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최고 미사(서귀포 성당에서)
이원우 아우구스티노
내 삶은 참으로 보잘것없다. 거기다가 만약 가톨릭이라는 신앙이 없었다면? 가벼운 푸념이 아니라, 일찌감치 이 세상을 마감했으리라. 한 십년 전쯤에…….아니면 겨우 목숨만 부지하고 있든지. 그래서 부르짖는다. 주님 감사합니다!
이번에도 주님이 아내와 나, 큰손자 바오로를 제주도까지 데려다 주신 것 자체가 은총이다. 18개월짜리 막내손자에게까지는 그분이 허락을 하지 않으셨다. 녀석의 어미아비도 동행할 수 없었다. 이번 여행은 우리에게 아주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십 년여 만인데, 그동안에 너무 가슴 아픈 일을 겪기도 했었다. 대신 새로운 생명인, 위의 베드로(막내)를 딸 내외를 통해 얻었다. 흔한 표현인 ‘만감이 교차 운운’ 따위로써는 부족하고말고.
3박 4일 여정이었다. 이튿날과 사흘째는 서귀포 어느 호텔에서 투숙했다. 물론 낮엔 관광을 했고. 손자 바오로를 배려하다 보니, 어차피 코스는 녀석 중심으로 짜지기 마련이지만, 그래도 아내와 나도 오랜만에 동심에 젖어들 수 있어서 좋았다.
아내와 나도 어찌 수확이 없었으랴. 나는 특히 제주도 ‘4‧3사건(정확한 명칭은 아니다)’이며, 조선 시대 거상 김만덕(金萬德)의 일화, 어딜 가나 단골 메뉴인 개(犬) 문화도 접할 수 있어서 그 의미가 컸다. 내 문학의 소재로 등장시키기에 알맞은 일들이었다고 강변하자.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이들의 총화(總和)보다 훨씬 큰 비중을 차지하는 체험을 했으니, 주님의 현존 확인이다. 내 생애 최고의 미사에 참례한 것이다. 주일이 아닌 그제 저녁 여덟 시 서귀포 성당! 바오로가 청영성체 교육을 받고 있는 중이라, 사실 바오로의 미사 참례는 의무적이었다. 너무 일정이 빡빡하고 피곤한 나머지, 화요일은 빠질 수밖에. 하지만 제주도까지 와서, 1900년도 초에 설립된 신앙의 산 역사 현장인 서귀포 성당에 안 갈 수 있으랴! 그런데 그 발걸음의 결과가 내 생애 최고의 마사로까지 이어진 것이다. 설명해 보자.
숙소에서 성당까지는 택시로 십분도 채 안 걸렸다, 택시로. 오후 8시라면 아무리 하지(夏至)가 가까워진 절기라 해도 사위가 어둑어둑하다. 한데 성당에서 새어 나오는 빛이, 진입로호텔 로비보다 더 밝게 해 주었다. 난 11년 전에 부산에서 영세한 아직 새내기, 교구 외의 다른 본당 미상에 참례해 본 경험이 별로 없어서였을까? 사뭇 떨리고 가슴이 설렜다.
그런데 어찌 된 셈인지 묘한 정서가 나를 휩싸는 것이었다. 이렇게 외람되게 말해 보자. 이상하게(?) 마음이 한없이 편안하였다. 주님이 그 안에 계시기 때문 아니고 뭘까?
나는 솔직히 떠벌이기 좋아한다. 바리사이를 닮았다고 자평할 때도 있다. 그 자체가 또 우스갯거리 아닐는지…….하나 이번엔 거짓을 떨어내고 참만 얘기해 보련다.
평일 저녁이라 교우들은 무도 합해 봐야 서른 명 남짓? 어김없이 연로한 분들이었다. 입당송을 부르는데, 사제는 안 보이고 복사단만 들어온다. 한데 그 중 하나가 제대 앞에 서는 게 아닌가? 도무지 뭐가 뭔지 구분하기 힘든 가운데, 방금 전의 그 무리에 신부가 섞여 있었다! 뒤늦게 깨닫고 나니, 내 얼굴이 붉어졌다. 초등학교 5학년 학생 정도, 5척 단구였다. 서른 살을 갓 넘긴 듯한, 차라리 미소년(?)에 가까운 분이 신부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분의 미사 집전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힘이 실려 있었다. 차라리 신음이 터져 나왔다. 역시 백미(白眉)는 그분의 강론이었다. 메모를 보면서 귀에 쏘옥 들어오도록 하는데, 전혀 군더더기가 없다. 물론 그 내용은 어디서엔가 몇 번 들었던 것이긴 했다. 지옥에 갈 만큼 나쁜 짓은 안 한다 치자. 그렇다고 해서 천당 갈 만큼 이웃 사랑을 실천하지 않는 다. 어찌 그를 진정한 하느님의 아들딸이라 할 수 있을까!
그렇게 맵시 있고 일사천리로 진행된 미사에 걸린 시간은 딱 29분 29초. 지난 11년 동안의 신앙생활에서 처음이다. 내 입에서 절로 터져 나오는 탄사. 오늘 내 생애 최고의 미사에 손자 바오로와 함께 참례했다.
대신 남은 시간 성당 안팎을 두루 둘러 볼 수 있었다. 입구의 또 다른 예수님 고상 앞에서 나는 충격을 받았다. 못이 예수님의 손목을 관통하고 있는 것. 일찍이 김웅렬 신부의 강의를 방송으로 들은 적 있다. 그분은 예수님의 오상(五傷을) 얘기하면서, 못이 박힌 자리가 손바닥이 아니라 했었다. 만약 손바닥이라면 예수님의 시신이 십자가에서 그대로 지탱하지 못했을 테니, 손목이 맞는단다. 그리고 손바닥과 손목은 고통 자체에 엄청난 차이가 있고.
나도 그걸 무슨 큰 자랑처럼 얘기했었는데, 서귀포 성당에서 김웅렬 신부의 증언(?)을 몇 년 만에 확인한 셈이다. 그와 관련된 소중한 체험은 부산교구청 강당과 서귀포 성당 외 두어 군데뿐! 돌아와서 고백했다. 주님, 감사합니다.
내 본당은 동백성요셉성당. 더 바랄 것 없을 만큼 현 주임신부를 통해 주님의 은총을 받지만, 만약 서귀포 성당 같은 본당이 있다 치자. 어찌 1년에 한 번쯤 안 가 보고 싶으랴.
* 12장 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