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관한 여러가지 법률적 문제들

[윤목사]

죽음에 관한 여러가지 법률적 문제들

고려대 법대 김일수 교수

Ⅰ. 법적 측면에서 본 삶과 죽음의 문제

우리 헌법상 생명권에 관한 명문규정은 없지만, 그것은 신체의 자유의 당연한 전제일 뿐만아니라 인간의 존엄성을 가치의 핵심으로 삼는 헌법의 기본권 질서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따라서 인간의 생명이 전제되지 않는 자유와 권리, 인간의 존엄성은 공허할 뿐이다. 각종 기본권을 보장하는 헌법질서 내에서 생명권은 명문규정 유무에 관계없이 당연히 헌법상의 권리로 인정된다.

Ⅱ. 죽음에 이르는 시점

사망 시기에 관한 다양한 견해는 다음과 같이 제시되고 있다.

① 호흡이 영구적으로 그친 단계라고 하는 호흡종지설(呼吸終止設)

② 심장의 고동이 영구적으로 정지한 단계라고 하는 맥박종지설(脈搏終止設)

③ 생활현상이 전부 단절된 단계라고 보는 생활현상종지설(生活現象終止設)

④ 모든 뇌기능의 불가역적 소멸상태라고 하는 뇌사설(腦死設)

⑤ 호흡과 심장의 종지 또는 뇌사라고 하는 택일설

이 중에서 맥박종지설이 이제까지 통설의 위치를 점하여 왔다. 심장사는 물론 생물학적·의학적 기준에 따라 심장의 고동이 영구적으로 정지한 단계를 사망의 시기로 판단한다. 특별한 의학적 전문지식이 없이도 호흡이 멈추고 맥박조차 정지해 버리면 생명현상은 종지된 것으로 판단해 혼 국민의 지배적인 법의식에 맞게 형법학자들도 맥박종지설을 따라왔다.

우리나라에서는 대한의협이 1989년 8월 보사부에 제출한 입법청원에서 ‘심장과 호흡의 정지 또는 뇌간을 포함한 모든 뇌기능의 회복이 불가능한 소실상태’를 사망기준으로 제시하였고, 대한의협이 1990년 12월 28일 보사부에 건의한 의료법개정안 제18조에 ‘심장, 폐 기능의 불가역적 정지 또는 뇌간을 포함한 전(全)뇌기능의 불가역적 소실을 사망으로 한다’라고 규정하였으며, 1993년 3월 4일에 대한의협은 뇌사를 사망으로 선언하면서 뇌사판정의 기준을 발표하였다.

① 뇌기능이 완전 소실된 때 사람의 생명보호를 위한 전제도가 의미 없게 된다는 점

② 호흡·심장은 정지된 후 회복할 수 없고 인공장치로 유지될 수 있지만, 뇌기능의 완전정지 후에는 더 이상 회복이 불가능하다는 점

③ 뇌사에서 심장정지까지 이르는 기간 소요되는 막대한 치료비를 감당하기 어려운 환자의 보호자 입장도 고려해야 한다는 점

④ 뇌사를 인정하면 뇌사상태에서 장기이식수술이 가능해질 뿐만 아니라 성공률을 높여 어치피 죽을 사람의 장기로 치료 가능한 다른 환자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는 점

종래의 임상적·사회적 의미에서 사망시기로 간주해 온 맥박종지설을 지지하는 입장에서는 인간의 생명의 신성함을 중시하는 관점에서 죽음에 관한 순수의학적 판단만을 내용으로 하는 뇌사설을 다음과 같은 반론을 제시한다.

① 아직 뇌사판정을 확신할 수 있는 방법과 기준이 완전하지 못한데 이를 인정하면 생명에 대한 처분을 허용하는 결과가 된다는 점

② 인간의 오만과 이기심이 작동하여 뇌사를 경솔히 인정하거나 뇌사를 조작할 위험이 있다는 점

③ 설령 의학적으로 뇌사상태라 할지라도 심폐기능이 아직 작동하는 한 사자(死者)로 취급하는 것은 상식과 사리에 반한다는 점

우리나라도 뇌사를 법으로 인정하는 이른바 ‘장기이식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다. 하지만 이 법률이 제정됨으로써 장기를 필요로 하는 한 사람 앞에 꺼져가는 생명의 뇌사환자를 처분하여 생명을 나눈다는 공리적인 사실 뒤에 뇌사환자의 생명은 소리 없이 처분되고 거래될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뇌사환자에 대한 더 이상의 치료가 무의미하다는 의료적 판단이 뇌사환자를 사자(死者)와 동일시해도 좋다는 판단으로 대체되어서는 안 된다.

