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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다르게 살기로 했다 | 제 13 강 |
2019.5.22. 오전반 전호철 장로 |
지상에 만들어 가는 천국 : 미국 브루더 호프
미국 브루더 호프는 뉴욕에서 차로 3시간 거리인 우드크레스트 마을에 있다. 이 글은 저자가 우드크레스트에 머문 17일간의 방문에 관한 소회를 밝힌 글이다.
그 첫인상을 밝힌 다음의 글을 소개한다.
* 우드크레스트의 첫 인상
- “우드크레스트행은 때마침 방학을 맞은 딸과 함께였다. 현지인 두 가족과 함께 사용하는 2층 게스트하우스엔 나와 딸이 각자 쓸 방 하나씩과 식당이 딸려 있었다. 식당엔 과일과 과자들이 담긴 바구니가 놓여 있었다. 날이 밝아 밖에 나오니 신세계였다. 푸른 하늘 아래 골프장처럼 드넓은 잔디밭이 펼쳐졌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들이었다.
* 우드크레스트의 다른점(특이한 점)
- 집의 크기는 어떤 일을 하는냐가 아니라 가족 수에 따라 정해진다.
- 도착 다음날 아침부터 초대가 이어졌다. 호스트인 글렌과 아델 부부 가족이 첫 번째다. 옷도 소박함 그 자체다. 그런데도 바깥 세상에서 본 어느 누구보다 여유가 있어 보인다. 바깥사람들의 갈증과 갈망이 이들에겐 없어 보인다. 브루더 호프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5일은 일하고 토, 일요일은 쉰다. 하지만 그들의 배려와 사랑은 주말에도 쉬는 법이 없다.
* 지상에 만들어 가는 천국(이미 있는 천국)
- 우드크레스트는 30여만 평은 돼 하루 이틀에 다 둘러볼 규모가 아니다. 게스트하우스 뒤쪽으로 돌아가자 왼쪽엔 그네와 놀이터가 있다. 아니, 그곳만이 아니라 사방이 놀이터다. 오른쪽엔 특급 호텔에나 있을 법한 어린이 전용 풀장이 있다. 언덕을 오르자 동물농장이다. 노새와 조랑말뿐 아니라 승마용 말도 있다. 웃는 듯한 모양새를 지닌 돼지와 총천연색의 새들이 한 우리에서 놀고 있다. 젖소와 양들은 언덕 위를 자유롭게 오간다. 아이들은 틈만 나면 다가와 동물들과 어울린다. 가끔은 노새와 조랑말을 타고 동네를 한 바퀴씩 돈다. 노새와 조랑말도 아이들과 함께하는 산책을 즐기는 듯 표정이 낫낫하다.
- 300여 명이 살아가는 이 마을에서 점심은 전체가 함께하고 아침과 저녁 식사는 가족 단위로 먹는다. 음식은 마을 가운데 공동식당 아래 창고에서 얼마든지 가져다 먹을 수 있다. 곡류와 빵, 야채, 과일, 고기, 우유, 계란 등 없는 게 없다. 공동체원들은 공동 창고에서 음식물을 가져다가 아침과 저녁식사를 가정별로 해 먹는다.
- 개인은 일체 사유재산이 없고 가진 것이 없다. 그래서 공동체는 부유하고 넉넉하다. 방문자에게도 체류비를 받지 않는다. 다만 노동을 비롯한 일상을 함께하는 것을 당연시한다.
- 브루더 호프 공동체 마을의 일상이 도시인이 보기엔 매일매일 소풍같다. 게스트하우스 같은 층에서 지내고 있는 하이너 가족은 마을 변호사이기도 하다. 그는 오늘날의 브루더 호프를 만든 요한 하인리히 아놀드의 손자다. 이웃집에 사는 하이너의 동생 리처드는 대학을 가지 않고 간호 보조원 과정을 공부했다. 형제는 하는 일이 다를 뿐 마을 안에서 대우에 어떤 차이도 없다. 형은 다섯 살, 일곱 살 두 아이를, 동생 리처드는 여섯 살부터 두 살 터울로 세 아이를 두고 있다 . 이 공동체의 수입원은 세계적인 브랜드인 ’페이서‘라는 장애인 보조기구 공장이다. 이곳엔 대졸 출신 노동자도 즐비하지만 대표인 랠프는 고졸이다. 이곳에서 직위는 상하관계가 아니다. 전문성이나 적합성에 따라 일을 맡을 뿐이다.
- 이곳에서 공동체원들의 관심과 배려를 벗어날 길은 없다. 우선 초대가 잦다. 이웃과의 친교는 의례가 아니라 중요한 일상이다.
- 대부분의 공동체가 드높은 이상에도 경제적 자립에 어려움을 겪는 데 비해 브루더 호프는 풍요를 구가한다. 행운이다. 브루더 호프는 ‘플레이씽스’라는 어린이 장애인용 목제 장난감과 페이서라는 장애인용 전동 휠체어를 고급 브랜드화 하는 데 성공했다. 고급 브랜드 공장을 운영하는 데도 공장 근로자 누구도 월급이 없다. 이 모든 풍요가 자신을 비운 무소유와 헌신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들이 누리는 기쁨과 평화까지도.
* 브루더 호프 단 하나의 계율
- 다른 기독교 교단이나 수도원에 가면 교리와 계율이 많다. 그러나 브루더 호프엔 단 하나의 계율만 존재한다. ‘서로 사랑하라’가 그것이다. 다른 어떤 것도 이 유일한 법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
- 브루더 호프는 1920년 독일의 대학 개신교 선교 단체 지도자였던 에버하르트 아놀드와 동료들이 창립했다. 아놀드가 독일에서 오갈 데 없는 장애인이나 고아들을 돌본 게 시작이다. 이들은 나치의 박해를 피해 인근소국 리히텐슈타인으로 갔다가 영국의 시골 다벨에 정착했다. 세계대전으로 다시 남미 파라과이까지 이주해 밀림을 떠도는 신세가 되었다. 50년 전 아놀드의 아들인 요한 하인리히 아놀드가 미국에 건너와 크게 성장하기 전까지 부루더호프도 오랜 고난의 세월을 감당해야 했다.
- 브루더호프는 미국의 빈자를 돕고 있다. 소년, 소녀들이 가꾼 채소도 인근 노숙자에게 무상으로 나눠준다. 시리아 난민이 도착하는 그리스를 비롯해 이라크, 요르단, 팔레스타인 파키스탄, 네팔 등에 형제들을 파견해 난민을 돌보거나 병원이나 집도 지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