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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무엘처럼 땅에 떨어지지 않는 예언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4) 땅에 떨어지지 않는 정확한 예언을 하려면 성령의 감동이 있을 때만 예언해야 한다.
2. 예언을 받는 분들에게 마지막으로 드리고 싶은 권면
성경에는 예언에 대한 서로 상반되는 듯한 두 가지 지침이 나옵니다. 한 곳에서는 신뢰하라고 하고 다른 곳에서는 분별하라고 했습니다.
역대하 20:20 "여호사밧이 서서 이르되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들아 내 말을 들을지어다.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의 선지자들을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 하고"
고린도전서 14:29 "예언하는 자는 둘이나 셋이나 말하고 다른 이들은 분별할 것이요"
그러면 왜 이런 차이가 나는 것일까요? 그것은 구약과 신약의 선지자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1959년 2월, 예수님이 케네스 해긴 목사님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선지자의 사역에 관해 말씀하셨습니다. 그 내용 중 일부를 여러분에게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신약의 선지자와 구약의 선지자는 초자연적으로 어떤 것을 보고 알았기 때문에 보는 자(seer)라고 불렸던 점에 있어서는 매우 비슷하다. 신약의 선지자도 초자연적으로 무엇을 보기도 하고 알기도 한다.
그러나 신약의 선지자는 교회에서 앞길을 안내하라고 그들을 세우지 않았다는 점에서 구약의 선지자의 위치와는 같지 않다. 새 언약 아래 있는 그리스도인은 아무도 선지자들을 통해 인도를 받으려고 할 필요가 없다. 그리스도인은 선지자들을 통해 인도를 받을 수도 있지만 그것은 성경적이 아니다. 신약의 선지자 사역은 단지 사람들이 자신들의 영 안에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일뿐이다.
옛 언약 아래서는 오직 제사장, 선지자와 왕만이 이 직분을 맡을 수 있는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았었다. 구약시대에 네가 지금 평신도라고 부르고 있는 사람들은 그들 위에나 그들 안에 하나님의 영을 가지고 있지 않았었다. 그러므로 옛 언약 아래서는 선지자에게 하나님의 영이 있으므로 사람들은 선지자로부터 인도를 구했었다. ...
새 언약 아래서는 '선지자들에 의해 인도받는 사람들은 누구나 하나님의 아들들이다'라고 하지 않고 새 언약은 말하기를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라고 말하고 있다(롬8:14). 내가 나의 자녀들을 인도하는 최우선적인 방법은 내적 증거(the inward witness)에 의하여 인도하는 것이다."
이처럼 구약과 신약의 선지자가 다릅니다. 신약의 선지자가 하는 예언은 구약과 달리 주로 '인도'가 아니라 '확증'을 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 예언이 아니라 확증을 주는 예언만 받아들여야 합니다. 제 말이 어떤 분들에게는 생소할지라도 이것은 성경적인 것입니다.
사도행전 13:1-2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 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영어 성경들을 보면 여기에 나오는 "불러"라는 단어가 과거시제(called)입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이 이때 바울과 바나바를 처음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이미 전에 이 일을 위해 개인적으로 그들을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선지자들을 통해 다시 그 부르심을 확증해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신약의 예언은 주로 확증을 주는 역할을 합니다.
이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구약시대엔 선지자들에게만 성령이 임했지만, 신약시대엔 요엘이 예언한 대로 모든 신자들에게 성령이 임하십니다(욜2:28). 구약과 달리 신약시대엔 둘 다에게 성령이 계시므로 그 예언이 진짜로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인지 아닌지 분별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확증을 통해 가능하며, 확증은 영의 공명으로 다가옵니다. 영의 공명은 예언을 분별하는 데 가장 결정적인 요소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선지자들이 예언을 분별하는 시금석으로 공명을 꼽았습니다. 그중 몇 가지만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먼저, 신디 제이콥스는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라는 책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성령은 나의 내면에서 어떻게 증거 하시는가? ... 주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 우리의 마음은 '그렇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라고 외치게 된다. 우리 마음에 그 말씀이 공명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당신의 내면에서의 증거'라고 말하는 것의 의미이다.
브루스 요컴은 이렇게 말한다.
