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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인사를 많이 하네요. 옆에 있는 분을 보면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네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네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6월달인데 벌써 여름 날씨가 돼서 올여름은 얼마나 무더울지 다들 걱정 걱정하는데 요즘 세계적인 기후를 보면 50도 60도 70도까지도 지구가 진짜 이게 정상이 아닌 것을 우리가 보게 되는데요. 작은 것 하나 우리 탄소 금식하면서 하나씩 하나씩 실천했던 거 있잖아요. 소그룹 모임할 때 한번 좀 우리끼리 결단하면서 한 가지씩이라도 나 같은 사람 한 사람이 뭐 한들 되겠어 이게 아니라요. 나 한 사람부터 시작한다는 생각으로 한번 교회에서 여러분들의 삶의 자리에서 꼭 실천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우리가 하는 그 작은 날갯짓이 나비 효과가 되어서 정말 이 시대가 우리 다음 세대들에게 우리가 우리가 누렸던 것들을 그대로 전해줘야 되는데 그렇지 못하고 있는 이건 우리가 참 지금 뒤돌아봐야 할 상황인 것 같습니다.
지난주에는 우리가 안디옥 교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죠. 초대교회 안디옥교회 참 그 안디옥 교회에 대한 말씀을 묵상하고 또 깊이 생각할수록 우리 교회가 안디옥 교회와 같은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이렇게 여러분들과 같이 나눴었는데요. 오늘은 또 데살로니카 교회라고 하는 교회를 한번 만나보려고 합니다.
사도바울이 두 번째 선교 여행을 할 때 이 데살로니카 교회가 세워졌는데요. 지도를 잠깐 보겠습니다. 사도 바울이 3차 전도 여행을 했는데 그중에 두 번째 전도 여행을 할 때의 모습입니다. 안디옥교회 이쪽 가에 있는 안디옥교회에서 출발해서 쭉 이렇게 한 바퀴 돌아오는 이 여정인데요. 그중에서 이제 지금 보시면 여러분들이 이 지도를 보실 줄 아시겠지만 저쪽 지금으로 마케도니라고 쓰여 있는 데가 그리스죠. 그쪽이 유럽이잖아요. 이쪽은 아시아고 근데 유럽으로 넘어가는 데가 레아폴리라고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레아폴리는 유럽을 들어가는 관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관문 네아폴리를 지나서 이제 빌립보 아볼로니아 데살로니카 이렇게 이제 행하는데 이제 그 가운데 데살로니카에 도착을 했어요.
근데 그 데살로니카에 도착을 해서 3 세 번의 안식일 동안 이제 회당에서 성경을 각론합니다. 그런데 이때 놀라운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은혜의 역사가 일어나요. 그런데 또 반대로 유대인 적대자들이 또 일어나서 강력하게 반대하고 저항하면서 결국에는 3주 만에 저 데살로니카에서 베레아 그리고 아테네를 지나 고린도라고 하는 곳으로 가게 됩니다. 그래서 이제 고린도라고 하는 지역에서 사도바울이 이제 1년 넘게 사역을 하는 과정 속에서 3주 동안 짧은 기간이었지만 말씀을 전한 이 데살로니카 지역에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남을 봤거든요. 복음을 받아들이고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 되는 모습을 봤어요.
그런데 자기가 핍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지금 도망가듯이 지금 길을 움직였는데 이 데살로니카의 성도들에 대한 불안불안하고 왠지 애타는 심정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데살로니카에 대한 소식을 듣게 됩니다.
