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조선의 제26대 국왕이자 대한제국의 초대 황제이다. 묘호는 고종(高宗), 시호는 태황제(太皇帝). 연호는 개국(開國), 건양(建陽), 광무(光武). 절일은 만수성절(萬壽聖節).
2. 이름
이름이 5개이다. 아명 '개똥', '명복(命福)'과 초명 '재황(載晃)', 휘인 '형(㷗)'과 '희(熙)'이다.
'명복(命福)'은 임금이 되기 전에 썼던 어릴 적 이름으로, 철종 승하 이후 차기 임금으로 정해진 후에는 더 이상 사용하지 않았다. 더 어릴 때에는 '개똥'이란 이름으로 불렸는데 귀한 자식일수록 천한 이름으로 불러야 액운을 막아 오래 산다하여 아버지인 흥선군 이하응에 의해 불린 이름이다.
'재황(載晃)'은 즉위하기 직전에 잠깐 익성군(翼成君)으로 봉해졌을 때 임시로 개명한 이름이다. 철종이 승하한 직후인 1864년 1월 16일부터 즉위식을 거행한 같은 달 21일까지 단 6일 동안만 사용했다. '명복'은 아명이었고 정식 이름이 아니었기에, 원래대로라면 15세 정도에 관례를 치르면서 본가의 항렬자에 맞춰 정식 이름을 지어야 했다. 그런데 고종이 12세에 왕위를 이으면서 익종의 양자로 입적했기 때문에, 더 나이들어서 흥선군의 아들로서 받아야 했던 이름을 정식 즉위 직전에 형식적으로 받은 것이다. 흥선군 일가에서 고종 세대의 항렬자는 '재(載)O' 자였고 여기에 맞춘 이름이 '재황'이다.
'형(㷗)'은 조선국 국왕, 대한제국 황제 및 태황제일 때 사용했던 정식 이름이다. 상술했듯, 고종은 문조의 양자로 입적했기 때문에, 명목상 헌종의 동생이 되었고, 따라서 헌종의 휘 '환(烉)'의 '火' 발을 따라 '형(㷗)'으로 개명한 것이다. '㷗'의 독음은 '희', '형' 2개로 알려져 있으나 고종 이름의 발음은 '형'이 맞다. 고종 때 지은 《열성어휘(列聖御諱)》에는 독음이 '형'으로 적혀있고, 대응하는 음의 한자로 '逈(멀 형)'을 써두었다. 조선 왕실에서 공식적으로 고종의 이름을 '형'으로 발음한다고 적은 이상, '희'보다는 '형'으로 부르는 것이 적절하다.
경술국치 이후 '희(熙)'로 개명하여 죽기 전까지 사용했다는 말도 있다. 그런데 고종이 정식으로 이름을 '희'로 바꾼적은 없으며 1931년과 1940년에 이왕직에서 편찬한 《이태왕왕족보(李太王王族譜)》 및 《왕공족보(王公族譜)》에 고종의 이름이 '㷗'으로 적힌 것을 보아 이는 사실이 아니다. 다만 '희(熙)'로 쓴 용례는 많이 보인다. 이것은 '㷗' 자 자체가 잘 안 쓰는 글자이기 때문에 일본 제국에서 대체자인 '熙'로 쓴 경우가 많아서일 뿐이다.
이런 벽자를 쓴 이유는 피휘 관습도 있거니와, 항렬 규칙 때문이다. 장조의 현손(4대손) 항렬 대에서는 이름에 '어진사람 인(儿)'이 들어간 글자를 공유한다. 정조의 증손인 헌종은 '환(烉)'으로 안에 포함되어있다. 그리고 고종은 '형(㷗)'으로 좌우로 밖에 나뉘어 있으며, 초명 '재황(載晃)'에는 '황(晃)'의 밑에 발의 형태로 들어가있다. 은언군의 증손인 덕안군은 '재덕(載悳)', 청안군은 '재순(載純)'으로 파자하지 않으면 잘 알아보기 어려운 형태이다. 은신군과 은전군의 증손으로 완림군은 '재원(載元)', 완순군은 '재완(載完)', 완영군은 '재긍(載兢)', 흥친왕은 '재면(載冕)', 완은군은 '재선(載先)', 인양군은 '재근(載覲)', 의양군은 '재각(載覺)', 예양정은 '재규(載規)'로, 고종의 초명과 마찬가지로 발의 형태로 온전히 들어가있다. 완평군의 둘째 아들 '재현(載現)'은 본가의 양자로 들어가 황실 종친 자격을 잃었지만 이름자에 '儿'은 그대로 있다. 유일하게 경은군 '재성(載星)'이 규칙을 적용받지 않았는데, 서자인데다 작호를 받은 게 굉장히 늦은 시기여서 그런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