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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테스탄트의 정신
함석헌
1.
기독교에는 일반이 아는 것과 같이 세 큰 갈래가 있다. 첫째는 로마 가톨릭 즉 천주교요 둘째는 그리스 정교(正敎)요, 셋째는 프로테스탄티즘 곧 예수교 혹은 신교라 부르는 것이다. 로마 가톨릭은 기독교가 로마 제국의 국교로 제정된 후 정통으로 승인을 받은 것으로 그 중심인 로마 교회는 천국문의 열쇠를 가진 베드로의 후계자라고 하여서 중세에는 유럽 모든 국민 위에 절대의 권위를 가졌었다. 그리스 정교는 로마의 수부(首府)가 콘스탄티노플로 옮김으로부터 동서 로마가 분립하던 시대에 콘스탄티노플 교회를 중심으로 동방에 발전한 일파로 그리스 문화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러다가 동로마 제국이 망한 후에 러시아가 그 계승자라고 주장하여 최근 제정 러시아가 망하기까지 러시아 황제는 그리스 정교의 수령이었다. 프로테스탄티즘은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에 생긴 교파의 대부분을 통틀어 넓은 의미에서 하는 말로, 그 생긴 정신에 있어서나, 유래에 있어서나 위의 둘과는 아주 다르다.
먼저의 둘은 지금 말하려는 제목의 범위 밖에 속하는 것이니 말할 것 없으나, 프로테스탄티즘은 우리 현대인에게는 종교적이 아니고 순전한 역사적 견지에서만 이야기한다 하여도 실로 큰 의미를 가진다. 그러므로 지금 문명한 민족들에게서는 대개 프로테스탄티즘이 우세한 것을 본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 모든 민족이 다 아름답다는 것은 아니다. 또 명의상으로 승인하는 그 모든 프로테스탄트들이 다 진실한 프로테스탄트라는 것도 아니다. 사실은 나로서 말하라면 지금의 프로테스탄트의 대부분은 가톨릭의 구교에 되돌아간 것이라고 하고 싶다. 사람에게 때때로 정신 몽롱이라 혹은 반무의식이라 하는 정신상태가 있는 모양으로 종교에도 반무의식 상태가 있다. 정신적 빈혈증에 걸린 현대에 있어서는 프로테스탄트들도 역시 무의식의 반사운동을 습관적으로 하고 있을 뿐이다. 산 프로테스탄트가 있다면 그는 그 근본정신의 재체험을 고창(高唱)하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다.
2.
그러면 프로테스탄트의 근본정신이란 어떤 것인가? 이것이 지금 우리가 생각하려는 것이다. 우선 우리는 프로테스탄트라는 그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다. 명사는 그 사물을 대표하는 것이므로 그 가지는 성질이 단적으로 잘 나타낸다. 프로테스탄트라는 이름의 근본이 되는 프로테스트라는 말은 번역하여서 ‘반항한다’ ‘항의한다’ ‘선언한다’ ‘공증한다’ 하는 등의 말로 된다. 대체로 말해서 자기의 주장을 공공연히 선언ㆍ증거 한다는 말로 전투적 기분이 짙은 말이다. 곧 의가 불의에, 진리가 사론(邪論)에, 선이 악에 강압을 받을 때에 프로테스트가 일어난다. 이렇게 하는 사람을 프로테스탄트, 그 주의를 프로테스탄티즘이라 한다. 이 명사의 해석에서 프로테스탄트의 위인(爲人)이 어떠함을 대체로 짐작할 수 있다.
또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이 명사가 프로테스탄트 자신이 붙인 것이 아니고, 반대자가 붙여주었다는 것이다. 장차 아래서도 설명할 제2 스파이에르 회의 때에 정통파 구교 사람들이 그 결정한 법안에 반항한다 하여서 그들을 불러 프로테스탄트 즉 반항자라고 경멸하였던 것이다. 그것이 후에는 자타가 다 승인하여 공용하게 되었다. 이 사실은 흡사 ‘크리스천’이라는 명사의 경우와 같다. 이것도 반대자가 크리스천(그리스도에 속한 것)이라고 멸시하여 부르던 것이 나중에 일반으로 쓰이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 둘이 다 그 근본정신을 잘 표시하는 점에서 매우 귀한 말이다. 박해자란 반드시 나쁜 것이 아니요, 이런 때는 도리어 가장 중요한 점을 현양(顯揚)하여주는 자가 된다.
