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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제일 명산 周王山
<단체기념사진>
Ⅰ. 개황(槪況)
1. 일 시 : 2014. 8. 21. 06:00
2. 장 소 : 주왕산
3. 참석인원 : 명(새내기 명)
4. 등산코스 : 상의매표소주차장 - 대전사 - 전망대 - 정상 - 칼등고개 - 후리매기삼거리 - 제3포포 - 제2폭포 - 제1폭포 - 학소대 - 급수대 - 시루봉 - 주방암 - 주방굴 - 대전사 - 상의매표소주차장
5. 교통정보
- 빠른 길 찾기 정보
▶ 검 색 지 : KBS춘천방송총국 ➠ 대전사
▶ 거 리 : 260,7km
▶ 소요시간 : 3시간53분
- 다녀온길 : 중앙고속도로 서안동IC - 경서로안동(영덕)방면 - 송현오거리 - 어가골교차로 - 정산교차로 - 신덕1교차로 - 청송교차로 - 청운삼거리 - 주왕산삼거리 - 상의주차장
- 동원차량 : 강원 70바
6. 날씨상항
◆ 주간날씨예보
- 2014. 8. 19. (화)요일 06:00 발표 경상남.북도 일원 기상전망은 기압골 영향으로 22일 오전에는 경상북도에서, 24일 오후부터 25일까지 경상남북도에서 비가 오겠으며 그 밖의 날은 고기압의 가장자리에 들어 가끔 구름 많겠다고 전망하였다. 기온은 평년(최저기온 : 18~23도, 최고기온 : 26~31도)과 비슷하거나 조금 낮겠고, 강수량은 평년(강수량 : 5~13mm)보다 많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늦장마 권에 들면서 중, 남부지역을 오르내리는 비소식이 애간장을 태웠다.
◆ 기상속보 : 2014년 08월 21일 02시 50분 발표
- 현재, 경남남해안 일부지역에 호우특보가 발효 중인 가운데, 전국 대부분 지역에서 비가 오고 있으며, 시간당 20mm이상의 비가 오는 곳이 있음
- 오늘은 전국에 비가 오겠고, 제주도는 낮에, 전라남도와 경상남도는 밤에 점차 그치겠음
- 한편, 오늘 새벽에는 남부지방, 새벽부터 내일 새벽 사이에는 중부지방에 많은 비가 예상되니 비 피해 없도록 대비 바라며 최신 기상정보를 참고 바람
7. 활동상황
○ 06:00 --- KBS춘천방송총국 앞 출발(휴게소 경유)
○ 09:31 ---
○ 09:40 ---
○ 09:42 ---
○ 10:12 ---
○ 10:13 ---
○ 10:14 ---
○ 10:17 ---
○ 10:35 ---
○ 10:28 ---
○ 10:41 ---
○ 11:04 ---
○ 11:31 ---
○ 11:53 ---
○ 12:03 ---
○ 13:09 ---
○ 14:23 ---
○ 14:43 ---
○ 15:26 ---
○ 16:10 ---
○ 17:45 ---
Ⅱ. 지역특성
<주왕산전경>
1. 지역유래
- 청송군 부동면은 고려 → 송생현(松生懸), 세종조 → 청보군(靑寶郡), 세조조 → 청송도호부(靑松都호부)에 예속되어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청송군 부동면(府東面)으로 개칭되었음.
- 면의 동쪽으로 영덕군 달산면, 북쪽으로 청송읍, 남서쪽으로 부남면에 접하고 있다. 주왕산, 무장산, 무포산등 산지가 산재하여 임야면적이 넓고 주산천, 주방천등이 서류한다. 청송~포항 국도, 청송~영덕 지방도, 청송~대전사 군도, 상평~이전 군도 등이 있어 교통이 편리하다. 산세가 웅장하고 기암괴석이 아름다워 소금강이라고 불리는 주왕산이 1976년 주왕산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문화재로는 대전사 보광전, 대전사석존여래삼존상 주왕산성 등이 있다.
2. 주왕산 살펴보기
<주왕산국립공원안내도>
- 1976. 3. 30. 국립공원 지정
- 산림청 선정 100대 명산
- 한국의 산하 선정 인기명산 100 중 19위
- 주왕산은 설악산, 월출산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암산(岩山) 중 하나
- 주왕산국립공원을 살펴본다. 주왕산은 우리나라 중앙부에 해당하는 태백산맥의 지맥에 위치하고 경북의 청송군과 영덕군 지역에 걸쳐져 있으며 1976년 3월 30일에 국립공원으로 지정 되었고 지정 면적은 총 107.425㎢에 달한다. 이 지역의 북서부에 태행산(933.1m), 대둔산(905m)이 솟아 있고 중앙부에 주봉격인 두수람(927.2m)등 평정봉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주능선과 금은광이 부근은 급경사의 지형으로서 외주왕 계곡은 기암이 용립해서 절경을 이루어 이곳 경관의 특색처럼 되어 있다. 이곳에는 뛰어난 자연경관 요소가 많은데 청학과 백학이 살았다는 학소대, 앞으로 넘어질 듯 솟아오른 급수대, 주왕과 마장군이 격전을 가졌던 기암, 주왕의 아들과 딸이 달구경을 하였다는 망월대, 멀리 동해가 보이는 험준한 지형의 왕거암, 주왕이 숨었다가 숨진 전설의 주왕굴, 그리고 폭포, 약수 등 탐방객을 매료 시키는 곳이 많이 있다.
- 주왕과 장군의 전설이 곳곳에 배어있는 유서 깊은 주왕산은 산은 그리 높지 않으나 거대한 암벽이 병풍처럼 둘러선 산세 때문에 예부터 석병산, 대둔산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려왔다. 주왕산은 대전사에서 제3폭포에 이르는 4㎞의 주방천계곡이 볼 만하다. 청학과 백학이 다정하게 살았다는 학소대, 넘어질 듯 솟아오른 급수대, 주왕이 숨어 있다가 숨졌다는 주왕암, 만개한 연꽃 모양 같다는 연화봉, 그리고 제 1, 2, 3폭포 등 명소가 즐비하게 자리 잡고 있다. 주방천의 백미는 학소대부터 1폭포까지, 학소대부터 1폭포에 이르는 길이 주방천에서 가장 아름답다. 2폭포와 3폭포가 있지만 규모나 폭포를 감싼 바위들의 형국으로 보나 1폭포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1폭포는 폭포의 규모가 작은 편이다. 그러나 이 폭포를 감싸고 돌아나간 바위들이 예술이다. 마치 바위들이 비밀의 문처럼 우뚝 버티고 서 있다. 그 사이로 선녀탕과 구룡소를 돌아 나온 계곡물이 새하얀 포말을 내뿜으며 바위 허리를 껴안고 쏟아져 내려온다. 주방천 계류와 폭포, 소, 담, 그리고 죽순처럼 솟아오른 암봉 및 기암괴석, 여기에 울창한 송림이 한데 어우러져 한 폭의 산수화 같은 절경을 빚어낸다. 주왕산은 태행산, 관음봉, 촛대봉 등 여러 산봉들 외에도 주왕굴, 무장굴 등의 굴과 월외폭포, 주산폭포, 내원계곡, 월외계곡, 봉산못, 구룡소, 아침 햇살이 바위에 비치면 마치 거울처럼 빛을 반사하는 병풍바위 등도 명소이다.