근데 그 소식이 너무 감사한 소식인 거예요. 너무 짧은 기간 복음을 전했지만 그 짧은 기간 그리고 지금 그 복음을 받아들인 이후에 짧은 기간 지났는데 그 데살로니카 교회에 놀라운 일이 일어나고 있다라고 하는 소식을 듣고 거기에 이제 글을 쓴 편지가 바로 이 데살로니카 전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근데 그 소식은 어떤 소식이었냐면 지금 보시면 데살로니카라고 하는 그 도시를 중심으로 그 위에 마케도냐라고 써 있죠. 마케도니아 지역이 있고요. 또 여기 고린도라고 하는 거기 여기 보면 아가야 지방이라고 여기는 그렇게 돼 있는 우리로 따지면 전라도 경상도 이런 식으로 지방이 이렇게 이렇게 빠져져 있는데 근데 이 데살로니카 짧은 복음을 들은 데살로니카가 1년 반 정도의 시간 짧은 기간이 지났는데 그 조그만 사람들이 이 마게도냐와 아가야 지방의 영향력을 끼치는 교회가 되었다고 하는 이야기를 하거든요.
좀 더 자세하게 이 데살로니카 지역에 대한 배경을 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데살로니카는요. 지금도 이 그리스라고 하는 나라에 2대 도시 정도 될 정도로 굉장히 규모가 있는 그런 도시입니다. 사도 바울이 주후 50년경에 이 마귀에도냐 지방의 첫 방문지 빌립보를 방문한 이후에 이제 들린 항구 도시입니다.
근데 여기는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군사적으로 선교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거점과도 같은 도시입니다. 당시에 이 로마 지금 저쪽에 보면 이렇게 하이같이 생긴 이탈리아 로마 쪽에서 이 데살로니카 아볼로니아 빌립보 네아폴리에서 비잔티움까지 이렇게 쭉 이어지는 도로를 만들었는데 지금으로 따지면 고속도로 같은 아주 큰 대로를 만들고 이제 거기에서 군사적인 용도로 사용할 뿐만 아니라 무역 상인들이 이용하는 이제 상인들의 길로 만들었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이 대로상 중간에 위치해 있는 이 데살로니카는 굉장히 교통의 요지입니다.
지금도 교통의 중심지가 되는 도시들은 발전하잖아요. 그처럼 데살로니카라고 하는 이 지역도 군사적으로도 보호를 받고 상업적으로도 상인들이 많이 왕래를 하니까 굉장히 부유하고 그리고 번영된 그러한 도시였습니다.
근데 여러분 번영된 도시 대부분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 번영된 도시에는 뭐가 넘쳐날까요? 거기에는 타락이 넘쳐납니다. 일단은 이 당시에는 신 문화가 있었잖아요. 많은 신들을 섬기는 문화가 있다 보니까 수많은 신상들을 세워놓고 이 데살로니카 사람들이 온갖 우상숭배를 하는 문화가 가득했던 거예요. 그러니까 도시가 경제적으로 풍요롭고 또 군사적으로 안정되어 있고 이런 상황 속에서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타락의 극치를 보이고 있는 도시가 이 데살로니카였습니다.
그런데 이곳에서 사도 바울이 이곳에 도착해서 이 사람들을 이렇게 보고 나서 그 사람들에게 맞는 복음을 증거하는데 바로 임박한 주님의 재림에 대한 이야기를 그들에게 선포합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시고 그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 죽으셨고 부활하셨고 지금 승천하셨지만 곧 오십니다. 오시는 날에는 심판이 있습니다. 명확한 임박한 주님의 재림을 선포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돌아오기를 권했죠.
그런데 놀라운 일은 이 3주 만에 이 성경의 강림 속에서 각론 속에서 많은 이들이 복음을 받아들이고 환란과 그때는 복음을 받아들인다는 것 자체가 그냥 복된 기쁜 소식으로만 끝나는 게 아니라 삶의 변화가 일어날 수밖에 없었거든요. 그때는 핍박이 있는 시대니까요. 복음을 받아들임 때문에 손해 보고 자기가 포기해야 될 일들이 많았던 시대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짧은 기간이었는데 그들이 짧게 들은 복음 짧은 교회의 그 역사 가운데 마게도냐 그리고 아가야 지방까지 영향을 미치는 놀라운 역할을 감당하는 교회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사도바울이 이곳에서 전한 복음의 메시지가 뭘까? 사도행전 17장에 보면 지금 이 이 지금 상황에 대한 이야기가 조금 더 확장되어서 이야기가 되는데요. 사도행전 17장 4절에 보면 이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이 나오는데 먼저 그 복음의 내용이 뭐냐면 구약 성경에 약속된 메시아 메시아가 죽을 것이고 부활할 것이다라고 하는 내용에 대해서 구약 성경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난 다음에 바로 예수님이 그 메시아 그리스도로 이 땅에 오셨다. 그리고 임박한 재림에 대한 이야기를 그들에게 선포한 것입니다.