3.
그 이름의 해석, 정의의 설명으로 내용의 대체는 알 수 있으나 그러나 충분한 이해를 얻으려면 그 역사적 유래를 찾음이 필요하다. 밖에 나타나 있는 사상(事象)으로부터 내적으로 잠재하는 정신에 투입하여 어떤 동기로 어떤 경로를 지나왔음을 알아야 한다.
이제 프로테스탄트주의 운동의 유래를 말하자면 종교개혁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위에서 말한 대로 로마 교회는 유일의 정통으로 절대의 권위를 주장하여왔고, 교회와 정통신학에 반대되는 것이면 학문이거나 연구거나 사상이거나 의론(議論)이거나 물론하고 누르고 배척하여왔다. 개인은 교회에 속한 것으로 그것을 떠나서는 살 수도 없고, 천국에 들어갈 수도 없으리만큼 완전한 조직체로 되어있었다.
그러나 조직이 발달하는 데서 생명은 물러간다. 신앙보다는 의식이 중요하여지고, 신의보다 인위(人爲)가 존중하여지고, 진리의 체험보다 미신유혹이 많아지고, 거기다 교회는 막대한 부를 소유하여가지고 하늘의 보물보다는 지상의 향락을 누리기에 급급했다. 그러는 동시에 십자군원정의 실패는 교황의 위신을 떨어뜨리고, 교회무류설(敎會無謬說)은 동요되고, 대분립 시대에는 한때 두세 사람의 교황이 제각기 일어나 싸우는 추태를 부리고, 이리하여 점차로 종교개혁의 기운이 동하게 되었다. 위클리프ㆍ후스는 선구자의 희생을 당하고, 마침내 독일 아이스레벤의 광부의 아들 루터에 의하여 횃불이 들리었다. 이렇게 간단하게 말하면 종교개혁은 아주 쉽게 된 듯싶으나 사실은 우리가 지금 상상할 수 없는 곤란과 희생을 당하였다. 그러나 진리는 최후의 승리자다. 루터의 한번 일어난 후 신교의 사상은 불길같이 퍼져갔다. 그리하여 천주교는 번져가는 형세를 다수의 힘으로 억누를 작정으로 1529년 스파이에르에 독일 국내의 제후가 모여 신교도를 박해하는 법안을 만들었다. 그러자 거기 대하여 소수의 신교 제후가 강경한 프로테스트를 하였다. 이것이 먼저 말한바 ‘프로테스탄트’의 기원이다. 그리하여 당초는 루터 파를 가리켜서 부르던 이름이었으나 나중에는 칼빈 파와 그 밖의 것도 포함시켜 널리 부르게 되었다. 이제 그 항의의 내용을 보면,
1. 신교는 이미 구교와는 독립한 것이니 구교에서 신교도를 판정하거나 구속할 권리가 없다.
2. 성서는 회의나 사제보다도 초월하여 높은 것이다.
3. 성서의 해석은 성서 그 자신에 의하여 할 것이다.
라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의할 것은 거기 나타나 있는 자유의 주장과 성서 존중이다. 이 두 가지 점 곧 개인의 자유의 존중과 성서에다 최고의 권위를 허하고, 그를 중심으로 하는 것은 신교의 특색이다. 그러므로 이하의 이 두 가지에 관하여 설명을 함으로써 신교의 근본정신에 접촉하기로 하자.
4.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는 것은 역사적으로 말하면 그 전시대에 대한 반동에서 나온 것이다. 곧 교회에 절대권이 있어서 그 명하는 것에는 절대로 복종하는 것이 옳다던 교회의 전통은 너무 인격의 가치를 무시한 것이었으므로 거기 대한 반동으로서 나왔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는 문예부흥 이래의 인문주의 운동의 경향이 많이 있다. 그러나 그런 역사적인 인과관계와는 별도로 신앙의 근본성질에서 생각할 때 개인의 자유라는 것이 그 본래의 생명의 있는 곳이 있던 것을 알 수 있다. 신앙은 내부적 사실이다. (생략) 생명의 근원인 하나님과 그의 형상으로 지은 개인의 생명과 가장 가까운 관계로 연결되는 것이 곧 신앙이다.