- 문화재로는 약 1,300년 전 신라 문무왕 12년(672년)에 창건한 대전사, 주왕의 딸 백련공주의 이름을 딴 백련암 등을 들 수 있다. 주왕산의 식생으로서는 신갈나무, 소나무 군락이 아름다운 경관을 더욱 빛나게 해 주고 있으며 멸종위기야생식물로 알려진 망개나무, 노랑무늬붓꽃, 둥근잎꿩의비름 등이 자생하고 있다. 주왕산국립공원은 대표적인 자연경관이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있는 주방계곡의 코스가 대다수의 탐방객이 찾고 있으며 가메봉과 주왕산, 장군봉을 등산하는 코스와 월외계곡, 절골계곡으로 횡단하는 코스도 많이 찾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계절 특성상 입산통제가 이뤄지기 때문에 산행계획 수립 시 유의하여야 한다.
- 주왕산국립공원 정규 탐방로 중 가장 일반적인 코스인 주봉코스는 주왕산국립공원 상의주차장을 등산기점으로 주왕산정상 - 칼등고개 - 후리메기 - 제1폭포 - 상의매표소로 원점 회귀한다.
<등 산 코 스 (주왕산국립공원제공)>
▶ 주봉코스 8.9 km / 4시간20분 ▶ 가메봉코스 : 14 km / 6시간 20분
▶ 주왕계곡코스 : 9.8km / 4시간 ▶ 절골코스 : 13km / 6시간10분
▶ 장군봉~금은광이코스 : 10.6km / 4시간50분 ▶ 월외코스 1 : 12.3km / 5시간
▶ 월외코스 2 : 12.2 km / 5시간10분
<주왕산 9경>
▶ 제1경 : 기암의 운해
- 택리지(擇里志)의 저자 이중환은 이 주왕산을 일러 ‘모두 돌로써 골짜기 동네를 이루어 마음과 눈을 놀라게 하는 산’이라고 했다. 주왕산에서 처음 눈을 놀라게 하는 산봉은 깃발바위, 곧 기암(旗岩)이다. 그가 그랬듯이 주왕산은 푸른 숲뿐만 아니라 곳곳의 빼어난 암석이 눈에 띄는 산이다. 그중 기암은 돌 중에서도 가장 첫 번째로 꼽을 수 있는 암석이다. 주왕산을 오르거나 내려 올 때 기암의 웅장함과 화려함을 눈으로 직접 느끼게 된다. 또한 오랜 풍파로 여유로운 마음을 가진 바위의 유유한 아름다움은 걸음을 재촉하는 등산객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기도 한다. 주왕산의 자연으로 인해 변화된 모습은 기암만 보면 알 수 있듯, 계절, 날씨 등 흐름을 제일 잘 보여주고 있다. 그중 이른 아침이나 비가 막 그친 직후 뽀얀 안개를 걸친 기암의 모습은 지상세계에서 천상의 세계를 보는 듯 한 느낌을 주어 많은 이들이 주왕산의 신비로운 모습을 잘 표현한 경치라 뽑고 있다.
▶ 제2경 : 가메봉의 일출
- 주왕산은 높이로 따지면 국립공원 북쪽 경계에 위치한 태행산(933.1m)이 가장 높지만 대전사 뒤 720.6m봉을 주봉으로 삼으며, 조망 명봉으로 가메봉 (882.7m·일명 석름봉)을 꼽고 있다. 가메봉 동쪽 안부에서 가메봉~먹구등~금은광이 삼거리 능선 구간은 비지정 탐방로로 산행이 허용되지 않고 있다. 주왕산 일원이 한눈에 다 들어올 정도로 조망이 뛰어난 가메봉 산행은 최고의 조망대로 꼽힌다. 대표적인 탐방로는 주방천계곡 제2폭포 들머리 위쪽 갈림목에서 오른쪽 사창골을 들어선 다음 후리메기에서 왼쪽 계곡길을 따라 정상에 오르고, 이후 북동 방향 능선 첫 번째 안부에서 왼쪽 큰골 내원마을이나 오른쪽절골로 내려온다.
▶ 제3경 : 제1폭포 신록
- 물소리가 가장 경쾌한 폭포다. 어디서 왔는지 그 시작점은 어느 곳인지 알 수 없지만 학소대를 지나면서 들리는 물소리는 휑한 마음을 쓸어가 버리는 것 같다. 폭포주위에 암벽이 둘러싸인 바람 한 점 없이 고요한 분위기에 폭포는 정적을 깨뜨리고 힘찬 물의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폭포가 떨어지는 물보라 속에는 오색무지개가 어리고 있어 또 하나의 볼거리를 자랑하고 있다. 폭포에 물이 고여 있는 곳은 물고기 떼가 놀고 있으며, 자갈이 깔려 있어 깨끗한 물은 등산객이 잠시 땀을 식힐 수 있는 공간도 마련 해준다. 암벽 틈바구니에는 꽃이 피어 있고, 암벽 사이로 트인 구만리 장천에는 신선만이 볼 수 있다는 구름이 지나가는 풍경을 즐길 수 있다.
▶ 제4경 : 내주왕의 단풍
- 주왕산은 아는 사람은 다 아는 단풍놀이의 명소다. 주왕산의 봉우리 정상과 그 사이사이에 물들고 있는 가을 단풍의 모습은 꼭 새신랑이 새색시의 붉은 연지곤지를 보는 것과 같은 설렘을 느끼게 한다. 주왕산은 크게 외주왕과 내주왕으로 나뉜다. 외주왕에는 주왕암, 주왕굴, 연화굴, 자하성, 기암, 망월대 등 주왕산의 전설이 담긴 명소가 군데군데 있다. 내주왕은 외주왕에 비해 사람의 손길이 덜 미친 곳으로 자연 그대로의 풍경을 즐기기에 좋은 곳이다. 인적이 드문 곳을 거니는 신비감과 가을철 낙엽을 밟으며 산을 오르는 묘미로 등산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기도 하다.
▶ 제5경 : 주산지 노거수
- 하늘아래 이처럼 신비로움과 아름다움, 바람에 일렁이는 물살처럼 사람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곳이 있을까 싶다. 주산지는 수령 1백년이 훨씬 넘은 왕버들과 능수버들이 호수 수면위로 뻗어 나와 경이로운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이런 안락함과 평화로운 배경으로 주산지를 찾는 사람들은 현 세계와는 동떨어진 느낌을 받는다.
▶ 제6경 : 망월대의 달맞이
- 주왕암에서 급수대로 가는 중간 지점 왼쪽 편에 망월대가 있다. 4,5명이 앉을 정도로 편한 자리여서 이곳에서는 사면을 두루 살필 수 있고, 드높은 하늘도 마음껏 바라 볼 수 있다. 주왕암 협곡에서는 달을 바라볼 수 없어 대전도군과 백련낭자가 이 망월대 위에서 달을 보면서 향수를 달랬다고 한다.
