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6월 블랙야크 100명산 첫산행으로 시작한 함양 황석산!
오늘은 블야명산100_어게인 37좌를 위해 찾았다.
2016년도에는 용연마을에서 시작하여
거망산을 경유하여 용추계곡으로 하산하였는데
오늘은 우전마을에서 시작하여 용연마을로 하산하였다.
늦은시간 도착하여 오늘은 최단코스로 산행하기 위해
우전마을 회관을 지나 사방댐까지 이동하였다.
이곳에는 약 5~6대의 차량을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우전마을 사방댐에서 정상까지는 약 2.6km이다.
좀 쉽게 올라가지 않을듯 싶다.
초기 사방댐에서 포장도로를 따라 걷다가
우측의 산길로 접어들면 이렇게 계단길이 나온다.
그러나 이러한 계단길도 잠시...
피바위까지는 이런 길 같지도 않은 너덜길을 걸어야 한다.
길 우측에는 우전마을 식수원으로 사용하는 계곡물이 흘러
그나마 더위를 식혀주는 듯 하다.
산행을 시작한지 19분(730m)만에 도착한 피바위!
피바위에는 조선시대 우리나라의 힘의 약세로 인해
고통을 겪는 한많은 여인들의 한이 깃들여 있다.
1597년 정유년에 왜적이 재차 침략을 해왔을 때 경상남도
안의, 거창, 함양 3개 읍의 백성과 군사들은 황석산성을 지키고 있었다.
당시 김해부사 백사림은 겁을 먹고 북문을 열고 달아나고 말았다.
열린 북문으로 왜적이 쳐들어 왔고 성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이때 성 안에는 옥녀라는 여인이 있었는데 의병으로 출전하였던 남편이
왜적의 손에 죽자 남편의 원수를 갚기 위해 성으로 들어온 것이었다.
옥녀는 다가오는 왜병을 부엌칼로 찔러 죽이고 나서
잡혀서 수치를 당할 바에야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는 결심을 하고
몰려드는 왜병을 피해 서편 성벽으로 달려가 몸을 던졌다.
이를 보고 다른 부녀자들도 따라서 벼랑에 몸을 던지니,
벼랑 아래 바위가 붉은 피로 물들었다.
이 바위를 피바위라고 이른다.
저 천길 낭떠리지 같은 바위에서 뛰어내렷으니
누군들 살아 남았으랴...
우전마을을 들머리로 올라가는 산행길은
이렇게 밧줄을 잡고 올라가야 하는 곳이 두군데 있다.
겨울산행은 조금 어려울듯 하기도 하다.
45분(1.4km)만에 도착한 황석산성!
소백산맥을 가로지르는 육십령으로 통하는 국경 요새지에 축조된
삼국 시대 고성의 일부로 서하면 봉전리 황석산(黃石山, 1,190m)에 남아 있다.
고려 시대를 거쳐 조선 초기에 고쳐 쌓았으며, 사적 제322호로 지정돼 있다.
산 정상을 중심으로 남북쪽에 남아 있는 성터의 석벽은 둘레가 2.5㎞나 되고
높이가 3m에 이른다.
성 안에 작은 계곡이 있어 물이 마르지 않아 요새로서도
가치가 높은 성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선조 30년(1597) 왜군이 다시 침입하자 함양 군수 조종도와
안음 현감 곽준은 호남과 영남을 잇는 요새인 이 곳을
왜군이 반드시 노릴 것으로 판단하고
군민을 이끌고 의병을 일으켜 왜군에 맞서 싸웠다.
왜군에 비해 중과부적이기도 했지만,
장수인 김해 부사 백사림이 “성 밖으로 나오면 잡지 않겠다”는
왜군의 속임수에 빠져 성문을 열고 도망치는 바람에 함락당하였고,
조종도와 곽준은 장렬히 전사했다.
뒷날 백사림은 참수형에 처해졌고,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이 성을 점령한 왜장에게 포상까지 하였다고 하니,
황석산성 싸움이 얼마나 중요했는지 짐작할 수가 있겠다.
지금도 당시를 연상케 하는 피바위가 남아 있으며,
1970년에 세운 황석산성순국사적비가 있다.
방금 올라온 서문성지 인듯 하다.
이제 동북지 방향으로 이동한다.
동문지 방향은 유동마을로 하산하는 길이다.