그러므로 신앙은 깊은 데서 말하자면, 결국 개인적이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신앙에도 공공연하게 고백할 것과, 증거할 것과, 권면할 것도 있으나, 가장 깊고 가장 귀한 것은 역시 부모에게도 형제에게도 처자에게도 붕우사장(朋友師長)에게도 말할 수 없고, 의논할 수 없고, 나는 나대로 하나님과 둘 사이에 직접 하지 않으면 아니 될 개인적인 것이다. 거기 관하여서는 어떠한 사람이라도 간섭하는 것을 허락할 수 없다. 절대로 자유로 할 것이다. 그러므로 신앙에 들어가는 지도를 하는 것은 옳으나, 신앙은 이러할 것이라고 외적으로 규정하고 간섭하는 것은 근본에서부터 잘못된 일이다.
신앙이란 나라는 사람―나, 온 세상에서 오직 하나밖에 없는 나, 하나님이 다른 아흔 아홉 마리를 두고 찾아다니는 나, 독특한 개성과 가치를 가지는 나라는 사람, 그 나와 하나님과의 교통이다. 다른 종교는 몰라도 적어도 기독교는 개인적 종교다. 사복음을 주의하여본 자는 예수 자신의 말 중에, 제일인칭에는 특별한 힘이 들어 있음을 알 것이다. 그는 항상 ‘내 하나님’ ‘내 아버지’ ‘내 나라·······’라 하였다. 최후 십자가상에서 부르짖는 기도도 ‘우리’라 하지 않고 ‘나’라 하였다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이것이 예수 자신의 종교이다. 물론 이렇게 말하면 우리를 개인주의자라고 배척하는 이도 많을 줄 안다. 그러나 이것이 성서의 가르침임을 어찌 할 수 없다.
또 이 기독교가 개인적이라는 것이 소위 개인주의와 천양의 차인 것도 알아야 한다. 개인적이라 해서 이기적ㆍ독립적이라는 것은 아니다. 교회에서도 특히 복음의 사회화를 많이 말하는 오늘에 신앙이 개인적이라 하는 말은 많은 사람의 귀에 거슬릴 것인 줄 안다. 또 성서 가운데 구원이 전체적으로 돼야 할 것을 가르친 것도 있다. 바울 같은 이는 골육을 위하여 그리스도에게서 끊어나가기까지 하겠다고 한 것도 안다. (그 바울은 신앙의 절대자유를 부르짖은 사람이다). 그러므로 복음의 사회적 전파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요컨대 교리로 조문으로 신앙의 일획을 강요하는 데 견딜 수 없다는 말이요, 각자의 영혼이 하나님과 깊은 접촉이 없이, 천박한 박애주의를 부르짖고 혹 가다가 독립한 신자가 있으면 사갈(蛇蝎)같이 생각하는 데 분개하지 않을 수 없다는 말이다.
우리로써 생각건대 현대기독교의 무력의 원인의 큰 것은 여기 있다고 생각한다. 깊은 영적 체험이 없이 한갓 일반적ㆍ사회적ㆍ민중적ㆍ대중적 하는 좋은 이름을 따를 줄만 알고, 그리스도 앞에 내 영혼을 물 붓듯 하는 신앙이 없으므로 현대에 천박하고 넓은 기독교는 있으나, 깊고, 위대하고, 권능 있는 기독교는 없다. 말이 탈선하였으나, 본론으로 돌아가면 아무튼 기독교의 신앙 그것이 본래 개인이 하는 바 하나님과의 자유로운 교통이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진리가 살아 있기만 하다면 중세의 일시적 타락에서 반드시 본래의 면목을 다시 찾을 것은 정한 일이었다. 이 복귀운동이 곧 종교개혁이다. 그리 생각하고 보면 프로테스탄트들이 개인의 자유를 주장한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 신교의 교회에 대하여 다소 부언할 필요가 있다. 곧 신교는 교권을 부정하고, 교회의 조직에서 개인을 해방시켜 신앙의 자유를 주었다. 그러나 신교도 절대 개인주의 곧 독립주의는 아니다. 교회가 있다. 신자의 모임이 있다. 그러나 또 그것은 구교에서 말하는 의미의 교회는 아니다. 그는 단순한 모임이요 조직체는 아니다. 그러므로 엄정한 의미에서 말하면 신교는 무교회이다. 거기 신자단체가 있는 것은 같은 신앙을 가지고 같은 목적을 가지기 때문에 생기는 신자 사이의 연락에 의한 것이다. 나도 그리스도에 연결되고, 너도 그리스도에 연결되었으므로 너와 나는 한몸에 속한다 하는 의식이 있다. 그러므로 교회는 종의 관계요, 횡의 관계가 아니다. 그런 것이 근래로는 신교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횡의 관계를 보다 중대시하게 된 것은 통탄할 일이다.