▶ 제7경 : 주방천의 수달래
- 주왕산의 수달래는 여느 꽃보다 새초롬한 빛을 발하며 산의 곳곳에 봄이 깊어 감을 알리고 있다. 혹은 '주왕(周王)이 흘린 피가 수달래(水丹花)로 돋아났다' 라고 하여 많은 이들에게 가슴 아픈 전설을 기억하게 해준다. 꽃의 기원이 어떻든 전설이 어떻든 수달래를 보기 위해 주왕산을 찾는 사람들이 생겨날 만큼 그 아름답고 단아한 멋을 알아주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고 한다. 주왕의 넋을 기리고 산을 찾는 사람들의 안전 등을 기원하기 위해 열고 있는 수달래제 또한 수달래가 주왕산을 대표하는 꽃으로 자리 매김하고 있다
▶ 제8경 : 월외계곡 설경
- 달기폭포는 청송읍 월외1리에서 약 2km지점에 있다. 폭포의 높이는 11m, 폭포 밑의 용소의 깊이는 옛 전설에 의하면 명주실꾸러미를 다 풀어도 바닥에 닿지 않을 만큼 깊었다고 하며, 이곳에서 용이 승천했다고 한다. 그 말이 허황하다 할지라도 정녕 이곳의 자연경관은 그럴듯하게 준엄하면서도 아름다워 용이란 존재가 살았을 만도 하게 느껴지는 곳이다. 주왕산 제1폭포의 오묘한 자연의미가 여성적이라면, 달기폭포는 남성적인 늠름한 기상이라 할 수 있다. 2km에 이르는 계곡을 거쳐 폭포 어귀에 접어들면 폭포너머로 바라보이는 태행산 마루의 뜬구름이 잡힐 것만 같은 절경이 펼쳐진다. 폭포 넘어 약 1.5km 지점인 월외2리에 이르는 계곡에는 깨끗한 반석이 깔려 있어 들놀이하기에 안성맞춤이다.
▶ 제9경 : 주왕굴 빙하
- 앙상한 가지만 남은 겨울보다 푸른 잎과 단풍의 화려함으로 수놓은 산이 더 아름답다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하지만 주왕산의 겨울 배경이 다른 계절보다 아름다울 수 있는 이유는 곳곳의 새하얀 조각 때문이다. 그중 주왕굴 옆으로 떨어지는 물줄기가 겨울바람과 만나 조각 같은 얼음 기둥이 세워진 모습은 여느 얼음 조각보다 곧고 힘찬 모습을 보이고 있다. 얼음 기둥 안으로 비치는 희미한 촛불의 희미함까지 신비로운 주왕산의 또 하나 신선의 모습이다.
<인기명산 100 중 19위>
- 산은 그리 높지 않으나 거대한 암벽이 병풍처럼 둘러선 산세 때문에 예부터 석병산, 대둔산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려왔다. 대전사에서 제3폭포에 이르는 4㎞의 주방천 주변이 볼 만하다. 주방천 계류와 폭포, 소, 담, 그리고 죽순처럼 솟아오른 암봉 및 기암괴석, 여기에 울창한 송림이 한데 어우러져 한 폭의 산수화 같은 절경을 빚어낸다. 10월 단풍철에 많이 찾지만 가을, 봄 ,여름 순으로 가볼만하다.
<산림청 선정 100대 명산>
- 석병산으로 불리울 만큼 기암괴봉과 석벽이 병풍처럼 둘러서 경관이 아름다우며 국립공원으로 지정(1976년)된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
- 대전사(大典寺), 주왕암이 있음. 주왕굴을 중심으로 남아있는 자하성의 잔해는 주왕과 고려군의 싸움의 전설이 깃들어 있는 곳으로 유명
Ⅲ. 산길여정
<주왕계곡전경>
- 주왕산은 본인이 모두산악회 입문이후 2008. 12. 4, 최초 다녀왔고, 최근 2011. 11. 17 두 번째 다녀온바 있으며, 오늘이 그 세 번째이다. 주왕산은 한여름 계곡산행 연장선상에서 주방천 폭포를 겨냥한 일정이었다. 겨울 초입에 접한 주왕산의 느낌보다는 한여름 수량이 많을 때 제1.2.3폭포의 위용과 그 진수를 맛보기 위함이었다. 오늘 일정에 잡혀있는 주봉코스는 주왕산 산행코스 중 가장 일반적인 코스로서 잘 정비된 탐방로를 따라 초보자도 쉽게 오를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왕산 상의주차장을 지나 대전사 - 주왕산(주봉) - 칼등고개 - 후리메기 - 용추폭포 - 상의주차장으로 하산하는 주봉코스는 8.9km / 4시간20분이면 무난하다고 주왕산국립공원에서 안내하고 있기 때문에 부담 없이 선정하였다. 울창한 산림 속 시원한 산바람을 맞으며 산행의 참 맛을 느낄 수 있는 주왕산(주봉) 코스는 한여름 7~8월에는 제1.2.3폭포의 시원함과, 가을철 10~11월에는 기암과 단풍의 조화가 잘 어우러져 경북 제1명산다운 기품을 뽐내고 있기에 오늘 그 진수를 또 다시 음미해보고자 하였다.
- 날씨예보 상 오늘 상황은 처음부터 아니올시다. 이었다. 한마디로 비극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행부 협의를 거쳐 일정을 강행한 것은 주봉코스 이외에 그에 버금가는 걸출한 주왕계곡코스를 그 대타로 염두에 뒀던 것이다. 또한 하루 종일 장대비가 내리지 않는 한 소강국면을 이용한 틈새를 노릴 수 있다는데 기대를 걸었기 때문이다. 들머리에서 정상까지 편도 2,3km를 감안하면 왕복 2시간 정도면 충분하였기 때문에 기대를 접을 수 없었다. 그 외 남는 시간을 활용하여 제1.2.3폭포구간 소요시간으로 운영하면 우중이라고 하더라도 큰 부담 없이 충분히 소화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였다.
- 급기야 내일 비가 온다는데 산에 갈 수 있나요? 라는 물음표가 꼬리를 물고 늘어지는 사태가 벌어지면서 목요산행신청방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었다. 이름을 올린 분들께서 기대 반, 우려 반 속에 동요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드디어 “내일 오전 중 주왕산에 20-39mm의 비가 온다는데 주왕1.2.3폭포는 장관이겠지만 신청하신 분들 모두 산행을 진행하시겠지요?” 라는 문구가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이를 수습하고자 부랴부랴 집행부 협의를 거쳐 현장상황에 따라 일정을 조정하여 운영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고 일정대로 정상운영하기로 의사 결정하였다. 그 결과 “내일 정기 산행일정 정상 운영합니다. 현장사정에 따라 코스를 적의 운영코자 하오니 신청하신 분들 참석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마도 내일 제1.2.3폭포 현장상황이 장관일 듯 싶습니다.” 란 댓글이 올라가면서 진정국면을 맞기도 하였다. 그러나 날씨예보의 영향을 톡톡히 받은 듯 참석률은 기대치 이하이었다. 2011. 7. 17 두 번째 탐방 당시는 버스 한 대 정원을 넘기는 성황을 이뤘던 것에 비하면 조족지혈이었던 것이다.
