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드게임을 즐기는 할머니 / 이임순
친구와 통화하는데 목소리가 톡톡 튄다. 좋은 일이 있느냐고 물으니 더위가 물러가서 살맛 난다고 한다. 땀을 많이 흘리는 그녀는 물도 마음껏 먹지 못하고 최대한 적게 움직이며 여름을 난다. 날씨가 선선해져 본래의 자기 생활을 하니 신이 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올여름 내 덕을 봤다고 한다.
집 안에서만 지내는 그녀에게 보드게임을 해보라고 권했다. 아이들이 하는 것 아니냐며 시큰둥했다. 나는 그것을 즐기느라 더운 줄도 모른다고 했다. 방학 중인 요즈음 손자들이 오면 함께 한다 했더니 관심을 보였다.
보드게임의 규칙과 승리 조건은 카드를 12장 펼친 후 속성이 같거나 다른 카드 세 장을 찾으면 ‘세트’라고 외친 후 세 장의 카드를 가져오는 것이다. 여든한 장의 카드가 없어지거나 더 세트가 나오지 않으면 게임이 끝나고 카드를 가장 많이 가져간 사람이 이긴다.
초등학교 1학년인 손녀가 그런다. 할머니는 오빠와 나한테 왜 공부하라는 말을 하지 않느냐고. 잔소리 대신 책상 위에 볼거리를 둔다. 주로 위인전이나 동화책 들이다. 보드게임을 배운 뒤로는 그것을 같이 하거나 두기도 한다. 때로는 나와 동생까지 넷이서 편을 나누어 하자고 조른다.
게임의 종류는 연령이나 참여하는 사람 수에 따라 고를 수 있으며 좋은 점은 가족이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이다. 여행 중에 가지고 가도 좋다. 다만 조심할 점은 아이들이 승부욕 때문에 분쟁이 벌어질 수 있는데 참여하는 사람 중에 연장자나 진행자가 중재하면 된다.
보드게임은 유아기는 놀이를 하면서 인지가 발달하고 규칙을 따르다 기다리는 것을 배운다. 또한 자연스럽게 부모와 교감하고 내용물을 바꾸어하는 과정에서 창의성과 대인관계가 발달한다. 아동기에는 자발적인 동기를 유발하거나 사회성이 길러진다. 건전하게 경쟁으로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며 문제를 해결하는 힘도 늘어난다. 청소년기에는 학업으로 쌓인 긴장과 스트레스를 풀 수 있다. 또한 즐기는 과정에서 긍정적인 정체성을 가져 건전한 청소년 여가문화로 활용된다.
성인이나 노년기에는 어떤 영향이 있는지 생각해 본다. 게임 놀이를 함으로써 취미생활을 할 수 있고 문화가 바뀜에 따라 인간관계를 새롭게 만드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무엇보다 손자녀와 세대 차이 없이 소통이 가능하며 치매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니 좋다.
혼자서 하는 놀이가 있고 함께 어울려 즐기는 게임도 있다. 상대방을 배려하는 것은 자기의 마음을 덜어낼 때 생긴다. 보드게임은 눈으로 보는 동시에 말을 하고 손동작이 같이 움직여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 즐기자고 놀이하면서 불편한 사이가 되면 건전한 놀이문화가 아니다.
처음 하는 사람은 서툰 반면 경험이 있으면 행동이 빠르다. 내가 처음 배울 때는 네 명이 한 조가 되어 두 사람씩 편을 나누어 많이 했다. 같이 하다 보면 말이나 행동에서 상대방의 인간성을 느끼기도 한다. 말이 앞서는가 하면 손이 먼저 나가는 사람도 있다. 나이가 많으면 인지능력이 떨어져 행동이 굼뜨기 마련이다. 그런데 지고는 못 참는 성격의 사람과 한 조를 이루면 즐거워야 할 놀이가 짜증스럽다. 당신 때문에 맨날 진다고 불평을 쏟기도 해 분위기가 무거운 팀이 있었다. 놀이는 놀이일 뿐 그 사람 자체가 아니다. 그런데 놀이가 최고인 양 거드름을 피워 눈살을 찌푸렸다. 이기고 지는 것보다 즐겁게 하는 것에 만족하면 그만인 것이 놀이가 아닌가 싶다.
손자들과 할 때는 모르는 척 져 주기도 하고 상황에 따라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도 한다. 아이들은 상상력이 많아 응용도 한다. 초등학교 3학년인 손자는 사고력과 수리력을 응용할 수 있는 마헤, 루이큐브를 좋아하고, 말하기를 좋아하는 손녀는 표현을 하는 고파쉬 라온더하기 등 조용한 것을 즐기는 편이다. 내가 손자들에게 권하는 놀이는 기억력과 주의집중력이 있어야 하는 람세스, 반쪽반쪽몬스터다. 어린이집에 다니는 손자와 둘이 할 때는 손가락을 움직여 소근육 힘 조절력을 기를 수 있는 놀이를 즐긴다.
각자 자기 방에서 혼자 핸드폰으로 하는 게임은 배려심이 없는데 함께 놀이로 어울리다 보니 종종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생각하는 기회가 있다. 보드게임을 즐기는 동안은 동심으로 돌아갈 수 있어 좋다. 손녀가 내가 어릴 때는 어떤 놀이를 했느냐고 묻는다. 그때는 지금처럼 장난감이나 놀이기구가 흔하지 않아 사금파리나 조개껍질로 소꿉놀이를 했다니 신기해하면서 한번 해보자고 한다. 형제들과 숨바꼭질을 하며 장독대에 숨었다 항아리 뚜껑을 깨뜨려 할머니한테 혼난 적이 있고 큰 항아리 뒤에 숨었는데 감이 내 머리로 떨어져 놀라기도 했다니 몸을 움칠한다.
보드게임을 손주들과 함께하는 것은 좌뇌와 우뇌의 고르게 발달시키고 사회성을 길러주려는 것이다. 아쉬움이 있다면 게임 이름이 외국어가 많은 것이다. 처음 만든 사람의 이름을 붙이다 보니 어쩔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도 개발자가 많이 나오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