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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25.월.
시국기도회 집전순서
5월 2일 청주교구/ 9일 전주교구/ 16일 예수고난회, 예수회/
5월 23일 서울교구/ 30일 안동교구/ 6월 6일 수원교구
(집전 순서는 변경될 수 있습니다.)
2016.04.25.월.
부끄러운 마음
강론 : 최종훈 신부(광주교구 사목국 성서사도직)
얼마 전 세월호 2년 미사가 있기 전에 주교님과 다른 교구청 신부님과 한자리에 모여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세월호 미사에 관해서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제가 어떤 신부님께 “세월호 2주기 미사는 어떻게 진행되는 겁니까?” 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때 신부님에 저에게 하셨던 말씀이 “세월호 2주기 미사가 아니라 2년 미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주기 미사하고, 2년째 미사하고 뭐가 다를까? 저는 그게 그것이겠거니 그냥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4월 16일 팽목항에 비바람이 몰아치고 도저히 거기서 미사를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침에 가는 도중에 팽목항이 아닌 진도체육관에서 미사를 한다고 연락을 받고 진도 체육관으로 모였습니다. 제가 같이 지냈던 프랑스에 계신 신부님이 그때 갑자기 귀국을 하셔서 팽목항 으로 한번 가보고 싶으시다고 해서 팽목항을 들렀는데 그때부터 비가 많이 오더라구요. 저도 1년 만에 팽목항을 찾았던 것 같습니다. 본당에 있으면서 신자분들과 함께 미사를 가면서도, 가봐야지 하면서도 못 갔던 기억인데, 지난 4월 16일에 팽목항에 들리면서 답답함이라고 하기에는 좀 그렇고 먹먹함이 좀 들었습니다.
진도체육관에서 미사를 시작하고 미사가 끝나갈 무렵 영성체가 끝나고 한분의 어머니께서 올라오셨습니다. 저희 광주교구 식구들은 다 아시겠지만 미수습자 중 한분인 조은하 양의 어머니께서 오셔서 저희에게 이야기를 들려 주셨습니다. 그때 어머니께서 하셨던 말씀이 “700일이 넘는 2년 이라는 시간동안 저는 아직 그날을 살고 있습니다”라고 얘기하는 순간 2주기가 아닌 2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그냥 참사가 있었던 그날 하루였습니다. 하지만 어머니께서는 그 하루를 2년 동안 사신 겁니다. 이제는 딸을 볼 수 있는 희망보다는 딸이 그 안에 있지 않을까봐 무섭다고 하셨습니다. 저도 울었고 옆에 계신 분들도 울었고, 거기 진도체육관에 3천 명 정도 모이셨는데 그 모든 분들이 함께 울었습니다.
그 눈물에 저는 굉장히 부끄러워졌습니다. 그냥 저에게는 아픈 하루였고, 먹먹한 하루였고, 힘든 하루였지만, 누군가에겐 시간이 멈춰버린 하루였고, 누군가에겐 두려움이 되어버린 2년 이였습니다. 아무것도 내가 한 게 없다는 부끄러움, 나는 뭐하고 살았나, 라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부끄러움, 그 부끄러움 때문에 고개를 들 수가 없었습니다.
얼마 전에 바쁜 시간을 쪼개서 ‘귀향’이라는 영화를 봤습니다. ‘귀향’이라는 영화를 보고 맨 마지막 자막이 올라가는 순간, 다시 한 번 부끄러웠습니다. 나는 뭐하고 있었나? 저렇게 많은 사람들, 저렇게 많은 마음들이 한곳으로 모아 여기 있는데 나는 그동안 뭐하고 있었나? 라는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저는 2년 만에 이 광화문을 찾았습니다. 2년 전에는 교황님께서 오셨던 때입니다. 그 이후로 서울에 오지 않았습니다. 다시 한 번 부끄러웠습니다. 광주교구 신부님들과 아침 11시에 출발해서 7시 광화문미사 전에 먼저 서울대병원을 들렸습니다. 백남기 임마누엘 형제님이 누워 계신지 164일째 되는 날이라고 합니다. 저는 오늘 처음 갔습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이것저것 할 일 많다는 핑계로 한번 찾아보지 않았고 한번 올라올 생각도 하지 못했습니다. 부끄러웠습니다.
엊그제 지방에서 성서 강의 끝내고 올라오는 길에 저희 광주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이신 이영선 신부님으로부터 강론 제의를 받았습니다. 내가 무엇을 얘기 할 수 있을까? 내가 어떤 걸 얘기 할 수 있을까? 생각하며 집에 왔습니다. 집에 와 잠이 들었습니다. 아침 7시에 이영선 신부님께서는 항상 오늘 하루 기도할, 묵상할 것을 단체 문자 방에 올려 주십니다. 어떤 때에는 읽기도 하지만 어떤 때에는 바빠서 또 왔구나 생각 하며 읽지 않고 넘길 때도 많습니다. 내가 여기 서서 누군가를 욕하고 누군가에게 잘 하라고 할 자격이라도 있는 가? 그냥 부끄러웠습니다.
