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세계사 150 유럽의 정신 5: 베네치아의 지중해 무역]
50개국 7.4억명의 인구를 가진, 수천년 서로 전쟁만 하던, 유럽이 왜 갑자기 하나로 묶은 공동체를 생각했을까? 그런 유럽의 정신은 어떻게 형성되었는가? 매우 궁금하다.
EU의 역사, 십자군 전쟁, 중세도시 형성, 베네치아의 지중해 무역, 위그노 전쟁 등을 하나씩 살펴본다.
오늘은 '중세 해상 제국 베네치아의 지중해 무역' 을 알아보자.
----------------------------------
지중해는 오래전부터 유럽 문명의 중심이다.
페니키아, 고대 그리스인 등 여러 민족들이 물건들을 싣고 다니면서 서로 교류하다가, 로마 제국이 '나의 바다 Mare Nostrum' 라고 부르면서 처음으로 지중해를 통일한다. 로마 제국이 무너지고 중세에 들어서 동로마제국, 이탈리아의 도시국가, 이슬람 세력들이 각축을 벌인다.
10세기 이후 전쟁이 줄어 들고 중세 유럽 사회가 조금씩 안정되면서, 인구가 증가하고 교류가 늘어난다. 베네치아와 제노바를 위시하여 피사, 아말피, 등 이탈리아 항구 도시들이 장거리 교류 즉 지중해를 무대로 무역을 본격화하기 시작한다. 이들은 동로마제국은 물론 이슬람 지역까지 원정한다.
11세기에 시작된 십자군 전쟁으로 지중해 무역은 더욱 활발해진다. 전쟁은 기사와 병사들이 치르지만, 자금을 대고 준비를 시켜주는 건 이탈리아 상인들이다. 이 시대의 유대인들은 대우를 받지못한다.
1차 십자군이 예루살렘 원정을 떠날 때 많은 물자 지원을 한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은 무역 항구이자 십자군의 마지막 요새인 아크레가 다시 함락될 때까지 200년 가까이 인력과 물자 수송으로 큰 이익을 얻는다.
12-13세기 즈음 지중해는 동서 무역의 무대가 된다. 이탈리아 상인들은 지중해를 통하여 구입한 상품을 상파뉴(프랑스 북동부 샴페인 생산지)의 정기 시장으로 공급하여 교역한다. 상파뉴는 모직물 생산지인 플랑드르 지역과 이탈리아의 제노바와 베네치아의 중간 지점으로 주로 모직물과 향신료 등을 거래하는 중세 유럽의 최대 경제 중심지이다.
13세기 후반 두 개의 큰 세력이 나타난다. 하나는 바르셀로나를 중심으로 하는 아라곤 왕국이다. 또 하나는 오스만 제국이다. 아라곤왕국은 시칠리아 섬을 점령하고 서지중해를 장악하고, 오스만제국은 아나톨리아반도(터키)와 발칸반도, 시리아, 이집트를 본거지로 동지중해를 지배한다.
지중해의 패권을 놓고 아라곤과 오스만이 대치하는 동안 이탈리아 상인들은 양쪽을 오가며 교역한다.
----------------------------------------------
베네치아 공화국이 성장하는 첫 발판은 동로마제국이다.
한때 동로마제국의 영토였으나, 동로마제국이 이탈리아 반도에서 영향력을 잃어가자, 베네치아는 독립을 선언하고 아드리아해로 진출한다.
11세기 남부 이탈리아를 점령한 노르만족이 동로마제국을 공격하자, 동로마제국은 베네치아에게 도움을 청하고 그 대가로 상업적 특혜를 제공한다. 동로마제국 영토에서 승승장구하던 베네치아는 한때 특혜를 몰수 당하기도 하지만 협상을 통하여 다시 되찾는다. 베네치아의 높아진 위상을 보여준다.
1204년 십자군이 큰 사고를 친다.
예루살렘을 회복하러 떠난 십자군이 이슬람 세력 대신 같은 기독교 국가인 동로마제국을 공격하고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유린한 것이다.
서유럽의 라틴 기독교와 그리스 정교도가 서로 반목하게 되는 이 결정적인 사건은 왜 벌어졌을까? 베네치아의 배후조정설도 있고 단순히 연속된 우연의 일치라는 학자의 의견도 있지만, 어쨌던 그 사건으로 가장 큰 이익을 챙긴 건 베네치아다.
십자군과의 협상을 통해, 베네치아는 동로마제국 영토의 지중해와 발칸 반도 연안 지역을 넘겨받는다. 베네치아는 이 새로운 바다 영토(stato da mar)를 기반으로 강력한 해상국가로 거듭난다.(사진)
13세기 징기스칸이 등장한다.
중국에서 중동 지역, 발칸까지 정복한 몽골 제국은 자유로운 통행을 보장한다. 베네치아 출신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 Il Milione 이 이즈음이다.