불분명한 형법문언의 허용이 개인의 자유와 안전에 중대한 위험이 된다는 점을 직시할 수 있는 깨어있는 삶의 자세가 필요하다. 인간의 중심요소가 심장에서 뇌로 옮겨진 것이 오늘날 의학발달의 결과이지만, 그렇다고 뇌로 인간의 심장의 무게를 대신할 수 없다.

Ⅲ. 실정법에 따른 안락사

우리나라는 특히 생명을 단축시키는 안락사가 허용될 수 있느냐에 관하여 학설이 나뉜다. 절대로 위법성을 배제될 수 없다는 견해도 있으나 통설적인 입장은 나고야 고등법원에서 제안한 조건이 갖추어진 경우 대체로 정당행위(형법 제20조)로 인한 위법성의 배제를 인정하고 있다. 다음에서 안락사의 실정법적 문제를 좀 더 자세히 다루기 위해 형법적 평가가 달라질 수밖에 없는 여러 가지 사례들을 구분하여 고찰하여 보자

가. 진정 안락사의 경우

생명의 단축을 수반하지 않는 안락사를 말한다. 예컨대 임종의 고통을 제거하기 위하여 적당량의 진정제 또는 마취제를 사용함으로써 자연사시키는 경우가 그것이다. 이 경우 환자의 동의가 있는 한, 진정안락사 행위는 무제한 허용될 수 있다.

반면 환자가 계속된 의식장애로 인하여 그러한 동의를 줄 수 없을 때라면 추정적 승낙이 있다고 볼 수 있는 한 역시 형법적으로 정당화된 행위가 된다. 만약 환자의 의사에 반해서라면 고통을 경감시키는 조치가 허용될 수 없다. 이 같은 안락행위는 살인죄를 구성하지는 않지만 상해죄에는 해당할 수 있다. 왜냐하면 환자 자신의 자기결정권은 법이 똑같이 존중하고 보호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 간접적 안락사의 경우

생명단축의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있는데도 불치나 난치 또는 빈사의 병자의 고통을 완화시켜 주는 것을 주목적으로 하여, 이를 위한 조치를 했던 결과 그 부작용 등으로 병자의 죽음을 야기한 경우에 해당된다. 예컨대 죽는다는 점을 인식하고서도 암의 말기증상을 나타내고 있는 환자에게 그 고통을 제거·완화시키기 위하여 모르핀을 계속 증량하여 병자의 자연적인 사망을 앞당겨 초래하는 경우이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일부는 생명단축의 결과를 예견하였지만 의욕 하지 못한 약간의 생명단축이 발생한 경우에 주된 목적인 고통의 제거·완화가 일종의 치료행위이기 때문에 그에 따른 살인죄도 배제된다고 주장한다. 이에 반하여 다른 견해들은 의사가 약간의 생명단축이 야기될 수 있음을 예견한 이상 언제나 고의의 살인죄가 성립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 양극단적인 입장은 환자의 진정한 의사와 이 경우 문제될 수 있는 법익 또는 의무교량을 간과하고 있다는 비난을 면할 수 없다. 따라서 환자가 극심한 고통을 면하기 위해 사기(死期)를 앞당길 위험성을 스스로 부담하려는 마음준비에서 촉탁을 하고, 사기에 임박한 생명의 극심한 고통제거와 그 잔여 생명의 유지의무 사이에 법익 또는 의무를 교량하요 전자의 이익과 의무가 우위에 있다고 판단될 때 의사의 간접적 안락사행위는 정당화될 수 있다고 본다.

다만 의사가 환자의 분명한 의사에 반하여 이와 같은 시술행위를 한 경우는 사정이 달라진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약간의 생명단축밖에 안 되더라도 고의에 의한 살인죄(형법 제250조 1항)가 성립한다. 만약 의사가 요구된 주의의무를 태만히 하여 생명단축의 위험을 인식하지 못했거나 생명단축의 위험이 발생하지 않으리라고 경신(輕信)했다면 과실치사(형법 제267조)에 해당될 것이며, 그가 환자의 생명단축을 예견하고 그것이 발생해도 할 수 없다고 용인했다면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죄가 성립되며, 확정적 고의와 다르게 양형에서 참작될 뿐이다.

다. 소극적 안락사의 경우

생명체가가 불치 또는 난치의 병으로 들이킬 수 없는 결정적 죽음의 과정에 들어섰을 때, 의사가 그 진행을 일시적으로 저지·지연시킨다면 생명연장의 가능성이 확실히 존재하는데도 환자의 죽는 고통이 오래 계속되지 않도록 생명연장의 적극적 수단을 취하지 않고 부작위로 나아가 죽음에 이르도록 방치하는 경우이다.