'공명이라고 불리는 간단한 물리적 원리가 있다. 물체는 각자 진동하는 고유 주파수가 있다. 어떤 주파수를 갖고 있는 물체의 옆에서 그와 동일한 주파수를 가진 한 물체를 진동시키면(예를 들어 어떤 종을 울림) 두 번째 물체는 저절로 진동하게 된다. 주님의 음성을 들을 때 우리에게 일어나는 현상도 이와 같다. 우리가 공명하게 되는 것이다.'"
또, 월리스 해플린 2세는 『이제는 예언 사역 시대』라는 책에서 공명이라는 단어를 쓰지는 않았지만 같은 의미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언은 각종 방언 말함과 방언 통역함의 은사와 더불어 '감동에 의해 나타나는' 은사로서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첫째, 누가 예언했을 때 그것은 하나님의 감동하심으로 된 것이어야 하며, 둘째, 예언했을 때 듣는 사람도 그 감동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일단의 예언자들에 관해서 베드로는 이렇게 말한다.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벧후1:21).
이 구절에서 보면, 구약과 신약의 예언 방식이 전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신구약 모두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이다. 즉 그들의 언어에 하나님의 감동하심이 배어 있다는 말이다.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 대부분은 기록되기 전 이미 사람들에게 말로 전달되었던 것들이었다.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은 매우 예리하게 연마된 좌우에 날선 검에 비유된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듯을 감찰하나니'(히4:12).
예언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러기에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에 이렇게 적고 있다.
'그러나 다 예언을 하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나 무식한 자들이 들어와서 모든 사람에게 책망을 들으며 모든 사람에게 판단을 받고 그 마음의 숨은 일이 드러나게 되므로 엎드리어 하나님께 경배하며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 가운데 계시다 전파하리라'(고전14:24-25)."
그리고, 케네스 해긴 목사님은 공명에 의한 확증이 없는 예언을 받아들이는 것을 경고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사람들에게 개인을 위한 예언(personal prophecies)에 관해서는 매우 조심하라고 권면합니다. 개인 예언에 관하여 조심하지 않음으로써 너무도 많은 사람들의 삶이 난파당하고 망치게 되었습니다.
누가 당신에게 결혼하라고 예언한다고 결혼하지 마십시오 나는 수년 동안 소위 그런 '예언들'을 보아왔지만 그런 결혼이 하나도 잘되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소위 예언 때문에 가정들이 파괴되었습니다.
또한 누군가 당신에게 목회자가 되라고 예언한다고 사역에 뛰어들지 마십시오. 당신 스스로 당신의 내부로부터 그런 부르심을 찾아내십시오(Get it on the inside of you). 만일 예언이 당신 속에 이미 가지고 있는 것과 같을 때는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으면 받아들이지 마십시오(이미 당신 속에 가지고 있던 것을 확신시키는 경우만 받아들이십시오). ...
기억하십시오 - 그것이 당신이 이미 가지고 있는 무엇을 확인시켜주거나 증거를 주지 않는다면(if it does not bear witness) 개인 예언은 받아들이지 마십시오"
여러 해 전, 아프리카에서 선지자학교를 하고 있는 한 외국 목사님이 우리 교회에 오신 일이 있습니다. 그때 예언을 분별하는 법을 설교하면서 "깊음이 깊음을 부른다!"는 멋진 말을 했습니다. 저는 이 말의 의미가 영과 영이 서로 공명되는 것을 뜻한다고 믿습니다. 참으로 멋진 표현입니다. 옳습니다. 참된 예언은 듣는 사람의 가장 깊은 곳 즉 영에 공명을 일으킵니다. 예언을 받을 때 '이게 누구 얘기야? 나에게 하는 예언이 맞아?' 이렇게 낯선 느낌이 든다면 십중팔구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 아닙니다. 바른 예언은 평소 원하고 기도하고 추구한 것들을 말해주므로 고개가 끄덕여지고 눈물이 쏟아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언을 받을 때 필히 공명이 되는가 안 되는가를 통해 분별하시기 바랍니다.
