]의 잔혹성 또한 무시할 수는 없지만 액션적인 면에서 더 화려한 면을 보이는 것은 [킥애스]일 것이다. 어찌보면 [킹스맨]에 이르기까지 [스타더스트]에서 출발해 [킥애스]라는 계단을 밟고 마침내 [킹스맨]에 이르른 듯한 느낌 또한 받는다.
[킥애스: 영웅의 탄생]은 마크 밀러 원작의 작품으로 마크 밀러의 색깔이 듬뿍 묻어 나 있는 작품이다. 이 영화는 기존의 슈퍼 히어로 영화들이 갖고 있는 프레임을 의도적으로 뒤틀고 비꼬는데, 이러한 특성은 매튜 본 감독의 차기작인 [킹스맨]에서 스파이 영화들의 클리셰들을 은근히 뒤틀어 버리는 식으로 다시 한번 표현된다.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데이브'(킥애스)는 영화 시작부터 그의 찌질한 면모를 톡톡히 선보인다. 이는 여러 히어로 영화들에서 보여지는 일종의 클리셰로 스파이더맨의 피터 파커나 그 밖의 히어로들이 일상 생활에서는 그리 큰 힘을 쓰지 못한다는 정형화된 패턴이기도 하다. 하지만 킥애스와 다른 영웅들의 차이점은 그에게는 슈퍼 파워 따윈 영화의 종료시까지 존재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은 영화의 초반부에 데이브가 친구들과의 수다를 떠는 부분에도 등장한다. "왜 아무도 슈퍼 히어로가 되려하지 않지?" 라는 질문에 데이브의 친구는 "슈퍼 히어로는 슈퍼 파워가 있어야 하는 데 그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니까."라고 대답한다. 영화 초중반부에 데이브가 수술을 통해 고통을 거의 느끼지 못하는 무통 상태의 몸을 갖게 되지만, 이 또한 집단 린치를 당하는 씬에서 그가 "매우 아팠다."라고 표현하는 것으로 보아 실질적인 능력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킥애스는 영화의 말미까지 때때로 중요한 역할을 맡지만 이렇다한 화려한 액션씬을 선보이지는 않는다. 이 영화에서 대부분의 시각적 즐거움, 혹은 시각적 충격을 주는 캐릭터는 '힛걸'이다. 클로이 모레츠가 연기한 '힛걸'은 그 존재만으로도 기존 히어로 영화들과 동떨어져 있다. 생명을 존중하는 통상적인 히어로들과 달리 '힛걸'은 적은 사지를 절단해버리는 등의 잔혹함을 보인다. 더구나 이 캐릭터는 그간 수많은 영웅물에서 보호의 대상으로 등장하는 '여성'과 '아이'라는 속성을 모두 갖춘 캐릭터이다. [킥애스]에 히로인이 있다면 린지 폰세카가 연기한 데이브의 여자친구 역이 될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힛걸'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원작 만화, 혹은 영화 상의 속편을 보면 그러한 부분은 더욱 뚜렷하다. 더구나 이 영화의 주인공은 어디까지나 킥애스다.) 영화상에서 가장 활약을 하는 대상이 '아이 + 여성', 어쩌면 히로인인 캐릭터인데다가 심지어 그 캐릭터가 그닥 정의로워 보이지도 않는다는 점에서 기존의 클리셰들은 와르르 무너진다. 실제로 빅대디와 힛걸은 자신의 복수를 위해 움직일 뿐이고, 디마코가 잔혹한 악당이기 때문에 그들의 행동에 당위성이 부여될 뿐이지 그들이 다른 이들을 구하기 위해 혹은 도시를 지키기 위해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영화를 자세히 보면, 킥애스가 영 활약을 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초중반부에 힛걸이 주로 킥애스를 도와준다면 후반부에서는 되려 킥애스가 힛걸을 도와주는 상황이 많이 비춰진다. 