불치 또는 난치의 중환자가 빈사지경에서 고통스러워하고 있을 때, 그 환자의 의사에 반하여 생명연장의 수단을 취할 의무가 의사에게 주어져 있눈 것은 아니다. 따라서 환자가 더 이상 생명연장을 위한 적극적 수단을 분명히 거부한 때는 의사가 가능한 생명연장의 조치를 포기하고 부작위로 나아갔더라도 촉탁살인죄(형법 제 252조 1항)의 구성요건에 해당되지 않는다.

라. 적극적 안락사의 경우

행위자가 불치병에 걸린 환자나 빈사의 환자에게 애당초 생명단축을 목적으로 그 생명을 단절시켜버림으로써 그 환자로 하여금 사망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는 경우이다. 이는 적극적으로 생명을 단축시키는 경우이다. 예컨대 중환자에게 치명적인 독약을 투여하여 그를 살해하는 경우이다.

만약 독일 프랑스 형법전처럼 자살관여죄가 처벌되지 않는다면 적극적 안락사가 언제나 처벌될 수 있다고 섣불리 결론을 내릴 수는 없다. 왜냐하면 적극적 안락사는 넓은 의미에서 자살을 교사하거나 방조하는 행위도 포함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형법은 자살관여죄를 벌하고 있기 때문에(형법 제 252조 2항), 위의 경우도 처벌될 수 있다.

그 외에도 적극적 안락사는 살해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행위이므로 환자의 진지한 촉탁승낙이 있고, 고통을 면제시켜 주려는 행위자의 자비로운 동기가 주어져 있더라도, 타인의 사망에 직접적으로 관여해서는 안된다는 살인 또는 촉탁승낙살인죄의 전제를 직접 침해하기 때문에 위법성이 배제될 수 없다.

마. 도태적 안락사의 경우

무가치한 생명의 말살을 의미한다. 이것은 적극적·소극적 안락사의 경우처럼 죽음에 임박한 병자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동정심과 연민의 정에서 취해지는 안락사가 아니라, 생존능력은 있으나 심상태가 극도로 약화되어 치유할 수 없는 정신병자 또는 강도(强度)의 심신장애자 등을 죽이는 조치가 문제되고 있는 사례이다.

이것은 특히 현재적 또는 잠재적 고통을 줄이기 위한 조치가 아니라, 무가치 하다고 인정되는 생명을 아예 박멸해버린다는 점에서 자비적·존엄적 안락사와 구별된다.

바. 자비사(Beneficent Killing)

자비사란 단지 생명유지장치에 의해 인공적으로 연명할 뿐 다시 소생할 가망 없는 혼수상태나 뇌사상태의 환자를 연명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 차라리 죽을 수 있도록 생명유지장치를 제거하여 생명을 단축시키는 행위를 말한다. 이 존엄사도 넓은 의미에서 소극적 안락사의 일종이지만 환자의 고통이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는 점과 환자 자신이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점에서 소극적 안락사와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뇌사에 이르지 아니한 식물인간에 대한 생명연장장치를 제거하는 행위는 살해금지규범을 정면으로 위반한 것으로서 살인행위에 해당한다.

뇌사설이 공인되지 않은 사정 하에서 뇌사상태의 환자도 살인죄의 객체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의사가 일정한 요건 하에서 뇌사환자의 가족과 상의하여 연명장치를 차단하는 것은 환자의 진정한 의사에 합치하는 대리판단에 해당할 수 있고, 환자 자신으로부터 추정되는 존엄한 죽음에의 의사사 존중됨과 아울러 인명(人命)의 경의로운 유일무이성의 가치도 존중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사. 존엄사(이른바 존업사법의 자살방조)

존엄사란 임박한 죽음의 고통에 시달리는 불치 또는 난치의 환자가 그 고통에서 벗어나기 의해 차라리 죽기를 바랄 경우에 치명적인 의약품을 제공함으로써 환자 스스로 고통없는 방법으로 즉사에 이르게 하는 자살원조행위를 말한다. 이것은 환자 스스로 자살에 이를 수 있도록 그것을 방조한다는 점에서 타살에 의한 안락사나 자비사와 구별된다. 따라서 적극적 안락사와 마찬가지로 조력자살도 어떠한 상황에서나 위법성이 조각되지 않는다. 따라서 치명적인 의약품이나 환자 스스로 시행할 수 있는 안락사수단의 제공행위는 다 같이 자살방조죄에 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