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이 낳은 한국 잡지의 선구자◁
차 상 찬
~~~'책 읽는 어린이 수도'에 씨앗을 뿌린 사람~~~
공지천 조각 공원에 정갈한 양복에 중절모를 쓰고 지팡이를 짚은 차상찬 선생 동상이 서 있다.
1920년대 잡지 '개벽' 소속 기자로 '조선 문화의 기본조사'를 위해 전국을 누볐을 때 옷차림 그대로다.
발로 뛰며 민중의 삶을 취재하고, 민족의 미래가 될 오린이를 위한 글을 썼다.
아이들이 행복한 '어린이 수도'이자 독서 문화가 깃든 '책의 도시'춘천의 토대를 만든 인물이다.
춘천이 낳은 청오 차상찬(1888~1946)은 한국 잡지의 선구자이자 전설로 꼽힌다.
조선일보, 동아일보와 함께 일제강점기 3대 언론 중 하나인 개벽사의 흥망성쇠를 함께하며 '목은 벨 수 있어도 입은 막을 수 없는' 언론인으로 이름을 남겼다.
날카로운 필력으로 시대정신을 파헤치고 때로는 해학과 풍자로 현실을 비판했다.
『'잡지계 전설'이 된 민족 언론인』
개벽사가 만든 '개벽'(1920~1926)은 일제의 검열과 압박을 견뎌 낸 민중 지향의 민족 잡지였다.
교육 . 농촌 . 노동 등 당대 사회문제에 대한 보도뿐 아니라 문학과 예술도 다뤘다. 다양한 읽을 거리를 제공하는 매체로, 국내에서 처음으로 문학과 독서의 대중화를 이끌었다.
김소월 '진달레 꽃', 이상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등 현대에도 사랑받는 많은 시가 이 잡지를 통해 세상에 나왔다.
차상천은 '개벽' 창간호에 '경주회고', '남한산성' 등 조선의 역사를 소재로 한 한시를 게재하려 했지만, 일제에 의해 검열 삭제됐다.
하지만 이후에도 대중이 민족 문학과 역사, 철학, 예술 등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끊임없이 기사를 쓰고 잡지를 민들었다.
'개벽'은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인 1926년 8월호에 마지막으로 총독부에 의해 강제 폐간됐지만, 차상찬은 계속해서 '별건곤', '혜성', '제일선', '신여성', '어린이' 등 여러 잡지의 편집과 발행을 맡았다.
그는 깨어있는 지식인이었다.
언제나 청년 되기를 좋아하는 까닭에 호를 청오(靑吾)라 짓고, 젊은 마음으로 열정적인 삶을 살았다.
민족 문화 운동가면서 방정환과 함께 '어린이의 날' 을 제정하는 등 어린이 인권 운동도 펼쳤다.
"방정환이 기둥이면, 차상찬은 들보"라는 평가가 있을 정도였다.
어린이들이 억압에서 벗어나 소중한 인간으로 존중받아야 한다는 뜻을 널리 알리며 역사적 영웅의 이야기를 동화로 쓴 작품도 60여 편 발표했다
출처:2026년8월호 '봄내' 춘천시 시정소식지/글 권소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