- 주왕산은 2008. 12. 4 오늘과 같은 코스로 다녀온바 있다. 그 당시 오전에 비가 내려 우중산행을 강행했던 기억이 새로웠다. 11~12월 산행일정을 짤 당시 주왕산을 거론하는 몇몇 분들의 의견을 염두에 뒀다가 반영한 것이다. 계절과 코스를 바꾸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지만 대전사에서 주봉과 장군봉 일원 이외의 코스는 12월15일까지 입산을 통제하고 있었기 때문에 주왕산을 처음 다녀오실 분들을 감안하여 상의매표소를 등산기점으로 정상 - 주방계곡 - 상의매표소로 원점 회귀하는 가장 일반적인 코스로 알려진 주방코스를 선정하여 안내준비를 하였다. 주산지(注山池)는 당일 현장의 상황을 봐 가면서 경유지로 점지해두었다. 주왕산은 워낙 인기 있는 산이기 때문에 많은 성원을 기대 했었는데 기대를 저버리지 아니하고 지난 월요일 늦은 오후시간대가 되면서 버스 한 대 정원을 확보할 수 있었다.
- 며칠 전부터 아침기온이 뚝 떨어져 영하권을 오르내리는 쌀쌀한 날씨가 계속되었다. 그렇지만 낮 기온은 영상 15℃를 웃도는 것으로 예보하고 있었기 때문에 오늘도 지난주에 이어 좋은 산행을 예고할 수 있었다. 다만 걱정스러웠던 것은 당일 비 소식이었다. 금요일부터 전국적으로 비가 내린다는 예보가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전날 잠자리에 들기 전에 확인한 청송일원의 날씨예보는 오후부터 구름이 끼는 정도였기 때문에 안심할 수 있었다. 빠른 길 찾기 정보에 의하면 대전사까지 262.5km / 3시간58분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었는데 예정시간보다 무려 30여분 앞당겨 상의주차장에 도착하였다. 우리 일행이 상의주차장에 도착할 시간대에는 우리 버스가 유일하였는데 입산준비를 하는 동안 한 대, 두 대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들머리 주변이 혼잡스러웠다.
- 상의주차장 들머리 입구에 있는 주왕산국립공원안내도 앞에서 오늘 일정에 대하여 보충설명을 마치고 안내도를 배경으로 단체기념을 남겼다. 오늘 점심은 주봉 정상을 지나서 갖기로 하였고, 하산은 산행운영시간을 5시간으로 잡고 15:00까지 예고하고 들머리에 들었다. 오늘은 주왕산 등산 팀 42명, 주방계곡 탐방 팀 5명으로 제대를 편성하여 운영하였다.
<기암전경>
- 상의주차장에 들어서면서 눈길을 끄는 바위가 바로 대전사 뒤에 우뚝 솟은 기암이다. 기암과 대전사가 한눈에 들어오면서 일행 분들의 눈길이 쏠리며 관심을 끌었기 때문에 기암에 얽힌 전설을 찾아보았다. 기암(깃발바위)이란 이름은 주왕이 은거할 당시 싸움이 시작되면 이 바위 봉우리에 깃발을 꽃아 아군에게 신호를 보낸 데서 연유한 이름이라고 한다.
- 주왕산의 11경 중 첫 번째로 꼽는 곳이 기암이다. 기암은 한자로 旗岩(깃발바위)라는 뜻이다. 주왕산의 전설에 의하면 주왕이 군사를 이끌고 산속에 은신하고 있을 때 산 밖의 마장군의 군사를 현혹시키기 위하여 기암을 거적으로 덮어 볏가리인 듯 위장하고 주방천계곡에 회를 뿌려 쌀 씻은 물이 흘러내리는 것처럼 보이게 하여 식량이 많이 있는 것처럼 속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원래는 한 개의 봉우리였으나 풍화와 침식에 의해 7개의 봉우리로 구성되었으며 대전사 부근에서 바라보는 기암은 그 위용이 보는 이를 압도한다. 바라보면서 봉우리 왼편에는 언제 떨어져 나갔는지 알 수 없으나 크게 바위가 떨어져 나간 흔적이 남아 있는 데 이와 관련하여 아래와 같이 두 가지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 첫째 : 주왕의 군사와 마장군의 군사가 대치할 때 주왕이 거적을 기암에 덮어 볏가리인 듯 위장하고 개울에 회를 뿌려 쌀뜨물인 것처럼 보이게 하여 식량이 넉넉한 것처럼 보이자 마장군이 진짜 볏가리인지 확인하기 위하여 기암을 향해 활을 쏘아 떨어져 나간 것이라는 이야기가 구전으로 전해진다.
▶ 둘째 : 天矢石(천시석) 전설이다. 주왕산에 금자라가 사는 금오택이 있어 대전사의 승려와 인근사람들이 신성시 하였다. 어느 날 인근 지역의 감무가 찾아와 금오택의 금자라를 잡아서 법당에서 요리를 해먹으려는데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며 천둥이 치고 바람이 불더니 집채만 한 바위가 법당의 지붕을 뚫고 날아와 감무 앞의 상에 떨어졌다. 이에 놀란 감무는 크게 놀라 달아났으나 이후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다고 한다. 법당 지붕을 뚫고 날아온 바위가 바로 기암에서 떨어져 나온 바위로 그릇된 이에게 하늘의 뜻을 알리는 천시석이 되었다고 한다.(자료출처 : 청송문화원)
<대전사>
- 09:55 상의매표소, 대전사 경유
- 상의주차장을 출발하여 10여분 남짓 주방천변 상가지역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상의매표소에 이르렀다. 상가 양쪽으로는 이곳 특산품들이 풍성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눈길을 끄는 것은 사과막걸리가 단연 으뜸이었다. 하산 길에 반드시 맛을 보고야 말겠다고 오늘의 목표로 삼는 분들이 눈에 띠었다. 자못 하산 길 이곳 풍경이 눈에 아른거렸다.
- 대전사 경내에는 국화차 시음대가 있었지만 대충 눈팅만 하고 하산 길로 미뤘다. 오늘 입산들머리에 자리한 대전사에 대하여 살펴보고 넘어간다. 대전사는 청송군 부동면 상의리 200번지에 세워진 사찰이다. 신라 문무왕 12년(672)에 의상(義湘)이 창건하였다고 하나 건물의 양식으로 보아 조선중기를 넘지 못한 건물이다. 사찰 경내에는 보광전, 명부전, 산령각 등이 있고 부속암자로 백련암, 주왕암이 있는데 보광전은 목조와가에 맞배지붕으로 다포집이며 정면3각이다. 일설에는 약 1000여 년 전 고려태조 왕건 2년에 보조국사가 주왕의 아들 대전도군 입산 당시 창건한 사찰이라고 하며 창건할 당시에는 매우 웅장한 사찰이었으나 중년에 화재로 소실되어 버리고 입구의 비석과 부도만이 남아 있다. 대전사 건물로는 보광전(普光殿)과 명부전·산령각·요사채 등이 있고, 유물로는 보광전 앞 삼층석탑 2기와 사적비·부도 등이 남아 있다. 이 중 보광전은 국가지정 보물 제1570호로 지정된 정면 3칸의 다포계 맞배지붕 건물이다. 내부에 임진왜란 당시 이여송(李如松)이 유정에게 보냈다는 친필 서신을 목판으로 음각한 것이 보관되어 있다. 보광전 앞의 석탑은 근처에 흩어져 있던 석탑재를 짜 맞춘 것이다. 임진왜란 때 이여송 장군이 당시 승병훈련을 시키고 있던 사명당에게 보낸 친필이 새겨진 목판이 대전사에 보관되어 있다. 크기는 가로 42.5cm 세로 24.5cm이고, 글 내용은 목판음각(50*29cm)되어 있으며 임진왜란 때 명나라 장수 이여송이 사명대사에게 보낸 편지다. 동산문화재 2625호로 지정되었다.
