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내용은..
📖 핵심 내용 및 묵상 포인트
▪️ 불순종의 결과와 '보김' (1~5절)
⊙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사 이스라엘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셨으나, 이스라엘은 가나안 원주민과의 절교 및 제단 파괴 명령을 어겼습니다.
⊙ 그 결과 가나안 민족들이 이스라엘의 '옆구리의 가시'와 '올무'가 될 것이라는 경고를 듣고, 백성들은 통곡하며 그곳 이름을 '보김'(우는 자들이란 뜻)이라 부릅니다. 회개는 하였으나 삶의 방향을 돌이키는 구체적인 순종이 빠져 있음을 보여줍니다.
▪️ 신앙의 세대 계승 실패 (6~10절)
⊙ 여호수아와 그 시대의 장로들(하나님의 큰 역사를 직접 체험한 세대)이 생존해 있는 동안에는 신앙이 유지되었습니다.
⊙ 그러나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110세에 죽은 후, 그 뒤를 이은 '다른 세대'는 하나님도 알지 못하고 그분이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는 영적 암흑기로 접어들게 됩니다.
💡 오늘의 교훈
신앙은 자연스럽게 대물림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의 역사를 다음 세대에 바르게 가르치고 전파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말씀에 대한 불순종이 얼마나 큰 영적 위기를 가져오는지를 엄숙하게 경고하는 본문입니다.
김종길 목사님께서 카톡으로 보내 주신 주님의 약속된 말씀 - 20
TSR/제2258호/260904(FRI)
사사기 2:1-10 다음 세대 & 다른 세대
“여호와의 사자가 길갈에서부터 보김에 이르러 가로되 내가 너희로 애굽에서 나오게 하고 인도하여 너희 열조에게 맹세한 땅으로 이끌어 왔으며 또 내가 이르기를 내가 너희에게 세운 언약을 영원히 어기지 아니하리니, 너희는 이 땅 거민과 언약을 세우지 말며 그들의 단을 헐라 하였거늘 너희가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였도다 그리함은 어찜이뇨,
그러므로 내가 또 말하기를 내가 그들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지 아니하리니 그들이 너희 옆구리에 가시가 될 것이며 그들의 신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리라 하였노라. 백성이 여호수아의 사는 날 동안과 여호수아 뒤에 생존한 장로들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큰 일을 본 자의 사는 날 동안에 여호와를 섬겼더라. 여호와의 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일백십 세에 죽으매, 무리가 그의 기업의 경내 에브라임 산지 가아스 산 북 딤낫 헤레스에 장사하였고, 그 세대 사람도 다 그 열조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 (1-3, 7-10)
☕ Appetizer
하나님은 이스라엘이나 이방인이나 죄에 대한 진노를 나타내시고 심판하실때는 여호와의 사자를 보내서 최후 통첩을 하신 다음 액션을 취하신다.
이스라엘의 비극과 불행의 시작은 역사를 망각하는 영적 치매로 시작되었다.
전장(前章)에서 우리는 여호수아가 죽은 이후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착 과정에 대해
서 살펴보았다. 본장은 사사 시대에 들어가기 직전의 상황과 사사시대 전반에 걸쳐 이스라엘은 종교적 범죄를 되풀이 하였다. 하나님의 언약의 측면에서 개괄적으로 조명하면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올바른 자세가 무엇인가를 보여주고 있다.
본 장은 이스라엘이 타락과 압제와 구원으로 반복되는 이스라엘 역사를 해석하고 있다.
핵심적인 개념은 '언약'(Covenant)과 '맹세'(Swear word) 라는 단어가 여러번 반복하고 있다.
언약과 맹세는 고대지방의 '종주권 계약'(Sovereignty treaty)의 형식과 유사한 형식으로 서술하고 있다.
(1) 군주되신 여호와는 언약을 어기지 아니하고 실행하였다.
(2) 언약 규정의 선포와 그 규정을 어긴 이스라엘의 범죄는 징벌을 받는다.
(3) 규정된 형벌에 따른 저주를 선포한다.
(4) 봉신(封臣)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개할 때 군주(君主)이신 여호와의 구원을 받는다.
이스라엘이 점차 하나님과의 언약을 저버리고 어그러진 길로 걸어가게 된 것은 지도자의 죽음이 크게 작용하였다.
백성들은 여호수아를 비롯한 위대한 신앙의 인물, 역사의 산 증인들이 사라지자 점차적으로 하나님과 그의 계명을 망각하게 되었다.
사사 시대의 모든 역사는 이스라엘의 타락 - 하나님의 징계 - 백성의 회개 - 하나님의 구원의 형식으로 반복되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악함과 끊임없이 반복되는 그들의 죄악을 다 알고 계셨음에도 불구하고 언약적 관계를 포기하지 않으심으로 여호와의 신실성을 보여주었다.