그러면 이 자유의 사상, 개인을 직접 하나님에게 연결시키는 자유 신앙의 사상은 어디서 온 것인가? 이제 우리는 신교의 제2의 특색인 성서중심주의에 들어간다. 곧 프로테스탄트들은 이것을 성서에서 얻었다는 것이다. 로마 정교가 의식과 교권을 중요시, 신성시하였던 대신에 그들은 진리를 직접 성서에서 찾았다. 그리하여 성서의 주장 그대로를 순종하였다. 따라서 성서는 최고권위를 가지게 되었다. 물론 그는 하나님의 말씀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교에서는 제전의식보다 설교가 중요한 것이 되었다. 그러나 설교하는 목사에 아무 권위가 있는 것은 아니요, 그는 단순한 해석자일 뿐이다. 그는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만 정당한 해석을 할 수 있다. 의식을 존중하는 구교를 감정적이라면 신교는 확실히 지적이요, 이성적이다. 그러나 이성의 존중도 근래에 성행하는 소위 합리적 신앙이란 것과는 다르다. 신교의 모순이라면 모순이라고 할 수도 있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이성을 존중하면서도 그 이성에 절대의 권(權)을 주지 않는다. 역시 이성에 영의 힘이 가하여서만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 신교의 주장이다.
어쨌든 성서에다 최고의 권위를 허(許)하는 것이 신교의 한 특색이요, 이것이 사실은 프로테스탄티즘 운동의 원천이다. 루터가 종교개혁의 정신을 가지게 된 것은 성서의 연구로부터였다. 그 시대에는 평신도는 성서의 원문은 좀처럼 볼 수 없었고, 본대야 초본이요, 그렇지 않으면 신부의 해설을 듣는 것뿐이었다. 루터도 도서관 책 목록에서 처음으로 성서의 이름을 본 때는 자석에 끌리는 쇠조각같이 이끌리었다고 어떤 기자는 말하였다. 그 이후 그는 성서를 탐독하고 연구하였다. 그리하여 종래 교회에서 보던 것이 초본에 불과한 것, 신부들의 해설에는 원의(原意)에서 어긋나는 것도 자못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드디어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는 귀절이 루터의 전 생명을 삼켜버렸고, 마침내는 그를 세워 인류의 전 역사를 움직이게 하였다. 실로 종교개혁을 한 것은 광부의 아들이 아니요, 성서 자신이었다.
루터만이 아니라 칼빈도 마찬가지다. 전기작가의 말을 들으면 그가 신교사상을 품게 되던 동기도 성서의 연구에 있다고 한다. 이렇듯 신교운동의 원천은 성서 자체에 있었다. 성서의 진리를 진리 그대로 따라 나갈 때에 교회 타락의 모양은 점점 더 뚜렷해진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는 그리스도 밖에 아무 중재자가 있을 것 아닌 것도 여기서 알려졌다. 이교주의의 침입으로 인하여 생긴 모든 미신적 의식이 영혼을 구원할 수 없다는 것도 여기서 알려졌다. 그리하여 성서는 신도에게 자유로 읽히고 연구되어왔다. 그러나 이것도 자유의 정신과 일반으로 오늘날 프로테스탄트에게서는 많이 잊혀졌다.
5.