<전망대>
- 10:21 전망대 경유
- 급사면구간에 설치된 난간을 힘겹게 오르고 나면 가쁜 숨을 고르면서 주방계곡일원에 펼쳐진 풍광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가 기다리고 있다. 전망대에 도착하면서 공원 직원 분들께서 주변에 널려 있는 생활쓰레기 수거장면을 목격할 수 있었다. 산객들이 투기한 쓰레기를 줍는 모습에서 부끄러움을 금할 수 없었다. 버리는 님 따로 있고, 줍는 님 따로 있구나 하는 생각에 이르자 씁쓸한 웃음이 절로 나왔다. “수고하십니다” 라는 인사말을 건네면서 그 분들의 수고로움에 감사를 드렸지만 아름다운 산행문화가 정착되기에는 아직 멀었구나? 하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 전망대에서는 왼쪽으로부터 혈암, 장군봉, 기암, 연화봉, 병풍바위, 급수대 일원이 시원하게 조망되었다. 이곳에 설치된 안내판에는 주왕산국립공원은 설악산, 월출산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암산 중의 하나이며 특히 주왕계곡은 기암괴석과 다양한 식생이 분포되어 있어 봄에는 신록이, 가을에는 단풍이 매우 아름다운 영남 제1의 명산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 전망대에서 5분 남짓 급사면 구간을 오르면 정상 0.8km, 대전사 1.5km를 알리는 이정표가 나오면서 능선안부로 이어진다. 이곳에 낙뢰다발지역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비올 때나 낙뢰 예보가 있을 때 출입을 삼가 해 달라는 주문이 걸렸다. 왠지 으스스한 느낌이 들어 발걸음을 재촉하였다.
- 이 구간을 지나면서 소나무에 난 빗살무늬상처가 채 아물지 않은 채 꿋꿋이 길목을 지키고 있는 모습들이 자주 띄었다. 일제 강점기 때 송진채취 흔적으로 보기에는 소나무의 수령에 의구심이 생기기도 하였는데 곧이어 의문이 풀렸다. 60년대 중반 주왕산의 울창한 소나무는 당시 경제사정에 의해 개발대상이었으며 3년 동안 송진 채취 후 원목으로 벌채되었다고 한다. 이 사업이 한창 진행되던 1976년에 주왕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중단되었으나 송진채취과정에서 생겨난 빗살무늬 상처는 치유되지 않은 상태로 지금까지 남아있다는 안내문이 탐방로 구간 요소요소에 세워져 있었다. 이정표에서 0.5km 정도 능선길로 이어지다가 정상 0.3km지점부터 마지막 급사면 구간으로 이어졌다. 마지막 나무계단을 오르면서 정상에 도착하였다.
<주왕산 정상석>
- 10:49 정상도착
- 상의주차장을 출발한지 한 시간여 만에 정상에 도착하였다. 대전사에서 2.3km 구간을 후미기준 1시간20분을 예상하였는데 선발팀에서는 20여분 앞당겨 올라온 셈이다. 정상에는 2005. 4. 30 청송군에서 설치한 정상석과 대전사 2,3km, 후리메기갈림길 2,5km, 제2폭포 3,8km, 해발 720m를 알리는 이정표, 구조구급함, 탐방안내도 등이 세워져 있다. 정상석 하단에 “여기 천기(天氣)와 지령(地靈)이 서린 영봉(靈峰)에 청송군민의 정성을 모아 한 덩이 돌을 세워 하늘이 열어 놓은 영산(靈山) 주왕산이여 영원하리라”라고 새겨진 비문이 눈길을 끌었다. 그런데 주왕산 정상의 높이에 대하여 숙제가 풀리지 않았다. 정상석에는 722m, 정상 이정표에는 720m, 등산지도나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높이는 720,6m나 721m로 안내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정상석을 기준으로 722m로 정리하고 넘어간다.
- 주왕산 정상에서의 조망이 시원하지 않다는 것은 이미 다 아는 바이다. 한여름에는 숲에 가려 조망권을 포기해야 하지만 늦가을이나 한 겨울에는 나뭇가지 사이로 펼쳐지는 주변 조망에 은근히 기대도 걸어 보았지만 허사로 끝나고 말았다. 동행한 일행 분들로부터 실망의 눈빛을 읽을 수 있었다. 그 분들을 위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주방계곡 협곡에 펼쳐진 절경 이외에는 방법이 없을 듯 싶어 앞으로 전개될 주방계곡 “제3폭포에서 학소대” 구간의 비경이 기다리고 있으니 기대를 걸어달라는 당부의 말을 남겼을 뿐이다.
- 주왕산 이름은 신라 말부터 주왕이 은거하였던 산이라 하여 주왕산으로 불리게 되었다. 주왕산은 매우 깊고 험준하다는 말을 듣고 옛날부터 난리가 났을 때마다 이곳으로 피난을 온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선유 선사들이 산에 와서 살았다하여 대둔산이라고도 했고, 신라 선덕여왕의 족자인 김주원이 여기에 와 있었다 하여 주방산이라 했다가 신라시대 중국의 동쪽에 있던 진나라에서 복야상서란 벼슬을 지낸 주의 팔대손 주도가 당나라 덕종황제 정원 15년(신라 소지왕: 서기 799)에 진나라를 회복하고자 장사 수백 명을 주축으로 수만 군사를 이끌고 남양에서 반기를 들고 일어났다.
- 주도가 자칭 후주천왕이라 하고 당시 서울인 장안을 쳐들어가다가 당나라 군사에게 패전을 당하고 요동으로 쫓기어 압록강을 건너 강원도 원주를 걸쳐 석병산이 매우 깊고 험하다는 소문을 듣고 이 산에 은거하였으나 신라왕이 당나라 왕의 청을 받아 마일성장군을 시켜 주도를 잡게 하니 마일성장군은 자기의 아우인 이성 삼성 사성 오성과 합세하여 대군을 거느리고 석병산을 포위하고 주왕을 잡았다. 그 후 나옹스님(서기1320~1376년)이 이곳에서 수도할 때 이산을 주왕산이라 불러 지금까지 주왕산이라 부르고 있다. 주왕산 정상에서 중간팀과 동행하신 회장님과 터치를 하고 칼바위고개로 발길을 옮겼다.