오래전의 일이라 어느 책인지 기억은 안 납니다만, 케네스 해긴 목사님이 한때 부자였던 사람이 예언하는 사람의 말을 듣고 투자했다가 파산한 경우에 대해서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예언자에게 예언을 받기 전에는 결코 사업상의 중요한 결정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에게 해긴 목사님은 "당신에게 조언하는 사람이 누구든지 그들의 말에 계속 귀 기울인다면 당신은 가진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될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귀담아 듣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주 부자였는데 결국 모든 소유와 집을 날려버렸습니다. 해긴 목사님은 이런 경우를 아주 여러 번 보았다고 합니다. 저도 비슷한 경우를 본 적이 있습니다. 즉 예언을 분별하지 않고 무턱대고 받아들였다가 사업상의 큰 손해를 본 사람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언의 은사를 존중하되 맹신하면 안 됩니다.
그런데 간혹 선지자나 예언사역자 중 정확성을 과시하면서 예언을 강요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케네스 해긴 목사님은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반대로 했습니다. 그분은 겸손하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진정한 선지자는 그 직임을 통하여 사람들의 삶을 흔들려고 하지 않습니다.
선지자는 개인적인 예언 영역에서 매우 주의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내가 선지자 직임을 통하여 사람들에게 사역할 때 '이것이 당신에게 무언가를 의미합니까? 이 말이 이미 당신 안에 있는 것을 확증해줍니까? 만일 당신 자신의 마음에 증거가 되지 않는다면 신경 쓰지 마십시오'라고 종종 사람들에게 말하는 이유입니다."
"나의 선지자적 사역에서 내가 하는 개인적인 예언은 어느 것이든 반드시 그들 자신의 영에 있는 것에 대한 증거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나는 항상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예언을 강요하는 것은 결코 바른 것이 아닙니다. 제 경험에 의하면 그런 사람들은 대개 갓 은사를 받았거나, 교만하거나, 양신역사를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런 자들의 말에 절대 휘둘리지 마십시오. 모든 예언을 분별하십시오. 그래서 공명이 되고 확증이 되는 것만 받아들이십시오. 그러면 예언이 모두 정확하지는 않다 할지라도 여러분에게 해가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 부록
교만한 자는 마귀가 준 미끼를 덥석 문다!
저는 과거에 은사가 성령의 은사와 마귀가 주는 은사 즉 성령의 역사와 양신역사 두 가지만 있다고 보고, 마귀가 주는 은사를 받은 사람은 틀리지만 성령의 은사를 받은 사람은 맞을 것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영분별은 그 은사를 누가 준 것이냐를 분별하라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동시에 저는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라고 주님이 말씀하신 대로, 항상 은사가 아니라 열매로 사람들을 분별했습니다. 은사가 나타나도 겸손하지 않은 사람, 세상적이거나 탐욕적이거나 이기적인 사람은 절대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저는 열매가 좋은 사람이 받은 것은 맞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저의 예상은 빗나갔습니다. 많은 이들이 정말 열매가 좋은데도 자주 틀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홀로 자주 이런 고민을 했습니다.
'올바른 성도가 기도 열심히 해서 성령의 은사를 받았는데 왜 이렇게 틀리지? 이 사람은 진짜인데 왜 틀리는 것인가? 왜 마귀의 은사가 아니라 성령의 은사가 이렇게 틀릴까? 이건 뭐지? 왜 하나님의 은사가 이처럼 불완전한가? 왜 이렇게 엉터리일까? 도대체 이런 불완전한 은사를 왜 주시는 것일까?'
교회들의 현실은 이런 회의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합니다. 그래서 저는 오래전부터 그 이유를 알고 싶어 했습니다. 답을 찾는 과정에서 저는 릭 조이너의 다음과 같은 글을 읽었습니다.
"예언이 오류가 없다고 한다면 크게 잘못된 것입니다. ... 예언은 성령의 은사이기 때문에 예수님으로부터 오는 모든 것은 거룩하게 여겨야 하지만, 또한 예언은 인간을 통하여 오는 것이므로 오류가 없을 것으로 기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케네스 해긴 목사님 역시 같은 말씀들을 하셨습니다.
"자연적인 것이 오용되는 것과 똑같이 영적인 것도 오용된다는 것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결코 깨닫지 못하여 영적인 것이란 이유만으로 그것은 완전한 것이어야 하며 오용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가끔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인데 맞지 않겠습니까?'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정확히 말하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성령의 영감 아래에서 사람들이 예언을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는 일은 무엇이든지 완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은 완전합니다. 성령의 은사들 그 자체로는 완전하지만 그것이 불완전한 그릇들을 통하여 나타나기 때문에 성령의 은사들은 완전한 상태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언과 방언 통역이 말씀으로 판단되어야만 하는 이유입니다."