우리는 이제 한걸음 더 나아가 프로테스탄티즘 운동의 원천을 기독교의 역사 위에서 찾아보자. 이 운동이 어찌하여 프로테스탄티즘으로 곧 반항주의로 나갔는가 하는 것은 우선 루터의 성격에서도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그는 말하자면 일부분이요, 보다 깊은 원인은 문예부흥운동에서 찾지 않으면 안된다. 성서의 연구가 이 운동의 원천이라는 말은 위에서 하였으나, 이 성서의 자유 연구의 풍은 고전부흥운동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라 해야 옳다. 그러므로 프로테스탄티즘 운동의 배후에는 중세의 종교적 질곡에 반항하는 문예부흥 이래의 자유사상, 인문주의 사상이 흘러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오히려 불충분하다. 한층 더 올라가서 바울주의에서 우리는 근원을 찾을 수 있다.
바울은 그 자신이 주장한 것으로도 알 수 있는 것같이, 무엇보다도 자유독립의 사람이다. 유대교의 율법주의ㆍ의식주의의 묵은 물결이 때때로 침입하려는 모양을 보고는 그는 열화같이 일어서서 신앙의 자유독립을 외쳤다. 갈라디아서를 읽는 사람은 누구나 이를 알 것이다. 우리는 이미 의문(儀文)의 노예가 아니요, 신앙에 의한 자유의 아들이라는 것을 주장하여 온 유대교도를 상대로 싸우는 바울은 프로테스탄트가 아니고 무엇인가? 프로테스탄트의 정신에 관하여는 여러 말을 할 것도 없이, 갈라디아서 하나만 읽으면 그만이다. 다시금 더 나아가면 「로마서」에서 보다 완전한 설명을 본다.
바울의 편지를 읽고 프로테스탄트가 되지 않는 자는, 바울 신앙을 이해치 못하는 자요, 결국 보아도 보지 못하는 자다. 루터는 루터이니만큼 갈라디아서를 가리켜 이것을 내 편지라 하였다 한다. 그렇듯 16세기의 프로테스탄티즘 운동은 그 원류를 바울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사실은 바울만이 아니었고, 초대교회 그것 및 예수 자신에서 프로테스탄트 정신을 볼 수 있다. 사도행전에는 초대교회의 프로테스탄트의 면목이 여실하게 나타나 있지 않나? 갈릴리 어부의 일군이 율법사ㆍ제사장의 종교전문가를 향하여 엄연히 일어나서 손을 흔들어 “너희가 죽인 예수를 위하여 증거한다”고 부르짖는 그것이 프로테스탄트가 아니고 무엇인가? 그보다도 또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교인들이여······ 화 있을진저 너희 율법사들이여·········” 하던 나사렛에 난 무명의 목수의 아들로서 성전에 가득 찬 장사치를 몰아내고, 책망하던 것은 무엇인가?
실로 프로테스탄티즘을 16세기에 생긴 시대적 산물로만 보는 자는 어리석은 자다. 크고 작은 구별은 있을지언정 기독교의 역사에는 그침 없이 개혁이 있고, 프로테스탄트가 있었다. 무엇 때문에의 프로테스트인가? 두말할 것도 없이 진리 때문이다. 진리는 산 것이다. 죽은 조문이나 방식으로 고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요, 생장하는 원리다. 그러므로 그 생장에 방해될 때는 어떤 것에 향하여서든지 반항한다. 비록 그것이 자신이 낳아 놓은 구각(舊殼)이라도 그리한다.
그러므로 진리는 그침 없이 프로테스트에 의하여서만 자라나간다. 사람은 나면서부터 가톨릭이라 해서, 한때의 감격이나 눈에 보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것을 주요시하고 현혹하고 신고(辛苦) 있는 분투보다는 지도자를 의뢰하여 안이를 얻어보자는 약점이 있다. 거기에 따라 때때로 쌓이는 사각(死殼)이 생명을 질식시키려 한다. 그것이 대다수의 사람의 경우다. 그럴 때마다 진리는 어떤 소수의 혹은 단일인의 진실한 영혼을 빌어서 프로테스트를 발한다. 구약시대의 예언자는 대개 그런 인물들이었다. 과연 진리의 과정은 프로테스트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6.