힛걸이 킥애스를 위기에서 구원하는 씬은 대표적으로 두 번 등장하는데, 중반부 라줄의 집에서 킥애스가 살해당할 뻔 했을때, 그리고 디마코의 부하들에게 집단 린치를 당하고 화형되기 직전에 힛걸의 도움으로 킥애스는 목숨을 구한다. 하지만 후반부에 들어서게 되면 반대로 힛걸이 킥애스의 도움을 받게된다. 첫째로는 총알이 떨어져 디마코의 부하들이 들고온 바주카로 끝장날 위기에 처했을때, 두번째는 디마코와의 일대일 결전에서 패배해 머리에 총구가 겨눠졌을 때 두 차례 모두 킥애스의 도움으로 힛걸은 살아남는다. 이는 평범한 주인공의 영웅으로의 성장담을 다루는 영화이면서 결국 중요한 씬에서는 주인공이 활약한다는 기존 히어로 영화들의 클리셰를 수용한 부분이 될 것이다. 하지만 아이러니 한 점은 위기가 일어나기 전의 대부분의 상황, 예를 들어 디마코의 수많은 부하들을 힛걸이 모두 제거한 점, 그리고 최종 보스인 디마코와의 일대일 결전 또한 힛걸이 치루었다는 점에서 보았을때 결국 실질적인 활약은 힛걸이 모두 처리해 범인 킥애스의 한계점을 뚜렷히 드러내었다. 킥애스는 결국 자신의 능력 이상의 일을 해내는 엄청난 성장을 보이지는 않았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한계 내에서 영웅적인 면모를 보이는 소시민적 영웅으로서 거듭난 것이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킥애스의 나레이션이 간간히 깔리는데, 이는 관객들로 하여금 킥애스와의 시점을 일치시키려 한 감독의 의도가 아닌가 생각된다. 결국 영화를 바라보는 관객들은 평범한 일반인들일 것이며 때로는 찌질하면서도 때로는 용기를 내곤하는 그러한 사람들일 것이다. 영화의 중반쯤 킥애스가 폭행을 당하는 청년을 구해주며 '많은 사람들이 한사람이 맞는 걸 구경만 하고 있는데, 그걸 막으려는 내가 미친거야?'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오는가 하면, 영화의 초반부 '왜 아무도 슈퍼 히어로가 되려 하지 않지?'라고 말하는 장면등은 감독이 관객들로 하여금 '슈퍼 히어로'는 되지 못할 지언정 '히어로'는 되어보라는 일종의 메세지로 여겨진다. 원작이 아무것도 바뀐게 없이 절망적인 데이브의 삶으로 끝나는 반면 영화는 싸움에서도 일상에서도 승리를 거둔 해피 엔딩인 이유도 어쩌면 그러한 주제의 연장선 상에 놓여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영화에서 악당의 존재도 매우 독특하고 인상적이다. 지나칠 정도로 잔혹한 면모를 보이는 디마코는 일상 생활에서는 때때로 허술한 면모를 보이며 허당끼를 보인다. 부하에게 살인을 명령한 직후 아들과 영화관으로 향하며 아이스 슬러쉬와 사탕을 먹겠다는 둥 카리스마가 깨지는 발언을 한다던지, 킥애스를 잡으러 길거리에서 킥애스 복장을 한 사람을 의심없이 쏴죽이고는 혼자 만족하는 모습들은 잔혹한 모습과 대비되어 허접스러운 느낌마저 들게 한다. 더구나 극에서 그는 빅 대디와 힛걸은 커녕, 킥애스의 꼬리조차 제대로 잡지 못한다. 영화상에서 그가 죽여나가는 것은 자신의 조직과 관련된 사람들이거나 무고한 시민 뿐이다. 고작 작전이라고 짜는 것들은 모두 빅대디와 힛걸이 앞서 행동하는 탓에 매번 당하기만 한다. 오히려 악당측에서 활약하는 것은 가장 찌질한 캐릭터인 레드 미스트이다. 레드 미스트는 매번 아버지의 사업을 물려받을 상상만 하는 철없는 꼬마다. 전투 능력도 킥애스보다 떨어지고 하는 행동 또한 모자라보인다. 하지만 그의 작전이 결국 가장 주인공 일당을 추적하고 위기로 모는데 큰 영향력을 미쳤으며, 빅 대디를 제거하는 데에 일조했다.