<후리메기삼거리>
- 11:44 후리메기 삼거리 경유
- 정상에서 중간팀과 합류하면서 회장님과 터치를 하고 칼등고개로 향했다. 칼등고개란 이름으로 봐서 2주 전 다녀온 신불산 칼바위능선이 연상되었다. 3년 전 이 코스를 다녀간바 있었지만 칼등고개 현장의 상황이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정상에서 진행방향을 살펴보았지만 그다지 높지 않은 봉 몇 곳이 있었을 뿐이었다. 칼등고개 암릉을 지나면서 또 한 번 짜릿한 스릴을 느껴볼 수 있을 것을 기대했었는데 허사로 끝나고 말았다. 완만한 능선을 가볍게 오르내리면서 내리막 구간이 끝나고 후리메기삼거리 0.5km 지점에 이르면서 계곡산행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칼등고개를 언제 어떻게 넘었는지 너무나 싱겁게 경유하고 말았다. 칼등고개임을 인식할 수 있는 표식이 없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 후리메기삼거리는 가메봉으로 갈라지는 분기점이다. 여기서 가메봉 2.6km, 대전사 4.1km, 제3폭포 1.3km, 주왕산 2.5km를 알리는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가메봉 방향으로는 입산통제 안내판과 함께 로프로 금줄이 매져 있었다. 후리메기라는 지명 유래를 알아보고자 몇몇 곳을 검색해 보았지만 마땅한 자료를 찾지 못하였다. 다만, 주왕의 군사가 훈련하였던 장소라 하여 훈련목으로 불리다 후리메기로 바뀐 것으로 추정되며 이와 유사한 지명으로 월미기가 있다고 하였다. 지방에서 사람들이 편하게 부르던 이름이 고유지명으로 바뀐 것이거나 목이란 표기가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일본식 표기명인 갈림길이란 뜻의 기(岐:갈림 기) 자 로 바뀐 것으로 추정된다는 정도의 정보만 입수하였을 뿐이다.
- 후리메기 삼거리는 오늘 점심장소로 제격이었다. 선발팀에서 옹기종기 모여 앉아 점심준비를 하는 동안 회장님이나 총무님과 통화를 시도해 보았지만 서비스제외지역이란 안내문만 읽을 수 있었다. 중간 그룹과 후미 그룹 상황이 궁금하였지만 별 도리가 없었다. 다음 주에는 무슨 수를 쓰던 지간에 시간을 내서 무전기를 반드시 교체하고야 말겠다고 다짐해 보기도 하였다. 여기서 점심식사를 마치고 선발팀과 함께 주방계곡으로 향했다.
<주방계곡>
- 12:43 후리메기 갈림길 경유
- 후리메기갈림길은 제3폭포 0,3km, 대전사 3,1km, 후리메기삼거리 1km 지점에 있는 중요한 갈림길이다. 이 지점에서 계곡 상류로 0,3km 지점에 있는 제3폭포를 경유하였다가 내려오면서 제2폭포, 제1폭포, 주왕골을 경유하여 내려가는 것이 오늘 일정상 하이라이트였던 것이다. 여기서 주방계곡에 대하여 개괄적으로 살펴보고 주요 볼거리 몇 곳을 짚어보고자 한다.
- 주방천은 주왕산 골짜기를 따라 흐르는 맑은 계곡이다. 빼어난 자태를 가진 천태만상의 기암괴석 사이를 감도는 주방천은 멋진 폭포도 셋이나 거느리고 있으며 협곡을 이룬 암벽들이 호위하고 있어 깊고 그윽한 맛도 풍기는 곳이다. 청송군과 주왕산국립공원에서는 주왕산지(周王山志) 등 문헌을 참고해 폭포의 명칭을 용추(龍湫)폭포(제1폭포), 절구폭포(제2폭포), 용연(龍淵)폭포(제3폭포)로 병행하여 사용하기로 했다고 한다. 제3폭포는 주방천의 폭포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며 상단과 하단을 이룬 단폭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단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내려갔다가 상단으로 올라가는 계단으로 이어진다. 제3폭포에서 1,2km 지점 하류에 있는 제1폭포는 그다지 높지는 않지만 아래의 못은 깊고 푸르며 기암절벽에 둘러싸여 있어 절경을 이룬다. 폭포가 되기 직전에 굽이치는 계류도 멋지다. 또한 제3폭포에서 하류로 0,6km 지점에는 제2폭포가 그 위용을 뽐내고 있다. 제3폭포에서 하류로 0,4km 지점에 있는 제2폭포 갈림길에서 왼쪽 오솔길로 0,2km / 5~6분 남짓 협곡을 따라 오르면 제2폭포에 이른다. 제2폭포는 2단으로 이루어진 자태가 절묘한데, 위쪽의 못을 구룡소, 아래쪽의 못을 선녀탕이라고 부른다.
- 주방계곡은 주왕산의 대표적인 계곡으로 주왕산국립공원 탐방객들의 80∼90%가 이 계곡을 찾고 있다. 이 계곡에는 4월 말∼5월 중순경에 수달래(산철쭉)가 피고 수달래가 피는 시기에 맞춰 관할 지방자치단체가 주최하는 수달래 행사가 열린다.
- 주왕산 주방계곡 수달래는 그 옛날 주왕이 주왕굴에서 신라 마일성장군의 철퇴를 맞아 최후를 마칠 때 흘린 피가 주방계곡을 타고 흘렸으며 그 후부터 주방계곡에 수달래가 피어났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 주방계곡은 청학과 백학이 다정하게 살았다는 학소대, 넘어질 듯 솟아오른 급수대, 주왕이 숨어 있다가 숨졌다는 주왕암, 만개한 연꽃 모양 같다는 연화봉, 제1~제3폭포 등이 어우러져 비경을 이룬다.
<제3폭포>
- 12:47 제3폭포 경유
- 후리메기 입구에서 상류로 0,3km 지점에 이르면 제3폭포 중 하단으로 이어진다. 전망대에서 상단과 하단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지만 상단은 상단 전망대에서 보는 것이 일품이다. 웅장하고 거대한 2단을 이룬 제3폭포는 주왕산 국립공원의 백미로 꼽힌다. 갈수기이기 때문에 수량이 없을 것으로 여겼었는데 의외로 물이 많은 편이기 때문에 입이 귀에 걸린 하루였다.
- 제3폭포는 두 줄기의 낙수현상으로 쌍폭 또는 중폭이라고 한다. 주왕산 지역 폭포 중에서 최대크기와 웅덩이를 형성하고 있다. 2단폭포인 제3폭포는 1단폭포에 의한 침식혈과 폭호가 존재하고 전체적인 낙수차는 10m내외로 형성되어 있다. 유량에 따라 폭포의 웅장함이 다르게 나타나므로 한 여름 계곡산행으로 그 진수를 맛보고 싶은 충동이 일기도 하였다. 계절을 잘 선택하여 다시 찾고 싶은 곳으로 점지해두고 제2폭포로 향했다.
<제2폭포>
- 13:20 제2폭포 경유
- 제3폭포에서 하류로 0,6km 지점 협곡에 위치한다. 제3폭포에서 하류로 0,4km 지점에 있는 제2폭포 갈림길에서 0,2km 협곡을 따라 올라가면 아담하고 주위 경치가 빼어난 제2폭포가 나온다. 제2폭포가 있는 계곡은 제3폭포에서 내려오는 물과 수원이 다른 별개의 계곡이다. 제3폭포에 비해 수량이 적어 빈약하게 보였지만 한여름 수량이 많아지면 그 위용을 뽐내고도 남음이 있을 것으로 보였다. 위쪽의 못을 구룡소, 아래쪽의 못을 선녀탕이라고 부른다. 그 옛날 선녀들이 달밤이면 하늘에서 내려와 목욕했던 곳이라 해서 선녀탕이라고 하는 전설과 옛날 아홉 마리 용이 살았다는 전설이 어려 있는 곳이다.