그러나 이렇게 하여 일어난 프로테스탄트들은 오늘은 어쩌고 있나? 우리는 지금 적막한 광야를 향하여 프로테스탄트들은 어디 있는가고 부르고 있다. 이미 루터의 정신이 없어지고, 바울의 신앙이 없어졌다. 기개도 없고, 의분도 없다. 진리에 대한 충실도 없고, 의에 대한 사모도 없다.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던 것은 좋았으나 껍데기만 남은 자유의 존중은 각파 분쟁으로 되고, 교권의 부정까지도 좋았으나 진리의 충실이 없는 교권 부정은 단순한 세속시인(世俗是認)으로만 되었다. 구교와 싸우기 위하여 정부에 구호를 청하였던 것이 전란의 원인이 되고, 국교로까지 타락되어 정치의 노비가 되어버렸다. 한편으로는 사회사업에 열중하여 신앙이 점점 식어갔다.
성서중심주의는 성서의 문구적 숭배로 타락하여 천박한 견해를 고집하여서는 정통이라 하고 가톨릭도 아니요, 프로테스탄트도 아니다. 조선의 기독교도 전래되던 당초에는 구교였으나 지금은 대다수가 신교다. 그러나 과연 루터의 일으킨 프로테스탄트는 있는가?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는 구절를 생각하고 스카라 산타의 성제(聖梯)에서 내려오던 루터는 있는가? 진리를 위하여 95개조의 질의서를 발표하여 천하에 불꽃을 던지던 루터의 용기는 있는가? “나는 이에서 더 달리할 수 없다. 하나님이여, 나를 도우소서 아멘” 하고 보름스의 회의장에서 사자후를 토해 온 세계를 저쪽에 놓고 싸우던 루터의 정신은 있는가?
7.
우리는 다시금 프로테스탄트여야 한다. 벗기 시작한 낡은 껍데기를 완전히 벗어야 한다. 세계사를 읽어서 이상하게 생각되는 것은 16세기 프로테스탄트 운동의 용두사미적으로 된 것이다. 교회의 음울한 천정 밑에서 힘있게 뛰어난 기독교는 다시 국민이라는 괴물이 삼켜버렸다. 신교의 결국은 국교라는 것이 되고 말았다. 다른 또 한 가지 형식으로 세상과 혼인을 하였을 뿐이다. 이 미완성의 운동은 논리적 결과에까지 이끌어가야 한다. 그러기 위하여 다시금 프로테스탄트여야 한다.
20세기의 문명상(文明相)을 한눈으로 굽어본다면, 그것이 커다란 기형아임을 발견할 것이다. 프로테스탄트는 저에게 자유의 정신을 주었으나 겉모양만을 취한 그릇된 자유만을 발달시킨 저는 큰 기형아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이제 이 기형아는 자기의 불안정한 중심을 못 견디어 헐떡이며 구원의 날을 기다리고 있다. 과연 오늘날의 영국 미국의 하는 것, 러시아의 하는 것, 독일ㆍ프랑스ㆍ일본ㆍ이탈리아의 하는 것을 보면 온 지구상의 18억의 인류는 목소리를 같이하여서 “위대한 혼이여, 어서 오라, 위대한 혼이여, 어서 나타나라”하고 부르짖고 있지 않나?
혼에 목마르는 현대! 위대한 혼은 저희에게 나지 않으려나? 진리의 길을 밝히는 위대한 혼은 저의 속에 나지 않으려나? 아시아 주의 동쪽 아침 해가 밝은 데 남북으로 누운 삼천리의 반도, 그 자연은 웅장이 있고, 미려가 있고, 그 사람은 총명하고, 인후(仁厚)하고, 그에게 이미 믿을 만한 우상의 남아 있는 것이 없고, 그에게 다시금 애착할 만한 소유물이 있는 것이 없고, 그는 옛날의 이스라엘이 그리 했던 것같이 위대한 정신이 산출될 만한 온갖 준비가 되지 않았나! 진리의 용자일 조선의 젊은 프로테스탄트들이여!
성서조선 1930. 9월, 20호
저작집30; 18-151
전집20; 9-1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