최후에는 디마코가 사망하고 레드 미스트는 후속편을 도모하며 영화가 마무리 되는데, 우습게도 이는 킥애스의 여러 요소에서 모티브를 삼은 배트맨의 진행 방향과 비슷하다. 초기 배트맨이 주로 마로니나 팔코니 등 지역의 마피아들과의 대결을 그리다 어느 시점부터 슈퍼 빌런들이 등장해 '히어로vs마피아' 구도에서 '히어로vs슈퍼빌런'의 구도로 이동하게 된다. [킥애스]도 레드 미스트가 최후에 각성하게 됨으로서 '히어로vs마피아' 구도에서 '히어로vs 슈퍼빌런'의 구도로 이동하게 된다는 점에서 유사점을 보인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배트맨의 캐릭터를 표방한 '빅 대디'는 구도가 전환되기 전 마피아 그룹에게 살해되어 버렸으니 배트맨과는 사뭇 다른 길을 걷는 다는 것은 분명하다. (여담이지만 배트맨에서는 킥애스와 반대로 사이드킥인 '로빈'이 '슈퍼 빌런' 중 한 명에게 살해당하는 에피소드가 있다.)
[킥애스]는 매튜본 감독의 특성을 잘 드러내는 영화라 생각이 드는데, 매튜 본 감독의 영화에는 아마 두가지 요소가 대표적일 것이다. 그것은 아이러니한 연출 방향과 화려한 OST 라인업이다. 아이러니한 연출 방향은 위에서 충분히 언급한 기존의 클리셰를 비꼬는 데서 비롯하는 것도 존재하지만 그 밖의 상황적 아이러니 또한 자주 보여진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유혈이 낭자한 잔혹한 장면에 신나는 OST를 섞어 시각적 잔인함에 대한 거부감은 줄이면서도 또, 시각적으로 접하는 상황적 느낌과 음악을 통해 완화된 감정적 느낌의 괴리에서 오는 정서적으로 느껴지는 잔인함이 부각되는 느낌을 받게 하는 연출이다. 그 밖에도 예상된 패턴이 주어진 상황에서 전혀 생뚱맞은 상황이 연출된다던지 예상을 깨는 행동을 하는 캐릭터들의 모습은 언뜻 B급 감성의 느낌이 느껴지는 코미디적 연출로 느껴지기도 한다. 매튜 본 감독 영화의 또다른 특징은 OST를 적재적소에 잘 배치한다는 점이다. 킥애스의 전투씬에 등장하는 Prodigy의 Omen이나 힛걸의 전투씬에 등장하는 Banana Splits와 Bad reputation, 그리고 빅 대디의 연출씬에 등장하는 '28주 후'의 ost등은 새로이 만들어진 ost가 아닌 기존의 노래들을 적절히 잘 활용한 대표적인 예시가 아닌가 생각이 든다.
아쉽게도 [킥애스]는 국내에서 큰 흥행을 하지 못했다. 국내를 비롯 전세계에서 큰 흥행을 하지 못했다. 당시까지만 해도 큰 티켓 파워가 있는 배우들도 아니였고, 매튜 본 감독도 그리 유명한 감독이 아니었다. 하지만 [킥애스]라는 영화는 매튜본 감독의 정체성을 또렷히 하는데 큰 기여를 한 작품임에는 틀림없고 이것이 차후 그가 [엑스맨 : 퍼스트 클래스], 그리고 [킹스맨 : 시크릿 에이전트]의 감독으로 발탁되게 만든 주요한 요인이 되었다. [킥애스]의 후속작은 매튜 본 감독이 아닌 다른 감독이 연출을 맡아 어설프게 매튜 본 감독의 느낌을 따라하는 꼴이 되어 버렸는데 여러모로 아쉬운 작품이 아닐수 없다. 3편이 제작될지, 또 제작되더라도 어떤 감독이 해당 작품의 연출을 맡게 될지는 알수 없으나 매튜 본 감독이 다시 돌아온다던가 혹은 또다른 색다른 감성을 가진 신예 감독이 해당 작품의 연출을 맡아 또다른 쇼킹을 선보인다면 영화의 팬으로서 그만한 행복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