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예수님의 사람들 칼럼(709호)
자기 십자가를 지는 삶
(마 16:21-28)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마 16:21-25).
성경은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 16:24)고 가르쳐주고 있다. 여기에서 자기 십자가를 지는 삶은 ‘자기부인(自己否認, self-denial)의 삶을 말하는 것이다.
첫째, 십자가를 지는 것은 보편적인 것이다.
보편적이라 함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구원받은 모든 자들은 모두 십자가를 져야 한다는 뜻이다.
마태복음 16장 24절에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가복음 14장 27절에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예수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어찌할 수 없이 십자가를 져야 되는 것이다. 제자가 되려면 당연히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둘째, 십자가를 지는 것은 영구적인 것이다.
예수님도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하셨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한 번만 지는 것이 아니고, 날마다 져야 하는 것이다.
누가복음 9장 23절에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날마다 지라고 했다. 어느 날은 지고 어느 날은 안 지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내 십자가 내가 지고 것이다. 내가 십자가에 죽으면 죽을수록 부활의 역사는 내 주위에서 더 크게 일어난다는 것이다.
셋째, 십자가를 지는 것은 의지적인 것이다.
십자가를 지는 것은 다른 누군가의 강요에 의해서 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자유 의지로 지는 것이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서 21절에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십자가를 지는 것은 나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기쁜 마음으로 스스로 기꺼이 지는 것이다.
넷째, 십자가를 지는 것은 고통스러운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실 때 고통당하신 것과 같이 자기 몸으로 시간으로 물질로 아무리 힘들어도 헌신하며 기꺼이 지는 것이다.
사도행전 21장 10절에서 14절에 "여러 날 머물러 있더니 아가보라 하는 한 선지자가 유대로부터 내려와 우리에게 와서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 수족을 잡아매고 말하기를 성령이 말씀하시되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 주리라 하거늘 우리가 그 말을 듣고 그곳 사람들과 더불어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 권하니 바울이 대답하되 여러분이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 그가 권함을 받지 아니하므로 우리가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하고 그쳤노라."
십자가를 지는 것은 때로는 힘들고 어렵고 고통스러울찌라도 십자가의 사랑을 보여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기꺼이 따르는 것이다.
다섯째, 십자가를 지는 것은 곧 죽음이다.
자기 자존심, 자기 만족, 자기 쾌락, 자기 욕심, 자기 이익을 모두 죽여야 한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목숨까지 아끼지 않고 바치는 것이다.
빌립보서 2장 8절에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고린도후서 4장 10절로 11절에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죽음과 생명이 우리 몸에 같이 역사하는 것이다. 내가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면 죽은 만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생명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항상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생명도 몸에 나타나기 위한 것이다.
결론. 십자가를 지는 것은 성도로서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서 21절에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리차드 범브란트(Richard Wumbrand)는 “십자가”에 대해 이런 이야기를 했다.
가게를 운영하는 한 성도가 하나님께 자신이 지고 있는 십자가가 너무 무겁다고 불평을 말했다. “하나님, 내가 짊어지고 있는 십자가 너무 무거우니 다른 십자가를 주십시오.” 그래서 하나님이 여러 십자가를 내놓고 난 다음 “네가 고르라”고 했다. 하나는 보니까 옥으로 만든 십자가인데 참 보기는 좋은데 무거워서 걸머질 수가 없어요. 또 다른 십자가는 보니까 아름답게 보이는데 표면이 너무 거칠어서 고통스러워 걸머질 수 없었어요. 쭉 보다가 자기 마음에 드는 십자가가 있었다. “이것 걸머지겠습니다.” 하니까 하나님이 “그 십자가 다시 한번 자세히 보아라.” 그것을 보니까 바로 자기가 걸머지고 있는 그 십자가였다. 사람들은 남의 십자가를 걸머지는 것이 아니다. 자기 팔자에 맞는 십자가를 걸머지는 것이다.
매주 11,000여 명의 회원님들에게 한 번씩 보내는 칼럼입니다.
서울 강서교회 김창환 목사(문지기) 드림
양천구 신정로 11길 63 강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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