<제1폭포>
- 13:37 제1폭포 경유
- 드디어 주방계곡의 백미인 제1폭포 구간에 이르렀다. 제1폭포를 지나면서 학소대, 급수대, 병풍바위, 시루봉 등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주왕산의 학소대 위쪽에 있는 3개의 폭포 중 제1폭포는 사면이 바위로 둘러싸인 속에 옥같이 맑은 물이 쏟아지고 있다. 제1폭포가 항아리 형 소를 지나 떨어지는 데서 시작, 큰 소를 만들어 좁은 수로를 빠져 나가는 구간에는 보도를 일종의 교량처럼 철난간으로 만들어 놓았다. 또한 위험구간에는 안전시설이 설치되어있다. 단애를 이룬 암벽 바로 아래로 길이 나있기 때문이다. 암벽이 사방을 둘러싸고 있는 넓은 소로 아담한 물줄기가 떨어지면서 폭포를 이뤘다. 소에 고인 물이 아래로 흐르면서 깊은 수로를 만들었고 그 사이로 내려오면서 좌우로 암봉들이 하늘을 찌를 듯 도열해 석문을 이룬다. 이곳이 주왕산이 주는 최대의 감동 코스이다. 자연이 만들어놓은 비경에 경탄사가 절로 터져 나왔다. 이곳을 빠져나오면서 학소대로 이어진다.
- 주왕산의 절경을 이루는 암석들은 화산의 분화구에서 폭발한 뜨거운 화산재가 지면을 따라 흘러내리다가 쌓여 굳어진 '회류 응회암'(ash-flow tuff)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어떤 회류응회암들은 침식에 약하기 때문에 풍화 차이에 따라 수직 절벽이나 계단 모양의 지형, 폭포 등을 만들어 내게 되는 것이다. 주왕산을 형성한 화산 활동은 지금으로 부터 약 7천만 년 전으로 추정된다고 안내되고 있다. 지질학적으로는 중생대 백악기 후기라고 한다. 이때는 바로 한반도에 공룡들이 떼 지어 살던 시기와 맞아 떨어진다
<학소대>
- 13:43 학소대 경유
- 수직으로 서있는 절벽의 모습을 한 학소대(鶴巢臺)는 급수대와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다. 하늘을 찌를 듯이 솟은 절벽 위에는 청학과 백학 한 쌍이 둥지를 틀고 살았다고 하여 학소대라 불린다. 해방 전 이 정상지점에 청학 백학 한 쌍이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일인(日人)포수가 백학을 쏘아 잡아 버린 후, 날마다 슬피 울면서 부근을 배회하던 청학마저 자취를 감추어 버리고 지금은 옛 보금자리만 남아있다. 또한 학소대 중간쯤에 수백 년 묵은 풍채가 좋은 회양목이 있었는데 어떤 사람이 그것이 탐이나 서 톱을 허리에 차고 암벽을 기르다가 떨어져서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말았다. 이처럼 학소대는 애달픈 사연이 얽혀 있으며 주왕산의 경관을 한결 돋보이게 하는 기암이기도 하다.
<병풍바위>
- 13:44 병풍바위 경유
- 학소대 오른쪽에 있는 마치 병풍을 두른 듯 한 바위를 병풍바위라 부른다. 신라 때 석병산이라 불린 연유를 알 것 같았다. 주왕굴 오름길 전망대에서 건너다보면 병풍바위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급수대>
- 13:46 급수대 경유
- 급수대는 신라37대 선덕왕이 후예가 없어서 무열왕 6대손인 상재 김주원을 38대왕으로 중대 및 각부대신들이 추대하였는데 즉위 직전에 돌연 김경신이 왕위에 오르고자 내란을 일으킴으로 김주원이 왕위를 양보하고 석병산으로 은신하여 대궐을 건립한 곳이라고 한다. 대궐터는 급수대 정상이라고 전해지며 지금도 유적이 남아있다. 김주원이 대궐을 건립하여 은둔생활을 할 당시 산상에는 샘이 없었으므로 계곡의 물을 퍼 올려서 식수로 하였으므로 급수대라 부르게 되었다고 안내하고 있다. 급수대 역시 주왕굴 오름길 전망대에서 내려다 보면 전경을 시원하게 볼 수 있다.
<시루봉>
- 13:45 시루봉 경유
- 시루봉은 그 생김새가 떡을 찌는 시루 같아서 시루봉이라 불린다. 밑바닥에서 불을 때면 연기가 시루봉 전체를 감싸면서 봉우리 위로 치솟는다고 한다. 측면에서 바라보면 마치 사람의 옆모습처럼 보이기도 한다. 옛날 어느 겨울철 도사가 이 바위 위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신선이 와서 불을 지펴 주었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주왕암>
- 14:03 주왕암 경유
- 주왕암갈림길에서 7~8분 정도 사면길을 오르면 오늘 두 번째 만나는 전망대에 이른다. 전망대에서는 연화봉, 병풍바위, 급수대가 시원하게 건너다보인다. 전망대에서 조망을 즐기면서 호흡을 가다듬은 후 부담 없이 7~8분 오르면 주왕암에 이른다.
- 주왕암은 제1폭포에서 1km지점, 주왕암갈림길에서 0,8km 지점에 있다. 또한 대전사에서 동북으로 계곡을 따라 올라오면서 자하성에서 동쪽 비탈진 계곡 끝에 자리하고 있는 암자다. 대전사와 동시에 창건된 고찰이며 주왕이 기거한 주왕굴 입구에 위치한다. 주왕의 이름을 따 주왕암이라 부르며 법당인 나한전과 문간채인 가학루(駕鶴樓), 요사채로 이루어져 있다. 조선시대 때는 주방사라 부르기도 하였다. 주왕사적의 기록에 의하면 신라 말인 892년에 '낭공대사'가 대전사보다 먼저 창건했다고 한다. 1797년 '홍의호' 청송부사가 쓴 상량문에는 '승묵' 스님이 홍 부사에게 중수를 건의하고 부사가 이를 받아들여 각계각층의 협조로 중수하였다고 기록돼 있다. 조선시대 기록에 의하면 이 암자 주변에 연못이 있었다고 하는데 이것은 주방산성 축조시 만들어진 우물로 보인다. 주왕암에는 나한전, 가학루, 산령각, 요사가 있으며 가학루는 1994년에 완전 해체하고 그대로 지었다. 나한전에는 동자상을 포함해 19나한이 봉안돼 있다. 이 나한상들은 진철대사의 작품인 듯해 문화재적 가치로도 높이 평가되고 있다. 주왕암 옆으로는 주왕의 최후 전설이 전해져오는 주왕굴 협곡으로 들어가는 좁은 길로 이어진다.
<주왕굴>
- 14:06 주왕굴 경유
- 주왕굴은 신라 때 주왕이 와서 머물렀다는 곳이다. 주왕암 입구에 서면 양 사면이 바위 봉우리로 되어있다. 왼쪽으로 촛대봉이 높게 절 뒤를 막아섰고 오른쪽으로 큰 절벽사이에 작은 협곡이 나 있다. 이 길을 따라 30m쯤 들어가면 거대한 암벽에 주왕굴이 있다. 약50m 되는 절벽 하단에 세로 5m, 가로 2m 정도의 작은 동굴이다. 주왕은 천연의 요새인 이곳에서 대망의 꿈을 저버리지 않고 재기를 다짐하면 숨어 살다가 맞은편 촛대봉에서 신라장수 마 일성 장군이 쏜 화살에 맞아 최후를 마쳤으며 주왕과 군사 그리고 그의 식솔들이 흘린 피가 주방 천으로 흐르면서 붉은 수달래가 되었다고 한다. 굴 앞에는 폭포가 쏟아 내려 겨울에는 빙 폭이 되어 주왕산 9경 중 하나인 “주왕산빙하”로 장관을 이룬다. 깊이 2m 정도의 굴속에는 탱화와 산신상이 안치되어 있고 촛불을 밝히고 있다.