하나님과 언약적 관계는 하나님의 공의만 아니라 자비하심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언제든지 회개하고 슬피 울며 간구하기만 하면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시고 구원자를 보내셨다.
언약적 관계의 궁극적 종착역은 이스라엘의 구원이라는 사실이다.
사도 바울은 "때가 차면 마침내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게 된다"고 증거하였다.(로마서 11:25,26)
사사기에서 하나님과 언약적 관계와 비 언약적 관계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가 난다. 언약적 관계를 가진 이스라엘은 12번이나 범죄하여도 징계를 통해서 회개하면 구원자 사사를 12번이나 보내서 구원하셨다. 그러나 비언약의 사람들이나 나라들은 여러번 경고를 하여도 듣지 않으면 심판하시는 차이가 난다.
⛾ Today’s dish
1. 보김의 사자(使者)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죄에 대한 진노를 나타내시고 징벌하실때 여호와의 사자를 보내서 최후 통첩을 하신후 액션을 취하신다.
여호와의 사자가 '길갈' 진영에서 '보김'으로 올라오셨다. '길갈' 은 이스라엘의 진영과 장막이 있는 임시 수도와 같은 곳이다.
그런데 '보김'으로 옮기시고 거기서 백성들에게 말씀하시고 최후통첩을 하신 것은 '보김'은 이스라엘이 '벧엘' 에서 언약한 것을 기억하신다는 뜻이다.
1) 내가 너희를 출애굽 후 조상에게 맹세한 땅에 들어가게 하였다.
2) 내가 너희와 함께한 언약을 영원히 어기지 않았다.
3) 너희는 이 땅 주민과 언약을 맺지말고 제단을 헐라고 하였다.
4) 너희는 내 목소리를 듣지 않고 가나안 주민들과 언약을 맺고 우상 제단을 헐지 않았다.
나는 언약을 지키는데 너희는 왜 그러냐?
5) 내가 그들을 너희 앞에 쫓아내지 않겠다. 그리고 남겨둔 자들은 너희의 옆구리에 가시가 되고 그들의 신들은 올무가 될 것이다.
2. 백성들의 반응
여호와의 사자의 경고의 말씀을 들은 백성들은 여러가지 반응을 하였다.
1) 소리 높여 울었다.
2) 그곳을 보김(우는 자들)이라 불렀다.
3) 여호와께 제사를 드렸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동안 거의 제사를 드리지 않았다는 증거가 나타났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시내산 언약, 모압 평지 언약, 세겜의 언약을 3번이나 하였지만 그들은 언약을 누워서 떡먹듯이 배반하였다.
백성들은 눈물은 악어의 눈물이나 드라마의 탈랜트들의 눈물처럼 보김에서 흘렸다.
눈물의 종류가 많다. 기쁨의 눈물, 재회의 눈물, 감사의 눈물, 회개의 눈물, 후회의 눈물들이 있다. 보김의 눈물은 하나님의 최후 통첩을 받고 신세를 한탄하는 눈물처럼 보인다.
그들의 눈물이 위선이라는 증거는 그들의 행위에서 나타났는데 그들은 일시적인 쇼(show) 눈물을 흘렸어도 우상을 버리지 않았으며 삶에 변화가 없었다.
2. 여호수아의 죽음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수아가 죽고 그 뒤에 생존한 장로들이 사는 날 동안이나,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행하신 큰 일을 본 자들이 사는 날 동안에 여호와를 섬겼다.
이스라엘의 죄성을 잘 알았던 여호수아는 '세겜' 에서 다음 세대를 불러서 하나님을 떠나지 않겠다는 언약을 받아내고 세상을 떠났다.
여호와의 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110세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여호와의 종' 이라는 직위는 어떤 권력자보다 위대하고 비교할수 없는 영광스로운 호칭이다.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종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의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적인 역할을 잘 하였던 위대한 인물이다.
여호수아는 자신의 기업의 경내 '딤낫 헤레스'에 장사지냈다.
에브라임 산지 가아스 산 북쪽에 있는 '딤낫 헤레스'는 ‘태양에게 바친 땅’ 이라는 옛 이름이다. 그러나 여호수아가 정복한 이후는 '딤낫세라'로 지명을 고쳤는데 ‘마지막 땅’, ‘땅 끝’이라는 뜻이다.
예수 제자가 땅끝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다가 죽은 사명자의 모델이다.
여호수아 사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다.
하나님은 범죄한 이스라엘은 타민족을 통해서 징벌하시고 12사사들을 ‘구원자’로 보내어 이스라엘을 회복 시켜주셨다.