또 다른 생각이 들었습니다. 진도 팽목항에서 어머니 얘기를 듣고 있던 사람들 중에는 천주교 신자인 정치 당선자들이 있었습니다. 저 사람들은 지금 나처럼 부끄러워하고 있을까. 저기 뒤에 있는 사람이 나처럼 부끄러워한다면, 정치인들이 나처럼 부끄러워한다면, 지금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그들의 눈물과 그들의 분노와 그들의 사랑과 그들의 노력에 그들은 얼마만큼 부끄러워하고 미안해하고 있는지...
오늘은 마르코 복음 사가 축일입니다. 마르코 복음 사가는 어쩌면 부끄러워서 복음을 썼을 수도 있습니다. 로마의 박해로부터 나의 친구들, 나와함께 기도하고 나와 함께 예수를 믿었던 그 친구들이 옆에서 끌려가고 죽었습니다. 십자가에 처형되고 사자의 밥이 되어 죽었습니다. 하지만 마르코는 살아있었습니다. 부끄러웠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어쩌면 그 부끄러운 마음으로 복음서를 썼을 수도 있습니다. 자기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기에, 자기가 가장 하고 싶은 일이기에, 자기가 지금 여기서 할 수 있는 일이기에, 어쩌면 예수님의 이야기를 예수님의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 전해 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 결과는 우리에게 너무나 위대한 것으로 다가옵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부끄러우십니까? 저는 부끄럽습니다. 어찌 살아야 할지 또 부끄러워져야 될 거라 저는 계속 생각합니다. 하지만 내가 살아가는 그 자리에서 내가 만나는 그 사람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누군가의 노력과 누군가의 눈물이 헛되지 않게 그들에게 부끄러워하며 살아가겠습니다. 부끄러워하며 그들에게 그들의 눈물을 나의 부끄러움을 전했으면 합니다. 대통령도 자신의 자리에서 부끄러워했으면 좋겠습니다. 정치인들도 자신들의 자리에서 부끄러워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들도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위치에서 부끄러워하셨으면 합니다. 미안해 하셨으면 합니다. 그래서 그 부끄러운 마음이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더 큰 사랑을 함께하는 위로를 주실 거라 믿습니다. 아멘.
해군의 구상권 청구 철회 투쟁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앞 ‘비상 마을회관’ 천막 설치
"구상권이 철회될 때까지 싸우겠다"
박석진 강정 법률지원 모금위원회 운영위원장
집회나 기자회견에서 이런 발언을 많이 했었는데 미사에서는 처음이라 조금 긴장됩니다. 아까 신부님이 강론 중에 오랜만에 와서 미안하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저도 마찬가지로 이런저런 바쁘다는 핑계로 이 자리에 많이 못 왔었는데, 변함없이 이 자리를 지켜주시는 신부님들 그리고 함께해 주시는 분들에게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3,448,293,880원입니다. 해군이 116명의 사람들과 5개의 단체에게 공사가 14개월 동안 지연됐다고 청구한 구상권의 금액입니다. 어떻게 10원짜리까지 계산 할 수 있었는지 도저히 할 수는 없어요. 고소장을 아무리 살펴봐도 알 수는 없더라구요. 그런데 좀 재미있다는 표현은 맞지 않겠지만 좀 흥미로운 건 고소장을 잘 살펴보니까, 대상자들을 총 4개 그룹으로 나눴더라구요. 가 그룹, 가 그룹은 ‘핵심 세력’입니다. 나 그룹은 ‘중심 주도 세력’이에요. 그 다음에 다 그룹은 ‘적극 가담 세력’, 마지막 네 번째 그룹은 ‘부분 가담 세력’. 이렇게 네 개의 그룹으로 121명의 대상자들을 나눴어요. 그래서 그들에게 벌금을 구상권의 금액을 청구하는 금액을 따로 배분을 합니다. 핵심 세력에게는 3,148,293,880원, 나 그룹에게는 2억원, 그 다음 다 그룹에게는 9천만원, 마지막 라 그룹에게는 1천만원, 이렇게 나눴습니다. 그래서 아래로 연대책임을 져요. 밑에 사람들이 못 갚으면 핵심세력이 다 갚는, 뭐 이런 아주 재미있는 흥미로운 고소장을 읽어보게 되었는데요. 몇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그들이 이 고소장을 쓸 때 116명의 개인과 5개 단체의 신상을 확보한다는 명목으로 경찰에게 허가받지 않은 채 저희들의 개인정보를 확보를 해서 이 고소장을 썼습니다. 법적인 문제죠. 두 번째는 제주해군기지 공사가 지연된 이유는 거기에 있었던 반대활동이 중심이 아니라 더 다른 요소들이 있었습니다. 가장 중요하게는 그들이 끊임없이 했던 불법공사입니다. 최소한의 환경오염 저감장치를 만들지 않은 채 그들은 공사를 진행 했었고, 그로인해서 제주 도정조차도 수차례 공사 중단 명을 내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몇 달씩 공사가 지연되는 일이 허다했습니다. 또 하나는 자연이었죠. 태풍이 와서 그들이 쌓아놓은 건축물들을 다 부수는 일들이 빈번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이 책임들을 이것을 막았던 사람들에게 묻고자 합니다.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더 중요한 공사지연의 원인은 이 사업이 전혀 민주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죠. 2천여 명의 주민들 중 고작 80여명만 모아놓고 이 공사를 감행했고 그 과정에서 주민들은 끊임없이 저항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요소들은 전혀 이 고소장에 반영되어 있지 않습니다.