이 글들을 통해 저의 의문이 다소 해소되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저는 또 다른 이유와 해결책 즉 사무엘처럼 땅에 떨어지지 않는 예언의 비결을 알고 싶어 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이번 설교를 하다가 비로소 그토록 알고 싶어 했던 것을 깨달았습니다. 전에 소개해드린 것처럼, 인도의 성자 썬다 싱은 "엑스타시에 도사린 위험들"에 대해 경험자로서 이렇게 경고했습니다.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만, 수년 전에는 가끔씩 엑스타시에 빠지기 전에 이 귀로 음성을 듣고(영계의 영적 언어로 들은 것이 아니라), 빛을 보거나 음악을 듣곤 했는데, 저는 이것이 사탄이나 혹은 어떤 악령들에 의해 생긴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떤 때는 그것이 날카로운 바늘로 저를 찌르는 듯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빛을 보았는데 그것은 진정한 빛이 아니었습니다. ...
어떤 때는 일종의 열기를 느꼈으나 그 속에 기쁨이 없었기에, 저는 이러한 체험이 제가 진정한 엑스타시에 빠지는 데 방해가 되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들은 진정한 것이 아님을 저는 알아차렸습니다. 사탄은 단지 속삭이기만 하기도 하며, 분명히 말하기도 합니다. 어느 때는 '너는 잘못되었다. 이것은 그 길이 아니다', '너는 진리를 떠났다', '너는 죄인이다. 구원받을 수 없다'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이런 말을 들으면 마음이 어지러워집니다. 그럴 때는 주님께 저를 도와주시어 그 열기와 속삭임, 전율, 찔림이 그치게 해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하였습니다. '이것들은 사탄에게서 온 것이고, 이 다른 것(즉 그 후에 오는 진정한 엑스타시)은 그것을 그치게 하신 주님에게서 온 것이다.'
... 그리스도와 밀접하게 생활하지 않는다면, 이 예비 단계에서 속아 넘어가기에 충분할 것입니다. 심지어는 기독교인이나 다른 종교의 예언자였던 진실한 구도자들조차도 이렇게 속아 넘어갑니다. 이리하여 거짓 종교들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그 종교의 설립자들은 실제로는 악마의 음성을 듣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신의 음성을 듣고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만일 그들이 이 예비 단계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계속 정진하였더라면, 진정한 엑스타시에 이르게 되었을 것입니다. 신비가들, 특히 초보자는 이런 점들에 특히 주의해야 합니다. 세상 속에서 살아온 사람들은 이전에 그런 것들을 전혀 보지 못했기에 자연히 이런 체험들을 대단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사탄이나 혹은 저급한 영계의 영들에게서 오는 것입니다."
케네스 해긴 목사님도 일맥상통하는 이런 경고를 했습니다.
"젊은 목사들이 그들이 듣는 모든 음성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은 때로 어려운 일입니다.
영적인 영역에서 그들에게 말하는 모든 음성이 성령님으로부터 온 것은 아닙니다.
나는 사람들을 두렵게 하려고 이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로는 나중에 후회하기보다는 주의하여 안전한 것이 더 나은 것입니다.
만일 어떤 선지자나 혹은 믿는 자 누구든지 주님의 음성을 알지 못한다면, 알게 될 때까지 자신이 듣는 것을 따라 행동해서는 안 됩니다. 어떤 사람이 주님이라고 생각한 것에 근거하여 성급하게 행동하기보다는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 더 나은 것입니다. ...
나의 사역 초기 시절에 나는 주님께 말했습니다. '주님, 나는 성령의 음성과 악한 영들의 음성의 차이점을 알 때까지 내가 듣는 어떤 음성에 근거해서 행동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말입니다."