근데 이 짧은 기간 아주 집중적으로 말씀을 전했지만 그 복음에 반응하는 사람들이 바로 이 사람들이에요.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 그리고 적지 않은 귀부인들이 열매로 나타났습니다. 여기서 경건한 넬라인 그들은 이 헬라에 많은 종교들이 있었는데 나름대로 종교성을 가지고 그 종교를 따라다니면서 뭔가를 잡으려고 했던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은 염증을 느꼈고 결국에는 유대인들의 회당까지 오게 된 거예요.
회당이라는 곳에서는 그 당시에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는 장소였기 때문에 여기에는 좀 뭔가 다른 게 있지는 않을까 좀 그런 기대하는 마음으로 그곳에 있었던 사람이겠죠. 그런데 역시 회당에 와서도 그들은 온전히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빛도 소망도 없이 그렇게 살아가던 사람들이 이 사도바울의 전도팀 일행을 만나고 나서 복음을 전해듣고 나니까 그들 안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게 된 거예요. 복음을 받아들이고 이제 바울과 실라를 따르기 시작했다는 거죠. 이 사람들로 인해서 이제 데살로니카 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시기하여서 불량배들이 이 유대인들이 이제 습격을 해가지고 더 이상 바울 일행이 이 데살로니카에 머물 수 없는 위기의 상황이 되었습니다. 교회가 좀 건강하게 세워지려면 성도들을 전도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전도해놓고 그 사람들을 양육해서 복음을 분명하게 알게 하고 하나님의 자녀로 백성으로 살아가도록 이렇게 양육하는 기간이 충분히 필요한데 갓 태어난 갓난 아이와 같은 이 교회를 성도들을 두고 그곳을 떠나야 하는 사도바울의 마음은 어땠을까?
마치 여러분 갓난 아이를 출산하고 난 이후에 아이에게 엄마가 젖을 제대로 먹이지도 못하고 생이별하는 것 같은 그런 아픔을 느끼지 않았을까라고 한번 생각을 해봅니다. 그래서 다시 지도로 넘어가면 데살로니카에서 이제 도피하듯 피해서 쭉 베레아 아테네를 지나 고린도라고 하는 지역에 머물러서 이제 거기에서 또 고린도 지역에 복음을 전하면서 이제 교회를 세워가는 이제 여정을 걷는데 여기에서는 좀 시간이 그래도 조금 더 깁니다. 1시간 1년 반 정도의 시간을 보내면서 그곳에서 사역을 감당해요.
근데 늘 사도바울의 마음에는 그렇게 짧은 시간 갓 태어난 아이와 같이 세워놓은 이 데살로니카 교회가 늘 걸렸을 거예요. 그쵸?
그런데 이때 이 데살로니카에 대한 소식을 전해듣게 되었고 그 소식에 대한 글을 쓴 것이 이 데살로니카 전서라고요. 이제 내용을 한번 들어가 봅니다. 1절을 보면 이게 누가 쓰는 편지인지 나오죠. 이제 발신자가 나오는데요.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라고 이야기합니다. 여기서 실루아노라고 하는 이름이 약간 우리가 어색한 이름인데요. 헬라식 표현입니다. 신라 바울과 실라 할 때 신라의 헬라식 표현이 실루아노입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원래 1차 전도 여행 때는 함께 했다가 1차 전도 여행 마치고 2차 전도 여행을 시작할 때쯤 해서 이 의견이 부닥치게 되잖아요. 마가를 데리고 가느냐 안 데리고 가느냐 결국 그 의견이 대립되는 가운데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가고, 바울은 신라와 팀을 이루어서 이제 2차 전도 여행을 떠나지 않습니까?