현대교인은 사사시대가 아니라 '사사주간'을 보내는것 같다. 주일은 사사가 통치하는 시간이며, 주일이 지나면 다시 세상에서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영적으로 말씀 언약을 망각하고 살다가 다시 주일은 그들의 사사가 구원하는 날이 되어 회복이 된다.
지금 대한민국에는 주일학교가 없는 교회가 65% 라는 통계는 사사시대의 위험한 징조다.
선지자들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라고 외쳤다. 그리고 하나님은 아침 햇살처럼 일정하시지만 이스라엘은 변덕스럽고 일기가 불순한 여름 날씨와 같다.
그리스도인들은 나라의 죄악을 보아야 한다. 국가의 죄악은 몇사람의 지도자들의 일탈이 아니라 총체적으로 불의를 정의로 둔갑시키고 떼거리로 불의를 행하는 것이 심각한 나라의 죄악이다. 우리는 선지자의 눈으로 나라의 죄악을 보고 경고하고 기도하며 애통해야 한다.
3. 책망하는 여호와의 사자
가나안 정착 초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의 관계를 떠나 가나안족들과 언약을 맺고 우상을 섬긴 사실 때문에 여호와의 사자가 '보김' 에 임재하여
그들을 책망하고 저주하였다.(1절) 그러자 백성들은 마음에 찔림을 받아 통회
하며 하나님 앞에 새롭게 제단을 쌓았다.
사사기는 사사 시대 초기에 하나님께 대한 이스라엘의 신앙적 자세가 어떠했는가를
보여 준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를 버리고 가나안 백성들과 언약을 맺으며 우상을 섬겼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사사 시대의 출발은 이스라엘의 불순종에서 시작된 것이다.
이스라엘은 초기 가나안 정착 과정에 있어서 가나안 주민들을 진멸하지 못한 불신앙으로 인하여 가나안인들이 그들 속에 거하면서 그들과 종교적으로나 통혼 및 상업적으로 협약(MOU) 하였다.
그 결과 이스라엘의 역사는 우상 숭배와 죄악으로 얼룩지게 되었다.
지도자 여호수아가 죽고, 가나안 정착이 어느 정도 이루어진 때에 처음으로 여호와의 사자가 등장하였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죄악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여 주었다.
만일 구원의 가능성이 없다면 하나님의 책망이나 간섭도 없었을 것이며 하나님께서 이방인들과 같이 저희를 더러움 속에 그대로 버려두셔서 역사 속에 사라지게 되었을 것이다.
사사기는 죄 - 징계 - 간구 - 구원 - 망각 - 범죄와 같은 사사기 역사의 악순환의 사이클을 보여 주고 있다. 이것은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에도 사사기의 사이클이 나타나고 있다.
이스라엘은 처음부터 언약을 지키고 순종의 역사로 시작하였으면 이스라엘의 역사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사라지고 찬란하며 영광된 다윗 왕국 같은 역사가 되었을 것이다.
아담의 불순종으로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온 것처럼(로마서 5:12) 출애굽 세대의 불순종으로 인하여 이스라엘은 죄악의 역사를 살 수 밖에 없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을 긍휼히 여기기고 구원의 방편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죄의 뿌리를 없애시고 다시는 그의 백성들이 정죄함을 받지 않게 하시며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하셨다(로마서 8:1)
타종교가 고난과 구도의 종교라면 기독교는 복음과 행복의 종교이다.
여호수아 세대와 그 이후 세대는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도우시는 성령이 함께 계셔서 그들의 신앙을 이끄시도록 성령의 도움을 구하면 성령님은 세상 끝날까지 우리를 인도하시고, 보호하시며, 공급하여 주실 것이다. 사사시대의 사람들이 복음 시대의 사람으로 변하는 기적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성령께서 우리의 복음이 되도록 도와주시는 역사의 확실한 증거이다.
⛾ dessert
1. 나는 세대 교체가 되어도 언약의 신앙을 계승할 것인가?
2. 나는 하나님과의 언약을 헌신짝처럼 버리는가? 나의 건강처럼 지키고 있는가?
2. 나는 책망하는 여호와의 사자의 말씀에 어떤 반응을 하는가?
⛑ Prayer
주님! 한 세대가 가고 한 세대가 올지라도 언약의 신앙을 지키게 하옵소서. 그리고 지금 나라의 죄악이 심각한 상태에 있습니다.
교회들이 선지자들처럼 깨어 경고하고 성도들이 회개함으로 하나님의 공의와 자비가 나타나게 하옵소서! 아멘!
♡ Chef.Rev.JK.Kim/Busan, Korea ♡
⛑ 하늘 밥집(The Sky Restaurant)은 하늘 양식(Manna)을 나누는 집(Hou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