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유수의 언어에 우리나라 말고 유례없는 표현의 말이 아이구다. 어원을 찾아보면 아이고에서 많은 뜻의 내포가 필요해 비슷한 감탄의 복합 뜻 "아이구"로도 쓴다. 원래는 부모님이 돌아가시는 상황을 극한의 슬픔으로 나타낸 발음이다. 서러운 울음과 함께 슬픈 상황을 견디는 곡소리였다. 그래서 상사에 곡이라는 풍속이 전해오면서 직속 상주만 하는 곡소리라 한다. 상주 외의 다른 사람은 "아이고" 대신 "어이"로 곡을 하는 전래 풍속이다. 아이구를 영어나 다른 나라 말로 번역하려면 불가능하다고 한다. 오히려 번역자가 아이구! 하고 주저앉는다는 말도 있다. 세계 많은 언어를 살펴보아도 아이구와 같은 뜻의 같은 말은 없다고 했다.
우리말은 한문의 장점도 내포되어 한문 발음 불가능한 부분까지 구사된다. 우리말의 아름답고 훌륭한 장점이다. 한문이 처음 도입되어 우리말의 기록이 어렵게 되자 설총의 이두가 만들어졌다. 신라와 그 전의 우리말은 아직도 지명에 많이 남아있다. 순수 우리말을 한문 글자로 기록하는 과정에 고생하며 만든 흔적이 나타난다. 소등에 밧줄 거는 바거리라는 지명은 소거리(所巨里)로 기록하여 한자 바소(所)자 음을 빌린 흔적이다. 신라시대 도회지 이름도 불빛이 모인 곳이라고 불화(火) 자가 붙었다. 발음은 시(市)나 읍이 아닌 불이었다. 현재의 군 단위 지역의 신라적 명칭이 대부분 그렇게 불렀다. 원래 발음은 불이었지만, 기록하려니 마땅한 한자가 없어 한자를 빌린 것이다. 뒤에 들어온 한문 글자 문명이 오기로 비슷한 발음인 벌(伐)로도 표시된 지역이 있다. 서라벌 달구벌 등이 단순한 한자 빌린 기록에서 그런 지역 명칭이다. 서라불 또는 달구불이 당시의 명칭이다.
우리말에는 감탄사가 다양하게 쓰인다. 언어를 배울 때는 어렵게 느껴져도 배운 후에는 활용도가 매우 높아 편리하다. 특히 외국인들이 우리말을 배울 때 겪게 되는 혼란을 느낄 수 있는 일이다. 비슷한 말이 너무 많다고 느꼈을 것이기에 말이다. 그러나 비슷한 말이라도 용언에 따라 시기와 장소와 상황의 각기 다른 표현으로 선택이 주효하기 때문이다. 삼베를 만들 때 날줄을 고르면서 매끄럽고 튼튼하게 톺는 일이 톺아보기라는 말이다. 날줄 실의 보푸라기가 피어나지 않도록 풀을 묻히며 일일이 찾아 손질로 톺아보는 일이었다. 베틀의 날줄에 북이 나들며 바디가 오르내리면 보푸라기가 생길 수 있다. 베의 소중한 날줄이 터지지 않게 다듬어 보살피는 일이다. 우리말을 영어로 번역할 때 톺아보기의 제대로 된 번역이 이루어지는 지도 관심이다. 실오라기 올의 보푸라기가 생기지 않게 다듬고 꼬아서 매끄럽게 하는 작업이다.
아직도 지역명에는 옛날 우리의 순수한 말들이 그대로 담겨 있다. 특히 노동 용어에도 순수 우리말이 아주 많이 남아있다. 농기구나 생활용품에도 우리말이 숨어지낸다. 많이 배운 한문 학자들이 눈여겨보지 않은 곳에 남았다. 한문으로 이름을 바꾸지 않았기 때문이다. 질매 멍에 작두 도리깨 망태기 코뚜레 부리망(소머거리) 등이 농기구였다. 베틀이나 옷감 장만하는 일은 전부 순수 우리말 용어다. 선비들이 관심 두지 아니한 일이 오히려 우리말을 지켜온 계기다. 옛날에는 먹는 것 다음에는 옷감이 최고로 인기 품목이다. 몸을 보호하고 사람다움의 표현이 옷감에서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 소중한 옷 만드는 용어가 전부 순수 우리말로 남아 있어서 다행이다. 한문으로 바뀌었다면 볼품없고 가치 없는 말이 되었을 일이다. 톺아보기 용어도 하마터면 바뀌어 사라져 잃을 뻔했다.
형용사가 우리말에 많은 이유도 표현의 원활한 필요성 때문이다. 상황의 형편을 올바르게 기록하고 전하려면 영상을 보듯 세밀해야 했던 일이다. 영상이 발전하여 미세 부분 많은 분량 사진을 담아서 명확하게 볼 수 있는 이치다. 느린 화면으로 재생하여 보는 것처럼 형용사의 다양한 삽입으로 현장감을 높여주기 때문이다. 아무튼 지역명과 노동 용어에 고스란히 남아있는 우리말이 보석처럼 반짝인다. "아이고"와 "아이구"처럼 표현의 뜻이 자유롭게 발전하는 계기였다. 순수한 우리말을 찾아 다시 보급하는 일이 우리의 사명이다. 한문을 숭상해온 일처럼 외래어를 난발하는 시대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아름답던 유명기업의 이름이 영문 알파벳으로 바뀌는 시대는 결코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다. (글 : 박용 에세이10집 20221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