이탈리아를 포함한 서유럽 상인들은 아시아 끝까지 직접 들어간다. 중동 지역의 이슬람 상인들을 거쳐서 들어오던 아시아의 향신료와 비단의 교역 루트가 달라진 것이다.
제노바나 베네치아 상인들은 페르시아 비단보다 저렴한 중국 비단을 가져와 상파뉴 시장에 내다 팔고 북유럽의 모직물을 중국 시장으로 가져간다. 실크로드이다.
14세기 중엽에 이르러 몽골 제국이 무너지고 자유롭던 아시아의 교역 루트가 다시 막힌다.
베네치아는 15세기에 들어 북부 이탈리아 내륙지역으로 진출한다. 지중해를 통해 받은 상품을 유럽 내부로 육상 운송하여 판매하고 반대로 유럽의 상품을 가져오기 위한 경제적인 목적이 크다.
베네치아의 영토 확장은 1453년 동로마제국이 오스만 제국에게 완전히 무너지자, 베네치아의 위력과 동로마제국과의 거래을 못마땅해하던 교황은 베네치아의 방파제 역할을 인정한다. 베네치아는 북부 이탈리아의 육상 영토(stato da terra)를 1797년 나폴레옹 전쟁까지 유지한다.
-------------------------------------------------
지중해 무역은 흔히 향신료 무역이라고 부른다.
향신료 spice 는 지중해 무역을 유지하는 중요한 상품이고, 근대 유럽을 열게 한 계기이다. 비싼 향신료를 구하기 위해 아프리카와 인도로 가는 대서양 항로를 개척하고, 이렇게 시작된 15세기 말의 대항해가 근대 유럽 시대를 열게 된다.
유럽인들은 로마 제국 시절부터 향신료를 애용한다. 당시 요리책에는 80% 이상의 요리에 후추가 사용된다. 후추 대금으로 로마의 귀금속이 몽땅 빠져나간다고 탄식할 정도다. 로마인들은 왜 이렇게 후추에 열광할까? 음식 맛에도 당연히 도움이 되지만, 자기 과시하는 사치품이기도 하고 고대 그리스 의술에 영향을 받은 의약품으로도 사용되기 때문이다. 또 하나 지상낙원이라고 믿는 동쪽에서 오는 열매라는 환상도 한몫 한다.
인도나 동남아시아에서 생산된 후추, 생강, 계피 등은 이슬람 상인을 통해 동지중해의 유럽 상인에게 넘겨지고 다시 전 유럽 지역으로 팔려 나간다. 이때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세력이 바로 베네치아 상인들이다.
14세기 초 베네치아 상인들은 베네치아-알렉산드리아, 베네치아-베이루트를 왕래하는 향신료 수송 전담 선단도 운영한다. 15세기에 들어 베네치아를 통하여 들어오는 향신료의 규모는 전 유럽 시장 수요의 70%까지 이른다.
베네치아는 3,300대에 이르는 선박과 함께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로 올라선다.(사진)
---------------------------------------------------
1453년 동로마제국이 오스만제국에게 완전히 함락되면서 한동안 베네치아의 활동 무대가 줄어든다.
곧이어 세계사에 큰 파도가 밀려온다.
유럽의 변방 포르투갈 왕국이 대서양으로 진출한 것이다. 대항해시대의 시작이다.
1498년 포르투갈의 바스코 다 가마 Vasco da Gama 선단이 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 인도에 도착한다. 이 소식은 지중해 세계 특히 베네치아에 큰 파장을 일으킨다. 후세의 역사가들도 세계 교역의 중심이 지중해에서 대서양으로 옮겨가는 시점이라고 해석한다.
베네치아 상인들이 독점하다시피 하는 향신료 교역이 대서양 항로로 많이 넘어간다. 그러나 여전히 모직물, 면직물 등 직물과 염료, 밀, 올리브, 포도주 같은 제품들의 교역은 활발하다. 16세기에 들어 유럽시장의 확대로 향신료의 지중해 교역 규모는 다시 늘어나기도 한다.
그러나 장기적인 관점으로 볼 때 지중해 시대는 저물고 17세기에 들어 유럽 세계의 무게중심은 지중해에서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 등의 식민지 시대로 넘어간다.
대서양에서 멀리 떨어진 베네치아는 식민지 경쟁에서 밀려나면서 서서히 그 영광을 잃는다.
------------------------------------------------------
요약하면,
지중해를 지배하던 로마제국 이후, 11세기 무렵 십자군과 동로마제국을 대상으로 교역하면서 성장하던 베네치아는 이후 동로마제국 영토 일부를 접수하면서 해상 교역을 최대한 확장한다.
몽골 제국의 통행 보장으로 아시아와 직접 교역하는 등 지중해를 통해 유럽 시장을 장악하던 베네치아 상인들은 17세기 대서양 시대를 맞으면서 그 위세가 위축된다.
다음은 위그노 Huguenot 전쟁을 살펴본다.
-펌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