저는 이런 글들을 통해 '아, 성령의 은사를 받을 때 단지 영안이 열린 것이구나. 단지 영적인 귀가 열린 것이로구나! 즉 은사가 임한 것이지 분별력이 주어진 것이 아니로구나. 마치 우리 눈과 귀에 아름다운 것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추한 것도 보이고, 좋은 말만 들리는 것이 아니라 나쁜 말도 들리는 것처럼 영적으로도 마찬가지구나. 그러므로 분별이 반드시 필요하고, 그래야 비로소 정확해지는 것이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은사를 받게 되면, 그때부터 마귀가 쓰임받지 못하게 하려고 다른 음성들을 들려줍니다. 여기에는 누두도 예외가 없습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케네스 해긴 목사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성령님의 음성과 유사한 악한 영의 음성도 있다. 그 음성은 하나님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높이는 것만 제외하고 예언의 음성과 매우 비슷하다. 거의 모든 사역자들, 그리고 거의 모든 믿는 자들은 영적으로 성숙하여 가는 도중에, 때때로 그런 다른 음성을 부지중에 듣는다. 그들은 아직 성령과 다른 영들을 구별하는 것을 배우지 않았다. 그것이 바로 그들이 사역할 때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거나 잘못된 일들이 일어나는 또 하나의 이유이다."
그러므로 은사를 받은 것 가지고는 안 됩니다. 반드시 분별력을 키워야 합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분별력을 키울 수 있을까요? 그 비결에 대해 썬다 싱은 "주님과 밀접하게 생활하는 것"이라고 했고, 케네스 해긴 목사님은 "하나님을 가까이하고 말씀 안에 머무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목자의 음성을 아는 양을 통해 말씀과 기도로 주님과 시간을 보내며 자주 그분의 음성을 듣는 것이 비결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주님과 친숙해져서 주님의 음성을 잘 아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성령의 음성과 다른 영들의 음성을 분별할 수 있고 원수 마귀에게 속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한편, 케네스 해긴 목사님에게 하신 주님의 말씀 중 특별히 주목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다음 부분입니다.
"성령님의 음성과 유사한 악한 영의 음성도 있다. 그 음성은 하나님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높이는 것만 제외하고 예언의 음성과 매우 비슷하다."
저는 전에는 이 말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이것 역시 이 설교를 하면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는데, 이해하고 난 후 그 중요성 때문에 깜짝 놀랐습니다. 제가 이해한 것을 여러분에게 설명해드릴 터이니 주의해서 들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성령의 은사를 받으면 하나님뿐 아니라 마귀도 말을 걸어옵니다. 그래서 보고 들은 것을 성급하게 다 믿지 말고 반드시 분별해야 합니다. 그런데 교만한 사람은 자기가 보고 들은 것을 분별하려 들지 않습니다. 실제로 교만한 사람일수록 분별을 하지 않고 자기가 보고 들은 것을 맹신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진짜라야 자기가 대단한 존재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기 체험을 그대로 믿어버리는 실수를 저지릅니다. 그런 사람은 마귀에게 속을 수밖에 없고, 그래서 양신역사를 하게 되고 그들의 예언은 밧나가게 됩니다.
제가 오랜 관찰과 경험을 통해 분명히 알게 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영안이 열린 사람들이 대부분 자기에 대한 계시를 받다가 잘못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거의 룰처럼 여겨질 정도로 다수가 이 함정에 빠집니다.
요한복음 15:26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요한계시록 19:10 "예수의 증언은 예언의 영이라."
에베소서 1:17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구약 선지자들의 예언이 보여주듯이(요5:39) 예언의 은사는 예수님을 증거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예수님에 대한 계시가 아니라 자꾸 자기에 대한 계시를 받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계시가 주가 되어야 하는데 자기에 대한 계시를 주로 받습니다.
물론 자기에 대한 계시가 다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김옥경 목사님도 가끔씩 자기에 대한 계시를 말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들을 때마다 굉장히 도전이 되고 큰 은혜가 됩니다. 그것은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자기의 부르심, 은사, 사명과 미래에 어떻게 쓸 것인지를 보여주시기도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기에 대한 계시가 주가 되면 안 됩니다. 김옥경 목사님처럼 주님과 진리에 대한 계시가 주가 되고, 자기에 대한 계시는 부차적인 것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자기에 대한 계시를 나누는 이유가 자기를 높이는 것이아니라 사명 감당과 교회와 성도들의 유익을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원수 마귀는 자기를 높이는 계시를 주다가 때가 되면 선을 넘어가는 계시를 슬쩍 던집니다. 예을 들어 이런 계시들입니다. "너는 바울보다 큰 자다", "이 시대에 너보다 큰 자가 없다", "너는 예수님의 우편에 앉을 자다" 이런 계시들은 선을 넘은 것입니다. 이렇게 선을 넘어가는 계시들은 전부 마귀가 준 것들입니다. 그러므로 절대로 덥석 물면 안 됩니다. 그런데 교만한 자들은 이런 계시들을 덥석 받아들입니다.
