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둘이서만 학교에 있다.
기사님과 숲속학교에 있게 된 것은 갑자기 폭설이 내렸기 때문이다.
무릅 부츠까지 잠긴 눈을 털어내고 차에 올라 시동을 거는데 띵동 문자가 도착했다.
2019년도 전(前)교직원회의 일정이 변경되었다는 것이다.
폭설주의보로 오전 10시에서, 오후 12시로 달라진 계획은 내 계획도 아니어서 출발했다.
일정 계획은 학교장의 머릿속에나 있는 것이다.
연이은 산맥들을 타고 공중차도들을 달리는 앞선 차들의 궁둥이가 뒤뚱댄다.
성질급한 노동자들도 오늘은 다들 기대에 찬 꿈을 꾸리라
오오 눈부신 고립!, 발이 아니라 운명이 묶였으면...
산맥을 타고 깊게 가라앉은 호수에 슈우우우우 ~~~~~ㄱ~ 눈발이 푸지게 내리는 날은.
자동차의 쌍둥이 철길 하나 없는 학교는 흰 눈 천지이다.
새 소리도 눈속에 묻혀 세상 조용하다.
문도 잠겼겠네.
오또케 해 추운데! 어디서 기다리지?.
현관 앞을 쓸고 있던 기사님은 반가운 마음과 달리 구박부터 한 바가지다.
그사이 문자가 또 와서 내일로 계획이 변경되었다는 것이다.
학교 앞 옴마(어머니)집 마당을 쓸고 왔다는 기사님은 한바탕 즐거운 동심에 젖어 든다.
빈 운동장 흰눈이 내려 술깨나 좋아하시는 기사님은 술 안마셔도 흥겨운 날이다.
때구정물 더벅머리 손 호호 불며 꺼먼 고무신 삼나무로 단단히 묶어 산속을 휘젓던 토끼몰이 추억이 눈가에 삼삼해진다.
" 배고파서 모주 한 잔 마시면 빙 돌고 어질어질 했당께, 타잔 영화볼라고 강진까지 지게지고 발전기 충전해가는디, 그것이 솔찬히 무겁잖여어, 이만했응께, 지게지고 오다가 뿌셔졌응께, 우덜 기다리던 선배들한티 다리몽뎅이 분지러징께 , 그날 하루죙일 대밭에 숨어있었잖여어, 그때는 헐 것이 없었응깨, 헐 일이 없었은 께, 막대기 자치기가 그리 재미 졌으까 몰라잉"
비료포대 타고 묘똥(동네뒷산)놀기, 사랑방 봉초(담배) 피기, 저렵때기(가죽나무 흙으로 이겨 집만들기), 길쌈(질쌈)내기, 닥종이만들기, 쌈치기, 더그메(외양간 소위에 닭장) 닭서리, 깡통살이, 구술치기(구멍 다섯개 뚫어 구슬 넣기-요즘 골프게임), 목카치기(돌맞치기), 자치기(깨금발 짓고 눈 빼먹었던 친구), 도독놈 잡기, 간첩패기 ,
논두렁가 아강살이(이것은 진짜라고 한다, 애기들이 죽으면 묻고 작은 돌무덤을 쌓았는데, 군데군데 돌무덤에 비가 내리는 날, 비료푸대로 책포와 대가리 가리면 아강들이 이름을 알고 불러댔단다. 세번까지 대답을 하면 죽었다고 한다. 네번째 이름을 대면 넘어가는데 식은땀이 쭉쭉 나곤 했한다(몹시 겁나하신다) ) 동네마다 뭉쳐서 새마을가 씩씩 부르며 열지어 등교하던 애향단 얘기, 코스모스 꽃씨뿌리고 얘기, 대보름날 동네 굿거리에 집집마다 돌면 돈은 안주고 모주(조청으로 만든)와 곶감만 주어 사랑방에서 다들 취해 잠들던 얘기, 친구들이랑 돌아가며 품앗이 닭서리 하기, 광에서 말린 고추 내다 몰래 팔아서 섬에 놀러갔 돈떨어져 무전기차 타고 다니던 죽을고생 얘기, 급기야 여름 놀이 가서, 바작도 아직 없는 망태에 소여물해서 낫치기(낫 던져 꼴 몰아주기), 깡통살이....
산 많은 동네라는 '산막실' 살던 기사님은 때되어 밥먹으러 내려가셨다.
운암 외갓집에 3년이나 5년마다 한 번씩 갈 때는 나룻배 타고 건너던 얘기를 하다가 아랫녁 옴마한테 내려가신게다
무엇이 행복이랴.
늙은 아들이랑 한 상에 둘러 밥먹으면 최고지.
서울있는 아들을 계획도 없이 불러와서 함께 사는 나도 행복해서 입가에 절로 미소가 난다.
성공이 다 뭐냐? 계획이 다 뭐냐? 한 상에 둘러서 먹고 마시면 되지!
계획이 없으니, 실패도 없으니 모악 산자락에 엎딘 밥집서 소복이 밥 한 그릇 먹어야겠다.
곰처럼 엎드린 차도 눈이불 덮고 오늘 밤은 푹푹 자야겠다.
혼자있는 학교는 눈은 쌓이고 아강살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