그때 이 신라 그리고 디모데 이 사람들과 함께 이 데살로니카에서의 그 사역을 감당하면서 교회를 세웠던 사람들입니다. 이 편지는 지금 사도바울이 기록하고 있지만 동역자들과 함께 지금 이 일들을 하고 있다라고 하는 바울의 겸손과 배려를 느낄 수 있어요. 이 편지를 받는 대상자는 누굽니까? 데살로니카인의 교회입니다.
근데 이 데살로니카인의 교회 이 사람들을 여기 4절에 보면 좀 이렇게 표현하고 있어요. 같이 한번 읽어볼까요? 시작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 아멘 데살로니카 성도들을 향해서 사도바울이 뭐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냐면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다라는 말은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았다라는 말로도 의미합니다.
그 당시에 그들이 살아가고 있는 그 지역은 풍요로울지 모르지만 우상숭배가 가득하였고 그리고 자기중심적인 삶으로 가득 찬 그러한 삶의 현장 속에서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아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의 모임이 데살로니카 교회를 이루었다는 것이죠.
여러분 교회라고 하는 헬라어는 에클레시아입니다. 부름 받은 사람들 불러 나오게 한 사람들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성경의 최초의 교회는요. 출애굽에서 우리가 최초의 교회의 시작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신명기 4장 37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내 조상들을 사랑하신 거로 그 후손이 너를 택하시고 큰 권능으로 친히 인도하여 애굽에서 나오게 하시며 출애굽 때의 이야기를 이야기하고 있죠. 하나님이 사랑하셔서 택하셔서 애굽에서 불러나오게 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광야에 교회를 이룬 겁니다.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사람들의 모임, 그게 바로 교회예요. 에베소서 1장 4절에 보면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성경은 우리에게 계속적으로 택했다 라고 하는 말을 반복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지금 신앙생활을 여러분들이 내가 선택해서 다닌다. 내가라고 하는 그런 의미를 가지고 계십니까? 사랑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아무런 자격 없는 우리를 하나님이 먼저 사랑하셨고 택하셨기에 우리는 구원받은 자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교회의 일원으로서 이렇게 함께 모여 예배할 수 있는 그 자체가 하나님의 사랑받은 자라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길 원합니다. 우리가 오늘 처음에 행복이라는 찬양을 드렸지만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것이 우리에게 큰 행복이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로또 1등에 당첨하는 게 그렇게 부러우신가요? 아니면 내 자녀가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에 들어가는 게 그렇게 자랑스러우신가요? 그건 잠깐이에요. 서울대학교 들어간다고 다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사나요? 로또 1등 당첨한 사람들은 다 그냥 너무 행복하던가요? 그 뒷이야기를 분명히 우리는 알아야 돼요. 그렇지 않아요? 얼마 전에 수능 만점자가 살인 사건 저질렀던 이야기를 여러분 그런 깨어진 세상의 모습을 볼 때 우리는 다시 한 번 깨달아야 됩니다.
지금 우리가 뭘 추구하고 있는가? 가끔은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들어주지 않는 것처럼 서운한 마음이 들 때도 있을지 모릅니다.
근데 여러분 절대 그럴 일이 없어요. 우리는 택함 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큰 사랑을 이미 받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다만 내 뜻대로 내 생각대로 뭔가가 이루어지지 않을 뿐이지 하나님의 뜻은 그보다 더 크고 높으신 줄 믿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잉태된 성도들의 모임, 교회 공동체입니다. 오늘 또 다시 옆에 있는 분들 보면서 인사합시다. 당신은 하나님께 택함 받은 사람입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큰 사랑을 받은 사람입니다. 이 말만 들어도 행복하시죠 네 그래요. 세상 사람들이 좀 나를 사랑해 주지 않아도 그게 그까짓 거 뭐가 문제가 됩니까?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데, 그리고 내 옆에 있는 사람이 좀 부족하고 연약할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이고 하나님의 작품이다 여기면 우리는 더 사랑할 수 있는 겁니다.