은사자들에게 교만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그 위험성을 제 과거의 경험을 통해 알기 쉽게 설명해드리길 원합니다. 저는 울산의 방어진중학교를 다녔습니다. 학교가 바닷가에 위치해 있고 경치가 너무 좋은 곳입니다. 울산의 명소인 대왕암이 있는 곳입니다. 중학교 때, 한번은 학교 반대편 바닷가로 내려가 큰 바위 위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아래를 보았는데 바로 밑에서 팔뚝만 한 고기들이 20마리 이상 헤엄치고 있었습니다. 낚시만 하면 다 잡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낚시를 하기 위해 그곳을 다시 찾았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낚시를 던져도 안 뭅니다. 절대로 안 뭅니다! 제가 바로 밑이고 잘 보이니까 제발 물라고 물고기 입 앞에 미끼를 딱 가져다 댔습니다. 그래도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입 앞에 대줘도 안 물고 미끼를 피해갑니다. 왜냐하면 고기들마다 먹는 미끼가 따로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생각에는 덥석 물 것 같은데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갑자기 이 말을 왜 하는지 아십니까? 사람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도 사탄에게 걸려들 만한 사람이 걸려듭니다. 사탄이 어떤 과대망상적인 잘못된 계시를 줄 때 아무나 그걸 무는 게 아닙니다. 그 미끼가 자기 성향과 맞아야 뭅니다. 제 앞에도 사탄이 여러 번 그런 미끼를 놓았습니다. 때로는 예언자들이 제게 선을 넘은 예언들을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자신을 너무 잘 알기에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고 있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 나는 죄인 중에 대 괴수야. 그저 하나님의 은혜로 쓰임받고 있을 뿐이야' 하고 그것을 거부했습니다.
왜 사람들이 양신역사를 하고 왜 잘못되는 줄 아십니까? 마귀가 던지는 미끼가 있는데 거기에 사람을 끄는 게 들어있습니다. 마귀의 음성, 마귀의 메시지에는 사람을 끄는 게 들어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자기를 높이는 것'입니다. 마귀의 계시에는 자기를 높이는 냄새가 솔솔 풍깁니다. 겸손한 사람, 정상적인 신자는 절대로 이것을 물지 않습니다. 마귀가 예수님으로, 천사로, 바울의 모습으로 나타나서 무엇이라고 말하든지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교만한 사람은 기다렸다는 듯이 덥석 물어버립니다. 그때부터 마귀에게 코가 꿰이고 양신역사가 시작됩니다. 마음이 더욱 교만해져서 목회자의 말도 귀에 안 들어오고, 지도도 거부하고, 교회의 질서도 지키지 않습니다. 그리고 때가 되면 마귀가 선을 훌쩍 넘어서는 계시를 줍니다. 이때 덥석 물어버리면 이단이 되고 교주가 되고 사이비가 되는 것입니다.
과거 우리 교회에 왔던 데이비드 테일러가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교회에서 가증하게도 황제를 자칭하며 "황제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 "라고 말하질 않나, 예수님의 우편 보좌에 앉을 자가 자기라고 은연중에 암시하질 않나 모두 교만해서 선을 넘은 계시를 덥석 물어버린 것입니다. 또, 그런 사람 중의 하나가 우리나라의 이재록입니다. 이재록은 말하길 "아브라함도 자기가 부르면 온다. 사장이 전무를 부르면 오겠느냐? 오지 않겠느냐?"라고 말했다는데, 이것 역시 선을 넘은 것입니다. 마음이 교만해져서 마귀가 주는 자기를 높이는 선을 넘은 계시를 덥석 문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교만한 자에게 영의 세계는 너무나 위험합니다. 그러므로 교만한 자는 아예 영안이 열리지 않는 것이 낫습니다. 계시를 받지 않는 것이 낫습니다. 은사를 받지 않는 것이 낫습니다. 왜냐하면 그것들만큼 사람을 교만하게 만드는 것이 없고, 따라서 위험한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모두 정신을 바짝 차리시고 교만한 마음을 회개하고 겸손한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잠언 16:18)