- 주왕굴은 협곡사이 암벽에 위치한 자연동굴로 주왕이 마장군의 공격을 피하여 이곳에 은거하던 어느 날, 굴 입구에 떨어지는 물로 세수를 하다가 마장군 일행에 발각되어 마장군의 군사가 쏜 화살에 맞아 주왕의 웅대한 이상을 이루지 못하고 애절하게 죽었다는 전설이 전해져 오고 있다고 안내하고 있다.
<무장굴>
- 14:15 무장굴 경유
- 오늘일정상 무장굴은 포함되지 않았었다. 주왕암 화장실 앞에 있는 무장굴갈림길에 이르러 마음이 변했던 것이다. 주왕암에서 불과 0,4km 지점에 무장굴이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시간대로 봐서 충분히 다녀오고도 남음이 있은 시간이었다. 함께 있던 몇몇 일행 분들의 동의를 얻어 무장굴을 경유하기로 하였다.
- 무장굴은 신라말기(9세기경)에 은거하던 주왕의 군사들이 훈련을하며 무기를 은닉했던 곳이라고 전해오는데 굴속으로 약 6m들어가면 암석이 가로 막고 있는 구멍이 있어 더 이상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
Ⅳ. 주요(주변)볼거리
<주산지>
- 주왕산 한 편에는 약 300여년의 세월이 전해지는 저수지 '주산지'가 있다. 깊은 주왕산 자락을 따라 물을 모아 만든 주산지 한가운데는 머리카락을 바람에 살랑이고 있는 굵은 왕버드 나무들도 있다. 주산지는 조선 경종 원년1720년 8월에 착공하여 이듬해에 완공한 농업용 저수지이다. 길이 100m, 너비 50m, 평균 수심 7.8m의 조그만 산중 호수라고 말할 수도 있다. 이 아름다운 호수는 오랜 역사 동안 아무리 가뭄이 들어도 바닥을 한 번도 드러낸 적이 없는 농민들이 믿고 의지하던 저수지 이다. 주산지는 이전리 마을에서 약3㎞거리에 위치하고 있으면서 주왕산 영봉에서 뻗어 나온 울창한 수림에 둘러싸여 한적하고 아늑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 고요한 주산지 : 가을, 단풍이 물들면 용이 승천한다는 주왕산 별바위가 왼편에서 지켜보고 있고, 파란 하늘과 울창한 숲의 주산지 경치는 그야말로 자연만이 만들 수 있는 세상의 유일한 창조물이 아닐까 한다. 수면 위로 튀어 오르는 붕어의 퍼드덕거림과 산 위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버들나무를 쓸어내리는 소리는 마음을 고요하게 만들어 평화로움을 가져다준다.
- 물속에 뿌리박고 있는 왕버드나무 : 주산지의 가장 아름다운 배경은 바로 30여 그루의 왕버들 고목이 물에 잠긴 채 자생하고 있는 모습이다. 국내 30여종의 버드나무 중 가장 으뜸으로 꼽히는 왕버들은 숲속에서 다른 나무와 경쟁치 않고 아예 호숫가를 비롯한 물 많은 곳을 택해 자란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다른 나무의 자생 속도 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성장한 뒤 수백 년간을 자연에 의지하는 듯 유유한 모습으로 살아간다고 한다.
-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촬영지 : 주산지는 내(內)와 외(外)가 공존하는 듯한 공간이라는 느낌을 가져다주어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의 촬영지 이기도 하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은 한 인간의 평범하지 않은 삶을 계절의 흐름과 불교의 윤회사상에 빗대어 독특한 방식으로 풀어가는 영화인데, 이 영화는 제41회 대종상영화제 시상식에서 대상인 최우수 작품상, 2003 청룡영화상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한 영화로도 유명하다. 현재 영화촬영세트장은 영화촬영 후 환경보호를 위해 철거된 상태이다.
<얼음골>
- 경상북도 청송군 부동면 팔각산로 228(내룡리 1번지)에 위치한다. 속칭 잣밭골은 내룡리에서 동쪽 2km 지점에 있다. 골이 깊고 수목이 울창하여 인적이 드물고 산새만이 한가히 지저귀는 곳으로, 잣밭골 입구에 웅덩이가 있는데 한 여름철 섭씨32도 이상만 되면 돌에 얼음이 끼고 32도 이하가 되면 얼음이 녹아 버린다. 이상한 것은 기온이 올라 갈수록 얼음이 두껍게 언다는 것으로, 이는 자연의 신비한 조화일 것이다. 이 산 주변은 마치 석빙고 속에 있는 것처럼 겨울옷을 입고 있어도 더운 줄 모르며, 이끼 낀 바위를 감싸고 흘러내리는 청산 옥계수에 손을 담그면 마치 얼음같이 차다. 약수탕은 주왕산 관광객들이 간혹 이곳에 와서 야영을 즐기는데, 소백산맥 줄기에 이어진 만악천봉 굽이굽이는 기암괴석의 절벽을 이루었고 혹은 다정스런 능선을 이루기도 하여 이루 말로 표현을 다할 수 없는 경관인데도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아서 찾는 사람이 드문 형편이다. 또한 이 석빙고 바로 밑에 절벽이 있는데, 이 절벽 이름을 "원자바위"라고 한다. 옛날 어느 원님이 말을 타고 항리(項里) 순시차 절벽을 넘다가 말과 함께 절벽 밑으로 떨어져서 원자바위라고 이름 지었다 한다.
<달기약수>
- 달기약수는 청송군 청송읍 부곡리에 소재한다. 조선조 철종 때 청송부사 권경하가 수로공사를 하였는데, 공사 중 바위틈에서 꼬르륵 꼬르륵 소리 내며 솟아나는 물을 발견, 사람들이 그 물을 마셨는데 트림이 나고 속이 편안하여 위장이 약한 사람들이 애용하기 시작하면서 약수터로 개발되었는데 옛 지명이 청송군 부내면 달기동이라 달기약수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 달기약수는 철분(Fe), 칼슘(Ca), 마그네슘(Mg) 등 각종 미네랄이 다량 함유되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계명문화대 이성호(식품과학과)교수는 "청송 달기약수의 수질특성에 관한 연구논문" 발표에서 이같이 밝히면서 과다한 섭취는 고칼슘증과 신결석, 철중독 증세를 일으킬 수 있다고 했다. 이 교수는 달기약수 1ℓ당 성인남녀 하루 섭취권장량 가운데 철분 95.1%, 칼슘 35%, 마그네슘 36% 등 많은 양의 미네랄이 함유되었다고 밝혔다. 특히 철분은 조혈작용에, 마그네슘과 칼슘성분은 뼈, 치아 구성과 신경흥분억제효과, 체액의 산, 알카리 균형에 필요한 성분으로 알려져 있으며, 위장병과 빈혈, 부인병에 효험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