두 번째로 교회를 이것만으로 이제 설명하기는 좀 어렵죠. 두 번째로 우리는 1절 말씀에서 조금 더 찾아볼 수 있는데요.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이것이 교회의 두 번째 개념 중에 우리가 생각해야 될 부분입니다. 여기서 안에 있다라고 하는 말이 위치적인 의미이기도 하지만 기원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시작점 한마디로 교회는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존재하고 하나님으로부터 그리스도로부터 시작된 거예요.
우리가 지금 하늘소망교회를 개척했고 또 하늘소망교회에 등록해서 성도가 되었는데 그게 내가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셨다라고 하는 사실을 분명히 우리 기억하길 원합니다. 단순히 성도들의 만남이 아닙니다. 모임이 아닙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임재가 있는 장소입니다. 신비한 장소, 신비한 공동체입니다. 교회는 하나님 아버지 안에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표현하는 이것 자체도 우리를 고아로 내버려두지 아니하시고 늘 우리를 자녀 삼아주신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시고 돌봐주신다라고 하는 의미도 있지 교회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하지, 우리의 삶의 주인이라고 고백하며 주인 된 삶을 살아가는 것이 바로 교회 공동체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돌보심이 있는 공동체 또한 주님을 향한 순종, 주님이 가신 그 길을 따라가는 그 길을 따라가는 것이 바로 교회 공동체입니다.
마태복음 18장에 보면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배는 우리가 와서 찬양하고 기도하고 말씀 듣는 이런 형태 자체를 예배라고 말하는 게 아닙니다. 예배는 우리 주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주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는 것입니다. 주님과의 만남의 시간을 갖는 겁니다. 여러분들 삶도 예배가 되는 거예요.
근데 여기서 약간 오해의 요지가 있는데요. 삶이 예배가 된다고 그러니까 나는 주일날도 내 삶이 열심히 하면 그게 예배예요. 그리고 주일 예배를 빠지시면 그건 안 됩니다. 공예배에 대한 또 부분은 또 다른 강조점이 있으니까요. 여러분들의 삶에도 예배가 될 수 있는 거죠. 왜 주님과 동행하는 그 과정 속에서 주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주님을 경배한다면 그게 바로 예배라는 거예요.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우리의 삶을 예배로 드릴 그러한 책임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교회는 이 땅에 있지만 교회는 우리들이 이끌어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인 되시고 주인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공동체임을 다시금 기억하길 원합니다.
마지막으로 바울은 택하심을 받은 성도들의 모임이고 그리고 하나님과 예수님 안에 있는 데살로니카 교회를 향하여 감사의 제목을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요. 2절 말씀을 보면 너희 모두로 말미암아 감사한다. 3주 정도밖에 말씀을 전하지 못했던 이 데살로니카 교회 까나나이와 같은 교회를 잊지 않고 마음에 늘 애타는 심정으로 가지고 있었을 겁니다.
여러분 그 까나나이 같은 교회에 다니는 성도들이 얼마나 많은 핍박과 얼마나 많은 혼돈이 있었을까요? 혹시 많은 핍박과 환란 속에 상처받고 괴로워하고 낙심하고 떨어져 나가는 사람들이 있지는 않을까 이제 막 싹이 났는데 가시던 물이 너무 많아서 그 싹이 제대로 피어나지 못하지 않을까 염려하고 아마 그들을 향한 기도 제목이 늘 가득했을 겁니다.