잠시 성곽을 걸어보면서 생각에 잠겨본다.
왜 성을 쌓아 스스로 고립되었을까?
적 입장에서는 왜 굳이 성을 우회하지 않고
공격해서 점령하려고 했을까?
57분(2.0km)만에 도착한 건물지..
지표조사에서 군대의 창고인 군창이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으며
황석산성 관련 문헌에서도 약 70석의 군량미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평상시에 인근 고을의 군창을 황석산성에 두어 긴급한 상황에 대비하였고,
전생시에는 주민들이 대피하여 적군과 맞서싸웠다고 한다.
정상으로 올라갈가 하다가 거북바위 방향으로 향한다.
주변의 나무를 벌목하여 길이 잘 보이지 않아
바로 앞에 보이는 흔적을 따라 걸었는데
거북바위와 황석산의 중간에 있는 길이었다.
좌측의 계곡으로 향하여야 거북바위로 올라갈 수 있다.
바로 이곳으로 올라왔다.
저 멀리 보이는 바위가 거북바위이다.
거북이의 방향이 남덕유산을 향하고 있는듯 하다.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에는 바람이 세차게 불어
약간의 두려움을 느끼게 한다.
1시간 27분(2.6km)만에 도착한 황석산!
황석산은 함양군에서 북동쪽으로 15km 떨어져 있으며,
월봉산(月峰山:1,279m)·기백산(箕白山:1,331m)·괘관산(掛冠山:1,252m) 등과 더불어
영남·호남 지방을 가르는 소백산맥의 줄기를 형성한다.
이곳에서 남강(南江)의 상류인 남계천(濫溪川)의 일부가 발원한다.
바위산으로서, 기백산을 북쪽으로 마주보고 있으며
덕유산에서도 모습이 선명하게 보인다.
황석산과 기백산 사이에는 그 유명한 용추계곡이 있다.
6/25때 빨치산 여장군 정순덕이 활약했던 곳이 바로 이웃의 거망산이다.
정순덕에게 국군 1개 소대가 무장해제 당하고
목숨만 부지해서 하산한 사건은 최근에야 밝혀진 일이다.
황석산성은 함양땅 "안의" 사람들의 지조와 절개를 상징하는 중요한 유적이다.
정유재란 당시 왜군에게 마지막까지 항거하던 이들이
성이 무너지자 죽음을 당하고 부녀자들은 천길 절벽에서
몸을 날려 지금껏 황석산 북쪽 바위 벼랑은 핏빛으로 물들어 있다
정상 일대는 2개의 커다란 암봉(巖峰)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남봉(南峰)은 북봉(北峰)보다 더 뾰족하여 피라미드 형태를 이룬다.
금원산과 기백산 사이의 심진동에는 유명한 용추계곡이 있는데,
안의면에 있는 화림동계곡(남계천 일부),
거창군 위천면 원학동계곡을 합쳐 화림 삼동(三洞)이라고 부른다.
가을철에는 산정상 바로 밑에서 거망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온통 참억새로 빽빽하게 뒤덮여서 대장관을 이루는데,
그 때문에 능선의 선이 매끈하고 아름답게 보인다.
문화재로는 임진왜란 때인 1597년 왜군에게 항거하다가 많은 사람이 죽음을 당한
포곡식(包谷式) 산성인 황석산성이 있고,
인근의 안의면 화림동에는 뛰어난 절경의 8개 못과
8개 정자, 즉 팔담팔정(八潭八亭)이 있었는데,
지금은 농월정·동호정·거연정·군자정만이 남아 있다.
정상에서 만난 등산객 덕분에
어게인 인증사진을 제대로 인증할 수 있었다.
그분들은 인제 40좌라고 말씀하시는데
2016년 6월 19일 블야 첫 도전했던 산의 기억이 새롭다.
내려가는 길도 아찔하다.
두쌍의 부부는 남문지로 하산하신다고 하면서 하산하고
또 한분이 올라오신다.
바로 저 능선이 비축지에서 남문을 경유하여
좌측 하단의 동문을 통해 오르는 암릉구간인데
다음에 갈 기회가 있으면 저 길을 걸어봐야 겠다.
거망산을 거쳐 용추사로 하산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시간도 늦고 차량도 회수해야 해서 유동마을 방향으로 하산하기로 한다.
유동마을에 도착하여 클린산행 인증하고
택시를 이용해서 우전마을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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