해군이 구상권 청구를 한 게, 3월28일인데요. 그 다음날 문의전화를 많이 받았습니다. 해군이 써놓은 구상권 청구 소장에 ‘가압류 할 수 있다, 개인들의 재산을’ 이런 목록이 있었거든요. 전화들이 오는거에요. 정기적금을 깨야하나요? 청약저축을 깨야할까요? 강정에 있는 농협에는 굉장히 그 다음날 붐볐다고 합니다. 주민들의 이런저런 문의사항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는 거죠. 저희들은 어쨌든 돈을 쓰며 살아야하고 적은 재산이지만 그것을 못 쓰게 됐을 때는 너무나 힘들어지는 상황들이 있는 거지 않습니까. 저들이 노렸던 거죠. 그렇게 해서 겁먹게 하고 위축되게 하고 우리를 분열되게 하려 했던 거죠.
저도 걱정이 됐습니다. 저는 중심 세력이거든요. 그렇지만 저희들은 다시 상황을 냉정히 보기시작 했습니다. 그 사건이 있고 나서 열흘 뒤에 주민들이 총회를 열었구요. 이 사건을 어떻게 볼 것인지, 어떻게 대응 할 것인지에 대한 얘기들을 나눴습니다. 그래서 주민들이 내린 결론은 “싸우자” 였습니다. 그래서 주민들이 4월 10일 밤에 자신들이 생활하던 마을회관을 버리고 지금 제주 해군기지 공사장 정문 앞에 천막을 치고, 천막을 마을회관으로 사용하면서 그렇게 싸움을, 이 구상권이 철회 될 때까지 싸우겠다는 철회 투쟁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강정과 연대하는 시민사회 단체들도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민변을 중심으로 대규모 변호인단을 꾸렸구요. 지금 이 시간에 민변에 변호사들이 내려와서 강정 주민들과 이 문제를 어떻게 풀지, 어떻게 대항할지에 대해서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23일부터 강정 영화제가 시작 됐습니다. 이 영화제를 오랫동안 준비해온 양윤모 선생님의 말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국제영화제라고 하더라구요. 서귀포시는 대관을 불허하기도 했습니다. 원래 신청했던 서귀포 예술의 전당에 대관을 반정부적인 색채가 강한 영화제이기 때문에 허락 할 수 없다, 그래서 불허 했었죠. 그래서 강정 주민들과 평화 활동가들은 성당을 빌리고 마을 회관을 열고 평화센터를 열고 강정천에 천막을 치고 지금 영화제를 진행 하고 있습니다. 천명에 달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 영화제에, 가장 가난한 국제영화제에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하고 있습니다.
저들이 갖고 있는 수단을 통해서 우리를 겁주고 우리 싸움을 포기하게 하려 하지만 저희들은 물러서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해군기지 싸움을 하다가 포기했던 많은 주민들이 일어서고 있습니다. 저들이 의도했던 목적대로 상황이 진행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광고하나 할 건데요. 6월 4일 강정 후원 주점을 엽니다. 5월 7일도 세월호 주점이 있죠. 같은 장소입니다. 을지로 태성골뱅이. 세월호 주점에도 많이 가주시구요. 강정 6월 4일 연휴기 때문에 뒷 시간 여유 있게 쓰실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셔서 많이 함께 해주셨음 좋겠구요. 단순히 술을 마시고 돈을 모으는, 사실 이거 34억 말고 해결해야할 돈이 또 있어요. 이 싸움하다가 구속됐던 사람들, 재판 받았던 사람들 벌금을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그것도 수억 원이 되거든요. 최후 한명까지 우리가 같이 책임진다는 자세로 이 싸움 시작하고 진행하고 있구요. 오셔서 단순히 주점이 아니라 강정과 관련된 마음들을 모으는 자리, 그걸 좀 기억해주시면 좋겠고, 그날 다 뵐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