근데 그때 디모데가 데살로니카의 소식을 전해줬는데 그 소식이 바로 3절입니다. 같이 한번 읽어볼까요? 시작
너의 믿음의 역사와 아멘 네 짧은 시간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이었지만 교회의 역사는 아직 짧은 깐나나이와 같은 교회였지만 교회가 겨우겨우 생존한 것만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그 교회가 믿음의 역사가 일어나는 교회가 되었고, 사랑의 수고가 가득한 교회가 되었고, 그리고 소망의 인내가 있는 교회였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믿음, 소망, 사랑 이게 우리 교회 안에 가득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믿음의 역사 여기서 역사를 영어 성경으로는 워크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잘 그렇게 사용하지 않는데 그렇게 번역한 이유는 일한다, 믿음은 일한다, 믿음은 행함이다라고 하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다고 하면서 믿는 것과 전혀 상반된 삶을 살아간다면 그건 믿는 게 아닙니다. 그건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심각한 질병에 걸려 있는 믿음의 삶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향해 항행하신 그 일을 믿는다면 우리는 그 본을 따라 살아가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믿음을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소원이 우리 안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믿음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 선한 일을 하기에 더욱더 힘을 주는 원동력과도 같습니다. 믿음의 역사가 가득한 우리 성도님들 우리 하늘 소망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사랑해 주고 여러분 사랑이 달콤하고 사랑이 핑크빛으로만 끝나나요? 여러분들도 많은 사람들과 사랑하고 관계하고 살아가는데, 사랑하며 살아가다 보면 그 관계 속에서 아픔이 또 대가가 지불돼야 할 경우들이 참 많습니다. 사랑은요 그런데 그것을 아픔이나 대가라고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기꺼이 수고하게 만드는 게 사랑입니다.
여기 자녀들이 있는 부모님들, 자녀들 키우는 게 그저 행복하고 즐겁고 그냥 막 기쁨이 넘치기만 하십니까? 자녀들 학원비 낼 때마다 그냥 한숨이 펑펑 나오기도 하고, 아이들이 자라가는 모습 속에서 상처받을 때도 있고 다양한 모습들이 부모님들에게 있습니다. 그렇죠. 때로는 열받아서 진짜 한 대 탁 조업하고 싶을 때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들은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사랑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 작은 교회 이 짧은 역사를 가진 이 데살로니카 교회가 그 수많은 지역에게 영향을 끼쳤던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이 사람들이 내가 받은 사랑이 얼마나 큰지를, 예수님이 나를 위해서 주신 그 사랑이 얼마나 큰지를 깨달으니까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사랑하게 되는 거예요. 여러분 나라가 부유하면 다 행복할까요? 얼마 전에 어떤 다큐멘터리를 좀 이렇게 보라고 권한 분이 계셨는데 미국의 아주 화려한 어떤 도시에는요 화려하기만 하는데 중요한 건 저 구석에는 정말 거의 거인 수준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더라는 거죠. 하루하루를 겨우 버티고 견디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더라는 거예요.
세계 최강의 나라라고 하는 부유한 나라라고 하는 그 미국에서 그 큰 도시에서 이 데살로니카 지역도 고대 도시에서 굉장히 크고 안정적인 도시였지만 그 안에는 수많은 이들의 핏땀이 있었을 겁니다. 수많은 이들이 삶에 지쳐서 수많은 이들이 감염병에 노출되어 누구도 돌봐주지 않고 누구도 그 눈물을 닦아주지 않을 때, 이 데살로니카 성도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로서 그 사랑을 가지고 그들을 찾아갔습니다. 그들을 만나서 눈물을 닦아주고 그들에게 먹여 물을 먹이고 그들을 사랑으로 섬겼습니다.
결과적으로 그 사랑의 수고가 그리스도의 사랑이 확장되는 통로가 되었고, 이 짧은 역사의 교회가 그 지역에 수많은 영향력을 끼치는 교회가 될 수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소망의 인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이 분명한 사람은 어떠한 상황에도 인내할 수 있음을 우리는 기억하길 원합니다.
이 인내라는 말은 원래 뭐 뭐 아래에 있다라는 그런 의미가 있습니다. 한마디로 위에 있는 사람은요 인내하지 못합니다. 자기 마음대로 하죠. 갑질하는 거예요. 근데 아래에 있는 사람 특별히 예수 그리스도의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요. 그 소망으로 인해 인내할 수 있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요즘 뉴스를 틀면 여러분들 볼 만한 것들이 참 많죠. 맨날 싸우는데 이 사람이 맞네 저 사람이 맞네 근데 거기에서 여러분들 편중돼가지고 여러분들도 또 이 사람이 맞네 저 사람이 맞네 하면서 싸우지 마세요. 그냥 상대방은 그런 생각인가 보다라고 생각하시고 정말 잘못된 가짜 뉴스를 듣고 있는 분들은 좀 가끔 알려드릴 필요도 있는데 그냥 그렇지 않다면 그냥 그런가 보다 그냥 기도 제목으로 삼고 나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근데 많은 이들이요. 지금 요즘 시대를 바라보면서 맨날 싸우는 이야기만 한다고 아예 그냥 관심조차 꺼버리고 살아가려고 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어쩌면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지금 여러분들이 느끼고 살아가는 그 아픔과 상처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아파하고 고통스러워하고 지금 괴로워하고 특히 죽음의 문턱에서 지금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의료 분쟁으로 인해서 지금 우리는 그냥 안타까움만 가지고 있지만 불안함이 가득한 분들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근데 여러분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바라고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하나님의 나라 그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기에 지금 이 시간들을 버티고 견디는 걸로만 끝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기쁨으로 그리고 소망을 잃은 사람들에게 그 소망을 증거할 수 있는 그러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겁니다. 복음으로 맺은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우리 안에 있다면 우리는 믿음의 그러한 행동들이 행위가 또 사랑의 수고가 인내의 그러한 열매가 우리의 삶에 나타나게 될 줄 믿습니다.
저는 이 데살로니카 교회라고 하는 교회를 이렇게 묵상하는 과정 속에서 우리 하늘 소망교회가 지금 이제 7년이라고 하는 시간 여러분 이제 7살 됐어요. 오늘 7살짜리 애와 4살짜리 애가 초등부 예배를 드리러 왔는데 제가 걔네들 때문에 오늘 아주 너무 엔돌핀이 막 드러나가지고 근데 그 아이들이 그래도 뭔가를 하려고 확 이렇게 손들고 하고 뭘 하잖아요.
근데 아직은 자기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엄마가 옆에 와서 예배를 드리니까 평상시에 자발적으로 하던 애가 갑자기 들어눕더니 나 안 할래 막 이렇게 막 하더라고요. 근데 그게 그 나이대에 할 수 있는 역할이잖아요. 그렇지만 그래도 지금 나름대로 밥도 떠먹고 좀 걸어다니기도 하고 뭘 배우기도 하잖아요.
그쵸? 저는 우리 하늘 소망교회가 이제 7년 됐어요. 물론 7년 시간에서 우리가 너무 어리다고만 생각할 게 아닙니다. 저는 이 데살로니카 교회를 보면서 많은 회개를 했어요. 우리는 아직 7살이니까라고 하면서 좀 앞으로 길게 생각을 많이 할 때가 있었거든요. 근데 여러분 불과 3주 복음을 전해듣고 1년 반의 시간밖에 되지 않은 이 데살로니카 교회가 그 수많은 지역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교회가 됐다. 여기서 저는 무슨 도전을 받아야 될까요? 우리가 여러분 우리 하늘 소망교회가 이거는 도전을 크게 받아야 될 줄 믿습니다.
우리는 이 교회보다 지금 몇 년이 더 오래됐어요 훨씬 더 몇 배가 더 오래됐잖아요. 그렇죠 이곳에 우리 하늘 소망 교회를 우리가 세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세우신 줄 믿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함께하시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줄 믿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이 사랑하여 택하신 사람들의 모임이다라고 하는 것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더 서로를 사랑하는 우리가 되길 원합니다.
또한 택함 받은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임재를 날마다 경험하는 우리 공적 예배, 그리고 우리의 삶의 예배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돌보심을 늘 경험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 삼는 삶으로 순종함으로 살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날마다 우리가 행하고 사랑으로 수긍하고 그리고 소망으로 인내하는 우리 교회 되어서 정말 우리 교회가 이 마귀도냐 교회처럼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작지만 선한 영향력을 끼쳐서 우리 하나님의 나라가 더욱더 확장되는 귀한 도구로 쓰임 받는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